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 어둠 속에서(1)
힘겹게 계단을 타고 내려가는 로드리고.
탕탕탕탕……!
녹슨 철제 계단이 내뿜는 곰삭은 쇠 냄새가 코를 찌르고 있었고, 한 치 앞을 분간하기 힘든 나선형 계단은 그 끝을 모른 채 이어지고 있었다. 그리고 그러면 그럴수록 로드리고를 쫓아오는 몬스터의 괴성도 점점 가까워지고 있었다.
“……제기랄!”
만약 평소와 같았다면 이렇게 도망칠 이유 따위는 없었을 것이다. 굳이 그럴 필요 없이 쏟아져 나오는 몬스터를 차근차근 밟아 주면 그뿐이었으니까.
허나 지금은 상황이 아예 달랐다.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신념을 관철시킬 수 있느냐 없느냐의 차이였기 때문이다.
로드리고는 계속해서 달렸다.
도대체 몇 시간을 내리 달렸는지 까먹을 지경이었다. 아니, 단순히 몇 시간이 아니라 며칠, 혹은 몇 주가 되었을 수도 있다.
오로지 살겠다는 일념 하나로 달렸기에 도대체 시간이 얼마나 흘렀는지 알 수 없었던 것이다.
그러다가 로드리고는 이내 한 가지 결심을 했다.
“……이렇게 죽으나 저렇게 죽으나 어차피 죽는 건 마찬가지다. 그럴 바엔 차라리 저 빌어먹을 놈들을 1마리라도 때려죽인 다음에 죽자!”
손전등을 좌우로 비춰 보았으나 보이는 게 하나도 없었다. 만약 싸운다면 맨주먹으로 몬스터와 맞붙어야 할 수도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손에 꼭 쥐었다.
“후우……!”
손전등은 몬스터 코어 합금으로 만들어졌다. 만약 이것을 무기처럼 휘두른다면 제법 묵직한 둔기처럼 사용할 수 있을 것이다.
쿵, 쿵, 쿵……!
나선형 계단을 따라서 몬스터의 발자국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그 소리는 순식간에 로드리고를 따라오고 있었다.
그는 손전등을 쥔 손에 힘을 꽉 주었다.
“후우, 후우, 후우……!”
심장박동이 점점 빨라진다. 긴장감에 눈앞이 약간 흐려지는 것 같았고 약간의 현기증마저 느껴진다.
허나 그러다가 일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
일순간 주변이 고요해지면서 정신이 맑아지는 듯한 느낌이 든다.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차분해졌고 적을 바라보는 시선 자체가 달라졌다.
딸깍.
이내 손전등을 꺼 버리는 로드리고.
어차피 몬스터도 시각과 후각, 청각 등에 의존하기 때문에 눈앞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다면 공격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물론, 몬스터 중에서는 암흑에 적응되어 살아가는 놈들도 있지만 그래도 거기에는 한계라는 것이 존재한다.
‘이미 이곳에는 철분이 공중에 흩날리고 있기 때문에 체취가 옅어지고 있다. 여기서 내가 소리만 제대로 컨트롤할 수 있다면 저놈이나 나나 앞을 보지 못하는 건 마찬가지일 거야.’
유일한 핸디캡이라고 한다면 로드리고가 사람이고 저놈이 몬스터라는 사실이다. 몬스터는 그 자체만으로도 충분히 인간보다 강력하지만, 그것도 인간 나름이었다.
로드리고도 제법 레벨이 높은 헌터고 무한의 소환술사라는 타이틀에 걸맞은 신체 능력을 갖고 있었다.
어지간한 박투에서는 이길 자신이 있다는 소리였다.
탕탕탕……!
계단을 밟고 내려오는 소리가 점점 줄어들기 시작했다.
만약 놈이 이곳에 있다면 발소리를 일부러 줄이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머리가 제법 좋군.’
어둠 속에서는 청각과 후각에 의존할 수밖에는 없다. 제아무리 육감이 발달했어도 직감만으로 적을 상대할 수는 없지 않던가.
현재 이 둘에게 주어진 정보는 나선형 철제 계단 위에 있다는 것뿐이었다.
-크르르릉……!
터질 듯한 긴장감이 어둠 속을 지배하고 있었다.
로드리고는 오랜 사냥으로 단련된 감각을 통해 상대방의 크기를 가늠해 보았다.
‘숨통이 큰 녀석은 숨을 쉬는 것만으로도 주변이 따뜻해진다. 그리고 요상한 악취를 품은 이산화탄소 특유의 냄새가 진하게 풍겨 오지. 하지만 이놈에게서는 그런 냄새가 나지 않는다. 던전의 특성을 뛰어넘은 녀석이거나 덩치 자체가 그렇게까지 크지 않은 놈일 가능성이 커.’
당장이라도 불을 켜서 놈의 얼굴을 확인하고 싶었지만, 그랬다간 로드리고는 오늘 바로 초상을 치르게 될 수도 있었다.
그렇게 탐색전은 계속되었다.
저벅, 저벅…….
발소리가 들려온다. 가까이서 들어 보니 발에 뭔가 축축한 것이 묻어 있는 게 아닌가 싶었다.
‘발이 젖었다? 이곳 제4바벨탑에서 물이라는 것을 구할 수가 있었던가?’
이곳의 철제 계단은 분명히 녹이 슬어 있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주변에 물이 흐른다거나 고인 물이 있는 것도 아니었다.
공중에 녹아 있던 수분이 철에 달라붙었다거나 하면 몰라도 수원이 될 만한 것은 일절 존재하지 않는다는 뜻이었다.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로드리고.
‘……뭔가 이상한 점이 많아. 몬스터가 이렇게까지 신중하다고?’
몬스터 중에는 똑똑한 놈들이 많다. 그건 변함이 없는 사실이었으나, 그렇다고 해서 모두가 다 똑같은 것은 아니었다.
오히려 덩치가 작은 쪽일수록 머리가 나쁘다는 것이 몬스터의 특성이라 할 수 있었다.
그런 생각이 머리를 스치고 가는데, 불현듯 그의 뇌리를 강하게 때리는 것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공포’였다.
‘이곳에는 뭐가 있는지 아무도 모른다. 아니, 무언가 존재하는 것인지조차 알 수가 없지. 그렇다면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모든 것이 가짜일 수도 있다는 뜻이 아닐까?’
공포심은 이 세상에서 사실은 존재하지 않는 것도 만들어 낸다. 한마디로 지금까지 로드리고를 쫓아왔던 그것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 환각과 환청일 가능성이 있다는 뜻이었다.
로드리고는 손전등을 켰다.
딸깍.
어두컴컴한 공간을 밝게 비추는 손전등의 불빛.
허나 허무하게도 그의 앞에는 아무것도 보이는 것이 없었다.
“……아무것도 없었나?”
결국 아무것도 없었다. 소리만 들릴 뿐, 그를 추격하는 그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던 것이다.
허무함에 실소가 나오는 로드리고.
“하하, 하하하하…….”
멍청하게도 스스로의 공포심 때문에 몇 날 며칠을 이 고생을 한 것이었다.
그는 터덜터덜 걸어서 계단을 계속 내려갔다.
***
암흑 속에서 도대체 얼마나 걸었을까?
이제는 배고픔도 느낄 수 없었고 피곤함도 느낄 수 없었다. 한마디로 무념무상의 상태로 계속해서 걸음만 내딛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다가 로드리고는 불현듯 이런 생각이 들었다.
“……이 모든 것이 사실은 처음부터 아무것도 아닌 신기루였던 것은 아닐까?”
말이 아예 안 되는 것도 아니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들을 공포로 몰아넣었던 미아의 계단도 사실은 실존하는 것이 아니었고, 제4의 바벨탑의 층마다 존재했던 미로도 사실은 인간의 공포가 만들어 낸 허상에 불과하지 않았던가.
그렇다면 이 모든 것들은 막연한 공포심이 만들어 낸 가짜일 수도 있는 것 아닌가?
“모든 것이 가짜다. 심지어 이 계단과 어둠까지도 말이야?”
로드리고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섰다. 그러곤 나선형 계단의 기둥을 주먹으로 툭툭 쳐 보았다.
꿀렁…….
물컹거린다. 이렇게 물컹거리는 기둥이 수만, 아니 어쩌면 무한에 가까울 정도로 많은 계단을 옆구리에 끼고 있다는 게 말이 안 된다.
이윽고 눈을 감았다가 다시 뜨는 로드리고.
파앗!
“허엇!”
그가 다시 눈을 떴을 때, 주변의 환경은 어둠이 아니라 밝은 빛이 쏟아져 들어오는 순백의 공간이 되어 있었다.
대략 100평쯤 되는 방 안에는 그야말로 아무것도 없이 순백의 배경만이 존재할 뿐이었다.
그제야 그의 앞에 한 여자가 나타났다.
짝짝짝짝!
“축하드립니다. 이제야 공포를 극복하는 방법을 터득하셨군요.”
“……이게 시험의 마지막이었던 건가?”
눈앞이 너무 밝아서 차마 눈을 제대로 뜰 수조차 없었다. 그런 밝은 조명 속에서도 그녀는 환하게 웃으며 똑바로 로드리고를 응시하고 있었다.
‘각막에 무슨 특수 장치 같은 것을 달았나?’
그녀는 로드리고에게 일종의 스위치 같은 것을 건네주었다.
“계단은 이제 더 이상 내려갈 필요 없어요. 이걸 누르면 시험은 끝이 납니다.”
“분명 99층까지 내려가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호호, 99층이요? 원한다면 그곳까지 순간이동을 할 수도 있답니다.”
“……순간이동?”
“편리한 스킬이죠. 당신의 동료도 자주 사용하잖아요?”
“도약이라는 스킬 말인가?”
“그래요! 당신에게 도약 스킬을 사용할 수 있는 힘을 드릴게요.”
달콤한 제안이었다.
허나 로드리고는 그런 달콤함에 놀아날 사람이 아니었다.
“……스킬을 사용하면 시험에서 통과할 수 없다. 넌 시험을 낸 주체가 아닌 거야.”
“호호, 아니에요! 저는 당신을 돕기 위해…….”
“그리고 결정적으로 넌 스킬에 대해서 제대로 이해조차 하지 못하고 있어. 도약? 도약은 그저 앞으로 뻗어 나가기 위한 스킬이야. 순간이동을 하는 스킬은 점멸이라고 부르지.”
“…….”
순간, 로드리고의 눈앞이 어두워지면서 원래의 어둠 속으로 돌아왔다. 그리고 그의 앞에는 자신의 머리에 촉수를 꽂은 몬스터가 보였다.
스스스스……!
로드리고는 인간의 형상을 하고 있던 몬스터의 안면을 손전등으로 후려갈겼다.
빠각!
-끄에에에엑!
“네놈이었구나!”
그는 자신을 현혹했던 몬스터를 있는 힘껏 구타했다.
퍽, 퍽, 퍽!
몬스터가 피떡이 되어 도저히 돌아다닐 수 없을 정도가 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로드리고는 주먹질을 멈추지 않았다.
그렇게 얼마나 구타를 했을까?
“허억, 허억!”
숨이 폐 깊은 곳까지 차오르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앞에 누워 있던 몬스터는 그대로 목숨이 끊어지고 말았다.
-끄에엑…….
“죽었군. 그래, 이놈이 바로 나의 공포를 자극했던 그 빌어먹을 녀석이었어.”
다시 한번 주변을 둘러보는 로드리고.
그는 지금 2층에 머물고 있었고 아직까지 길은 출발하지도 않은 상태였다.
한마디로 이 몬스터가 로드리고의 정신을 지배하여 더 이상 아래로 내려가지 못하게 하고 있었던 것이다.
로드리고는 몬스터를 물리친 후, 계단을 내려갔다.
계단은 생각보다 그렇게 많지가 않았다. 아까 보았던 무한에 가까운 계단은 그저 허상에 불과했던 것이다.
한 층에 20개씩 계단을 내려가서 결국 99층에 도착했다.
“원래 그렇게 길지 않은 여정이었네. 애초에 그놈만 없었더라면 진짜 별거 아니었을 텐데 말이지.”
로드리고는 99층에 도착하자마자 100층으로 내려가는 계단 앞에 앉았다.
그러자 다시 홀로그램들이 그의 앞에 나타났다.
-시험에 통과하셨군요. 축하드립니다.
“아까 그 몬스터는 뭐지?”
-시험을 위해 지금까지 던전을 지키던 수호자입니다. 인간의 공포심을 자극해서 원래는 존재하지 않던 공간을 만들어 낸 장본인이라고 할 수 있죠.
“역시 그랬던 것이군.”
-이제 당신은 공포와 환상의 영역을 지배하게 될 것입니다. 앞으로도 계속 이렇게 바벨탑을 지켜 주시기 바랍니다.
환영들은 일순간 하나의 점이 되더니 이내 로드리고의 눈동자 안으로 빨려 들어갔다.
슈가가가각!
“끄으으으윽!”
그의 눈동자에는 제4바벨탑을 상징하는 심벌이 박혀 버렸다.
이제 드디어 로드리고는 제4바벨탑을 지키는 수호신이 된 것이었다.
그러자 로드리고는 드디어 세상을 보는 눈이 트이게 되었다.
“……이곳이 왜 필요한지 이제야 알겠군.”
제4바벨탑은 다른 구역보다 몬스터가 강력할 필요가 없었다.
애초에 정신을 지배하여 사람을 현혹시켜 시험하는 곳이기 때문이었다.
또한 제4바벨탑은 원하는 대로 그 모습을 바꿀 수 있는 신묘한 능력이 있었다.
스스스스, 파앗!
로드리고는 던전을 고즈넉한 저택의 모습으로 바꾸었고 그 마당에 동료들이 소환되었다.
“허억!”
“풍경이 이렇게 갑자기 바뀌다니?”
그저 놀라움에 어리둥절할 수밖에 없었던 동료들에게 로드리고가 말했다.
“끝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