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85화 (185/197)

185 결국 돌파(1)

100층의 끝으로 가는 길은 멀고 험난하기만 했다.

쿠구구궁!

천지가 진동하는 것까지는 괜찮은데 사방에서 바람이고 천둥이고 닥치는 대로 때려 대니 도무지 정신을 차릴 수가 없었다.

콰아앙!

“크으으윽!”

“잘못하면 선체가 파손되겠다요!”

“그래도 간다!”

“만약 선체가 파손되면 우리는 다 죽는다요!”

“안 죽어! 그러니 얼른 달리기나 해!”

“으으, 알겠다요오옷!”

여차하면 희란의 방어막을 몸에 두른 채 로드리고의 소환수들을 타고 던전을 나가면 된다. 만약 그것도 여의치 않으면 이스터에그인 스칼렛의 힘을 쓰면 되고 말이다.

지금 중요한 것은 과연 얼마나 단단하게 버틸 수 있느냐, 바로 그것이었다.

태하는 이를 악물고, 버티라고 동료들을 독려했다.

“점진적 과부하! 그거라고 생각합시다!”

“……아아, 그래! 이것도 점진적 과부하가 될 수 있지!”

“오오옷! 갑시다!”

헬창들에게 점진적 과부하라는 단어는 그야말로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꿔 주는 마법의 단어나 마찬가지다.

태하의 한마디에 동료들은 그야말로 광분하여 모험 자체를 즐기기 시작했다.

우르르릉, 콰아앙!

“으하하하! 더 몰아쳐라! 고작 이게 대자연의 힘이냐?!”

“으헤헤헤! 달려, 달리라고!”

그야말로 진정한 광기를 보여 주는 이들을 바라보며 스칼렛은 혀를 내둘렀다.

그녀가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이렇게까지 뭔가에 미쳐 있는 사람들은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참 나, 기가 막혀서. 내가 소싯적에는 보디빌더와도 사귀어 본 적이 있는데 말이야, 이건 너무한 거 아닌가?”

“헬창의 앞을 막을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습니다!”

100층의 끝에는 번개로 된 장막이 존재한다고 했다. 그 장막을 어떻게 뚫는지는 알 수가 없다.

이곳까지 와 본 사람도 없었고, 그게 가능한 사람도 애초에 존재하지 않았으니까.

허나 그런 100층의 끝에 뿌연 인영이 하나 보인다.

“……어, 사람?!”

“사, 사람이 있다고요?!”

분명 사람이었다.

그의 옆에는 검은색 망토를 입은 기사 1명과 온통 뼈밖에 남지 않은 작은 드래곤이 1마리 있었다.

순간, 로드리고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루쿤타!”

“루, 루쿤타? 그게 지금 여기서 왜 나오는데?”

“저 옆에 서 있는 것! 모르스 나이트와 데스 드래곤이잖아!”

“……엉? 저게?”

아무리 좋게 봐 줘도 그렇게 강력해 보이지는 않았다. 기껏해야 검이나 좀 휘두르고 하늘이나 날 것 같은 느낌이랄까?

허나 루쿤타로 짐작되는 인물이 태하 일행을 발견하자, 상황은 급변하게 되었다.

스스스스……!

모르스 나이트는 자신의 힘을 개방하기 시작했는데, 그의 주변으로 모여드는 검은 기운은 대자연의 무서움과 비교해도 전혀 모자람이 없을 정도였다. 게다가 그 옆에 있던 데스 드래곤은 신룡과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의 덩치와 힘을 갖고 있었다.

-쿠오오오오오!

“……진짜로 있었네?”

“아니, 제기랄! 저게 갑자기 여기까진 어쩐 일이죠?”

“어쩌면 던전을 파괴하고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것 아닐까요?”

“그럼 루쿤타가 마왕을 섬기는 가문의 일원이라는 거예요?”

“그럴 가능성도 있죠!”

지금까지 루쿤타의 전설은 거의 100년 가까이 전해져 왔었지만, 그에 대해서 제대로 아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허나 여기, 딱 한 사람이 있었다.

“아니, 루쿤타는 그럴 사람이 아니야.”

“스칼렛……?”

“예전에 학대를 당하던 아이들 5명이 늪에 빠져 죽을 뻔했는데, 루쿤타는 자신이 대전투로 다 죽어 가던 상황에서도 그 아이들을 구해 줬어. 잘못하면 자기가 죽을 수도 있는데 말이야.”

“아니, 스칼렛이 그걸 어떻게 알아요?”

“……잘 알지. 내가 그 아이이니까.”

“네?!”

뜻밖에도 그녀는 루쿤타와 인연이 있었던 것이다.

스칼렛은 일단 이두박근호에서 내려 그와 얘기하는 것이 좋겠다고 나섰다.

“내가 먼저 내려서 얘기를 해 볼게. 아마 그라면 나를 알아볼 거야.”

“아니, 만약 루쿤타가 아니라 그의 능력을 복제한 다른 놈이라면요?”

“그렇다면 내가 죽을 수도 있겠지.”

“……그건 너무 극단적인데요?”

“하지만 저 능력을 사용할 수 있는 사람은 루쿤타뿐이야. 그건 내가 제일 잘 알아.”

결국 태하는 그녀를 데리고 함께 배에서 내리기로 했다.

허나 다른 동료들은 이곳에 남겨 두기로 했다.

“제가 스칼렛을 데리고 다녀올게요.”

“……잘못하면 둘 다 죽어요.”

“아니요, 저는 안 죽습니다. 알잖아요?”

이제는 불사의 몸이 되었으니 두려울 것이 없었다.

태하는 이두박근호의 에어로크를 빠져나와 해치를 열었다.

끼리리릭!

그러자 검붉은 불길로 일렁거리는 검을 든 모르스 나이트가 태하에게로 걸어왔다.

그의 걸음 하나하나에는 죽음이 담겨 있었고, 그 발길이 만약 공격을 위한 것이 되는 순간 이 세상에서 살아남을 수 있는 이는 없을 것이다.

허나 그는 살의는 갖고 있지 않았다.

-……수호자?

“나를 아나?”

-여기서 마이트를 만나게 될 줄이야!

모르스 나이트는 검을 거두고 본래의 힘을 다시 갈무리하였다. 이윽고 고개를 돌려서 루쿤타를 부르는 모르스 나이트.

-주인님! 그가 왔습니다!

“정말로 100층까지 왔나? 만약 그렇다면 이스터에그를 찾은 모양이로군.”

어느새 다시 작은 새끼 용의 모습으로 돌아온 데스 드래곤과 함께 태하에게로 어슬렁어슬렁 걸어오는 루쿤타.

가까이서 본 그의 모습은 그야말로 압도적, 그 자체였다.

210cm는 될 법한 키에 어깨는 성인 남성이 두 손을 옆으로 쫙 펼쳐도 모자랄 정도로 넓고 거대했다.

“……엄청난 근육이다.”

“반갑다. 너희들의 호위 무사 루쿤타다.”

***

피가 난무하고 살이 찢어지는 참혹한 광경.

푸하아아악!

“크허어억!”

“……이건 너무 잔인하잖아. 저 사람들이 만약 범죄자가 아니면 어쩌려고?”

“DNA 샘플을 계속 채취하고 있는데, 저놈들 국제 사범으로 수배가 되어 있어. 저 신룡이라는 여자, 보통이 아니라는 소리지.”

“괜히 100층의 보스가 아니로군.”

그저 손가락 한 번 튕겼을 뿐인데 사람을 골라서 죽일 수 있다는 것은 그야말로 입이 떡 벌어지는 일이었다.

허나 정작 본인은 그 일을 마치 숨을 쉬듯 아무것도 아니라는 듯이 계속하고 있었다.

무려 300명이 넘는 범죄자들이 죽었고, 그 피를 흠뻑 뒤집어쓴 시민들은 공포에 떨고 있었다.

잠시 후, 현장에 도착한 CIA와 FBI는 청룡방을 대신해서 시민들을 통제했다.

“이제부터 여러분들은 우리 미합중국의 정부가 통제하겠습니다! 한 줄로 서서 신원 확인을 받으시기 바랍니다!”

“신원 확인……?”

“당신들이 일하던 회사는 범죄자들이 장기를 밀매하기 위해 세운 것입니다. 만약 여기서 범죄 사실이 하나라도 발견된다면 즉시 체포하겠습니다.”

“……아니, 그런 게 어디 있어! 당신들, 영장 있어?!”

“네, 있습니다. 만약 여기서 한 발자국이라도 움직인다면 범죄에 연루되었다고 판단하고 즉각 사살하겠습니다.”

미국의 입장은 극단적이라고 해도 될 정도로 단호했다. 당연한 얘기이지만 미국은 테러, 범죄와는 협상하지 않는다는 원칙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다른 것도 아니고 장기 밀매 후 시신을 던전에 유기했다는 범죄의 심각성까지 생각하면 이곳에서 즉각 사살이 일어나도 전혀 이상할 것이 없었다.

하는 수 없이 CIA와 FBI의 조사를 받는 사람들.

삐빅!

“당신, 사만다 레드힐. 범죄단체에 소속되어 월급을 받고 일한 내역이 있군요. 당신을 현행법으로 체포합니다.”

“……뭐, 뭐라고요?! 저는 몰랐어요! 정말이라고요!”

“묵비권을 행사할 수 있고 변호사를 선임할 수 있습니다. 지금부터 당신이 하는 말은 법정에서 불리하게 작용할 수 있음을 알려 드립니다. 자, 갑시다.”

FBI와 CIA는 전 세계의 모든 정보기관, 사법 및 행정기관의 도움을 받아서 최대한의 수사를 진행했었고 지금 이곳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범죄 사실을 하나도 빠짐없이 기록해 두었다.

한마디로 이곳은 흉악범들과 단순 협력자들을 가려내는 선별 장소인 셈이었다.

백선은 이제 뉴 엠파이어 타워 안으로 들어가서 잔당들이 남아 있지 않은지 살펴볼 생각이었다.

“가자! 저 안에 어떤 사악한 무리가 있을지 아무도 모른다!”

“잠깐, 우리가 먼저 안을 살피도록 하지. 인간이 들어가면 저놈들이 어떻게 반응할지 모르는 거잖아?”

“아아, 그렇겠군. 좋소. 뭔가 방법이 있는 게요?”

“방법이야 많지.”

유리아가 홍이를 쳐다보자, 홍이는 웃으며 손가락을 튕겼다.

따악!

-으아아앗, 짜잔!

퍼엉!

분홍색 연기와 함께 소환된 뱀파이어 노블.

그는 거대한 망토를 몸에 두르고 있었는데, 현장으로 소환되자마자 마치 자신의 할 일을 이미 알고 있다는 듯이 행동했다.

두툼한 망토를 펼치는 뱀파이어 노블.

“자, 가라!”

-끼리리릿!

뱀파이어 노블은 데스벳과 상당히 조합이 좋기 때문에 함께 작전을 수행하면 그 능력이 2배로 상승하게 된다.

데스벳들은 뱀파이어 노블의 지시에 따라서 45층 건물 안을 하나도 빠짐없이 뒤지기 시작했다.

그러다가 인간이 발견되면 그 정보를 이블아이에게로 전송해 주고, 유리아의 최종 지시를 받았다.

따악!

-끄아아아아악!

“한 놈 처리. 자, 계속 뒤져라.”

유리아는 사람이 어디에 있는지만 알면 충분히 그 머리를 터뜨려 죽일 수 있는 능력이 있었다.

한마디로 보이기만 하면 누구든 그 자리에서 곤죽이 되어 버린다는 뜻이었다.

헌터들은 두려움에 떨기 시작했다.

“……생긴 건 안 그런데 하는 짓이 살벌하네.”

“젠장, 아까 괜히 까불었나?”

그들은 가녀리고 아름다운 모습에 그만 눈이 멀어 유리아가 뭐 하는 사람인지 잠시 잊고 있었다.

그녀는 던전을 지키는 최종 보스, 태하의 가장 충성스럽지만 가장 무서운 부하였던 것이다.

한참을 건물 밖에서 사람을 죽이던 그녀는 이블아이에게 손짓했다.

“가서 데려오렴.”

-크어어억!

이블아이 1마리가 유리아의 명령에 따라서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그러곤 그 안에서 피범벅이 된 채로 축 늘어진 사람 2명을 데리고 나왔다.

그녀는 죽었다고 해도 충분히 믿어 줄 만한 두 사람의 얼굴을 바라보며 생수병의 뚜껑을 열었다.

끼리릭.

생수를 한 모금 넘긴 그녀. 이윽고 초주검이 되어 버린 놈들의 얼굴에 물을 뿌려 버렸다.

촤라락!

그러자 이내 정신을 차리는 두 사람.

“허어어억!”

“일어나. 여기가 지금 어디인 줄 알고 자빠져 자는 거야?”

“……뭐, 뭐냐! 너희들, 도대체 정체가 뭐야?!”

그녀는 악을 쓰고 소리를 지르는 놈들의 앞에 쪼그려 앉았다. 그러곤 자신의 얼굴에 마력을 불어 넣었다.

우그그극!

순식간에 흉포한 드래곤의 얼굴로 변하는 그녀.

“크르르릉……!”

“……이, 이런 씨발.”

“후후, 알겠어? 넌 이런 놈들에게 걸린 거야. 지독하게 코가 꿰어 버렸다고.”

유리아는 놈들에게 생수를 한 병씩 나눠 주었다.

떨리는 손으로 생수를 받는 범죄자 2명.

그녀는 환하게 웃는 얼굴로 말했다.

“자, 그럼 너희들에게 선택지를 줄게. 잘 들어. 둘 중에 1명은 나를 따라가야 해. 너희들이 아는 모든 것을 내게 털어놓아야 하거든.”

“아, 아는 것이라니?”

“이 사태를 어떻게 일으켰고, 왜 일으켰는지. 그리고 너희들의 뒤에는 과연 어떤 흑막이 있는지, 내가 좀 알아야겠거든.”

“……만약 우리가 끝까지 입을 열지 않는다면?”

유리아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왜냐고? 내가 지금까지 만 년을 넘게 살면서 지옥 불에 굴려서 입을 안 여는 것들은 본 적이 없거든.”

아리따운 유리아의 얼굴이 사악한 악마로 보이는 것은 느낌 탓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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