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5 강력한 한 방!(1)
헬창 드래곤즈가 미친놈들처럼 날뛰자, 이번에는 골드 드래곤이 조금 더 거대한 암기를 쏘아대기 시작했다.
피융!
-으헛! 잘못하면 맞을 뻔했네!
-아니, 그나저나 이 새끼가 정말 어디에 짱박혀 있는 거야?!
암기가 날아오는 그 순간, 태하는 이블아이의 전용스킬인 캔슬레이션을 사용했다.
일전에 이블아이를 먹어치우면서 태하는 캔슬레이션 스킬을 얻었고, 오리지널보다는 못해도 충분히 적을 수색할 정도는 되었다.
끼이이잉!
태하가 캔슬레이션을 펼치며 앞으로 나아가는 동안 이블아이는 사방으로 초음파를 쏘아냈다.
-크허어억!
캔슬레이션을 사용한 것은 적이 태하의 위치를 파악하지 못하도록 하려는 의도였고 그것은 초음파를 통해 더 멀리 전달되며 아주 효과적으로 마법을 성공시켰다.
“찾았다! 놈의 위치가 보여요!”
“혁수 오라버니! 태하 씨의 좌표를 받아서 놈을 저격해줘요!”
“오케이!”
태하는 정확한 방위각을 계산해서 빠르게 사격재원을 만들어냈고, 임혁수는 보이지도 않는 목표물을 향해 총구를 돌렸다.
확실하지 않은 공격, 잘못하면 자신이 역습을 당할 수도 있었지만 임혁수는 택티션과 리더를 믿었다.
“쏜다!”
타아앙!
거대한 대물저격용 탄환이 날아가더니 이내 빠르게 바람을 가르기 시작했다.
어지간한 건물은 가볍게 관통할 뿐만 아니라 제 아무리 드래곤의 비늘이라도 임혁수의 저격탄을 버텨낼 수는 없었다.
피융!
바람을 가르던 탄환은 어느 순간, 갑자기 멈추게 되었다.
마치 누군가 탄환을 뒤에서 잡아당기는 듯한 모습이었다. 심지어 그 힘 싸움 때문에 아지랑이까지 피어날 정도였다.
“…저기가 맞나벼!”
“한 발 더요!”
“오케이!”
타아앙!
임혁수의 탄환은 다시 한 번 발사되었다.
이번에도 역시 임혁수의 탄환을 막아내는 드래곤, 허나 임혁수는 그리 만만한 저격수가 아니었다.
그는 이중탄환 스킬을 사용했다.
끼기기긱!
탄환 속에 또 다른 탄환이 들어있는 이중탄환이 적의 압력에 굴하지 않고 한 꺼풀 옷을 벗자, 곧바로 길이 열렸다.
피융!
-크허억?!
“맞았다!”
드래곤의 유격술은 충분히 위력을 발휘할 수 있겠으나, 반대로 생각하면 유격술로 저격만 하는 것은 자신의 위치가 더욱 쉽게 노출될 수 있다는 뜻이었다.
게다가 한 번 자리를 잡으면 쉽게 움직일 수 없다는 것을 생각하면 위치노출 시에는 목숨까지 내어놓아야 하는 단점이 있었다.
드래곤들은 그 즉시 놈에게 브레스를 퍼붓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빌어먹을 변절자들 같으니! 너희들이 그러고도 긍지 높은 용족의 후예들이란 말이냐?!
-닥쳐, 이 쓰레기 같은 자식아! 대장, 이놈을 당장 쳐 죽여 버려!
“안 그래도 그럴 생각이다!”
비록 골드 드래곤에게 악의는 없지만, 이놈을 재물로 삼는 것만이 앞으로 더 나아가기 위한 지름길이었다.
태하는 바위에 단단히 발을 고정시킨 후, 그대로 발달한 하체를 이용해서 도움닫기를 했다.
마치 스쿼트를 치는 것처럼 말이다.
“하체운동의 중요성을 보여주마!”
피융…!
탄환이 발사될 때보다 훨씬 더 강력하고 스피드한 도약을 펼친 태하는 그대로 주먹을 내지르며 골드 드래곤의 품으로 파고들었다.
골드 드래곤은 처참하게 일그러진 표정으로 태하를 바라보았다.
-이런…?
-후후, 마지막이다! 형님의 한 방은….
-과연 그럴까?!
일그러져 있던 골드 드래곤의 표정이 다시 펼쳐지면서 그의 앞에 금빛 빛무리가 모여들기 시작했다.
공간의 일그러짐마저 생기는 골드 드래곤의 금빛 정수.
드래곤들은 입을 떡 벌리고 말았다.
-…뭐야, 브레스?!
-브레스는 입으로만 쏠 수 있는 게 아니다. 열심히 연습하면 모공을 통해서도 쏠 수 있지! 바로 이렇게 말이야!
우거지상을 하고 앉아서 뭐하고 있나 싶었더니, 바로 이런 꼼수를 쓰고 있었던 것이다.
아마 브레스가 태하를 공격하면 레이드는 실패로 돌아갈 것이었다.
거리는 거의 제로에 가까웠고, 이제 공격은 적중할 것이 분명했다.
허나 바로 그때, 태하의 기지가 발휘되었다.
스스스스, 파앗!
“뒤통수는 네 전문이 아니라 내 전문이다!”
-뭐야, 텔레포트?!
“아니, 이건 바로 도약이라는 스킬과 점멸이라는 스킬을 섞은 속풀이 짬뽕 스킬이다!”
태하는 지금까지 수많은 사람을 구했고, 자신의 목숨을 구해온 스킬을 사용해서 적의 뒤통수로 황급히 점멸했다.
그런 후, 드래곤의 뒤통수에 주먹을 내갈기는 태하.
“허업!”콰아아앙!
후두부는 신체의 수많은 부위 중에서도 한 방에 즉사에 이를 수 있는 가장 약한 곳 중 하나다.
제 아무리 드래곤의 두개골이 단단하다고 해도 뒤통수까지 철통방어가 되어 있는 것은 아니었음으로 골드 드래곤은 한 방에 기절하고 말았다.
-끄에엑….
“뻗었다!”
-형님, 지금입니다!
태하는 골드 드래곤의 역린을 들춰낸 후, 그 안에 자랑스러운 헬창의 상징인 스트랩 와이어를 뻗어냈다.
퍼억!
드래곤 하트가 태하의 몸속으로 빨려들어 옴에 따라 그 가죽이 홀쭉해져버렸다.
-커어어억…!
그야말로 가죽만 남은 드래곤의 신형은 바스라졌고 태하와 일행들은 승리를 만끽할 수 있었다.
“…이겼다!”
***
88층으로 올라가는 길은 사방이 축축한 웅덩이로 이뤄져 있었다.
발이 푹푹 빠지는 잔잔한 진흙 밭을 지나 88층에 이르자, 사방이 전부 어두침침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부웅, 부웅…!
잔잔한 부엉이 우는 소리, 어두컴컴한 하늘, 그리고 보랏빛 늪지대가 마치 공포영화의 한 장면을 연상케 한다.
“서큐버스의 구역에서 본 것 같지 않아요?”
“아, 그래! 맞네요. 그때 본 그 장면이에요! 그렇다면 이놈들, 블랙 드래곤의 DNA를 가지고 그 끔찍한 짓을 했던 것일까요?”
“그럴지도 모르죠. 아, 맞다! 그러고 보니 서큐버스들도 이제는 대장의 권속이 되어있겠네요?”
“아참, 그렇지!”
태하는 당장 서큐버스를 소환했다.
매혹적인 향기를 풍기며 일행의 앞에 모습을 드러낸 서큐버스, 그녀는 가까이 있는 것만으로도 심장이 녹아버릴 것 같은 느낌을 자아냈다.
“…오호호, 주인님. 부르셨어요?”
“네 기억이 좀 필요해. 혹시 블랙 드래곤의 DNA가 주입된 적이 있나 싶어서 말이야.”
“으음, 그랬던 적이 있었나?”
서큐버스는 자유자재로 몸을 변화시킬 수 있지만, 드래곤과 마찬가지로 폴리모프에 한계가 존재한다.
그녀들은 아름다운 인간의 형상에 박쥐의 날개와 악마의 꼬리를 가졌는데, 막상 전투에 돌입하게 되면 본인이 할 수 있는 가장 무서운 모습으로 변신하곤 한다.
지금은 평소의 아름다운 여인의 모습이었는데, 그녀는 태하의 어깨 위로 슬쩍 손을 올려놓았다.
“음…. 기억이 날 것 같기도 하고.”
그녀의 끈적끈적한 행태에 빅토리아가 잔뜩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전기찜질을 하기 전에 입을 여는 게 좋을 건데.”
“어머, 이 언니는 또 누구야? 후후, 내가 또 예쁜 여자라면 사족을 못 쓰는데. 그건 어떻게 아셨지?”
“징그러운 소리 그만하고 입을 여는 게 좋아. 그렇지 않으면….”
이번에는 빅토리아의 뺨에 손을 가져다대는 서큐버스.
진심으로 빅토리아를 탐하는 그녀의 손길은 가히 작업의 정석이라 할만 했다.
“글쎄요.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블랙 드래곤이라는 놈들의 DNA를 수혈받은 적은 없는 것 같은데.”
“…그럼 던전 전체를 암흑천지로 만든다거나 지옥의 악마들을 소환하는 등의 행동은 어떻게 할 수 있었던 거야?”
서큐버스는 그녀의 옆구리에 손을 스윽 가져다대며 말했다.
“생각해봤어요? 드래곤과 몬스터의 차이.”
“…그게 뭔데?”
“그릇. 그릇의 차이를 정말 느끼지 못했단 말이에요? 드래곤은 엄밀히 말해서 몬스터가 아니잖아요. 우리는 누군가의 피조물, 다시 말해서 권속으로 빗어졌단 말이죠. 비록 지옥의 악마들을 가둬서 만들었다곤 해도 말이에요. 하지만 드래곤은 달라요. 억압의 마법으로 탑과 하나가 되었을 뿐, 원래는 한 종족이었단 뜻이에요.”
“그릇의 차이라. 아무튼 그래서, 뭐 어떻다는 건데?”
“우리가 아무리 능력이 좋아도 지옥의 사자들을 끌어오는 건 불가능하다는 얘기죠. 최소한 블랙홀을 자유자재로 다룬다거나 극한의 마이너스 에너지를 갖고 있다면 몰라도.”
아르네시아는 극한의 마이너스 에너지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블랙 드래곤 블라이디를 떠올렸다.
“…블라이디, 그놈이 확실합니다!”
“그럼 뭐야. 이미 드래곤과 놈들이 결탁이라도 했단 말이야?”
“그럴 수도 있죠.”
“허어, 그게 가능한 일인 건가? 드래곤의 영역을 돌파했던 사람은 지금까지 한 명도 없지 않았던가?”
“돌파는 불가능하죠. 하지만 잠입이 가능했다면? 몰먼족처럼 던전을 오갈 수 있는 존재가 또 있을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아하! 그래, 그럴 수도 있는 거지! 내가 왜 그 생각은 못했지?”
몰먼족이 던전을 자유자재로 오갈 수 있는 이유에 대해서는 아직 명확하게 밝혀진 바가 없다.
만약 그렇다면 몰먼족 이외에도 그런 유사한 종족이 있지 말라는 법은 없다는 뜻 아닐까.
태하는 그런 종족에 대해서 알아내기 위해서라도 반드시 88층을 돌파해야 할 것이었다.
“뭐, 아무튼 그래서 말이야. 블랙 드래곤 블라이디라는 놈은 어떤 놈이야? 바트가 한 번 싸워봤다고 하지 않았던가?”
“아니, 내가 아니라. 저놈.”
바트가 손가락으로 가리킨 곳에는 금발의 소년 고르딘이 서 있었다.
고르딘은 어디를 가든 시집이나 소설을 손에 쥐고 있었는데, 어지간하면 몸 쓰는 일은 일절 하지 않는다는 주의였다.
풍류를 즐기고 문학을 사랑한다는 그는 낭만주의자 그 자체라고 떠들고 다녔지만, 말이 좋아 낭만이지 그냥 멀쩡하게 생긴 변태일 뿐이었다.
“블라이디! 던전의 흑진주! 그녀와 다시 마주하게 된다면, 그때는 그 탐스러운 흑발을 마음껏 쓰다듬어주고 싶었는데 말이야.”
“뭐야, 보통은 패배하면 감정이 상하기 마련 아닌가?”
“상해? 뭐가? 강인한 여성은 모든 남성들의 로망이야! 어허, 대장이라는 사람이 이렇게 여자를 몰라서야!”
“…내가 여자를 모르는 게 아니라 네가 이상한 거 아닐까?”
“이 세상에 안 이상한 사람도 있나? 뭐, 아무튼 간에 그런 철혈의 흑진주를 굴복시킨다는 건 뭐랄까, 극한의 오르가즘을 느낄 수 있는 대의의 정복과 같은 것 아닐까?!”
“대의의 정복 같은 소리 하고 자빠졌네. 아니, 그래서 그녀의 약점이 뭐야.”
“…약점! 후우, 약점이라!”
어쩐지 흥분한 것 같은 고르딘. 여성 헌터들은 어느 새 혐오스러운 생명체를 본 듯, 잔뜩 일그러진 얼굴이 되어버렸다.
“…더러워.”
“그녀의 약점은 목덜미였어! 비록 약점을 알아내고 그곳을 손으로 스윽 쓸어내렸을 때쯤엔 이미 천장을 바라보고 있었지만 말이야. 뭐, 그래도 후회는 없어!”
“미친놈아, 그런 약점 말고! 그녀와 전투를 해서 승리를 해야 하잖아. 허점이나 상성 간의 약점 같은 걸 생각해보라니까?”
고르딘은 고개를 갸웃거렸다.
“싸워? 도대체 왜?”
“던전 100층에 올라가야하니까.”
“그래서 남는 게 뭔데?”
“세계의 평화?”
고개를 가로젓는 고르딘.
“이런 멍청한 중생들아. 이 세상에서 평화를 찾아? 말이 되는 소리를 좀 해.”
“평화를 찾는 게 뭐가 나빠서?”
“나쁠 것 없지! 하지만 평화라는 건 말이야 이 땅에 생명체가 존재하는 한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야. 생각해봐. 인류, 아니 그 훨씬 전에 이 땅에 살던 생명체들에게서부터 평화라는 것이 얼마나 지속되었을지 말이야. 1년? 10년? 100년? 아니, 이 땅 위에 완벽한 평화라는 건 존재한 적이 없었어. 누군가가 살아가자면 누군가를 죽여야 하는 건 당연한 이치이니까.”
고르딘의 말처럼 어떤 생명체가 살아가기 위해서는 어떤 방식으로든 다른 생명을 취해야한다.
초식동물도 결국엔 숨이 붙어 있는 생명체를 뜯어먹어야하는 것이고 육식동물은 그런 초식동물을 먹이로 삼으며 살아간다.
“한마디로 이 세상은 투쟁의 연속이야. 플랑크톤은 그렇지 않지 않냐고? 천만의 말씀! 그들은 그들 나름대로의 투쟁을 통해서 살아가. 한낮 미생물 따위도 투쟁의 연속에서 살아가는데 인간이라는 것들이 평화를 논한다? 그게 말이야, 막걸리야?”
“…아무튼 간에 우리는 100층을 돌파해야할 의무가 있다니까? 완전한 평화까진 기대하기 힘들어도 마족군단이 이 땅을 침범하는 건 막아야 할 것 아니야.”
“그놈이나 이놈이나 저놈이나. 어차피 피차일반 아니야?”
“이 새끼는 말이 안 통하는군….”
고르딘이라는 생명체에게 애초에 정상적인 것을 기대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소리였다.
그의 두뇌회로는 일반적인 것과는 아예 거리가 있었기 때문이다.
가만히 뒤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에밀리가 슬그머니 다가와 고르딘의 귀에 뭐라고 속삭이기 시작했다.
“…….”
“…뭐?! 아니야!”
“……”
“아니라고! 진짜 아니라니까?!”
그리고 몇 초 후.
“…가자. 씨부랄! 직접 증명하면 되는 거 아니야?!”
“……?”
“뭐해! 앞장 안 서고!”
어쩐 일인지 고르딘이 잔뜩 흥분해버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