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77화 (177/197)

177 진실(1)

혹한의 땅에서 마주하게 된 보스 누더기 좀비의 전투력은 과연 얼마나 될까.

직접 테스트를 하기 위해 나선 태하와 헬창스.

“자, 그럼 갑니다!”

헬스나 레이드나 전투에 나설 때에는 스트랩부터 착용하는 것이 기본 소양이다.

스트랩은 전완 및 이두박근의 개입을 최대한 줄여 주고 약간의 근력 상승까지 도와주는 아주 좋은 장비다.

휘리리릭!

스트랩에서 와이어를 쭉 뻗어 낸 태하는 힘차게 도움닫기를 하며 공중으로 날아올랐다.

그야말로 날다람쥐가 하늘을 날듯 유려한 공중제비를 돌며 포물선을 그리는 궤적이 몬스터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쿠오오오오!

“선방필승!”

오늘도 역시 누구보다 빠르게 몬스터의 안면에 강타를 때려 넣는 태하. 이러한 전투 방식은 고대에서나 현대에서나 변함없이 승리를 장담할 수 있게 해 주는 진리와도 같은 것이었다.

태하의 필승 전략에 힘을 실어 주기 위해 한나는 태하의 주먹에 중력 강화 마법을 걸어 주었다.

[스킬 : 중력 강화]

[중력 가속도를 높여 줍니다]

[가속도 x4.8]

태하의 묵직한 주먹에 중력을 불어 넣자, 그야말로 바람을 가르는 소리가 절로 들릴 정도로 속도가 붙었다.

슬그머니 미소를 짓는 태하.

“원샷에 끝나겠군!”

콰아아앙!

제아무리 드래곤이라고 해도 태하의 이 한 방을 맞고 멀쩡히 버틴 놈은 없었다. 그만큼 한 방에 모든 것이 정리되는 깔끔한 전투 방식이라는 것이었다.

-크웨에에엑!

전투의 방식은 깔끔하나 그것에 맞은 놈의 몰골은 전혀 그렇지가 않았다.

썩은 이빨이 탈곡기에 돌린 낱알처럼 공중을 수놓는가 하면, 낱알의 공중부양에 화려함을 더해 주는 녹색 피의 분수쇼는 그야말로 전투의 화룡정점이라 할 수 있었다.

동료들은 이 한 방으로 이번 층은 마무리될 것이라고 생각했다.

“……보기만 해도 오금이 저리는 힘이군요.”

“아까 봤어요? 약간의 소닉붐 같은 것이 일어나는 거?”

“펀치가 이제는 거의 초음속에 가깝다는 것이군요.”

태하의 강력한 한 방에 맞은 누더기 좀비는 바닥을 따라서 힘차게 날아가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주변으로는 공기의 흐름이 만들어 낸 자국이 선명하게 남았다.

오지에 고속도로를 만들어 내듯 시원하게 뚫려 버린 길 위에는 좀비의 피가 덕지덕지 묻어 있었다.

“만약 인간이 저런 펀치를 맞는다면……?”

“가루가 되지 않을까요?”

그렇게 한 방 맞고 쭉 날아간 누더기 좀비는 던전 벽에 부딪쳤다. 그리고 놈의 몸뚱어리는 벽을 뚫고 족히 2미터는 푹 쑤셔 박히고 말았다.

휘이이이잉!

강력한 후폭풍이 불어닥쳤고 던전 전체가 울릴 정도로 강력한 파장이 일었다.

“……죽었겠군.”

“펀치 한 방에 이 정도면 하이킥 같은 건 도대체 맞으면 어떻게 되는 건가요?”

“상상도 하기 싫군요.”

태하는 원래 각성을 하기 전에는 극한의 상체충이었기 때문에 하체 운동에는 그렇게까지 큰 비중을 두지 않았다. 허나 보디빌딩을 시작하면서 하체의 중요성을 깨달았고, 이제는 스쿼트 없이는 일주일이 불안해서 견딜 수 없을 정도로 하체에 신경을 쓰기 시작했다.

만약 그가 과거의 기억을 되살려 종합격투기를 하며 배운 킥을 제대로 쓰기만 한다면 전투 양상은 크게 달라질 수도 있을 것이었다.

-끄웨에에엑…….

괴상하게 생긴 주둥이에서 피를 주룩 흘리는 누더기 좀비.

모두가 놈의 죽음을 믿어 의심치 않았다.

“총총, 이두박근호에 시동을 걸어야 하지 않겠어?”

“앗! 아니다요! 저 앞을 보라요!”

총총이 손을 들어 전방을 가리키자, 벽에 콕 파묻혀 옴짝달싹 못 하던 누더기 좀비가 꿈틀거리는 모습이 보였다.

태하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펀치가 좀 약했나?”

“그럼 다리를 좀 써 보세요! 하체 운동을 열심히 하셨잖아요.”

“음, 그럼 그럴까요?”

이 세상에 있는 격투기란 격투기는 다 해 본 태하로서는 발차기쯤이야 그렇게 어려운 것도 아니었다.

심지어 그는 각법만 해도 족히 8개 정도는 알고 있을 정도로 지식과 경험이 깊은 편이었다.

쿠웅, 쿠웅!

자리에서 일어나 다시 걷기 시작하는 누더기 좀비.

-끄오오오오!

담배를 한 2만 갑 정도 피운 것 같은 다소 듣기 찝찝한 괴성이 던전 전체를 울리고 있었다.

처음에는 가까스로 걷는 것 정도만 할 수 있었다면 30초 후에는 언제 그랬냐는 듯이 속보를 할 수 있게 되었다.

쿵, 쿵, 쿵쿵쿵!

심지어 1분 후에는 전속력으로 달리는 것도 가능했다.

“……진짜 좀비는 좀비인가 보네.”

“좀비는 좀비 맞죠! 헌터님, 제대로 한 방 먹여 주세요!”

헬창스는 전방에서 싸움이 벌어지고 있을 때, 혹시나 하는 마음에서 퇴로를 확보하기로 했던 것이다.

그 때문에 전방으로 투입되지 못해 몸이 근질거리기는 했으나, 태하의 저 무지막지한 허벅지가 과연 어떤 그림을 그려 낼지 궁금해 일부러라도 앞으로 나서지 않고 있었다.

누더기 좀비는 제법 빠르게 태하의 앞으로 달려왔다.

쉬이이익!

놈은 전력 질주를 통해서 얻은 관성을 그대로 눈밭에 녹여 내는 슬라이딩 태클을 보여 주었다.

태하는 그런 놈의 노력을 비웃듯 다리를 뻗었다.

빠각!

대각선으로 쭉 뻗어 올라갔다가 유려한 포물선 궤적을 그리며 반대쪽으로 돌아가는 태하의 다리.

그 속도는 마치 총알을 보는 듯 엄청났다.

휘이이잉……!

“……발차기 한 방에 주변의 기류가 바뀌었어요.”

“허어! 풍향이 변했네. 발을 한 번 뻗었을 뿐인데 바람의 방향이 변할 줄이야!”

태하의 발차기는 워낙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어서 주변의 풍향마저 바꿔 버릴 정도였고, 그 정확성과 파괴력 역시 살상을 초월했다.

푸하아아악!

머리가 터지면서 저만치 멀리 떨어져 나가는 누더기 좀비. 놈의 터진 머리 주변으로는 상승기류가 만들어져 녹색의 혈액이 하늘 높이 솟아올라 갔다.

거의 폭포수처럼 올라가는 상승기류를 보며 동료들은 혀를 내둘렀다.

“……미친, 역천의 폭포를 보는 것 같네요. 저게 정말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인가 싶은데요?”

“저게 바로 대장의 매력 아니겠어요?”

그저 발 한 번 뻗었을 뿐인데 무슨 미사일이 한 방 시원하게 판을 벌인 것 같은 느낌이 절로 든다.

태하는 터진 머리를 부여잡고 꿈틀거리고 있는 누더기 좀비에게 다가갔다.

“흠. 아직 살아 있는 건가? 그렇게 처맞고도 아직 살아 있다는 건 너무 심각한 일인데.”

사후경직이 오기 전이라서 꿈틀거리는 게 아니라 누더기 좀비는 머리가 터졌음에도 불구하고 생명을 유지하고 있었다.

한마디로 놈은 대가리가 깨져도 오로지 싸움을 위해서 일어날 ‘괴물’ 중에 괴물이라는 것이었다.

“어떤 의미로는 좀 무섭군. 저런 말도 안 되는 맷집의 소유자가 점점 진화를 했다면 말릴 만한 사람이 없었을 테니까.”

이제 태하는 저놈의 머리에 붙어 있던 파편 조각을 꺼내기로 마음먹었다.

느낌상으로는 지옥경이 분명한 것 같은데, 그 힘이 워낙 강력하기 때문에 약간 헷갈리는 부분도 있었다.

축축하게 젖어 버린 누더기 좀비의 머리 부분으로 다가선 태하는 미간으로 손을 뻗었다,

바로 그때였다.

-크어억……?

“뭐야, 아직도 안 죽었단 말이야?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맷집이야?”

스스로 차 놓고도 그 힘이 너무 강해서 깜짝 놀랐던 태하는 그걸 맞고도 살아남은 누더기 좀비를 보며 경악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놈은 인간의 힘으로는 어지간해선 죽일 수 없는 존재라는 뜻이었으니까.

“빅토리아, 저놈이 원래 이렇게 강했나요?”

“분명 이 정도는 아니었던 것 같은데. 그저 놀라울 따름이네요.”

누더기 좀비가 이렇게까지 강력한 보스였다면 아마 S급 헌터들조차도 애를 먹었을 것이다.

태하는 아마 저놈의 이마에 박혀 있는 저 조각이 문제라고 생각했다.

“저 파편 조각을 회수하는 것이 급선무가 되겠군요.”

“어쩐지 일이 너무 쉽게 풀린다 했지.”

윤정은 태하를 원톱으로 내보냈던 전략을 수정하기로 했다.

그녀는 언데드의 속성을 이용해 보기로 했다.

“희란 씨, 아무래도 힐링 계열 마법이 필요할 것 같아요!”

“힐링이요?”

“언데드는 극음의 성질을 가졌기 때문에 신성 계열 마법에 약하잖아요. 아마 힐만 제대로 걸어 줘도 놈은 꼼짝도 못 하고 죽을걸요?”

“아하! 그런 방법이 있었군요!”

죽은 자에게는 힐링 마법이 소용이 없듯, 죽었다가 살아난 언데드에게는 힐링 마법이 소용이 없다. 다만, 다친 자를 치유하는 마법이 신성한 힘을 갖다 보니 부정한 것들은 오히려 깔끔하게 지워 버릴 수가 있었다.

[스킬 : 블레스 풀 힐]

[고갈된 체력을 회복시킵니다]

[1인 한정 100%]

1인에 한해서 체력을 100% 회복할 수 있는 블레스 풀 힐이 좀비에게 들어가자, 놈은 엄청난 타격을 입은 듯이 휘청거렸다.

-크옥, 크옥!

심지어 기침을 해 대며 괴로워하는 누더기 좀비.

태하는 이때다 싶어서 놈의 안면에 공중 12회전 돌려차기를 먹여 주었다.

휘리리리릭!

안 그래도 강력한 발차기에 회전까지 먹여 충분히 가속도를 붙인 태하는 그 발차기를 좀비의 안면에 제대로 꽂아 주었다.

그러자 순간, 주변의 공기 흐름이 잠시 멈추어 버렸다. 그리고 0.5초 후에 멈추었던 흐름이 갑자기 빨라져 사방으로 터져 나가기 시작했다.

콰아아아앙!

마치 물 위에 물방울을 떨어뜨린 것처럼 왕관 모양의 원이 생기며 후폭풍을 만들어 냈다.

후폭풍이 어찌나 강력했으면 주변에 있던 바윗덩어리들조차도 흔들거릴 정도였다.

“……크으으윽! 엄청난 바람이다!”

“이 정도면 그냥 돌풍 아니에요? 설마하니 발차기 한 방에 이 정도의 힘이 나올 줄이야. 솔직히 정말 몰랐습니다.”

이미 태하는 던전에서 신으로 군림하는 자였다. 비록 자기 구역을 벗어나 능력치가 확 줄어든 것은 사실이나, 이렇게 제한된 힘만으로 이 정도 힘을 냈다는 건 실로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허나 그보다 놀라운 것은 따로 있었다.

-끄으으으으……!

“뭐야, 아직도 안 죽었어?!”

“이게 바로 좀비의 맷집이라는 것인가?!”

마치 지금까지 태하가 위기의 순간마다 써먹었던 스킬인 ‘좀비의 맷집’이 절로 생각나는 부분이 아닐 수 없었다.

태하는 다시 일어서는 놈을 바라보며 생각에 잠겼다.

‘……아무래도 이상해. 저 모습, 어디서 많이 봤단 말이지.’

죽어도 죽지 않는 불사신, 맷집으로는 단언컨대 전 세계 1등이 되어 버린 태하가 보기에도 누더기 좀비의 능력은 심상치가 않았다.

태하는 아무래도 혼자만의 힘으로는 이놈을 이기고 올라갈 수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되었다.

“이번에는 지속 회복 계열의 마법을 사용해 줘! 놈이 회복할 수 있는 시간 자체를 없애 버리는 거지!”

“알겠어, 대장!”

지속 회복 계열을 언데드에게 사용하면 그것도 나름대로 저주 마법이 되어 줄 것이라고 생각했다.

태하의 그런 생각에 부응하듯 희란이 손을 뻗었다.

[스킬 : 인챈트 힐]

[회복 속성 마법을 부여합니다]

[초당 회복력 15%]

초당 15%의 회복력을 가진 인챈트 힐은 지속 대미지가 누적되는 것을 방지하기 위해서 사용하는 스킬이다.

설마하니 이걸 공격 스킬로 써 보게 될 줄이야.

희란은 미처 상상조차 하지 못했었다.

과연 어떤 결과가 나올지, 희란 스스로도 궁금했고 동료들과 태하도 궁금했다.

이제 막 인챈트 힐이 발동될 때였다.

쿠그극……!

순간, 누더기 좀비의 몸집이 일순간 커져 버렸다.

-크으으윽!

“……뭐야, 갑자기 왜 저래?”

동료들은 이게 무슨 영문인지 몰라 당황했다.

허나 한 사람, 태하는 이게 무슨 일인지 알 것 같았다.

“스킬……. 저거, 좀비의 맷집이잖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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