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3 최후의 보루를 부수다(1)
인도차이나반도를 관통하는 명실상부 동남아시아의 젖줄 메콩강이 얼어붙었다.
최근 국제관계의 급진적인 발전으로 메콩강 유역을 개발하는 움직임이 활발해졌는데, 댐 건설 및 수상교통의 발전으로 지역발전에 큰 원동력이 되어주고 있었다.
허나 인도차이나반도 전체가 얼어붙다보니 메콩강 역시 빙판으로 변해버렸고, 그 영향으로 주변 전체의 경제도 얼어붙고 말았다.
전술차량을 타고 미얀마 서부의 냉동원을 찾으러 가는 헬창스의 표정이 좋지 않았다.
“이파리가 죄다 노랗게 죽어버렸네요. 강은 얼어서 움직임조차 없고요.”
“이대로라면 인도차이나반도가 고사하고 말아요. 어떤 미친놈이 이런 짓을 벌였는데, 정말 쓰레기가 따로 없네요.”
욕지걸이가 절로 나오는 광경이었다.
사람들은 일자리를 잃고 다시 정글로 들어갔고, 그마저도 먹을 것이 없어서 누렇게 죽어버린 풀떼기로 끼니를 연명하기가 부지기수였다.
그나마 국제사회에서 원조가 들어오지 않았다면 길거리로 내몰린 사람들은 목숨조차 부지할 수 없었을 지도 모른다.
“한시라도 빨리 냉동원을 찾아서 뿌리를 뽑아버립시다.”
“그나저나 우리의 목적지는 여기서 얼마나 걸릴까요?”
“전방 35km 앞에 목적지가 있다고 나오네요.”
내비게이션을 보니 메콩강 유역에 냉동원이 버티고 있다고 나와 있었는데, 이상하게도 북쪽으로 올라갈수록 땅은 축축했고 강둑만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멀리서 보면 강을 따라서 길게 얼음이 얼어있었고 땅이나 초목은 멀쩡해서 이상한 대비를 이루고 있었던 것이다.
“대비가 분명하네요. 이런 경우도 있나?”
“흠, 글쎄요. 강만 얼리는 특이한 힘을 가진 뭔가가 있다면 말이 안 되는 건 아니겠죠.”
지금까지 헬창스가 본 것들은 일반적인 관점에서는 전혀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이었기에 지금의 이 황당한 대비현상도 나름 이해할 수 있었던 것이다.
35km를 지나는데 한 시간이 넘게 걸렸는데, 그동안 태하는 얼음 근처를 오가는 사람들과 동물들을 볼 수 있었다.
사람들은 얼음을 채취하여 바구니에 짊어지고 있었고 동물들은 누렇게 물든 초목을 뜯어먹으며 그럭저럭 버티고 있었다.
한마디로 인간과 동물들의 생태계에 변화가 온 것이었다.
“동남아시아에서는 원래 얼음가격이 상대적으로 비쌌을 것이고, 해동된 바닷가에서 잡은 생선을 얼려서 팔기 위해 얼음을 쓸 테죠. 그런 얼음을 채취해서 얼마간이라도 돈을 받고 파는 게 아닌가 싶은데요?”
“그렇게 해서 생계가 유지가 되나? 천연얼음은 여러모로 쓰기 좋지 않을 텐데요.”
“아예 돈을 못 버는 것보다는 낫지 않을까요?”
인도차이나반도의 경제여건은 점점 나아지고 있었고 예전의 황량했던 재계에는 서서히 꽃이 피는 중이었다.
아마 얼음 좀 캐서 판다고 해서 끼니를 때울 수 있지는 않을 것이다.
“그만큼 절박하다는 뜻이겠네요.”
“어서 이 얼음을 없애야 할 이유가 또 생겼네요.”
태하는 인파들이 몰려있는 얼음골을 따라서 빠르게 차를 몰았다.
솨아아아…!
어디서부터인가 차가운 바람이 불어와 차량의 장갑을 파고들기 시작했다.
“저번에 느꼈던 그 한기처럼 장갑을 파고드네요.”
“음! 하지만 조금 달라요. 뭐랄까, 피부 안쪽이 얼어붙는 것 같은 느낌이랄까?”
피가 차가워지는 느낌, 한마디로 사람의 속살 안쪽만 딱 꼬집어 얼어붙게 만드는 희한한 감각이 헬창스를 엄습해 온 것이었다.
잠시 후, 태하와 일행들은 보디슈트를 챙겨 입고 목적지의 땅을 밟았다.
이곳에 도착했을 때, 그들은 왜 지금과 같은 대비현상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 알 것 같았다.
마치 땅과 땅 사이에 얼음 페티를 끼워 넣은 햄버거처럼 이곳은 딱 강만 얼어있을 뿐, 땅과 초목은 멀쩡했던 것이다.
“초목이 누렇게 뜬 것은 단순히 냉풍이 불어서 그런 것만이 아닌 것 같아요. 아예 물 자체를 얼려버리는 힘을 가졌으니 열대우림에서 자라는 초목이 버틸 수 있을 리가 없죠.”
“그래서 동물들도 살아남을 수 있었던 거고요.”
“그런 셈이죠. 참, 이렇게 황당한 현상이 벌어질 수도 있는 것이로구나.”과학자들은 아직까지도 동남아시아 냉동현상이 왜 일어난 것인지 밝혀내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그 원리를 안다면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방어할 수 있겠지만, 지금은 그럴 여력 자체가 없었던 것이다.
“오늘 이후로 우리가 다시는 참사가 벌어지지 못하도록 만들자고요.”
“자, 그럼 갑시다!”
냉동원은 누가 보기에도 찾기 좋도록 강의 정중앙에 위치하고 있었다.
마치 은청색 벽돌로 집을 지은 듯 강을 지키는 형태로 울타리가 쳐져 있었고, 그 중앙에는 마름모꼴의 보석이 박혀 있었다.
“저 보석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는 것 같죠?”
“네, 그런 것 같아요.”
태하는 이블아이를 소환해서 조금 더 정확한 사실을 알아보기로 했다.
팔찌에서 툭 튀어나온 이블아이는 태하의 지시에 따라서 이 일대 근방 5km에 초음파를 뿌렸다.
-크허어억!
그러자, 태하의 눈으로 그 전경이 단번에 들어왔다.
그가 살펴본 이 일대의 전경은 상당히 특이했다.
“이 마름모꼴의 보석이 어디론가 마력을 전달하고 있네요.”
“마력을 전달한다?”
“뭐랄까, 마력과 마력이 서로 이어져 있다는 느낌이랄까요?”
“마치 송수신기처럼요?”
“네, 그래요! 딱 그런 느낌이네요.”
마력의 파동은 상당히 먼 곳까지 이어져 있었는데, 그 모습이 마치 송수신기가 전파를 주고받는 모습과 같았다.
한마디로 이 파동을 끊어내기만 한다면 지금의 이 말도 안 되는 냉동사태를 끝낼 수도 있다는 뜻이었다.
허나 보석의 바로 앞에는 물기를 증발시켜 딱딱하게 만들어버리는 무시무시한 마법이 걸려 있었다.
“결계가 심상치 않아요. 저걸 뚫고 들어가자면 보통의 방법으로는 어림도 없겠는데요?”
“우리가 배리어를 쓰고 들어가도 똑같을까요?”
“흠, 글쎄요. 배리어를 쓴다고 해도 사람이 어떻게 될지는 알 수가 없으니까요.”
사태를 가만히 지켜보고 있던 태하가 이블아이를 앞으로 스윽 내밀었다.
이 녀석이 있는 한, 어지간한 마법들은 캔슬레이션이 되기 때문이었다.
“우선 이블아이를 사용해보면 어때요?”
“좋은 생각이긴 한데, 이블아이가 당하면 어쩌죠? 다음 작전에 지장이 생길 텐데.”
“어차피 이제 곧 리젠 기간이라서 이블아이는 다시 살아나요. 걱정하실 필요 없습니다.”
“아하, 그렇다면야!”
만약 이블아이가 작전 도중에 사망해서 사라져 버린다면 계획에 차질이 생길 수도 있었다.
허나 리젠이라는 편리한 것이 있으니 만사오케이였다.
이블아이는 자신감 있게 결계 안으로 들어갔다.
끼기기긱!
두 마력이 충돌하면서 결계가 서서히 무너지기 시작했다.
-크허억!
“지금이 기회라네요. 저 보석을 깨버릴 차례에요!”
“그럼 내가 한 번 나서봐도 되는 겨?”
“아, 그럼유!”
임혁수는 저격총으로 보석의 정중앙을 노린 후, 잠시 심호흡을 했다. 그리고 한나와 태하는 그런 그의 탄환에 가속, 강화 스킬을 써서 힘을 실어주었다.
“한 방에 끝내자고!”
“오케이!”
집중하는 임혁수와 파편효과에 대비하는 서포터들, 그리고 혹시나 모를 몬스터의 침입을 방어하는 딜러들까지.
헬창스는 순식간에 대열을 갖추고 임혁수의 일격필살을 기다렸다.
“후우, 간다!”
타앙!
임혁수의 일격필살이 날아가 보석의 울퉁불퉁한 부분에 적중하였다.
그러자, 보석이 좌우로 크게 흔들리더니 유리에 금이 가는 듯한 소리가 들려왔다.
쩌저저적!
보석이 갈라지자, 꽁꽁 얼어붙어 있었던 메콩강이 다시 녹으며 주변이 환해지기 시작했다.
“성공인가?!”
“마력의 송수신 역시 더 이상 이뤄지지 않네요. 작전 대성공입니다!”
***
임혁수의 한 방으로 동남아시아는 길었던 동면에서 깨어날 수 있었다.
마력의 송수신이 끊어지자, 사각형으로 냉기를 가두고 있던 세력이 사라지면서 얼어붙었던 메콩강이 다시 흐르기 시작했던 것이다.
솨아아아아!
수륙양용전술차량을 타고 메콩강 유역을 따라 흐르는 태하와 동료들.
그들은 이제야 좀 안심이 된다는 듯, 편안한 표정으로 돌아왔다.
“일단 급한 불은 끈 셈이네요.”
“아주 밤잠을 설친 걸 생각하면 이가 갈린다 이거여! 그나저나 그 호랑말코 같은 놈들을 어떻게 조져야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나는겨?”
“던전 100층을 돌파하면 아마 우리가 굳이 소문을 안 내도 잘 조졌다고 소문이 날 겁니다.”
“허긴! 그람 인쟈 100층 돌파에만 집중하면 되는 건가?”
“저번에 받은 드래곤의 특성연구자료가 있으니까 골드 드래곤을 무찌르는 건 그리 어렵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게다가 헬창 드래곤즈가 워낙 급격한 성장을 거듭하고 있던 터라, 사실 같은 웜급 드래곤은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고요.”
“아참, 그랬지! 그 용가리들이 철을 들어주는 바람에 일이 쉽게 풀리겄어!”
“하지만 그래도 여전히 에이션츠 급 드래곤을 상대하는 일이라든지 레전드 급 드래곤의 존재는 무시할 수 없는 일이네요.”
일단 웜급 드래곤은 얼마든지 상대할 수 있다. 문제는 성룡을 넘어 고룡에 접어든 드래곤들을 상대하는 일이었다.
허나 태하는 이미 반발의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까짓 거, 근육으로 짓누르면 어떻게든 되겠죠.”
“하기사 우리가 언제는 뒷일 생각하고 레이드 뛰었담? 안 그려?”
다음 레이드 일정을 조율하며 이틀 남짓 배를 띄웠을 무렵이었다.
일행들의 앞에 인파가 운집해 있었다.
“와아아아아!”
엄청난 함성과 환대.
태하와 동료들은 태어나서 지금까지 이렇게까지 성대한 대접을 받아본 경험이 없었다.
이제야 비로소 세상을 구했다는 실감이 났다.
“헬창스 만세!”
“헬창스, 헬창스!”
헬창이라는 이름이 이렇게 연호되는 것을 마이트가 들으면 과연 얼마나 좋아할지. 태하는 벌써부터 얼굴에 미소가 지어졌다.
“정말 한 바탕 난리가 지나가긴 했나보네요. 이런 환대를 다 받고 말이죠.”
“하지만 앞으로 갈 길이 멀어요. 이건 시작에 불과한 것이니까.”
태하와 동료들은 라오스의 수도 비엔티안에 도달했다.
이곳에는 동남아시아 헌터협회의 수뇌부와 각 국가의 수반들이 모두 모여 태하 일행을 기다리고 있었다.
그들은 헬창스가 도착하자, 90도로 인사를 올렸다.
“정말 고맙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우리가 살았습니다!”
“별 말씀을요. 우리는 그저 할 일을 했을 뿐입니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이 고통 받는 걸 지켜보는 게 너무 힘들었는데, 이제는 그럴 일이 없어졌다고 생각하니 눈물이 앞을 가립니다.”
이들은 진심으로 태하 일행에게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허나 그들은 말로만 감사의 인사를 한 것은 아니었다.
“여러분들께서 원하시는 것이 있다면 무엇이든 들어드리겠습니다. 말씀만 하십시오.”
“그렇다면 피에르뇽 가문과 관련된 사업가, 정치인들이 상당히 많다고 들었는데 그들을 좀 솎아낼 수 있도록 협조해주실 수 있겠습니까?”
“그야 물론입니다. 안 그래도 태국 마약밀매조직 중 하나를 검거해서 피에르뇽 가문과 암흑가가 손을 잡았다는 사실을 알아냈습니다. 그와 관련된 모든 사람들을 족치는 중이니 조금만 기다려주시지요.”
“…암흑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