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3 몰먼 테크놀로지(1)
노바스코샤 생존캠프의 교관들은 도저히 믿어지지 않는다는 듯, 화면을 뚫어져라 응시하고 있었다.
“높이 40미터의 파도를 저렇게 스무스하게 지나간다고…?”
단순히 높이가 높은 파도가 위험한 것이 아니라, 풍랑이 일었을 때의 파도가 위험한 것이다.
파도가 밀려드는 속도와 그 압력은 풍랑이 일었을 때에는 가히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에 높이 40미터의 너울성파도가 밀려들면 제 아무리 장갑차라고 해도 답이 없다.
허나 이두박근호는 그것을 너무나도 자연스럽고 부드럽게 넘어가고 있었던 것이다.
“…엄청나군.”
“저 안에 전율의 마녀가 타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고무보트 하나만 가지고도 해일을 넘어다녔던 사람에게 저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요.”
“하지만 저 안에는 장비도 많고 사람도 많아. 게다가 공간도 넓어서 전해지는 충격을 견디기가 상당히 힘들 텐데?”
장갑은 단단한 대신에 충격으로 인한 진동까지 어쩔 수는 없는 게 현실이다.
만약 저런 단단한 장갑차에 충격이 전해진다면 그 안에 들어있던 사람들은 기절하거나 최악의 경우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실험 장치에는 아무런 경고도 나오지 않고 있었다.
“바이탈미터는 제대로 작동하고 있지?”
“오차범위 내에서 완벽하게 작동하고 있습니다. 이정도면 아주 건강한 상태인 겁니다.”
“…뭐야? 아무리 운전을 잘해도 이건 쉽지 않을 텐데?”
이들은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며 파도를 넘고 있었다.
심지어는 파도 위에 장애물이 마구 튀어나와도 그들은 정말 아무렇지 않게 그에 대처했다.
퍼엉!
“음압함포가 발사됩니다!”
“설마하니 음압으로 장애물을 밀어낼 준비를 했을 줄이야.”
“아마 장애물만 밀어내고자 만든 건 아닐 겁니다. 적의 속성이 어떻든 간에 음압을 견딜 수 있는 생명체는 없기에 만든 건 아닐까요?”
“뭐, 그렇기도 하겠지.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저들의 대처능력이 정말 감탄스럽군 그래.”
함포가 달린 수륙양용장갑차는 많다.
허나 문제는 그 함포를 자기 마음대로 원할 때, 그것도 찰나의 순간에 꺼내어 쏠 수 있다는 것은 실로 엄청난 일이었다.
“포를 준비하는 시간이 불과 0.5초밖에 안 됩니다. 만약 우리가 바다에서 저런 적을 만났다면? 아마 살아남기 힘들었을 겁니다.”
“…괴물인가? 아직 방위산업체 중에서 저런 기술을 가진 곳은 없지 않던가?”
“아마 앞으로 당분간은 없을 겁니다. 해일 수준의 파도를 넘어 다니면서 반응속도 0.5초의 포를 쏜다? 그것도 음압으로 말입니까? 절대 불가능한 수준이죠.”
“그럼 우리가 보고 있는 건 뭔데?”
“그러게 말입니다….”
세상에는 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일들이 정말 수없이도 많이 일어난다.
허나 그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도 이해할 수 없는 것이 많았다.
바로 지금처럼 말이다.
“이제 높이 60미터 구간입니다. 이제부터는 생명에 지장이 분명히 생길 텐데, 괜찮을까요?”
“위험신호가 감지되면 우리가 파도현상을 없애면 되는 것이고.”
지금 이곳에 파도를 완벽하게 재현할 수 있는 것은 인간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부분을 코어의 힘을 빌어서 만들었기 때문이었다.
코어에는 어떤 속성이든 반대가 되는 물질을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그것은 마치 물을 밀어내는 자석처럼 바람이든 물이든, 어떤 것이든 밀어낼 수 있었다.
그런 능력을 극대화 시켜서 풍랑과 파도를 만드는 것이기 때문에 전력만 차단하면 모든 것은 다 평화롭게 돌아오게 될 것이었다.
“60미터 파도가 이제 곧 이두박근호를 강타할 겁니다.”
“이정도면 거의 신기록이지?”
“이미 신기록은 넘어선지 오래입니다.”
장갑차가 뒤집히지 않은 것만 해도 신기할 지경인데 60미터의 파도를 빠르게 타고 달려가기 시작하는 이두박근호.
그들의 곡예에 가까운 항해를 보며 교관들은 숨을 죽였다.
“당도합니다!”
쿠우웅…!
바닥에 묵직한 진동이 울려 퍼졌다. 이것이 과연 파도인지 지진인지 알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압력이 전해진 것이었다.
교관들은 그저 마른 침만 삼키며 이두박근호의 곡예를 바라볼 뿐이었다.
그러다 잠시 후, 클리어 소식이 들려왔다.
“60미터 파도, 클리어입니다!”
“저 풍랑 속에서 60미터의 파도를 넘더니, 정말 대단하군!”
“다음 훈련으로 넘어가겠습니다. 높이 70미터 파도입니다.”
“저 사람들, 안 죽을까?”
“그야 신의 뜻에 달렸겠지요.”
***
파도가 아무리 높아져도 빅토리아는 한 가지 무조건적인 규칙을 가지고 키를 조종했다.
그것은 바로 파도를 이기려하는 것이 아닌, 조류의 움직임에 무조건 순응하는 것이었다.
“파도를 이기려고 하면 죽습니다. 그건 지진이나 토네이도 역시 마찬가지죠. 만약 시속 수 백 킬로미터의 강풍이 몰아지는 토네이도 속에서 저항을 하려 한다면 인간은 필시 죽고 말 겁니다.”
“음, 그러니까 조류에 저항하지 말아라?”
“바로 그거죠.”
제 2 바벨탑에서 사람이 가장 많이 사망하는 구간은 바로 수중구간이다.
넓이가 거의 동해안만큼이나 넓은 망망대해를 지나야하는 수중구간에서 풍랑이 일고 장대비가 쏟아지기 때문에 어지간한 경력의 마도루스도 두 손을 들기 마련이었다.
그런 제 2 바벨탑의 망망대해를 고무보트, 혹은 땟목 같은 것을 이용해서 건너야하기에 80층 이상을 인간이 간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었다.
그런 불가능에 평생을 도전해 온 파워드 피스에게 이두박근호는 그야말로 신이 주신 선물과도 같았다.
모두의 예상처럼 빅토리아는 신이 주신 선물을 너무나도 자유자재로 사용하였고, 100미터가 넘는 파도를 헤치고 장애물까지 파괴하며 훈련을 마칠 수 있었다.
헬창스가 이두박근호에서 걸어나오자, 교관들이 박수갈채를 보내왔다.
짝짝짝짝!
“대단하십니다! 어떻게 하면 그렇게까지 자유자재로 장갑차를 몰 수 있는 겁니까?”
“훈련은 잘 끝난 것입니까?”
“네, 첫 번째 훈련은 끝이 났습니다. 이제부터는 지상에서의 폭풍우 대비훈련에 들어갈 것입니다.”
태하는 자신 있게 고개를 끄덕였다.
“좋습니다! 가시죠!”
“음, 그 전에 일단 각서에 서명부터 좀 해주시죠.”
“각서요?”
“훈련 중에 사망해도 저희 측에 과실을 묻지 않겠다는 서약서입니다.”
흔히 이런 풍경은 번지점프를 할 때에 자주 보이곤 하지 않던가.
헬창스는 이것이 번지점프와는 아예 차원이 다른 미친 짓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그래도 훈련을 포기할 수는 없었다.
그들은 서약서에 한 명도 빠짐없이 서명을 넣었다.
“자, 그럼 두 번째 훈련을 시작하겠습니다.”
두 번째 훈련은 장갑차를 강철로 만든 와이어에 매달고, 그 위로 점점 강해지는 소용돌이를 쏟아 붓는 것이었다.
만약 소용돌이를 이겨내지 못한다면 자칫 사망으로 이어질 수도 있는 극악무도한 훈련이었다.
허나 토네이도를 이겨내고 100층으로 올라가자면 어쩔 수가 없었다.
“자, 시작합시다!”
“오케이!”
태하는 동료들과 함께 장갑차에 올랐다.
이제부터는 장갑차를 조종한다는 것 자체가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에 감과 운에 맡기는 수밖에는 없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총총은 이런 악조건을 이겨낼 수 있는 장치를 이곳에 설치해두었다.
그것은 바로 와이어와 비행엔진이었다.
“바람을 어느 정도 탈 수 있게 해두었다요! 그리고 유사시에 쓰려고 와이어 발사시스템도 구축했다요!”
“그야말로 만발의 준비를 다 해놓았네?”
“헤헤, 필요할 것 같아서 했다요!”
장갑차에서 와이어를 쏘는 그림을 보게 될 줄이야.
태하는 전혀 상상조차 하지 못하고 있었다.
휘이이이잉!
우선 1단계의 바람은 그럭저럭 버틸 만했다.
허나 풍속이 점점 강해짐에 따라서 차체가 심하게 흔들렸다.
“…장갑차가 이정도인데 사람이 여길 어떻게 지나간다는 겁니까?”
“능력자들은 토네이도 속에서도 생존할 수 있어요. 물론, 능력이 안 되는 사람들은 그 안에서 죽음을 맞이하게 되겠지만요. 그래서 파워드 피스는 A급 헌터도 잘 받아주지 않아요. 사람이 죽으면 곤란하니까.”
파워드 피스가 세계 1위의 길드가 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제 2 던전의 특성상 생존과 사냥, 이 두 가지 모두 가능한 사람이 아니라면 절대 생존할 수가 없다.
때문에 사람을 고르고 고르다보니 결국 세계를 재패한 1위 길드가 되어 있었던 것이었다.
한마디로 생존을 위해 버티고 버텼더니 대성을 이룬 셈이었다.
“솔직히 이두박근호 정도 되는 장비가 있었다면 진즉에 100층에 올랐을지도 몰라요. 하지만 탑의 수호자가 정해지고 능력의 승계가 이뤄진 이후에 100층 돌파가 가능해 진 것은 어쩌면 신의 뜻이 아닌가 싶기도 하네요.”
“신의 뜻이요? 어째서요?”
“탑을 수호할 수 있는 뚜렷한 계획도, 능력도 없는 채로 100층을 돌파할 수 있게 되었다면 아마 대혼란이 찾아왔을 수도 있죠.”
“흠…. 그건 또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지금 이 상황이 최선이 아니었나 싶네요.”
“하긴.”
그녀의 말이 맞다.
지금의 이 상황이 최선이라는 것에는 이견이 없었음으로 태하는 이제 앞으로 자신이 더욱 강해지는 일만 남았음을 깨달았다.
***
노바스코샤에서의 보름이 지났다.
이제 어느 정도 던전에서 어떻게 행동해야하는지 익혔기에 제 2 던전에 돌입해도 괜찮겠다는 판정을 받았다.
제 2 바벨탑의 수호자인 빅토리아는 성좌 ‘바벨탑의 마녀’에게서 가호를 받아 퀘스트가 생성되기 시작했다.
“10층을 클리어해라, 특별한 보상이 주어진다, 라고 쓰여 있네요.”
“오호, 그래요? 혹시 무슨 장비 같은 것은 주어진 게 없었습니까?”
그녀는 태하에게 나무로 만든 지팡이와 쌍검, 부츠를 보여주었다.
빅토리아가 건넨 지팡이에는 마녀에게 필요한 스킬과 스텟, 그리고 특성스킬 등이 부여되어 있었고 쌍검과 부츠에는 각각 주인이 정해져 있었다.
부츠는 이주현, 쌍검은 고영수에게 전해졌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뭡니까?”
“퀘스트에서 이렇게 말했어요. 특성장비를 두 사람에게 전해주고, 전용장비를 착용한 상태에서 10층을 돌파하라고요.”
아마 바벨탑의 마녀는 이 두 사람을 어떤 방식으로든 등용시키려는 모양이었다.
이주현과 고영수는 그녀의 퀘스트에 합류하기로 했다.
“좋습니다. 그럼 퀘스트를 받아들이도록 하죠.”
“그나저나 10층 돌파가 그렇게 어렵나요? 퀘스트를 내려줄 정도라면.”
빅토리아는 고개를 끄덕였다.
“쉽지는 않죠. 자연재해와 몬스터가 판을 치는 곳이니.”
“흠.”
“하지만 이두박근호가 있으면 문제없어요. 퀘스트는 절대 어렵지 않을 겁니다.”
“아무튼 그럼 장비부터 좀 착용해볼까요?”
쌍검과 부츠의 착용제한은 상당히 높은 편이었다.
두 사람이 만약 각성을 하고 특성무기를 착용하지 못했더라면 절대 불가능했을 수치였다.
무엇보다도 고영수는 그림리퍼의 대검을 휘두르고 다녔을 정도로 스텟이 높아서 이정도 제한은 가볍게 넘어설 수 있었다.
“쌍검을 드니까 훨씬 더 행동이 자유로워지는군요. 그림자의 특성스킬도 훨씬 강력해 질 것이고요.”
“이야, 이 신발! 스피드가 올라가게 설계되어 있네요. 무엇보다 좋은 건 바람의 마법이 신발을 공중부양하게 만들어준다는 것이고요. 이 정도라면 부상자가 발생했을 때, 내가 그를 들쳐 매고 던전을 탈출하기 좋겠어요!”
“각자의 특성에 맞다니, 성좌가 참으로 세심하다는 생각이 드는군요. 아마 던전 10층을 돌파하면 우리에게 맞는 또 다른 보너스가 주어질 겁니다.”
“흠, 그렇다면 바벨탑의 마녀는 우리를 어디에 쓰려는 것일까요?”
빅토리아는 두 사람에게 답을 주었다.
그것은 바로 구조대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