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66화 (166/197)
  • 166 강력한 한 방!(2)

    연신 씩씩거리며 길을 재촉하는 고르딘.

    도대체 뭐라고 했으면 가만히 있던 저 황금 도마뱀이 미쳐서 난리인지, 일행들은 그것이 너무나도 궁금하기만 했다.

    태하는 에밀리에게 그 비결이 뭔지 물었다.

    “뭐야, 뭐라고 했는데 저 난리야?”

    “후후, 보시면 알아요. 아마 고르딘은 자기가 죽더라도 반드시 그녀를 쓰러뜨리려고 하겠죠.”

    “왜 저러는 거야?”

    뭔가 재미있는 구경을 하고 있는 듯, 그녀는 미묘한 웃음을 짓고 있었다.

    이윽고 잠시 후, 태하 일행은 거대한 웅덩이가 있는 늪지대의 중앙지역에 도달할 수 있었다.

    작은 웅덩이들로 이뤄져 있는 이 늪지대에는 사람 머리만한 모기와 인간처럼 걸어 다니는 악어인간 같은 괴생명체들이 즐비해 있었는데, 이러한 이미지들이 블랙 드래곤을 더욱 사악한 존재로 만드는 것 같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잠시 후, 웅덩이에 작은 진동이 일었다.

    쿠그그극….

    그러자, 고르딘이 악에 찬 목소리로 소리쳤다.

    “나와라, 블라이디! 어서 나와 한 판 붙자!”

    -고르딘?

    웅덩이 어디서부터인가 블라이디의 것으로 추정되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르딘은 잔뜩 화가 난 얼굴로 말했다.

    “…어서 나와! 안 그러면 오늘 아주 사생결단을 낼 줄 알아!”

    -사생결단…?

    사생결단을 운운하는 고르딘의 앞에 마치 흑진주로 빗어놓은 듯 고혹적인 흑인여성이 모습을 드러냈다.

    흑빛의 신비로움과 유려한 곡선, 그리고 고혹적인 눈동자까지.

    그녀는 다른 의미로 서큐버스보다 훨씬 더 매혹적인 존재인 것 같았다.

    다만, 다른 드래곤들과 다른 점이 있다면 폴리모프 했을 때의 형상이 17~18세 전후의 여성이라는 것이었따.

    “남들보다 3~4살 정도는 더 많아 보이네?”

    “블랙 드래곤의 육체는 다른 드래곤들에 비해서 성장이 빠르거든요!”

    “아하, 그렇구나.”

    블라이디는 표정이랄 것이 없는 사람처럼 보였는데, 마치 살아서 움직이는 아름다운 인형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했다.

    그녀는 고르딘을 말없이 응시하기만 했다.

    그러다가 툭 내뱉는 그녀의 한 마디.

    “…무슨 일이지?”

    “저, 그, 음….”

    “……?”

    “내가 들은 말이 있는데 말이야.”

    “말?”

    “저….”

    “또 어디서 그 뱀 같은 혀를 놀리려고…?”

    “뱀?! 이, 이이…!”

    어쩐지 둘 사이에는 뭔가 풀려고 해도 풀 수 없는 깊은 감정의 골이 존재하는 것 같았다.

    이윽고 고르딘이 본체로 현신하여 포효를 내지르기 시작했다.

    -쿠오오오오오!

    “저거 왜 저래?”

    “후후, 제가 사소한 오해의 씨앗을 좀 뿌려놓았죠.”

    “오해의 씨앗?”

    “보시면 알아요.”

    도대체 그게 무슨 말일까.

    고르딘이 본체로 변신하자, 이에 질 세라 블레이디도 거대한 흑룡의 모습으로 분화하였다.

    덩치로 따진다면 고르딘이 약간 더 커보였지만 가죽의 질이라든지 느껴지는 마력은 블레이디가 한 수 위였다.

    -…유언비어나 퍼뜨리는 못된 드래곤 같으니!

    -유언비어?

    -오늘 네가 그 못된 버릇을 고쳐주겠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저렇게 화가 난 것인지, 고르딘은 순식간에 거대한 입을 쩍 벌리며 황금빛 브레스를 쏘아냈다.

    -크아아앙!

    그러자, 블레이디는 웅덩이 속으로 빨려들어가듯 신영을 숨겼다.

    스스스스!

    “…귀수?!”

    “잠영술을 쓰는군요…! 블랙 드래곤에게도 저런 능력이 있었을 줄이야!”

    전체적인 스킬 자체가 귀수와 비슷한 면이 많았다.

    블레이디는 그림자 속으로 들어가더니, 이내 네 개의 분신을 만들어 고르딘을 동시에 압박했다.

    까가가가강!

    다단히트 공격성향의 검은색 구체가 사방에서 날아들며 고르딘의 두꺼운 비늘을 갉아먹기 시작했다.

    그러자, 고르딘은 공중으로 금빛 구체를 띄웠다.

    -골든 라이트!

    사방이 밝아졌고 이 세상에 다시는 그림자라는 것이 생기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허나 여전히 블레이디는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채 공격을 시전했다.

    스스스스…!

    고르딘의 발목을 붙잡는 검은 손아귀들, 그리고 그 머리 뒤로 떨어져 내리는 검은색의 구체는 모든 것을 빨아 당길 듯 강력한 중력을 뿜어냈다.

    “…블랙홀?”

    “허어! 공격스킬로 블랙홀을 사용한다고?! 이건 너무 사기적인 스킬 아닌가?!”

    깜짝 놀라는 일행들 옆에서 고개를 가로젓는 바트.

    “아니, 저건 블랙홀 같은 게 아니야. 강력한 중력을 가진 일종의 평범한 아공간 일뿐. 본질적으로 블랙홀과는 달라. 용언으로 만들어진 것이니까.”

    “용언? 그게 뭔데?”

    “드래곤들 사이에 전해져 내려오는 특성스킬 같은 거야. 태어날 때부터 지니고 있던 개개인의 특징이 스킬로 분화되는 거지. 이를 테면 에밀리의 눈보라, 절대영도 같은 것이랄까?

    “아하! 그렇구나! 그럼 저 스킬은 블랙홀과 뭐가 다른데?”

    “입자를 분쇄할 수 있다. 그리고 모든 것을 무의 형태로 되돌릴 수 있지. 그야말로 입자를 갈아서 없애버리는 거야.”

    어디선가 많이 본 듯한 스킬이었다.

    고영수, 혹은 이용광이 사용하던 스킬과 유사한 점이 꽤 많은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고르딘은 블레이디의 공격에서 벗어나기 위해 다시 한 번 용언을 뻗어냈다.

    끼이이잉!

    아련한 금빛이 감돌기 시작하던 고르딘의 전신에서 화려한 오러가 뻗어 나와 주변을 금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황혼으로 물드는 석양을 보는 듯, 그 모습은 아름답기까지 했다.

    -크읏!

    -…싸움은 이걸로 끝이다!

    시야가 한 방에 멀어버린 블레이디는 그대로 깊은 어둠 속에서 나와 땅을 밟고 설 수밖에는 없었다.

    이대로라면 싸움은 불을 보듯 뻔했다.

    허나 반전이 있었다.

    두근!

    “…어? 어어어?!”

    “용팔 씨? 왜 그래요?”

    “저, 저, 저…!”

    “저?”

    “저 드래곤! 그만 싸우게 해야 해요!”

    “네? 어째서….”

    “바벨의 흑막이 블레이디를 보우하고 있어요! 저 용, 성좌를 가진 특별한 존재라고요!”

    “어엉…?!”

    순간, 블레이디의 눈이 번쩍 뜨였다.

    이윽고 그녀의 머리 위로 거대한 낫을 든 사신이 현신하듯 그림자처럼 떠오르기 시작했다.

    -인생은 고통이야! 그렇지 않나?

    “바벨의 흑막!”

    “아니요! 저건 흑막의 하수인이에요! 아무래도 블레이디에게 그것을 소환할 수 있는 특성스킬을 부여해준 것은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다면 파이어볼에게 마계군단을 소환할 수 있도록 협조한 건 블랙 드래곤이 아니라는 소리인가요?”

    “결론적으로 본다면 그렇게 되는 거죠.”

    바벨의 흑막은 마이트의 동료이며 탑의 수호신 중에 한 명이었다.

    만약 바벨의 흑막이 직접 움직였다면 무슨 의미가 있을 터, 태하는 잠시 싸움을 보류하기로 했다.

    “자, 잠깐! 이해관계 좀 정리하고….”

    순간, 태하의 행동이 서서히 느려지는 듯 주변의 시공간이 천천히 멈추기 시작했다.

    그리곤 오로지 한 사람만 멀쩡히 돌아다닐 수 있게 되었다.

    바로 용팔이었다.

    “어엉…?”

    “어이, 계약자!”

    “…바벨의 흑막?”

    “어때? 살아보니 인생은 고통이야, 희열이야?”

    놀랍게도 용팔의 앞에 성좌가 직접 나타난 것이었다.

    ***

    성좌를 바라보는 용팔의 표정은 황당함, 그리고 놀라움, 그 중간 어디쯤이었다.

    그림리퍼는 웃으며 물었다.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야. 그렇지 않아?”

    “…뭐, 그렇기는 했었죠. 하지만 언제나 고통만이 함께 하는 건 아니었던 것 같아요.”

    “맞아! 인생은 파도야. 오르면 내리고, 내리면 오르는 것. 그런 인생의 꿀렁임은 한마디로 최고의 축복이라 할 수 있지. 생각해봐. 매일 같은 행복만이 계속된다면, 과연 인간은 그 자체만으로도 행복하다고 할 수 있을까?”

    “그렇기는 하죠.”

    바벨탑의 흑막이라고 해서 뭔가 음흉한 구석이 있을 줄 알았는데, 그림리퍼는 생각보다 담백한 사람이었다.

    그는 용팔을 바라보며 또 다시 물었다.

    “너, 이런 생각 해 본 적 있어? 만약 내가 죽는다면, 과연 내 앞날은 어떻게 되는 것인가 하고 말이야.”

    “음. 글쎄요. 그다지 진지하게 생각해 본 적은 없는 것 같습니다만.”

    “난 말이야. 인간이던 시절에 그런 생각을 하루에도 수 십 번도 더 했었어. 과연 인간은 죽으면 어떻게 되는 것인가? 신화에 나오는 지하세계로 떠나는 건가? 거기서 하늘로 승천할 기회를 얻거나 불구덩이에 떨어지게 되는 것인가? 수많은 생각을 했었지. 그러다가 어느 순간, 이런 제안을 받았어. 죽은 자들의 영혼을 인도해줘라, 라고 말이야.”

    “…그럼 당신은 사신이란 말인가요?”

    “그런 셈이지.”

    사신을 부르는 여러 가지 수식어들이 있다.

    영혼을 거두는 자, 저승사자 등등 지역에 따라서 부르는 이름도 천차만별이다.

    허나 한 가지 공통적인 것은 바로 영혼을 거두어 간다는 것.

    “아니, 그렇다면 당신이 내게 보인 것은 내 영혼을 거두어가기 위함인가요?”

    “그건 아니야. 음, 뭐랄까. 한 가지 제안을 하려는 것이랄까?”

    “제안이요? 사신이 무슨 제안을….”

    “너, 나를 따라서 그림리퍼가 될 생각 없어?”

    “…저승사자가 되라고요?”

    “그래! 영혼을 인도하는 자가 되는 거지. 생각해봐! 인간은 죽어서 어딘가로 가야해. 영혼이라는 것은 결국 윤회의 한 부분이거든. 이 순환의 한 축이 되는 거야. 어때? 설레지 않아?!”

    용팔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는 전지전능한 존재가 된다거나 누군가의 위에 군림한다는 등의 생각은 전혀 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글쎄요. 저는 인간 그 자체만으로도 만족합니다만.”

    “흠, 그럼 이렇게 생각해보자. 어차피 네가 안 해도 누군가는 이 일을 해야해.”

    “지금도 그림리퍼가 떡하니 계신데요?”

    “지금이야 그렇지. 하지만 나는 이미 두 명의 화신에게 내 힘을 나눠주었어. 내 활을 받았었지?”

    “제 특성무기요?”

    “그래. 그거, 원래 내가 사용하던 거야.”

    “아아!”

    “저승사자 노릇을 하려면 참으로 강력한 힘이 필요하거든. 그래서 그런 무기들을 사용할 수밖에는 없었언 거지.”

    “으음….”

    “네게는 활을, 귀수라는 놈에게는 검을, 드래곤에게는 나의 분신을 주었어. 이제 그것을 하나로 합쳐서 차기 사신을 뽑을 차례가 된 거지.”

    “그럼 당신의 힘을 여기저기 뿌렸다는 뜻인데, 왜 그러신 건데요?”

    “내 후계자를 찾기 위함이었다고 할 수 있지. 처음에는 드래곤을, 그 다음으로는 너, 마지막이 귀수였어. 헌데 겪어보니까 저승사자는 혼자서 가기엔 너무 힘든 길이야. 그래서 이 힘을 모으는 대신에 너희 세 사람이 함께 힘을 합쳐서 저승사자 역할을 해주었으면 했어. 그런 이유에서 너희들에게 마이트의 버프를 받을 수 있게끔 미리 손을 써 둔 거지.”

    “…바벨탑의 흑막이었으니까요?”

    “그래! 맞아, 바로 그거야.”

    “흐음.”

    “내가 바벨탑의 흑막이라 불린 진짜 이유는 바로 이거야.”

    스스스스!

    그림리퍼가 손을 뻗자, 던전 한 가운데 아공간이 열리기 시작했다.

    그 아공간의 안쪽 풍경은 혹한의 얼음으로 가득 차 있었다.

    “자, 봐. 북유럽 던전이야. 제 3의 던전이라고도 하지.”

    그는 아공간 안으로 걸어 들어갔고, 용팔도 마치 뭔가에 홀린 듯이 그의 뒤를 따랐다.

    파앗!

    “허억!”

    순식간에 주변의 풍광이 바뀌어 있었고, 용팔은 이가 딱딱 부딪칠 정도로 극한의 냉기를 느낄 수 있었다.

    딱 란돌이 말했던 북유럽 던전의 풍경과 일치했다.

    “우리는 던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어. 자, 여기서 만약 마음만 먹는다면….”

    스스스스스!

    다시 한 번 아공간이 열리더니, 이번에는 화끈한 마그마가 들끓는 풍경이 펼쳐졌다.

    그곳으로 발을 옮긴 두 사람은 얼굴이 익어버릴 듯한 열기에 땀을 찔끔 흘렸다.

    “어때? 죽이지?”

    “아니, 사신이라면서 이런 능력은 왜 필요한 건가요?”

    “너 말이야. 바벨탑이 원래는 뭐하는 곳이라고 들었어?”

    “지옥의 군대를 훈련시키는 곳이라고 들었어요.”

    “그럼 그때 훈련을 받았던 놈들은 어디로 갔을까?”

    “지하감옥에 갇혔다고….”

    “그럼 그 지하감옥은 어디에 있고, 또 어디로 통하는 건데?”

    “그야…. 모르죠.”

    “생각해봐. 지하에서 올라온 놈들을 가둘 곳은 딱 한 곳 뿐이야. 바로 지하에 감옥을 만드는 거지.”

    “…그렇다면 다시 지옥으로 돌아갔다는 건가요?”

    “아니, 지옥이 아니라 명계 말이야, 명계.”

    “어…? 그럼 바벨탑이 바로 명계의 입구란 말인가요?”

    “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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