196 클리어(2)
드디어 결전의 날이 밝았다.
제1차 원정 지역은 ‘아이든’으로서 지구의 평행세계로 알려져 있었다.
다만, 아이든에 대해서 알려진 바는 거의 없으며 생물학적 무기로 무장했다는 것밖에는 정보가 없었다.
제5바벨탑 100층에 위치한 포털로 모여든 태하와 일행들, 그리고 호위를 위해 모인 드래곤 일행과 정령들이 긴장된 표정으로 서 있었다.
태하는 출발하기 전에 한 가지 당부를 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인명 피해는 발생해선 안 됩니다. 포털의 조작 권한을 가지고 오는 것에 집중하고, 만약 병력에 대한 우위를 점하지 못할 상황이 된다면 무조건 후퇴하는 겁니다.”
“오케이!”
“자, 그럼 출발합시다!”
리더 태하의 지시에 따라서 아리사는 포털을 작동시켰다.
스스스스스……!
포털에서 뿜어져 나온 금빛 에너지가 태하와 일행을 감쌌고, 드디어 차원이동이 시작되었다.
차원이동이 이뤄지는 동안 각 던전에는 신룡과 대자연의 정령왕이 만든 방어기제가 발동되었다. 또한, 최후 방어선을 유지하기 위해서 가빈과 성일이 고상근 부녀와 남기로 했다.
또한, 던전에 침입자가 발생할 시에는 몰먼족과 몬스터 군단이 즉각 출동하여 방어에 나설 예정이었다.
태하는 뒤를 든든하게 해 놓고 떠나니 마음이 아주 편안해졌다.
잠시 후, 포털에서 빠져나온 태하와 그 일행의 눈에 상당히 이질적인 모습이 들어왔다.
취이이익, 취이이익……!
엄청난 열기와 축축한 공기, 배설물이 쌓여 썩어 버린 듯한 악취가 진동하는 행성은 그야말로 최악이었다.
태하는 이런 광경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제1던전에도 이런 생명체들이 자생했던 적이 있었던 것 같은데?”
“네, 맞아요! 생명체로 이뤄진 도시들 말이에요. 그런데 지금 이곳에서 보는 도시의 풍광은 그야말로 압도적이라고 할 만한데요?”
제1던전에서 보았던 풍경이 시골 벽촌이었다면, 이곳의 모습은 뉴욕시티 중심가를 보는 듯한 느낌이었다.
만약 여기서 몬스터들이 쏟아져 나온다면 그걸 막아 내는 것이 결코 쉽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흠, 그나저나 이 행성에는 몬스터를 이런 식으로 사육하는 것이 보편화된 모양이죠?”
“메피스토의 도서관에 있는 책에 나온 바로는 행성 전체가 하나의 생명체처럼 되어 있다고 하더군요. 이들을 지휘하는 12개의 코어가 있고, 그 코어가 행성을 유지시키는 겁니다.”
“몬스터 그 자체인 행성이로군요.”
몬스터가 행성을 지배한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다.
토지는 전부 오염되어 있었고 메탄가스로 인해 해가 뜨지 않고 있었으며, 광물이라곤 아예 남아나지 않아 산이나 들을 찾아볼 수 없는 지경이었다.
아마도 이 행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새로운 자원이 필요할 것이었다.
“이들은 굳이 바벨탑이 아니더라도 다른 차원을 점령하려 들겠군요.”
“침략 행위가 없이는 행성이 유지되지 못하는 구조일 테니까요?”
“네, 아마도요.”
한시라도 빨리 포털의 권한을 회수하는 것이 중요했다.
아리사는 이곳의 포털 권한을 끌어오자면 12개의 코어를 찾아가는 것이 우선이라고 설명했다.
“포털의 조작 권한을 가진 코어를 찾아서 설득하든, 그놈들을 없애든 한 가지는 해야 해요!”
“……이 넓은 땅에서 그놈들을 대체 어떻게 찾는단 말이죠?”
이곳은 평행세계 너머의 지구다. 한마디로 아이든의 크기는 지구와 똑같다는 소리였다.
“그건 서울에서 김 서방 찾기나 마찬가지인 것 같은데.”
“아니요, 방법이 아주 없지는 않죠.”
태하는 이럴 때 쓰기 아주 좋은 스킬을 가지고 있었다.
그것은 바로 싱크로 멘탈리즘.
만약 이곳을 돌아다니는 몬스터 1마리만 잡아도 태하는 정신 추적을 통해서 코어에 도달할 수 있을 것이었다.
윤정은 태하의 스킬을 바탕으로 작전을 짜기 시작했다.
“우리 헬창 헌터 씨가 놈들과 접촉하는 동안 우리는 혹시나 있을지 모를 공격에 대비해야 합니다. 진지를 구축하고 장애물을 만들어서 적의 접근을 완벽하게 차단하는 거죠.”
“오케이, 그럼 지금 당장 시작해 보자고!”
장벽을 쌓고 진지를 구축하는 일은 대자연의 정령들이 알아서 할 수 있었다.
쿠그그극!
땅의 정령이 흙을 끌어와서 장벽을 쌓았고, 그 위에 각 정령들이 힘을 보태서 흙을 단단하게 다져 벽돌을 만들어 주었다.
또한, 벽돌로 만들어진 성벽 안에 철근을 집어넣는 골조 공사도 잊지 않았다.
“진지는 구축되었습니다. 태하 씨, 이제 시작하시죠.”
빅토리아의 신호에 따라서 태하는 이 땅 도처에 널리 퍼진 건물형 몬스터의 뿌리에 와이어를 꽂아 넣었다.
퍼억!
그러자 몬스터의 정신으로 태하의 정신이 접속하기 시작했다.
태하는 놈의 신경회로에 접속하곤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이놈들의 정신세계는 마치 복잡한 인터넷을 보는 듯이 첨예한 회선들이 거미줄처럼 엮여 있었던 것이다.
‘……인간은 이렇게 짜임새 있는 회선을 만들 수 없어. 왜냐? 우선은 양방향 소통이 원활해야 하고, 또한 통신에는 이윤이 뒷받침되어야 하기 때문이겠지.’
지구는 기본적으로 수요와 공급에 의해서 사회가 돌아간다.
경제의 주축이 되는 재화를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이라는 것이 이뤄지는데, 모든 것은 이 화폐가 움직이는 방향대로 움직이게 되어 있다.
때문에 자본주의든 공산주의든 간에 돈과 권력에 의해서 국가가 움직이고 굴러가게 되어 있었던 것이다.
화폐 중심적인 흐름은 몬스터들이 만든 중앙집권식의 네트워크를 구성하기가 어려워진다.
허나 오로지 12개의 의식만이 존재하는 세계는 다르다.
세상의 중심이 12개의 의식만으로 굴러가기 때문에 그들이 하고 싶은 대로 네트워크가 활성화되는데, 이 모든 개체들을 다스리기 위해서 스스로의 의식에 지휘 체계를 만들어서 운영하게 된다.
때문에 상당히 짜임새 있고 일률적인 네트워크 형성이 가능해지는 것이다.
이것이 가능하자면 개개인의 행동은 물론이고 의식과 생각까지도 일률적으로 통제가 되어야 하는데, 인간은 그게 불가능하지 않던가.
‘후후, 하지만 이런 일률적인 네트워크를 가지고 있기 때문에 역으로 해킹도 가능한 것이겠지!’
싱크로 멘탈리즘은 태하의 정신력이 허락하는 한에서 그 정신을 흡수할 수 있다.
태하를 레벨로 따진다면 무조건 만렙이기 때문에 이곳에서 태하를 뛰어넘을 수 있는 존재는 없었다.
그는 빠르게 지휘 체계를 정복해 가며 정신적인 정복을 이어 나갔다.
10마리를 관리하는 몬스터부터 시작하여 100마리, 1,000마리, 심지어는 100만 마리를 지휘하는 대장에게까지 접속하는 데 성공했다.
‘이런 식이라면 행성 전체를 내가 지배할 수도 있겠는데?’
워낙 천적도 없이 생존해 왔던 터라 이 종족들에게는 일종의 방어 체계 같은 것이 없었다.
지금까지의 역사를 읽어 보면 끝도 없는 내전이 대략 1만 년 정도 이뤄졌었는데, 그 이후부터는 오로지 12개의 코어만이 존재하는 일률적인 사회가 되었으므로 전쟁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그런 태평성대에서 태하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수히 많았다.
100만 마리의 대장의 의식을 빼앗은 태하는 곧바로 코어의 24개 심복에게로 접근했다.
이 24개의 심복들은 12개 코어의 지시를 받아서 도시의 제도를 정비하고, 그를 바탕으로 효율적인 지배가 가능하도록 정책을 짜는 역할을 한다.
한마디로 12개 코어가 왕이라면 이놈들은 재상인 셈이었다.
태하는 일단 24개의 심복들을 차례대로 점령해 나갔다.
-끼엑……!
점령은 어렵지 않았다. 워낙 위기 상황을 겪어 본 지 오래되어서 반응 자체가 상당히 느렸기 때문이다.
태하는 놈들을 점령하고 나서는 코어에게 어떤 방식으로 지시를 받고, 또한 도시가 놈들에게 무엇을 해 주는지 알아보았다.
‘코어는 두뇌의 역할을 하기 때문에 가장 많은 영양분을 필요로 한다……. 영양분을 받는 대신에 행성 전체를 통제해 주기 때문에 가장 효율적인 지배가 가능한 것이었구나. 마치 컴퓨터의 중앙 제어장치처럼 말이야.’
나름대로는 가장 효율성 높은 지휘 체계를 만들어 놓았다.
허나 그게 가장 큰 맹점이 될 것이었다.
태하는 우선 코어로 가는 영양분부터 차단시켰다.
그러자 영양소 창고에는 순식간에 잉여 영양분이 차곡차곡 쌓이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에!
“……헌터님이 뭔가 대단한 일을 하고 있나 본데요? 행성이 이상 반응을 보여요!”
영양분이 끊어지자, 지휘 체계에 혼란이 일어났고 행성은 서서히 카오스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12개의 코어가 힘을 잃은 지 불과 5초 후의 일이었다.
태하는 이 기회를 노려 코어들의 심연으로 파고드는 데 성공했다.
끼이잉……!
‘크으으윽! 이 새끼들, 나름대로는 방어기제를 가지고 있었구나!’
아마 싱크로 멘탈리즘과 같은 정신 계열 공격 스킬에 대비하기 위해 나름대로 강력한 방어기제를 준비했던 모양이었다.
태하는 뇌를 뽑아서 탈수기에 돌린 듯, 극심한 두통과 어지럼증을 느끼고 있었다.
허나 그것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했다.
영양 공급을 절반에서 다시 절반으로 줄여서 아예 코어의 기능을 상실하게 만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끄에에엑!
쿠르르르릉!
행성에 지진이 일어나기 시작했으며 열심히 일하던 몬스터들이 일순간 행동을 멈추고 서로를 노려보며 싸우기 일보 직전의 상태가 되어 버렸다.
-크르르릉!
“이러다가 전쟁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요?”
“젠장, 그럼 우리는 어떻게 해요?”
“별수 있어요? 죽기 직전까지 싸워 봐야지.”
태하는 일종의 셧다운을 실시하였고, 이제 곧 몬스터들은 통제에서 완벽하게 벗어나게 될 것이다.
그동안 태하는 12개의 코어를 차례대로 점령하게 될 텐데, 코어를 점령하더라도 제 기능을 찾는 데 5분 남짓 걸릴 듯했다.
그는 잠시 접속을 끊고 현재 상황에 대해 알렸다.
“최후의 5분이 될 겁니다. 그때까지 버텨야만 해요!”
“5분이라……. 그게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
태하가 퍼뜩 정신을 차리고 주변을 둘러보니 어느새 그들의 앞에 지평선을 가득 채울 정도로 많은 몬스터가 운집해 있었다.
-크르르릉……!
“금방이라도 달려들 기세인데요?”
“아마 심연 속에 있던 방어기제가 발동되었겠지요. 이방인을 향한 날이 선 공격성 말이에요.”
이방인을 배척하는 것은 어느 지역이나 다 마찬가지다.
태하와 동료들이 사라지고 나면 자기들끼리 주도권을 잡기 위해 싸울 테지만, 아마 이방인의 씨를 말릴 때까지 달려들 것이었다.
태하는 오늘도 역시 선봉에 섰다.
“뭐, 그럼 별수 있나요? 그저 끝까지 싸우는 수밖에!”
지금까지 수도 없는 싸움을 벌여 왔고 손으로 꼽을 수 없을 정도로 많은 위기에 봉착했었다.
태하와 일행들에게 이 정도의 시련은 시련이라고 할 수조차 없었다.
“옵니다!”
“원딜, 사격합시다!”
용팔을 필두로 팀 내의 모든 원딜들과 오우거, 심지어는 골렘과 스켈레톤들까지 전부 적을 향해 맹렬한 공격을 퍼붓기 시작했다.
콰아아앙!
마치 현대전을 연상케 하는 섬광과 폭발음이 천지를 진동시켰고 몬스터들은 그 공격에 닿는 즉시 가루가 되어 사라져 버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적은 끝도 없이 쏟아져 들어온다.
-끄에에에엑!
“한나 씨, 닥터! 디버프!”
“오케이!”
한나의 중력 마법이 적들의 발목을 붙잡을 때, 이주현의 디버프가 적들의 저항력과 라이프를 갉아먹어서 원딜의 공격력이 수십 배 더 강력하게 들어갔다.
원딜들의 폭발적인 딜링과 디버프 시너지에 그야말로 추풍낙엽처럼 쓰러지고 마는 몬스터들.
허나 그렇게 죽이고 죽여도 끝은 보이지 않는다.
“죽이는 만큼 충원되고 있어요!”
“젠장, 정말 많기는 우라지게 많네.”
“앗, 이번에는 적의 원거리 공격입니다!”
“……원거리?”
몬스터가 만 년이 넘게 유전자를 개량하고 또 개량하면서 진화를 거듭해 왔기 때문에 생체 병기의 수준은 이미 현대전에 버금갈 정도가 되어 있었다.
슝슝슝……!
저 멀리에서 강력한 산성 물질이 담긴 주머니가 미친 듯이 날아오기 시작했다.
그야말로 하늘을 뒤덮을 정도로 많은 폭발물이 쏟아지자, 일행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저, 저게 터지면 우리는 다 죽는 건가요?”
“그러기 전에 제가 막아 줄게요!”
놈들이 막강한 공격력을 바탕으로 파상 공세를 펼쳐 온다면, 태하 쪽에서는 희란의 방어막으로 응수할 수 있었다.
홀리가드가 아군 진영을 완벽하게 막아 주었고, 수백만 개의 산성 물질 주머니는 방어막에 부딪쳐 공중에서 폭발하고 말았다.
치이이이익!
방어막은 공격 한 번에 살짝 얇아졌다.
“……엄청난 산성인데요? 까딱 잘못하면 공격 한 방에 방어막이 깨지고 말겠어요.”
이제는 특단의 조치가 필요했다.
윤정은 고영수를 적진으로 보내기로 했다.
“영수 씨, 그림자 이면으로 숨어들어서 적들을 좀 죽여 줄 수 있어요?”
“……물론이죠!”
귀수는 오늘도 그림자 너머의 세계에서 아군을 위해 묵묵히 일할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