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4 100층까지 한 번에?(2)
막막했던 100층으로의 항해는 의외로 단시간 만에 마지막을 앞두고 있었다.
허나 그 마지막은 결코 인간이 만만하게 생각할 수 없을 정도의 힘을 보여 주고 있었다.
고오오오오……!
지금까지 이 세상에 일어났던 그 어떤 자연재해와도 비교할 수 없을 정도의 초자연적 현상들이 100층에서는 그저 흔한 산들바람처럼 일어나고 있었던 것이다.
“……토네이도가 무슨 특급 태풍보다 더 크네요.”
“회오리바람이 저렇게 크면 도대체 남아나는 게 있어요?”
“그러니 대자연의 정령이라고 하는 모양입니다. 세상에나, 이렇게 거대한 회오리바람은 본 적도 없어요.”
도대체 끝이 어디인지도 모를 땅과 바다, 그리고 산이 조화롭게 이어져 있었지만 그 망망대해와 지평선은 모두 재해로 가득 차 있었다.
쿠르르릉……!
“……지진이네?”
“앗, 저기 화산이 분화하고 있다요!”
“지진에 화산에 토네이도에! 설마 저 안쪽으로 가면 갈수록 해일이라든지 천둥이 내리치는 건 아니겠지?”
태하의 불안한 예감은 틀린 적이 없었다.
이두박근호는 토네이도와 화산 분화를 간신히 피해 가며 던전 안쪽으로 이동하고 있었는데, 그곳으로 가면 갈수록 재해의 규모는 점점 더 커져만 갔다.
우르릉, 콰아앙!
직경만 해도 무려 20미터는 될 법한 굵고 거대한 낙뢰가 사방에서 내리치고 있었고, 그것에 맞는 바위는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잘못하면 여기서 다 죽는다요!”
“제기랄, 이런 미친 자연재해를 어떻게 뚫고 보스를 잡으라는 거지?”
태하는 눈앞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지금까지 100층만 가면 모든 것이 끝난다고 생각해 왔었는데, 이제 보니 인간은 제2바벨탑 2층을 절대 정복할 수 없도록 설계가 되어 있었던 것이다.
이제 그는 양단간에 결정을 내려야 했다.
“대장! 앞으로 가야 할지, 후퇴를 해야 할지 결정해야 해요!”
“……여기서 포기할 수는 없는데.”
뒤를 돌아보면 분명 살아서 돌아갈 수 있는 길이 있었다. 허나 그 길을 따라서 던전을 나가게 된다면 결국 또 똑같은 일만 반복될 것이 분명했다.
태하는 여기서 결단을 내렸다.
“갑시다! 어차피 언젠가는 돌파해야 할 지역입니다! 여기서 우리가 지레 겁을 먹고 도망이나 친다면, 아마 제2바벨탑은 물론이고 제3바벨탑에는 아예 발도 들일 수 없겠죠.”
“……그건 맞는 얘기죠!”
“원래 헬창스에게 후퇴란 없었습니다. 내가 잠시 그것을 잊고 뒤를 돌아봤네요. 하지만 이제 뒤돌아볼 일 없습니다. 자, 갑시다!”
이것은 막다른 골목이라서, 혹은 태하 일행에게 남은 패가 더 이상 없어서 등의 이유로 후퇴하는 것이 아니었다.
모든 것은 오로지 목표를 위한 한 걸음, 그것에만 시선이 집중되어 있었던 것이다.
총총은 이두박근호의 액셀러레이터를 힘껏 밟았다.
부아아앙!
“그럼 간다요오옷!”
이두박근호는 우주 한복판에서도 버틸 수 있게 설계되어 있었다.
마정석을 극도로 단련하게 되면 초저온에서도 버틸 수 있으며 태양에 가까이 가더라도 녹지 않고 버틸 수 있었다.
아무리 대자연이 대단하다고 하더라도 우주의 힘을 끌어오지 않는 이상 이두박근호를 박살 낼 수는 없다는 뜻이었다.
다만, 이두박근호 내부로 들어오는 압력이라든지 극심한 온도 변화 등은 일행이 모두 감수해 내야 할 것들이었다.
고오오오오……!
“해일이다요! 모두들 충격 방지 캡슐을 준비해 달라요!”
“오케이!”
충격 방지 캡슐의 사용법은 수도 없는 훈련을 통해서 익혀 왔기 때문에 해일에 대비하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그 충격을 버텨 내는 것은 엄청난 정신력이 필요한 일이었다.
쿠구구구궁, 콰아앙!
그야말로 높이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치솟은 해일이 부서져 내리자, 지금까지 그 어떤 공격에서도 받아 볼 수 없었던 막대한 압력이 가해졌다.
“으으으으윽……!”
“내, 내장이 터질 것 같아요!”
“입 벌리지 말아요! 그냥 버텨요!”
더 이상 말을 하면 그 순간 복압이 풀려서 장기가 망가질 수도 있었다. 만약 여기서 장기가 망가지게 된다면 제아무리 압력에 버틸 수 있는 근력이 있다고 하더라도 말짱 꽝이었다.
콰아아앙!
해일이 떨어져 내렸다고 해서 파도가 내뿜는 강력한 무기가 그 힘을 다한 것은 아니었다.
1차로 해일이 부서지면, 그 조각조각 난 작은 파도들이 뒤를 이어서 지면을 강타하게 되는 것이었다.
그런 연타를 맞은 이두박근호는 거의 만신창이가 될 정도였다.
허나 놀랍게도 이리저리 찌그러졌던 이두박근호는 만신창이가 될 때마다 스스로 회복하는 모습을 보여 주었다.
쿠그그극!
“……철이 재생을 하네?”
“이것이 바로 마정석 테크놀로지다요! 마정석은 스스로 회복하는 힘도 있고 방어막을 치는 방어기제도 있다요! 이걸 제대로 활용하기만 한다면 그 어떤 타격에서도 버틸 수 있게 되는 것이다요!”
비록 우연치 않게 발견한 것이지만, 마정석은 인류 역사상 가장 위대한 발견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만약 마정석을 발견하지 못했더라면 태하는 지금쯤 해일의 압력에 의해 온몸이 찌그러져 형체도 알아볼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계속되는 항해, 이두박근호는 이제 바다를 지나 땅이 갈라지고 불길이 치솟는 땅에 안착하게 되었다.
“……사, 살았다!”
“아니, 아니다요! 땅을 뚫고 나오는 불길이 이제 곧 토네이도와 만나게 될 것이다요!”
“토, 토네이도와 만난다고?!”
바람이 화염을 머금고 소용돌이치기 시작하면 인간에게는 그야말로 걷잡을 수 없을 정도로 완벽한 재앙이 탄생하게 된다. 지금 이곳에서는 그 끔찍한 만남이 성사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제길! 그래도 간다! 불길에 들어가게 되면 몰먼호의 내부 온도는 어떻게 변하지?”
“내부 온도는 괜찮다요! 문제는 외부 온도가 올라감에 따라서 내부에 가해지는 압력이 훨씬 더 증가한다는 것이다요!”
“열팽창 비슷한 건가?”
“그런 것이라고 생각하면 편할 것이다요!”
이두박근호는 그 어떤 재앙도 버틸 수 있지만, 내부의 상황까지 컨트롤할 수는 없다. 특히나 압력에 대한 것은 더더욱 그럴 것이었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이대로 물러설 태하가 아니었다.
“간다! 총총, 계속 가자!”
“오우오우오!”
총총은 태하의 지시에 따라서 앞뒤 잴 것도 없이 가속페달을 계속 밟았다.
그러자 이내 전해지는 엄청난 압력.
쿠우우웅!
“……크허억!”
“수, 숨이 막혀요!”
“조금만 버팁시다! 이곳만 지나가면 이제 드디어 설원에 도착하게 될 것입니다!”
과연 혹한의 지역은 또 얼마나 춥고 끔찍할지 알 수는 없으나, 지금까지의 경험으로 미뤄 봤을 때에는 그저 이를 악물고 버티는 것이 최고의 방법이라는 것만은 확실해 보인다.
사정없이 이두박근호를 몰아치는 대자연.
그러다가 어느 순간, 헬창스를 압박하던 압력이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끄, 끝인가?”
“앗?! 아니다요! 이번에는 더 강력한 압력이 우리를 압박할 것이다요!”
“더 강력한 압력이 존재할 수 있나?”
“저기 좀 보라요!”
눈보라가 몰아치는 설원, 그 설원에는 눈사태를 일으키는 엄청난 크기의 태풍들이 토네이도를 거느리며 다가오고 있었다.
우르르릉, 콰아앙!
심지어 거대한 먹구름 안에서는 아까 보았던 낙뢰와는 아예 비교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번개가 연달아 내리치고 있었다.
“……아까보다 거의 10배는 더 무서운 것 같은데요?”
“무서워도 하는 수 없죠! 자, 총총! 달리는 거야!”
“헬창 포에버다요!”
칼바람이 불어와 한창 팽창했던 이두박근호를 마치 거대한 손으로 쥐어짜는 듯한 느낌이 든다. 거기에 극한의 냉기가 마구 휘몰아치니, 디스코 팡팡을 타는 듯한 흔들림이 이두박근호를 흔들어 댄다.
쿵, 쿵!
“……어지러워요. 이대로는 기절할 것 같아!”
“조금만 참아요! 거의 다 왔어요! 이곳만 넘어가면 우리가 원하던 바로 그곳으로 갈 수 있다고요!”
과연 태하 일행이 더 이상의 충격에서 어떻게 버틸지, 아직도 앞은 캄캄하기만 하다.
허나 이대로 포기할 그들이 아니었다.
“가자, 빌어먹을!”
***
미국 시애틀의 시가지 한복판.
제자들과 함께 ‘뉴 엠파이어 타워’를 찾은 백선.
“스승님, 이곳입니다.”
“……그럼 시작해 볼까?”
오늘 백선은 기필코 인신매매범들을 요절내리라는 굳은 각오를 가지고 이곳을 찾았다.
아마 오늘 이곳에서 범죄자들은 1명도 살아남을 수 없을 것이다.
-크어어억……!
“그나저나 스승님, 저 이블아이라는 놈을 정말 믿을 수 있는 겁니까?”
“그러게 말입니다. 몬스터를 믿고 일을 처리한다는 건 좀…….”
이블아이 2마리가 태하의 명령을 받고 이곳까지 왔다. 녀석들이 이곳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홍이와 유리아 덕분이었다.
오늘의 토벌에 참가한 유리아는 신룡의 능력과 탑의 수호자가 가진 ‘진실의 눈’ 스킬을 가지고 인간들을 돕기로 했다.
허나 역시나 아직도 인간들은 바벨탑이라는 곳을 신뢰하지 못하는 모양이었다.
그녀는 그런 인간들에게 한마디 해 주었다.
“우리 주인님께서 당신들을 돕고 있는 것은 앞으로 더 이상 제2바벨탑에 감금당한 뱀파이어와 같은 피해자가 나오지 않기를 바라기 때문입니다. 사실, 우리는 더 이상 당신들의 일에 관여할 이유도, 그럴 필요도 없는 게 사실입니다.”
“……뭐야? 헌터 골드는 우리 청룡방 사람인데 인간 세상에서 일어나는 일에 관여하지 않는다는 게 말이나 되는 소리인가?”
“헌터 골드이기 이전에 바벨탑을 지키는 수호자입니다. 청룡방쯤이야 쓸어버리고 다시 세우면 그만입니다.”
“이게 정말 말이면 다인 줄 아나?”
위협적인 모습의 청룡방 헌터들. 그런 헌터들을 바라보며 바벨탑 가족들은 불편한 기색을 숨기지 못했다.
-크어어어억!
“……뭐야, 해보자는 거야?”
“아마 일대일로 싸워도 이블아이는 이기지 못할 겁니다. 우리 주인님께서 각성하시는 바람에 이블아이의 능력은 10배 이상 강력해졌거든요. 잘못하면 이곳에 있는 모두가 이블아이 1마리에 전멸을 당할 수도 있다는 뜻이죠.”
유리아는 태하가 충분히 선의를 베풀었음에도 불구하고 자신들을 의심하는 인간들을 과연 도와줘야 하나 싶은 생각이 들었다.
허나 그녀를 만류하는 백선 때문에 가까스로 기분을 추스를 수 있었다.
“……경거망동하지 마라.”
“하지만 사부님……!”
스스스스!
제자들의 앞에 백색 진기를 드러내는 백선. 그런 그의 살기등등한 모습에 제자들은 그저 입을 꾹 닫아 버리고 말았다.
백선은 제자들을 나무라는 한편, 유리아에게 진심으로 사과를 전했다.
“미련하고 한심한 놈들! 미안하이, 저놈들이 아직 철이 덜 들어서 그래.”
“확실히 철이 덜 든 것 같기는 하네요. 하지만 제 주인님의 체면을 봐서 참는 겁니다. 만약 주인님이 아니었다면 드래곤들과 함께 대한민국을 확 쓸어버렸을 겁니다.”
“……미안하오.”
바벨탑의 몬스터들은 이제 바깥출입을 자유롭게 할 수 있게 되었다. 태하의 허가만 있다면 어디든 갈 수 있지 않던가?
한마디로 태하의 한마디면 이 세상이 멸망할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백선은 이제 섬멸에 집중하라고 제자들을 몰아붙였다.
“너희들이 청룡방의 제자들이라면 오늘 전투에서 선의의 피해자를 만들지 말고 제대로 된 범죄자들을 소탕해야 할 것이다. 만약 일말의 피해라도 일으킨다면 목숨으로 사죄해야 할 것이다.”
“네, 사부님!”
바로 그때쯤, 건물의 문이 열리며 인파가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청룡방은 진심으로 당황하고 말았다.
우르르르르!
“……너무 많은데요?”
“이, 이건 너무 많잖습니까?!”
아무래도 이번 소탕이 쉽지 않아 보인다.
허나 이들에게는 이블아이와 신룡이라는 초월의 존재가 있었다.
-크어어어억!
우드득!
“끄아아아악!”
“1명 잡았고. 다음 2명!”
푸하아아악!
유리아가 손가락을 튕기자, 범죄자들의 머리가 터지며 사방으로 피가 분수처럼 튀어 올랐다.
백선은 이제 이곳은 신룡에게 맡기기로 했다.
“인파를 막아라! 1명도 놓쳐선 안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