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5 영혼을 어루만지는 자(1)
던전 2층의 광경은 1층과는 또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었다.
휘이이잉…!
다소 황량한 바람이 불어오고 있는 2층은 본격적인 몬스터 출몰 지역으로서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는 위험천만한 곳이었다.
“이곳은 바위지대입니다. 주로 바위트롤이 서식하고 있는데, 보스만 조용히 잡고 넘어갈 수도 있는 곳이죠.”
“보스가 누구인데요?”
“골렘이요.”
“허어, 2층 보스가 바로 골렘이라고요? 이렇게 난기류가 판을 치는데 골렘을 잡기가 쉽지는 않을 텐데?”
초심자에게 골렘은 그야말로 재앙과도 같은 존재이다.
태하가 처음 골렘존에 들어섰을 때 받았던 느낌은 넘기 힘든 벽, 혹은 초심자의 낭떠러지 같은 느낌이었다.
만약 그가 성좌의 가호가 없었더라면 절대 넘을 수 없었을 것이었다.
“골렘이라니.”
“하지만 이곳에 서식하는 골렘은 그 크기가 작아요. 기껏 해봤자 성인남성의 두 배 크기? 3미터가 조금 넘는 정도이죠.”
“아하! 골렘의 크기가 좀 작아져서 출몰하는구나! 흠, 그렇다면야.”
“만약 제 1 바벨탑에서 출몰하던 마스터 골렘 급의 몬스터가 이곳에 서식한다면 아마 2층을 돌파할 수 있는 사람은 존재하지 않았을 겁니다. 적어도 A급 이상은 되어야 할 테니까요.”
이두박근호는 산등성이를 타고 천천히 움직였다.
바위트롤은 평상시에는 바위처럼 위장하고 있다가 돌연 인간의 앞에 출몰하기 때문에 상당히 위협적인 존재로 인식되곤 한다.
다만, 그 크기가 성인남성의 허리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둔기를 가진 헌터가 있다면 제법 손쉽게 해치울 수도 있다.
“바위트롤의 코어는 C급 코어만큼의 가격을 받죠?”
“네, 그렇습니다. 그 자체만으로도 정밀하게 가공된 반도체의 역할을 해주기 때문이죠. 주로 AI기술에 적용되거나 중형급 가전제품의 MPU로 사용되기 때문에 수요가 높은 편입니다.”
“흠, 그래서 개체가 많이 없어도 레이드로 인한 수익이 높은 것이로군요.”
“맞습니다. 제 2 바벨탑은 나오는 물건이 적은 대신에 가격을 높게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 다만, 헌터들의 경험치를 쌓는 속도는 상당히 느리기 때문에 레벨업이 상당히 더딘 편입니다.”
헌터의 몸값을 올리려면 최대한 많이, 자주 사냥을 해줘야 하는데 제 2 바벨탑의 경우엔 그 빈도가 상당히 낮은 편이었다.
그 때문에 제 1 바벨탑에서 대규모 레이드가 벌어졌을 때에 파워드 피스가 생각보다 많은 활약을 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들은 개체수가 많은 쪽보다는 주로 소규모 집단과의 전투에 익숙해져 있었기 때문이었다.
허나 사냥하는 양은 적어도 질이 높다보니 북미의 헌터들이 조금 더 부유한 것이 사실이었다.
“3층부터는 B급 코어와 함께 상당히 수요가 높은 부산물들이 쏟아져 나옵니다. 가장 대표적인 것이 바로 포이즌 셀러맨더의 가죽이죠.”
“셀러맨더가 나와요…?”
“당신이 생각하는 그 셀러맨더는 아니고, 성인남성 허벅지보다 약간 굵은 정도의 도마뱀 수준입니다. 코모도 도마뱀을 생각하면 쉽겠네요.”
“아하! 그렇다면야.”
“아무튼 포이즌 셀러맨더의 가죽은 공업과 첨단산업, 심지어는 예술분야에서도 많이 사용되기 때문에 가격이 높은 편이죠. 1KG 당 2만 달러, 한화로 약 2천만 원 정도 되겠네요.”
“…허어, 비싸네요?”
“다만 개체수가 적고 만나기도 힘들어서 그렇게 많이는 채취가 안 되죠. 게다가 A급 가죽을 구하기도 힘들고요. 3층은 지진이 자주 일어나서 셀러맨더의 가죽이 자주 상처를 입거든요.”
상당히 악조건 속에서 사냥을 하는 편인지라, 제 1 바벨탑은 순한맛으로 느껴질 지경이었다.
계속해서 이두박근호가 전진하고 있는데, 저 멀리에서 뭔가 돌 굴러오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쿠그그그극…!
마치 누군가 바위를 굴리며 달리는 듯한 소리랄까.
“아앗! 골렘이다요!”
“…골렘이 바위를 굴리고 있네. 마치 쇠똥구리처럼 말이야.”
골렘은 바위를 굴리며 바위산을 마치 제 집 앞마당마냥 뛰어다니고 있는데, 그 얼굴에는 어쩐지 모를 미소가 걸려 있었다.
만약 골렘에게도 감정이 있다면, 아마도 녀석은 분명 상당히 행복해 하고 있을 것이었다.
“우, 웃고 있는데요?”
“아니 저걸 도대체 어떻게 사냥하란 말이지? 저렇게 행복에 젖은 표정을 하고 있는데 말이에요.”
“어쩔 수 없죠. 3층으로 가는 문을 열자면 저 녀석을 반드시 잡아야하니까요.”
바벨탑은 몬스터의 생김세라든지 특징과는 전혀 상관없이 오로지 마족군단의 훈련에만 포커스가 맞춰져 있었다.
때문에 강해지는 것, 위로 올라가는 것만 생각하게끔 되어 있었지 몬스터가 어떤 기분인지는 중요하지 않았다.
잠시 후, 바위를 굴리며 놀던 골렘이 태하 일행을 발견했다.
-쿠, 쿠우울…?
녀석은 무척이나 당황한 눈빛으로 이두박근호를 바라보았다.
마치 도로를 지나가던 고라니가 자동차의 전조등 불빛을 보고 빳빳하게 굳은 것처럼 말이다.
그 자리에 망부석이 되어버린 골렘은 아무런 반항도 하지 못한 채, 황망한 눈으로 태하 일행을 쳐다보았다.
“…진짜로 저걸 잡아야 한다고요?”
“난 못 해. 저걸 어떻게 죽여!”
다른 몬스터라면 그냥 목을 치든 화염을 뿌리든 한 방에 고통 없이 보내줄 수 있지만, 골렘은 몸이 단단해서 그게 쉽지 않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고통 없이 보내는 건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모두가 골렘에게 감정이입을 하고 있을 무렵, 빅토리아가 나섰다.
“제가 처리하죠.”
“…정말로 하시려고요?”
“그럼 어쩝니까? 누군가는 나서서 저놈을 사냥해야지. 그게 바로 약육강식의 세계, 생존의 법칙 아니겠어요? 사자가 초원에서 가젤을 사냥하는 모습이 당연하듯, 우리도 그런 것뿐입니다.”
“흐음, 하긴. 일일이 감정이입을 하면 100층을 올라갈 수는 없겠죠.”
헬창스는 골렘을 부수기 위해서 하차했다.
그러자, 바위를 굴리던 골렘이 도망치려 눈치를 살치기 시작한다.
-크흣!
좌우로 크게 움직이는 눈동자, 그 딱딱한 눈치싸움은 사실 그렇게 오래갈 수는 없었다.
골렘은 움직임이 상당히 느린 편이기 때문이었다.
방향을 정하고 녀석이 달려 나가는데, 마치 슬로우모션 영화를 보는 듯 느릿느릿한 모습을 보여주었다.
-크흐으으으으읏……!
“우와, 진짜 엄청 느리네! 저래서 어디 생존이나 할 수 있겠어요?”
“제 2 바벨탑의 골렘은 공격력이 형편없어서 주로 단단한 방어력을 자랑하며 싸워요. 초심자들은 골렘을 때리다가 지치곤 하는데, 그때 일격을 가해서 승리를 쟁취하는 거죠. 생각보다 골렘에게 목숨을 잃은 사람들도 많아요.”
“허어, 그래요?”
저 바윗덩어리에게 역공을 당해서 사망한다니, 과연 얼마나 억울할지 감조차 오지 않는다.
여의봉을 꺼내든 유신성이 앞으로 나아갔다.
“강타로 한 방에 보낼 수 있을 것 같은데요?”
“아아, 하긴! 유성의 강타 한 방이면 모든 것이 끝나긴 하겠네요.”
“이럴 땐 자고로 빨리 끝내는 것이 최고죠. 안 그래요?”
유성의 강타를 맞은 몬스터는 70층에서도 무사하지 못했었다.
몬스터의 레벨 자체만 놓고 본다면 제 1 바벨탑이 훨씬 앞서니, 유신성에게 있어 이건 사냥이라고 할 수도 없었다.
그는 자비를 베푼다는 생각으로 골렘의 머리통을 갈겨버렸다.
“아뵤옷!”
콰아앙!
유성의 강타가 제대로 터지자, 골렘은 그 자리에서 산산조각이 났다. 그리고 그 자리에는 어느 새 골렘의 심장이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아아, 죽을 때도 가련하게 죽어!”
“뭐 이런 친구가….”
바로 그때쯤이었다.
스스스스…!
골렘의 심장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빅토리아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가버렸다.
그녀 스스로도 깜짝 놀랐겠지만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져 다물 수가 없었다.
“뭐, 뭐야, 이거?!”
“골렘의 심장이 흡수되었잖아요? 허어, 이거 도대체 뭐지?”
태하는 빅토리아에게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것만 같았다.
몬스터의 코어를 흡수하는 능력이 생겼다는 건, 다시 말해서 몬스터의 능력을 흡수하거나 군림계열의 스킬을 쓸 수 있게 된다는 뜻이었던 것이다.
“축하해요. 이제부터 꾸준히 정진한다면 제 2 바벨탑은 빅토리아 씨의 놀이터가 되겠네요.”
***
2층에서 3층으로 건너가는 건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허나 문제는 3층의 환경이었다.
부글부글 끓는 유황온천이 사방천지에 자리하고 있었는데, 만약 저기에 빠지면 그대로 형체가 없이 사라질 수도 있었던 것이다.
한마디로 황산이 끓어 넘치는 온천을 지천에 둔 채로 여행을 해야한다는 소리였다.
“우와, 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 만약 여기서 누가 등이라도 떠밀면 그대로 사망할 각이잖아요?”
“우리가 몰먼테크놀로지의 수혜를 입은 건 그야말로 천만다행인 일이었네요.”
만약 이 상태에서 몬스터라도 나타난다면 그대로 비상사태가 되어버릴 것이었다.
태하는 이런 던전에서 초보시절을 보낸 파워드 피스에게 절로 존경심이 샘솟는 것을 느꼈다.
“…말도 안 되는 환경이네요. 진짜, 이게 뭔가 싶네. 대단하십니다.”
“우리에게는 이게 생활이니까요. 솔직히 제 2 바벨탑을 벗어나 다른 곳에서 레이드를 하기 전까지는 이게 위험한 것인지도 몰랐어요. 던전은 의례 다 그렇게 생겼다고 생각했지.”
“이래서 사람은 환경이 중요하다고들 하는 거구나.”
인간은 적응의 동물이다.
극한의 환경에서 적응하면서 살다보면 그럭저럭 살 수 있고, 안락하고 편안한 삶을 영유하다가 극한의 상황에 떨어져도 그럭저럭 살아가게 된다.
그게 바로 적응력이라는 신의 선물이었으니까.
부우웅…!
장갑차의 바퀴가 온천에 빠지자, 뒤축이 헛돌면서 점점 온천 안으로 빨려들어가기 시작했다.
“아앗! 중심이 기울어지면서 전복될 것 같다요!”
“와이어를 쏴!”
“아하! 알겠다요! 그럼 전방에 있는 바위지대로 와이어를 걸겠다요!”
총총은 황급히 와이어를 발사할 준비를 했다.
허나 바로 그때, 돌연 하늘에 먹구름이 끼더니 슬슬 비가 내리기 시작하는 것이었다.
당황하는 총총과 헬창스.
“…뭐야, 이게?”
“이상기후가 비를 내리게 만드는 것뿐입니다. 그렇게 유난스러운 일도 아니에요.”
“이렇게 아무런 징후 없이 그냥 들입다 비를 뿌린다고요?”
“비만 뿌리겠어요? 천둥번개도 동반되는 걸요.”
평지에서도 이렇게 갑작스러운 악천후를 만나면 당황스러운데, 지옥불과 같은 온천이 사방에 널려 있다면 어떨까?
태하는 이곳에 적응해야 한다는 사실에 한숨이 절로 나왔다.
“그나저나 와이어는 아직이야?”
“…앗! 저, 저기 밖에! 으아아앗! 나리, 귀신이다요!”
총총은 조종간을 버리고 냅다 한나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아무래도 총총은 아직까지 귀신이 무서운 모양이었다.
게다가 이번에는 귀신의 장난이 좀 심했다.
쿵쿵, 쿵쿵쿵쿵쿵…!
차량을 미친 듯이 두드리는 레이스, 그런 레이스의 숫자가 족히 열 마리는 되는 듯했다.
헌데 문제는 이두박근호의 차창에 찍히는 손바닥 자국이 밖이 아니라 안에서 찍히고 있다는 것이었다.
“…으아아앗, 몰먼 살려! 꼬르르르륵!”
“허억! 총총이 기절했어요!”
이주현은 당장 총총의 상태를 살폈으나 큰 이상은 없었다.
그는 총총의 얼굴에 물을 뿌렸다.
촤락!
“아앗!”
“일어나. 괜찮아, 별 거 아니야.”
“의사 나라! 총총, 몸이 좀 이상하다요! 오줌이 찔끔 나올 것 같고 식은땀도 난다요!”
“무서우면 누구나 다 그래.”
“그, 그러냐요?!”
“그나저나 저놈의 귀신들이 정말 장난을 심하게 치는 것 같은데, 사신이 나서야하는 것 아닙니까?”
용팔은 안 그래도 출격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는 그림리퍼의 대검을 들고 이두박근호 밖으로 나갔다.
휘이이이잉…!
을씨년스러운 바람과 함께 추적추적 내리던 비가 용팔의 얼굴을 스치고 지나간다.
그는 검을 어깨에 척 걸친 후, 귀신들을 향해 소리쳤다.
“장난은 이쯤하고 얼굴 좀 봅시다!”
-으흐흐흐! 저놈을 잡아먹자!
얼굴이 전부 피로 얼룩진 여인들이 용팔을 잡아먹겠다고 달려들었다.
허나 그는 피하지 않고 오히려 그녀들의 공격에 몸을 내어주었다.
“그럼 먹어봐요. 자!”
-겁이 없구나! 그럼…!
레이스들이 용팔을 뜯어먹겠다고 덤벼들었다.
당연한 일이었지만 사신의 몸을 뜯어먹으려던 레이스들은 그대로 영혼이 박살나며 사방으로 튕겨나갔다.
쨍그랑!
-끼야아아아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