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9 던전 각개격파(1)
제3바벨탑을 정복한 태하와 동료들은 이제 제4바벨탑이 위치한 남유럽으로 향했다.
제4바벨탑은 이른바 암흑던전이라고 불리며, 이곳은 특이하게도 층이 위로 나 있는 것이 아니라 아래로 나 있었다.
이곳은 몬스터의 숫자가 상당히 많은 편이나 몬스터 자체의 레벨은 다소 낮은 편이라는 점이 특징이다.
대체적으로 몰이사냥을 주로 하는 곳이며 몬스터로부터 얻는 수익보다는 던전 자체에서 나오는 탐사 수익이 더 많은 편이라서, 사냥보다는 채집을 위해 주로 찾곤 한다.
다만, 아래층으로 내려가면 내려갈수록 미스터리한 몬스터들이 많이 나타난다는 것이 문제였다.
제4던전의 앞에 선 동료들에게 로드리고는 주의 사항에 대해 일러 주었다.
“이곳은 진정한 의미의 ‘던전’이다. 미스터리의 영역이라고 불리며, 이곳에서 50년을 넘게 일한 헌터도 길을 잃고 사망하는 곳이기도 하지. 전체적으로 미로의 구조로 되어 있고 한번 길을 잃으면 빠져나올 수 있는 방법이 없어.”
“아니, 그럼 어떻게 클리어를 판단한다는 거지?”
“던전의 구조는 다 똑같아. 출구를 찾으면 클리어하는 거다.”
“흠……. 만약 길을 잃으면 몬스터들에게 자잘한 습격을 당해 사망하고 말겠군.”
“S헌터들도 이곳에서는 꼼짝없이 사망하고 만다. 인간은 휴식을 취하지 못하면 죽는데, 이곳은 딱 휴식을 취할 수 없도록 만들어졌으니까.”
“쉬지 못하고 잠을 자지 못한다……? 끔찍하군.”
“사람이 아무리 많이 들어가도 소용이 없어. 사람이 많아 봤자 식량이나 물만 빨리 떨어질 뿐이지. 저 안에는 그 어떤 자연적인 요소가 하나도 없어. 전체가 회색 콘크리트와 녹슨 철근 등으로 되어 있을 뿐이지.”
아직도 제4던전에 대해서 정확히 이해하는 사람은 없다. 조사가 진행된 것도 지하 40층까지밖에는 없고 그 이상의 던전에 대해 아는 사람들은 이미 사망하였기 때문에 조사를 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했던 것이다.
그런 던전을 제집 드나들듯 했던 로드리고는 그야말로 ‘인자강’ 그 자체였다고 할 수 있었다.
“자, 그럼 들어가 볼까?”
끼이이이익, 쿠웅!
제4던전은 입구가 녹이 잔뜩 슨 해치로 되어 있었고, 그 손잡이를 돌리는 것만 해도 진이 빠질 지경이었다.
허나 태하와 용팔이 있었기 때문에 문을 여는 것에는 많은 힘이 필요하지는 않았다.
비교적 던전 입구를 편안하게 통과한 일행들은 마이너스 코어로 만든 손전등을 켰다.
머리와 팔, 그리고 다리에도 불빛이 뿜어져 나오기 때문에 사방 천지가 암흑으로만 된 던전에서 제법 멀리까지 볼 수 있었다.
쿵, 쿵, 쿵…….
마치 깊이를 알 수 없는 지하실로 내려가는 듯, 나선형 계단이 아래로 끝도 없이 뻗어 있었다. 그리고 한 층마다 표지판이 걸려 있었고 그 표지판을 따라서 안으로 들어가면 미로가 나오는 형식이었다.
“그냥 이 아래로 쭉 내려가면 안 되는 건가요?”
희란의 막연한 질문에 로드리고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저기를 내려가면 어느 층으로 가는지 알 수가 없어. 한마디로 길을 잃게 된다는 뜻이지. 영원히 이곳에 갇혀 시신으로 발견되고 말 거야.”
“……살벌한 곳이네.”
차라리 자연환경 속에서 몬스터를 신나게 잡았던 제1바벨탑은 양반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누구든 만약 어디서 죽을 것인지 선택한다면 주저 없이 제2, 제3바벨탑을 택할 것이었다.
그만큼 막연한 공포를 자아내는 이 미스터리한 공간을 헤맨다는 것은 쉽지 않은 일이었다.
뚜벅, 뚜벅…….
계단을 타고 내려와 2F라고 적힌 지하실 이정표를 찾았다.
로드리고는 동료들을 데리고 우측으로 나 있는 길을 따라 걸었다.
“이쪽이다. 여기서부터 나를 따라서 걸어야 해. 만약 진형이 흐트러진다거나 누구 1명 낙오된다면 우리는 꼼짝없이 죽는 거다.”
“……살벌하기 그지없군.”
“그럼, 준비되었나?”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암흑과도 같은 공간에는 오로지 진한 철분 냄새만이 가득했다. 그리고 고요하던 던전에서는 간헐적으로 몬스터의 괴성이 들려왔다.
-……끄에에에에에!
사방 천지가 다 밝았어도 무서울 판에 이런 괴성까지 들려오니 그야말로 사람의 정신이 다 이상해질 지경이었다.
허나 태하와 일행들은 멈추지 않는다.
“자, 갑시다!”
“오케이!”
로드리고의 뒤를 따라서 걷는 태하와 동료들.
그야말로 거침없이 앞으로 쭉쭉 치고 나가는 로드리고의 걸음을 따라서 걷다 보니 체력 소모가 만만치 않았다.
중간에 선 희란이 말했다.
“조금 천천히 갈 수는 없어요? 후미에 있는 정글러들이 뒤처지겠어요.”
“이 이상 느리게 간다면 어차피 다 죽는다. 이제 몬스터들이 냄새를 맡았을 거야. 아마 이대로 뒤처진다면 몬스터들의 습격을 받을 수밖에는 없겠지.”
“……쉽지 않네, 정말.”
“어떤 던전이든 다 위험하다. 제1바벨탑도 만만치는 않았을 텐데? 몬스터의 레벨이 여타 다른 던전과는 비교가 안 될 정도였으니까.”
제1바벨탑은 던전의 지형 자체는 그렇게까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어디를 가든지 간에 몬스터의 습성에 맞춰서 설계가 되어 있을 뿐이지, 지형 자체가 발목을 잡는 복잡한 구조는 아니었다는 뜻이다.
때문에 다른 던전에서 생활하던 헌터들은 제4던전에서의 생활에 익숙하지 않을 것이었다.
다만, 유라시아 북부 던전에서 생활한 제5던전의 헌터들은 달랐다.
아리사는 이곳의 풍경이 제법 눈에 익은 모양이었다.
“제5던전은 조난던전이라고 불러요! 그만큼 사방 천지에 안개가 자욱하고 발밑은 뜨겁죠. 몬스터들도 징그럽게 생겼고요. 그런 던전에서 생활하다 보면 이곳의 풍경은 제법 익숙해질 수밖에는 없겠네요.”
“……정말로 세상은 넓고 이상한 곳은 많구나.”
이곳의 바벨탑은 도대체 어떤 훈련을 위해서 만들어진 것인지 선뜻 이해가 되지 않을 정도로 복잡하다. 허나 아리사는 이곳에 금방 적응해서 동료들에게 조언을 해 줄 정도가 되었다.
측면에서 몬스터의 습격에 대비하는 제2정글러 유신성에게 아리사는 측면보다는 정면을 보라고 조언했다.
“몬스터가 측면에서 갑자기 치고 들어오면 어차피 감각으로 알게 되어 있어요. 이곳에 있는 몬스터들의 레벨은 제1던전과는 달라요. 공격력 자체가 그리 대단하지는 않은 데다 조심성도 별로 없죠.”
“조심성이 별로 없다……?”
그녀의 조언이 채 다 끝나기도 전에 어디선가 괴성이 들려온다.
-으어어어억!
“……허, 허억!”
전신이 피로 물든 인간의 형상, 그러나 피부는 거무죽죽해서 그야말로 썩은 인간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 정도로 끔찍했다.
그런 거무죽죽한 피부의 인간을 상대하는 아리사의 손은 아주 가볍기 그지없었다.
빠각!
“하나 잡았다!”
무식하게 큰 망치를 휘두르는 그녀의 손속에는 자비가 없었고, 몬스터는 뇌수를 쏟으며 사망하고 말았다.
그녀는 코어 합금으로 만든 연금술 망치에 묻은 피를 헝겊으로 잘 닦아 냈다.
“자, 봤죠? 이렇게 요상한 소리를 지르면서 달려와요. 어둠 속을 뚫고 달려오다 보니, 사실 오랜 레이드로 지친 사람들에게는 신경쇠약을 불러일으키는 요소가 되죠.”
“당신은 제4바벨탑에서 활동해도 충분히 좋은 성적을 거뒀겠는데요?”
“헤헤,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저는 제5바벨탑이 더 좋았어요! 뭐랄까, 조금 더 기괴하고 괴상망측한 게 취향이랄까?”
유신성은 부르르 몸을 떨었다.
지금 그의 앞에 죽어 있는 몬스터의 형상만 봐도 보통은 아니었기 때문이다.
“……이게 징그러운 게 아니라고요?”
“히히, 이 정도면 귀여운 거죠! 제5바벨탑에 있는 몬스터들을 보면 기겁하시겠는데요?”
도대체 그녀는 어떤 삶을 살아온 것일까.
동료들은 고개를 가로젓지만, 정작 그녀는 발랄하게 다시 여정을 떠난다.
***
지하 2층의 미로는 생각보다 훨씬 더 복잡했다.
“좌측으로!”
-끄에에에에엑!
“제기랄, 또 몬스터가?!”
좁은 길목, 그리고 마치 라면의 면발처럼 구불구불하게 얽힌 미로 곳곳에는 몬스터가 산재해 있었다.
빠각!
-크헤엑!
“한 방에 보내기 좋네! 근데 손맛은 좀 아쉬운데요?”
“……대단해. 이 상황에서 손맛을 찾다니 말이야.”
“여러분들은 좀 아쉽지 않아요? 나는 아쉬워서 좀 그런데? 히힛!”
예쁜 또라이라는 말이 그녀에게는 너무나도 잘 어울릴 것 같았다.
태하와 일행들은 무려 이틀이나 쉬지 않고 미로를 지나 입구를 찾았고, 간신히 그곳에서 휴식을 취할 수 있었다.
그나마 다행인 것은 아래로 내려가는 계단에는 몬스터가 없다는 점이었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는 사람들이 먹다 남긴 음식이라든지 모닥불 따위가 아직 그대로 남아 있었다.
“여기서 쉬었다가 내려간 모양이죠?”
“보통은 그렇게 하곤 하는데, 사실 이곳을 겪은 헌터들은 지역을 옮기고 말지 여긴 다시 안 찾아.”
“너무 끔찍해서?”
“죽을 뻔했다는 공포가 엄습해 오기 때문이지.”
“아니, 그럼 이곳을 다시 찾는 사람들은 뭐예요?”
로드리고는 피식 웃으며 말했다.
“보석.”
“보석……?”
“이곳에서 몬스터 코어도 발견되긴 해. 대량 살상을 하다 보면 그 양이 상당히 많기 때문에 돈도 제법 되는 편이지. 하지만 10층마다 발견되는 보석 때문에 이곳에 발길을 끊지는 못해.”
태하는 어디선가 보석에 대해 들어 본 적이 있는 것 같았다.
남유럽 던전의 보석은 입자로 이뤄진 보통의 물질과 반대되는, 이른바 ‘반물질’ 상태로 발견되는 것이었다.
“지금까지는 입자가속기를 통해서 반물질을 만들어 냈었지? 하지만 이곳에서는 그게 보석에 싸여 있는 채로 발견되기도 해. 그 가격이야 뭐, 말로 할 필요가 없겠지?”
반물질의 가격은 1g에 7경 원이 넘는, 그야말로 천문학적인 가격을 가진 물질이다.
비록 이곳에서 발견되는 반물질의 양이 극히 미미하다곤 해도, 한 번 발견되면 그 즉시 팔자를 펴게 된다.
그게 바로 제4바벨탑에 목숨을 걸게 만드는 요소였던 것이다.
“한번 터지면 자손만대가 번창하고 손 하나 꿈쩍하지 않고 살 수 있게 해 주지. 그게 바로 제4바벨탑의 매력이라고나 할까?”
“하지만 그렇게 쉽게 발견되지는 않을 거 아닌가요?”
“당연하지. 쉽게 발견되지는 않아. 행여나 발견된다고 해도 그 등급이 따로 있기 때문에 보석 안에 반물질이 아예 들어 있지 않은 경우도 있지.”
반입자가 응축되어 있는 이 물질이 왜 이곳에 있는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다.
다만, 한 가지 중요한 것은 이것이 바로 블랙홀이나 화이트홀, 이면세계를 연구하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할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것을 통해 제4던전은 부르주아의 던전이라고 불리고 있지만, 여기서 살아 나간 사람도 별로 없었다.
여기서 동료들은 한 가지 의문이 들었다.
“아니, 잠깐만요. 로드리고, 당신도 그럼 반물질을 본 적이 있겠네요?”
로드리고는 다음 층으로 내려갈 준비를 갖추기 위해 텐트를 펼쳤다. 그러곤 웃으면서 그 질문에 답을 주었다.
“내가 무한의 소환사로 불리게 된 이유가 과연 무엇인 것 같아? 단순한 각성? 그것만으로 가능했을 것이라고 생각해?”
“……아하!”
“자, 그럼 잠이나 좀 자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