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8 진실(2)
누더기 좀비의 몸집은 커졌지만 오히려 스피드는 훨씬 더 빨라졌다.
초반에는 태하에게 일방적으로 두들겨 맞기만 하던 녀석이 일순간 반격을 해 오기까지 했다.
파아앗!
아킬레스건의 장력을 이용한 도약은 눈 깜짝할 사이에 무려 10미터 거리를 주파할 정도였다.
물론, 그 가속도가 만들어 내는 파괴력 또한 보통은 아니었다.
쿠우우웅!
좀비의 주먹이 태하의 주먹에 의해 가로막히자 묵직한 진동이 사방을 뒤흔들어 댔다.
헬창스는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인가 싶어서 입을 떡 벌렸다.
“……뭐야, 이게? 스피드가 어떻게 증가할 수 있는 거지?”
“좀비의 맷집이라는 스킬은 라이프가 10% 이하로 증가하면 회복 능력을 증가시켜 줘요. 그러면서 스피드도 올려 주죠. 아무래도 저 누더기 좀비가 헬창 헌터 씨의 스킬을 복사한 것이 아닌가 싶네요.”
“스킬을 복사한다……?”
윤정은 나름대로 분석을 내어놓았으나, 스스로도 그것을 믿을 수가 없었다.
이 세상에 그 어떤 몬스터도 헌터의 스킬을 복사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경우는 없었기 때문이다.
물론 인간 중에는 일부 스킬을 복제할 수 있는 능력자들도 있었으나, 그것에는 분명 명확한 한계가 있었다.
액티브 스킬처럼 눈에 보이는 스킬이라면 흉내를 낼 수는 있으나 패시브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들은 흉내를 낼 수 없었던 것이다.
허나 이번의 경우에는 그 반대로 액티브가 아니라 패시브를 흉내 내고 있었다.
“특이한 경우구먼……. 인간도 저렇게 하기 힘든데 말이여. 안 그려?”
“그러게요.”
“흠……. 만약 스킬을 복제하는 것이 참말이라면 싸움이 길어질수록 우리가 불리해질 수도 있다는 거 아니것어?”
“아아! 스킬은 한 번만 복사할 수 있는 게 아닐 수도 있으니까?”
“그려, 바로 그거여! 저것이 우리 대장의 스킬을 계속해서 복제한다고 생각혀 봐. 끔찍하지 않어?”
태하를 여기까지 올 수 있게 해 준 것은 패시브 스킬의 공이 크다.
물론 액티브 스킬이 태하를 강력하게 만들어 주기도 했으나, 지금의 폭발력이라든지 근력을 낼 수 있는 것은 패시브 덕분이다.
만약 그런 패시브를 누더기 좀비가 그대로 흡수한다면 태하가 좀비를 이기지 못하고 패배할 수도 있었다.
그런 태하를 보곤 활을 들고 나서는 용팔.
“제가 우리 헌터님을 도와 드릴게요!”
“안 돼, 용팔이. 지금 자네가 나섰다간 그대로 골로 갈 수 있단 말이여.”
“골로 간다니요?”
“아까 하는 말 못 들었어? 저놈은 스킬을 복제한다니께? 그것도 패시브를 말이여.”
“아아……!”
“우리 길드는 액티브 스킬보담도 패시브가 훨씬 더 강력한 길드여. 그런 우리 길드의 특성을 생각한다면 더 이상의 스킬 복제는 곤란하다 이거지.”
머리가 복잡해질 수밖에는 없었다.
전면전으로는 승산이 없다는 것이 판명 났으나, 그렇다고 해서 원거리 공격으로 저놈을 쳤다간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몰랐다.
빅토리아는 이런 상황이 왜 벌어진 것인지 한번 생각해 보았다.
“좀비의 미간에는 원래 저 조각이 있지도 않았고 저렇게 강하지도 않았습니다. 분명 누군가 일부러 일을 이렇게 만든 거예요.”
“흠……. 이 정도의 일을 할 수 있는 놈들이 누가 있나?”
아까부터 말이 없었던 로드리고가 입을 열었다.
“있지. 하나.”
“그게 누구인데?”
“사령술사.”
“……사령술사? 그놈은 이미 태하 씨에게 잡혀서 감옥에 가지 않았나?”
“사령술사는 한 사람이 아니야. 나와 비슷한 능력을 가진 소환술사는 많아. 고로, 사령술사 역시 1명이 아니라는 소리지.”
“그럼 잘 아는 사령술사가 있나?”
“있지. 루쿤타.”
루쿤타라는 말에 빅토리아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루쿤타는 실존 인물이 아니잖습니까?”
“아니, 실존 인물이야. 내가 봤거든.”
“……루쿤타를 봤다고요? 어디서 말입니까?”
“던전을 탐험하다가 마주친 적이 있어. 물론, 그놈은 내 앞에서 단 1마리의 스켈레톤만 소환했지만, 그 능력은 가히 최고였지.”
루쿤타라는 인물은 북미 지역에서 전설처럼 내려오는데, 그는 수만의 스켈레톤을 소환할 수 있으며 유일하게 데스 드래곤과 모르스 나이트를 소환한다고 알려져 있었다.
허나 데스 드래곤이나 모르스 나이트 자체가 워낙 허무맹랑한 소리이다 보니 그저 소문으로 치부되고 있을 뿐이었다.
빅토리아는 루쿤타의 실존에 대해 의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스켈레톤 1마리만 소환했다고 했는데, 도대체 그놈이 루쿤타라고 어떻게 확신하셨던 겁니까?”
“1마리만 소환했었지. 모르스 나이트 말이야.”
“……모르스 나이트?!”
모르스는 라틴어로 죽음을 뜻하는 단어로서, 검술의 경지가 극에 달한 인간을 되살려 스켈레톤으로 만든 것을 모르스 나이트라고 부른다.
한마디로 검술 능력자를 강령술로 자신의 권속으로 만든 것이었다.
“단 1마리의 스켈레톤이었지만 벌써 던전의 90층을 홀로 돌파한 것 같더군. 90층 보스의 머리가 놈의 손에 쥐어져 있었으니까 말이야.”
“……어떤 던전이든 혼자서 90층까지 돌파한다는 건 말이 안 되는 소리입니다.”
“나도 그런 줄 알았지. 모르스 나이트를 보기 전까지는 말이야.”
통상적으로 모르스 나이트는 생전에 가지고 있던 능력의 3~4배에 달하는 능력을 갖는다고 알려져 있다. 허나 모르스 나이트를 통제하려면 그에 버금가는 마력을 가지고 있어야 하고 심지어는 스킬 레벨이 모르스 나이트를 압도해야 한다.
모르스 나이트의 생성 조건이 생전에 SS랭크를 달성해야 된다는 것인데, 그 4배에 달하는 힘을 가진 사람만이 모르스 나이트를 소환할 수 있다는 말이 된다.
“그건 그냥 괴물이라는 소리잖아요? 그런 사람이 어떻게 존재할 수 있어요? 모르스 나이트라니요.”
“아무튼 나는 봤어. 루쿤타는 우리가 아는 인간들과는 레벨이 다르다는 것을 말이야.”
“그럼 저 누더기 좀비 역시 루쿤타가 개조했을 가능성이 있다는 소리네요?”
“그럴 가능성이 높겠지.”
만약 그 전설의 루쿤타가 이들의 눈앞에 나타난다면 파티는 그대로 전멸할 수도 있다.
그의 능력으로만 놓고 따진다면 태하와 비등할 수도 있겠지만, 제2던전에서의 싸움은 태하에게 한없이 불리하기 때문이다.
윤정은 그런 변수까지 생각하면 전략을 수정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번 전투에서 이기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루쿤타의 존재를 의식하지 않을 수가 없네요.”
“그럼 어떻게 하실 생각인데요?”
“일단…… 이번 전투에서 우리 헬창 헌터 씨가 이긴다는 가정하에 1층으로 내려가 재정비를 한 후, 인원을 보충해 와야겠지요?”
“메타를 처음부터 다시 짜야 한다……?”
“그런 셈이죠.”
윤철은 이대로는 승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누더기 좀비 1마리의 등장으로 이렇게 고전하게 될 것이라면 저 위에 있을 몬스터들은 과연 어떻게 감당하나 싶었던 것이다.
한편, 좀비와 몇 번이고 주먹질을 교환한 태하는 놈이 가면 갈수록 강해진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쉽지 않네. 나랑 싸우던 놈들이 느끼던 감정이 바로 이랬을까?”
태하는 반전을 주지 않는다면 여기서 반드시 패배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생각에 잠겼다.
‘스킬을 복사하는 놈과 붙어 본 경험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 그때는 어떻게 했더라……?’
이미 태하는 유전자를 흡수해서 능력을 그대로 카피하는 가빈과 싸워서 이긴 적이 있었다.
사실, 그때 태하가 가빈을 완력으로 제압할 수 없었다면 그대로 사망해서 지금쯤 헬창스는 존재할 수 없었을지도 모른다.
그런 느낌을 살린다면 이번 전투에서 오히려 쉽게 이길 수도 있을 것 같았다.
“잠깐, 그러고 보니까 나는 이미 몸이 만들어졌고 저놈은 아니었지?”
-크울……?
“오호, 그래. 그러고 보니 그게 있었네!”
태하는 온몸에 힘을 쭉 뺐다. 그러자 그의 신체에서 스킬은 다 빠지고 오로지 신체 자체의 힘만 남았다.
굳이 스킬을 쓰지 않더라도 태하는 어지간한 A급 헌터 몇 명은 그대로 황천으로 보낼 수 있었다.
한마디로 인간 자체가 강력해졌다는 소리였다.
종합격투기의 기본자세를 취하는 태하.
“자, 덤벼라!”
-끄워어어어어!
마치 전자 기계음 비트를 몇 번이고 비틀어서 리믹스한 것 같은 목소리가 놈의 목을 뚫고 튀어나왔다.
헌데 아까보다 확실히 놈의 행동이 굼떠져 있었다.
“아하, 단순히 복사를 했던 것이 아니라 나를 흉내 내고 있었던 것이구나! 그렇다면 얘기가 쉽게 풀릴 수 있지!”
태하는 달려드는 놈을 향해 주먹을 크게 휘둘렀다.
물론, 놈도 태하를 쥐어 패겠다는 일념 하나로 주먹을 휘둘렀다.
쿠우웅!
2개의 주먹이 부딪치면서 천지를 진동시킬 만한 충격이 전해졌다.
헌데 이번에는 아까와는 결과가 많이 달랐다.
-끄에에에……!
좀비의 주먹이 너덜너덜해지더니, 이내 그 팔이 아래로 축 늘어지면서 더 이상 힘을 쓸 수 없게 된 것이었다.
태하는 이 기회를 놓치지 않겠다는 일념으로 놈의 머리를 손으로 잡았다.
“목씨름도 흉내 낼 수 있겠냐?!”
흔히 무에타이에서는 목씨름에서 지면 경기에서 진다는 말이 있다.
클린치 상태에서 상대방의 목을 서로 잡고 중심을 자신에게로 끌어오려는 주도권 싸움인 목씨름은 니킥을 찰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내기도 한다.
허나 종합격투기에서 목씨름은 조금 다른 의미를 갖는다.
빠각!
팔꿈치로 놈의 턱을 후려친 태하는 그대로 거리를 벌리며 하이킥을 찼다.
퍼어억!
발차기 한 방에 거구의 좀비가 공중으로 붕 떠오르더니, 그대로 560도 회전을 하며 쓰러졌다.
저 육중한 몸이 어떻게 걸어 다닐 수 있는 것인지도 미스터리이나, 저놈을 인간의 순수 완력으로 제압했다는 것도 놀라운 일이었다.
다소 미스터리한 싸움에서 이긴 태하는 놈의 머리에 박힌 파편 조각을 뽑아냈다.
그러자 놈의 몸이 으스러지면서 전신에 경련이 일어났다.
-으으으으으…….
“어휴, 간신히 이겼네.”
“헌터님! 이길 줄 알았어요!”
“하하, 용팔 씨! 그럼요! 내가 이겨야 다음 층으로 올라갈 텐데, 당연히 이겨야죠!”
“방금, 스킬 안 쓰시고 이긴 건가요?”
“네. 우리가 예전에 훈련했던 방법이 이제 와서 제대로 효험을 발휘하네요.”
태하는 정체기를 돌파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스킬을 배제하고 보디빌딩을 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다.
당시에는 그저 대회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만든 고육지책이었지만, 이게 이렇게 중요한 순간에 제 역할을 할 줄은 미처 몰랐다.
윤정은 태하의 상태를 살핀 후, 1층으로 내려가자고 제안했다.
“아무래도 후퇴했다가 다시 올라와야 할 것 같아요!”
“흠, 아직 아무런 피해도 안 입었는데 꼭 그래야 할까요?”
“만약 다음 층에서도 이런 일이 생긴다면? 그럼 우리는 어쩔 도리가 없잖아요?”
“하긴. 그건 그러네요.”
더 이상의 욕심은 과유불급이라는 것을 잘 알기에 태하는 택티션의 말을 듣기로 했다.
이윽고 이두박근호에 오르기 위해서 탑승을 시작하는 동료들.
바로 그때, 너무나도 뜻밖의 광경이 펼쳐졌다.
“주인님……!”
“주인님?”
창백한 얼굴의 뱀파이어들이 태하를 향해 몰려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그들은 태하의 앞에 고개를 조아리며 말했다.
“……저희들을 좀 구원해 주십시오.”
“구원해 달라니? 너희들은 이곳에 사는 몬스터 아니었어?”
“아니요……. 저희들은 이곳에 억지로 잡혀 와서 사는 사람들일 뿐입니다.”
“……억지로 잡혀 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