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68화 (168/197)

168 차기 그림리퍼!(2)

89층이 허무하게 클리어 되었으나, 쓸쓸한 마음을 감출 길이 없는 희란.

“…우리 홍이가 세계수가 될 운명이었다니.”

“이 세계를 떠받치는 중요한 역할을 하는 존재입니다. 언제든 다시 만날 수 있고, 던전이 안정된다면 같이 살 수도 있어요. 걱정할 필요 없으십니다.”

“어머, 정말요?!”

“다만….”

“다만?”

“7개 던전을 통합하고 그곳을 마이트의 후계자가 관리하게 된다면, 그 뿌리를 든든히 지켜줘야 할 나무지기가 필요합니다.”

“나무지기…? 아직도 내가 가지고 있는 퀘스트의 이름인데.”

“네, 바로 그겁니다. 나무지기가 되어 숲을 관리하시는 것, 그것이 나무지기의 운명인 겁니다.”

“운명이라고요…?”

“나무지기가 된다면 홍이, 아니 세계수님을 언제든 영접할 수 있죠. 세계수님은 이제 나무지기님의 관리와 사랑을 받아서 살아갈 수 있게 될 것이거든요.”

그린 드래곤 마리사의 얘기는 놀라웠다.

나무지기라는 퀘스트는 단순히 나무를 키워내기 위한 것이 아니라, 던전을 조금 더 든든히 지켜야하기 때문에 생긴 필연적인 퀘스트였던 것이다.

“아니, 그럼 그 퀘스트는 도대체 누가….”

“아스무트에게 대항하는 세력, 즉 악마의 훈련장을 지금의 바벨탑으로 바꾼 사람들이죠. 그들은 사실상 당신의 성좌였던 겁니다. 지금까지 한 번도 밝힌 적은 없지만요.”

“…성좌라니. 그럼 나도 탑의 수호자라든지 사신처럼 정해진 길이 있었던 것이네요?”

“이제 아마 당신이 가야 할 길이 퀘스트를 통해 정해질 겁니다.”

바로 그때, 정말 기다렸다는 듯이 희란에게 긴급 퀘스트가 떨어졌다.

[퀘스트가 발생했습니다!]

[마지막 퀘스트 : 결정]

[당신의 길을 결정하세요]

[‘바벨탑의 나무지기’가 되기로 결정한다면 당신은 불명의 존재가 됩니다]

[당신이 퀘스트를 받아들이면 수명은 없어지고 세계수와 그 숲이 바벨탑을 유지할 수 있도록 해줄 것입니다]

[퀘스트 보상 : 던전의 영원한 지속]

희란은 자신의 불명을 결정하라는 메시지에 고민을 하지 않을 수 없었다.

“불멸이라….”

“천천히 결정해도 늦지는 않습니다.”

“나는 사실 영원히 함께 하고 싶은 사람이 있기는 해요. 하지만….”

그녀는 눈을 들어 태하를 바라보았다.

태하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여주었다.

“난 네가 어떤 결정을 하든 찬성이야. 네가 가는 길, 그 길이 어쨌든 내 길이기도 하니까!”

“…퀘스트의 보상은 던전의 영원한 지속이래요. 우리가 100층을 돌파한다고 했을 때, 던전을 수리할 수 있다고 했던 말은 바로 이것을 뜻하는 게 아닌가 싶어요. 내가 만약 퀘스트를 수락한다면 세상이 무너질 일은 없겠죠.”

“만약 네가 좋다면, 나는 네 뒤를 묵묵히 따르겠어!”

희란은 웃었고 그녀는 태하의 든든한 성원에 힘입어 퀘스트를 수락했다.

그러자, 태하의 팔찌에서 마계화 까미도 튀어나왔다.

-크르르릉!

“까미?”

“마계화도 던전을 지키는데 큰 힘이 될 겁니다. 침입자를 막아내고 영혼의 길을 닦아주는 역할을 하겠죠. 도주하는 영혼도 잡아낼 것이고요.”

“까미도 함께라면 완벽하지! 대장, 나를 믿어줘서 고마워요!”

“별 말씀을!”

희란은 그렇게 던전과 하나가 되었다.

허나 아직 100층 돌파는 반드시 수행해야하는 과제였다.

어쨌든 던전을 정상으로 돌려놔야 세계수가 존재하는 의미가 있을 테니 말이다.

***

던전 90층으로 올라가는 길.

첫 번째 에이션츠 드래곤을 만나기 전이라 태하는 몹시도 떨리는 마음을 주체할 수가 없었다.

“고룡의 힘은 웜급 드래곤의 몇 십 배에 달한다면서? 그런 괴물들을 도대체 어떻게 이길 수 있을까?”

“형님,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렸습니다! 이제 저희 헬창 드래곤즈도 많이 컸으니, 충분히 승산이 있을 겁니다!”

“그래, 너희 드래곤들이 많이 컸고 우리 헬창스도 강해졌지. 좋아, 할 수 있어!”

힘을 내보는 태하, 그리고 그를 믿는 동료들이 태하를 따라서 90층에 도달했다.

90층은 다소 스산한 바람이 부는 황량한 사막이었다.

샤이언이 눈을 반짝였다.

“…블루 드래곤?”

“에이션츠 블루 드래곤의 구역이라. 과연 어떤 일이 벌어질지 벌써부터 간담이 서늘하군.”

과연 고룡급은 태하 일행에게 어떤 시련을 줄지, 태하는 슬슬 걱정이 되기 시작했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스스…!

용팔의 주변으로 검은 기운이 모여들기 시작하더니, 이내 그의 앞에 아공간이 되어버렸다.

이 아공간이 어떤 용도이고 어떻게 사용되는 것인지 용팔은 아주 잘 알고 있었다.

“…어? 이건 사신의 아공간인데?”

“그런데 그게 왜 뜬금없이 열려요?”

“저도 그게 궁금하네요. 이게 왜 지금 열리지?”

여러 가지 의문을 품고 있는 가운데, 그 안에서 여섯 명의 청년들이 걸어나오기 시작했다.

두 명의 남성과 네 명의 여성으로 이뤄진 그들의 파티는 척 보기에도 범상치 않은 기운을 뿜어내고 있었다.

태하는 본능적으로 그들의 앞에 방패를 들고 섰다.

“…드래곤?”

“역시, 왔군. 마이트의 후계자!”

“나를 알아?”

그때쯤, 저 멀리에서 모래바람을 타고 날아든 청년이 태하의 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파란색 머리에 청안을 가진 아름다운 남자였다.

“오래 기다렸다. 정말 오래 기다렸어!”

“마이트의 후계자께서 오셨으니 우리는 이제 소명을 다 한 것인가!”

“소명…?”

“장로들께서 기다리고 계십니다. 어서 저희들의 심장을 받으시고 사신께서는 리젠을 시켜주시기 바랍니다.”

그들은 일곱 고룡들이었고 태하에게 자신들의 심장을 바쳐 97층으로 인도하기로 한 것이었다.

태하는 다이렉트로 97층까지 간다는 건 좋은데, 왜 굳이 이렇게까지 하는 것인지 궁금하기는 했다.

“고룡들…. 아니, 도대체 왜 이러는 거지? 내가 마이트의 진정한 후계자인지, 아직 그 자질도 시험해보지 못했잖아?”

“자질은 장로들께서 당신을 100층으로 모시고 간다면 자연스럽게 판별이 될 겁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마시고 저희들의 심장을 받아주셨으면 합니다.”

“흠. 뭐, 어차피 물러설 곳도 없고.”

태하는 그들의 심장을 받아서 흡수했다.

그러자, 용팔은 마치 본능에 이끌리듯이 던전의 시간을 빠르게 흘려보냈다.

스스스스, 팟!

고룡들은 잠시 사라졌다가 다시 태하의 앞에 나타나 고개를 숙였다.

“가시지요. 저희들이 모시겠습니다.”

“뭐, 그렇다면야….”

“혹시 용언이 불편하시다면 말씀해주십시오. 그럼 출발하겠습니다.”

그들은 태하를 무지개의 마차에 태운 후, 그대로 거침없이 사막을 내달리기 시작했다.

고룡들이 이곳을 떠나면서 그들은 일행들에게 당부를 해두었다.

“잠시 89층에 가서 휴식을 취해주십시오. 여러분들의 리더만이 100층에 오를 수 있습니다.”

“…흠. 불안한데?”

“정해진 숙명과도 같은 것입니다. 여러분들에게도 운명의 수례바퀴가 굴러갈 테니, 그곳에서 받아들이고 계시면 됩니다.”

“받아들이고 있으라고…?”

드래곤들은 알 수 없는 말을 남기고 사라졌다.

헌데 신기하게도 태하를 따라왔던 헬창 드래곤즈도 함께 사라지고 없었다.

“…뭐야, 이거. 내가 뭐에 씐 건가?”

“아무튼 일단 내려가자고! 여기서 비벼봐야 나오는 것도 없다잖여. 안 그려?”

“네, 찬성입니다! 헬창스, 하산합시다!”

***

순식간에 일곱 층을 지나 97층에 도착한 태하.

그 높이를 가늠할 수 없는 동굴, 그 안에 지어진 신전에는 승천하는 일곱 마리의 드래곤들이 수놓아져 있었다.

태하는 신전의 중앙에 위치한 동그란 원판 위에 올려졌다.

“후계자의 시험대입니다. 만약 여기서 장로님들의 판정을 받는다면, 당신은 100층으로 올라가 신룡의 심장을 취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당신은 던전을 복구할지, 아니면 파괴시킬지 결정하게 되겠지요.”

“흠, 그런 것이었나?”

잠시 후, 신전 천장에서 하늘하늘한 옷을 입은 일곱 명의 여성이 내려왔다.

그녀들은 하나같이 아름다웠고, 형형색색의 머리카락과 뛰어난 미색으로 완벽한 하모니를 이루고 있었다.

“우리들은 드래곤의 일곱 장로입니다. 신룡에게 다가가기 위해서는 신탁을 통과해야합니다.”

골드 드래곤으로 보이는 여성이 태하에게 금색 물약을 건네주었다.

태하는 그걸 받아 뭘 어쩌라는 건가 싶은 표정을 지었다.

그러자, 물약은 알아서 태하의 입으로 날아올랐다.

“드시면 됩니다.”

“흠, 맛이 있게 생기지는 않았는데.”

“바벨탑의 시험이 있을 겁니다. 드시지요.”

좀 찝찝하게 생긴 비주얼이긴 했어도 기왕지사 여기까지 온 김에 끝장을 봐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태하는 물약을 그대로 원샷 해버렸다.

꿀꺽!

순간, 태하의 눈동자에 금빛 아지랑이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골드 드래곤 장로는 그의 앞에 무릎을 꿇었다.

“첫 번째 신탁을 통과하셨습니다! 과연 대사형의 면모가 보입니다!”

“대사형?”

“첫 번째 신탁은 현명함입니다. 당신이 과연 얼마나 현명한지, 그것을 신탁으로서 시험한 것이지요.”

“음, 그런 것이었군.”

이번에는 레드 드래곤으로 보이는 여자가 태하에게 물약을 들이밀었다.

아마도 이것 역시 같은 종류의 물약인 듯했다.

“마시면 되는 건가?”

“물론입니다.”

태하는 이번에도 거침없이 물약을 들이켰다.

마치 식도가 타는 듯한 느낌, 위스키를 원샷 한 것 같았다.

“크흐, 이게 얼마만에 느끼는 거냐.”

“두 번째 신탁을 통과하셨습니다.”

“음? 이렇게 빨리?”

“두 번째 신탁은 용맹함입니다. 당신은 과연 투사의 기질과 무사의 영혼을 가졌습니다.”

신탁은 정말로 단순한 구조였다.

물약을 마시고 그것이 태하에게 해를 입히지 않는다면 신탁은 통과였다.

그 이후로도 태하는 다섯 병의 물약을 더 마셨지만 신탁은 아무런 문제없이 통과였다.

일곱 장로들은 태하에게 부복하며 자신들의 심장을 기꺼이 태하에게 바쳤다.

“신룡을 취하십시오! 당신의 마지막 퀘스트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음, 마지막 퀘스트라?”

태하는 장로들의 심장을 모두 흡수했다.

그러자, 그의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더니 이내 100층까지 순식간에 이동해버렸다.

드디어 도착한 바벨탑의 100층.

꼭대기에 도달한 태하는 칠색으로 빛나는 신룡과 마주하게 되었다.

남성도 아닌, 그렇다고 여성도 아닌 신비로운 목소리가 태하의 귓전을 올렸다.

-마이트의 후예, 드디어 이곳까지 오셨군요.

“당신이 바로 신룡?”

-우리 용족의 심장을 그대가 흡수해주신다면, 제 1 바벨탑은 그대의 것이 됩니다.

“그렇다면 미련 없이….”

-하지만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당신이 제 1 바벨탑의 수호자로서 100층을 정복한다면 양단 간에 결정을 내려야 할 것입니다. 바벨탑을 복구하고 유지한다면, 당신의 영혼은 이제부터 영원토록 이곳 바벨탑에 묶이게 됩니다. 반대로 바벨탑을 파괴한다면 자유의 몸이 되는 동시에 영혼도 당신의 것이 되겠죠.

“아니, 잠깐만. 그렇다는 건….”

-당신의 영혼을 걸 수 있느냐, 없느냐, 그런 문제인 것이죠.

단순히 오래 살고 빨리 죽고의 문제가 아니었다.

영원히 탑에 묶여 불멸의 생을 산다는 건 고통도, 슬픔도 영원하다는 뜻이었으니까.

“쉽지 않은 결정이로군.”

-쉽지 않습니다. 하지만 대의를 생각하신다면 결정을 내리는데 전혀 주저함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됩니다만.

“흐음.”

가만히 생각에 잠기는 태하.

그는 돌연 용팔이 했던 말이 떠올랐다.

“헬스도 할 수 있나?”

-……?

“몸을 키울 수 있냐고.”

-몸을 키운다니요?

“근육에 미세손상을 준 후, 회복하는 과정에서 근육이 커지는 생체반응을 얘기하는 거야.”

-흠…. 그거야 당신이 하기에 따라 다르겠지요. 하고자 한다면 못할 것도 없습니다.

“…정말? 그럼 영원히 호르몬의 구애 없이 몸을 만들 수 있다는 거야?”

-당신이 원한다면 그렇게 될 것입니다.

“영원히 몸을 키울 수 있다고?!”

살다살다 뭐 이런 미친놈이 다 있나 싶은 표정이었지만, 그래도 신룡은 태하를 끝까지 탑의 수호자로 깍듯이 모셨다.

-아무튼 당신은 심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었습니까?

“오케이! 못 먹어도 고! 옘병할, 죽기밖에 더 하겠냐?!”

-당신은 100층을 정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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