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71화 (171/197)
  • 171 재앙의 던전, 제 2 바벨탑(1)

    북유럽의 제 3 던전은 흔히 혹한의 땅이라 불리고 동남아시아 제 6 던전은 불의 땅이라고 불린다.

    이처럼 바벨탑은 각 구역마다 특색을 갖추고 있는데, 그런 지형적인 특색을 갖추지 않은 곳은 제 1 바벨탑이 유일하다.

    우르르릉, 콰아앙!

    “…1층부터 천둥번개가 아주 서라운드로 내리치네.”

    “이게 바로 재앙의 던전이라는 건가?”

    제 2 바벨탑을 부르는 수식어는 바로 ‘재앙의 던전’이다.

    천둥과 번개를 동반한 폭우가 쏟아지는 것은 물론이고 허리케인과 토네이도, 지진, 심지어는 해일과 싱크홀까지 수시로 일어나는 곳이 바로 제 2 바벨탑이었던 것이다.

    이곳은 뚜렷한 메타가 없다면 그대로 사망할 수도 있으며, 사전에 지형을 외우지 못하고 진입하면 아예 진행 자체가 불가능하다.

    “이런 곳을 80층까지 올라간 사람들이 있다니, 파워드 피스는 그야말로 괴물인가요?”

    “괴물이 아니라 오랜 기간을 두고 연구한 결과물이라고 할 수 있겠죠. 그리고 던전의 몬스터 자체는 제 1 바벨탑이 압도적으로 강해요. 제 2 바벨탑의 몬스터만 놓고 본다면 100층 돌파는 사실 식은 죽 먹기일 겁니다. 문제는 이곳의 환경이겠죠.”

    80층 이후부터는 인간이 도저히 감당하기 힘든 규모의 자연재해가 헌터들을 압박해온다.

    베리어 계열의 마법으로도 돌파가 불가능하기에 헌터들은 목숨을 걸고 사냥에 나설 수밖에는 없었던 것이다.

    “만약 이번에 우리가 100층을 돌파한다면 헌터로서는 그야말로 절대적인 업적을 세우게 되는 것입니다.”

    “물론 그 전까지 살아있다면 말이겠죠?”

    몬스터보다 더 위험한 건 사실 자연재해다.

    인간의 힘이 아무리 강력해봤자 자연재해 앞에서는 속수무책이며, 그건 몬스터 역시 다를 바가 없는 것이기 때문이다.

    태하는 그런 자연재해를 피해가는 것은 불가능하니, 앞으로 80층 이상 던전을 돌파할 메타를 따로 구성해봐야겠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쿠르르르릉…!

    던전 1층을 울리는 천둥번개를 뚫고 이 지역 중앙쯤에 있는 오두막으로 들어갔다.

    “여기가 바로 세이프 에리어에요. 이곳에서는 적대적인 상황에 놓인 길드끼리도 싸우지 않는다는 것이 불문율이죠.”

    “세이프 하우스네요? 이를 테면.”

    “그렇게 부르기도 하고요. 아무튼 1층은 구경했으니까 곧바로 2층으로 올라가실래요? 아니면 메타를 조금 더 신중히 구상하고 10층까지 한 번에 올라가실래요?”

    “10층까지 보통은 얼마나 걸립니까?”

    “빠르면 14일, 느리면 한 달이 걸리기도 하죠.”

    “…그렇게나 험준한가요?”

    “몬스터는 그리 많지 않은데, 문제는 바위사막이라든지 정글이라든지, 사람이 지나가기 힘든 지역이 다소 포진해 있다는 점이겠죠.”

    “흠. 그렇다면 일단 내려가서 재정비를 하는 편이 낫지 않겠습니까?”

    “좋아요. 그럼 이곳을 나가서 다시 얘기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헬창스는 1층의 초입만 보고도 이곳을 새로 공략해야 할 필요가 있다고 느꼈다.

    태하와 동료들은 세이프 하우스를 나서면서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가만, 우리가 클리어 하는 층으로는 제 1 바벨탑의 몬스터나 수호자들을 소환할 수 있게 되는 거죠?”

    “뭐, 그렇긴 하죠?”

    “그럼 아예 몰먼호를 타고 여행을 하는 건 어때요?”

    “…오호? 그거 참 괜찮은 생각인데요?”

    총총은 지금도 헬창스의 정식 멤버로 활동하고 있고 필요할 때마다 몰먼호를 끌고 나왔었다.

    만약 총총이 제 2 던전으로 들어올 수 있게 된다면 80층을 돌파하는 것은 그렇게까지 어려운 일이 아닐지도 모른다.

    게다가 제 1 던전의 몬스터들을 이곳으로 끌어올 수 있게 된다면 자연재해에 대항하기 좋아질 것이었다.

    “좋아요. 그럼 일단 몰먼시티로 가서 상의해보도록 하자고요.”

    ***

    그날 오후, 태하는 몰먼시티의 기술자들과 앞으로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총총과 기술자들은 몰먼호를 개조하는 것에는 우선 한계가 있을 것이라는 의견을 내어놓았다.

    “몰먼호는 던전돌파를 수월하게 해주는 측면이 있지만 거대한 지진해일이나 슈퍼태풍 같은 것에는 약할 수가 있다요!”

    “자연재해를 모두 막아내기엔 역부족이라 이거지?”

    “물론이다요! 자연재해, 몬스터나 인간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무섭다요!”

    몰먼들도 알고 있는 것이다. 대자연은 그 어떤 무기보다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태하는 총총과 기술자들에게 이런 제안을 했다.

    “그럼 이렇게 해보는 건 어때? 각 층을 돌파할 때마다 쌓은 데이터를 바탕으로 몰먼호를 꾸준히 개량하는 거지. 그렇게 해서 기술이 발전하면 몰먼시티에도 훨씬 더 많은 도움이 되지 않겠어? 재정적으로도 그렇고 말이야.”

    몰먼시티는 바벨 컴퍼니와 타이탄 컴퍼니의 4대주주로서, 태하가 가진 지분의 약 15% 정도가 증여되었었다. 그로 인해 몰먼시티는 상당히 풍족한 재정을 갖게 되었고, 매일 바벨 컴퍼니와의 교역으로 생활에 필요한 물건들을 수입할 수 있게 되었다.

    뿐만 아니라 스마트팜으로 농작물을 키울 수도 있게 되어 사실상 자급자족 국면으로 들어선 셈이었다.

    그런 몰먼족에게 있어 태하는 그야말로 구원자이자 진정한 의미의 족장이었다.

    “우리는 대장나리가 간다면 무조건 따라간다요! 몰먼시티의 발전보다는 헬창스의 던전돌파가 훨씬 중요하다요!”

    “그래, 고맙다. 하지만 몰먼족의 미래도 설계해야해. 그래야 제 1 바벨탑을 굳건히 지킬 수 있지. 안 그래?”

    “앗! 맞다요! 바벨탑도 지켜야한다요! 흠, 그렇다면 아주 잘 되었다요! 앞으로 어떤 공격이 들어올지 아무도 모르는데, 기술력이 자꾸 퇴보한다는 건 좋지 않은 일이다요! 그러니 지금부터라도 차근차근 기술력을 쌓아서 후일을 도모해야한다요!”

    “그래, 그게 맞지! 아무튼 간에 몰먼호는 준비할 수 있는 거지?”

    “물론이다요! 기존의 몰먼호 말고 우리가 차근차근 만들어 놓았던 이두박근호가 있다요! 그걸 타고 가면 될 것 같은데 말이다요!”

    “오호, 이름부터 웅장하네! 이두박근이라니!”

    몰먼들의 신체부위 중에서 가장 큰 장점을 꼽으라고 한다면 아마 울룩불룩한 이두박근일 것이다.

    마치 골렘을 연상케 하는 거대한 팔뚝은 보는 사람으로 하여금 이게 두더지 인간이 맞나 싶은 생각이 들게 만든다.

    한마디로 다부진 육체의 표상, 그것이 바로 몰먼족이라는 뜻이다.

    “몰먼족들, 아무튼 고맙다! 너희들 덕분에 제 2 바벨탑 100층 돌파가 가능해 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어.”

    “꾸준히 노력하겠다요옷!”

    “그럼 언제쯤 출발하면 될까?”

    “우선 트렌스폼 시스템이 구축될 때까지 보름만 기다려달라요!”

    “트렌스폼 시스템이 뭔데?”

    “변신한다요!”

    “변신?”

    “헤헤, 우리 몰먼족의 야심작이다요! 하지만 아직은 미완성이라 공개하고 싶어도 할 수가 없다요!”

    “그럼 뭐, 나중에 완성되면 보지 뭐.”

    “기대해도 좋다요!”

    총총은 어지간해서 자신의 기술력에 대해 이렇게까지 자신하는 말을 잘 하지 않는다.

    그것은 완벽주의 기술자들이 의례 갖는 프라이드이기에 어쩌면 당연한 것인데, 총총이 이렇게까지 말했다는 것은 역시 뭔가 대단한 것이 있다고 밖에는 설명할 수가 없는 것이었다.

    ***

    제 2 던전 돌파를 위한 준비작업에 들어가는 헬창스.

    지금까지 파워드 피스가 수 십 년 동안 던전을 굴러다니면서 배운 공략법에 따라서 그에 알맞은 장비를 구매하고 있었다.

    “재앙의 던전에서 가장 중요한 건 방수입니다. 매번 몸이 젖어서 사람이 사망하는 사례가 발생하고 있었죠. 고로, 무엇이든 방수를 하는 것이 최고라는 뜻이죠.”

    “흐음, 방수라. 그렇다면 전신을 방수할 수 있는 옷을 구매해야 한다는 겁니까?”

    “물론입니다. 온몸의 구석구석을 통째로 꽁꽁 싸맬 수 있는 것, 그것이 필요한 시점인 것이죠.”

    “그걸 어디가면 살 수 있는 겁니까?”

    “뉴욕으로 가시죠.”

    태하와 동료들은 세계 최대규모의 헌터용품을 판매하는 ‘가디언즈’를 찾아갔다.

    가디언즈는 대한민국 헌터협회로도 용품을 수출하고 있는데, 방재용품까지 판매하는 회사이기 때문에 제 2 바벨탑 관련 용품을 구하는 것으로는 제격이었다.

    그들은 태하와 동료들의 치수를 재고 거기에 맞는 용품들을 추천해주었다.

    “방수용품으로는 아무래도 머맨의 가죽을 최고로 집니다. 보여드릴까요?”“머맨이요?”

    “제 2 바벨탑 45층에 서식하는 수상 몬스터입니다. 보스급 몬스터인 그레이트 머맨은 그 덩치가 엄청난데다 가축마저 두껍기 때문에 잠수함의 내장제로 수요가 많은 편이죠.”

    몬스터는 인간에게 상당히 많은 도움을 준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코어채취를 위해서 무분별한 학살은 이제 더 이상 자행되어선 안 된다.

    ‘아마 던전의 리모델링 이후에는 이런 제품들을 구경할 수 없게 되겠군.’

    어느 순간부터 인류는 몬스터의 몸에서 나오는 뼈와 장기, 가죽 등에 의존하여 신소재 개발에 투자하는 자금을 긴축하고 있었다.

    만약 지금과 같은 상황에서 바벨탑 상부지역으로 아예 올라갈 수 없게 된다면 시장은 당분간 침체기에 빠져들 것이었다.

    허나 그런 과정을 겪고 난다면 분명 인류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 분명했다.

    ‘이 모든 것을 마정석과 은청석으로 대체할 수 있게 된다면 굳이 사냥은 필요 없게 되겠지? 게다가 독점세력도 없어질 것이고.’

    태하는 마정석을 독점으로 공급하는 사람이기에 그가 마음만 먹는다면 얼마든지 시장을 좌지우지 할 수 있을 것이다.

    허나 그는 지금 당장 마정석을 가지고 돈을 벌어 사익을 취하는 것보다는 충분히 시장을 안정화 시켜놓고 마정석을 팔아서 얻는 수익을 바탕으로 지구를 발전시키는데 더 의의를 두고 있었다.

    그가 독점한다는 것 자체는 다시 말해서 시장을 안정화 시키는 것이니 상당한 순기능이라 할 것이었다.

    “형님, 차라리 제 허물을 쓰시죠.”

    “뭐? 허물?”

    마침 제 2 바벨탑을 구경하고 싶다고 태하를 따라왔던 드래곤들은 자신들의 탈피에서 생겨난 허물을 써달라고 나선 것이었다.

    “드래곤도 뱀처럼 허물을 벗거든요. 우리 드래곤들이 벗은 허물이라면 얼마든지 옷이며 장비를 만들 수 있을 겁니다. 그리고 머맨 따위와는 비교도 안 될 정도로 성능이 좋을 것이고요.”

    “오호…? 그렇지. 드래곤의 허물은 이 세상에서 가장 좋은 원자재 중에 하나일 테니까.”

    “그럼 허물을 저들에게 주고 제작을 의뢰하면 되지 않을까요?”

    “그래, 그것도 좋은 방법이겠군!”

    마침 드래곤이 탈피를 한 덕에 태하는 아주 좋은 재료로 옷을 지어 입을 수 있게 된 것이었다.

    태하는 가디언즈에게 장비제작을 의뢰해놓고 아공간 이동을 통해 드래곤의 허물을 가져왔다.

    무려 트레일러 두 대가 나눠 실어야 간신히 들어갈 양이었다.

    “…엄청난데요? 태어나서 이렇게 대단한 드래곤 허물은 처음 봅니다! 그나저나 이걸 다 어떻게 써야할지 모르겠네요.”

    “장비와 슈트를 제작해주시고 여벌의 옷도 좀 만들어주십시오. 그리고 우리가 타고 다닐 차량인데, 이 안에 들어갈 코팅제와 내장제도 좀 만들어주시죠.”

    “그럼 그럴까요? 부품까지 보호할 수 있는 코팅제를 만들어드리겠습니다. 견적은 한 6,000만 달러쯤 나올 것 같습니다.”

    “전액 현금으로 지불하죠.”

    “협상 없이 쿨하게 거래를 하시려는 모양이군요. 역시, 헌터 골드는 뭔가 달라도 다르십니다!”

    이정도 돈쯤이야. 사실 태하에게는 남는 게 돈 뿐 아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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