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62화 (162/197)
  • 162 또 다른 어나더 월드(2)

    꽤나 심각한 표정으로 상자를 바라보고 있는 헬창스.

    “…그러니까, 이 안에 또 다른 세계가 들어있단 말이죠?”

    “네! 그렇다니까요?”

    태하는 자신과 메이지가 겪은 것을 있는 그대로 풀어놓았지만 동료들은 도무지 믿어지지가 않는다는 눈치였다.

    그중에서 한 사람, 바로 빅토리아가 또 다른 가설을 내어놓았다.

    “아니면 이 상자 안에 세상이 들어 있는 것이 아니고 상자가 차원과 차원을 이어주는 통로라면 어때요?”

    “허어, 그러게요.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는 거였네요.”

    “우리는 지금까지 바벨탑 안에 또 다른 세상이 존재한다고 생각했지만, 사실 샌드타워의 존재로 미뤄봤을 때 그건 절대 아니었던 겁니다. 한마디로 우리는 바벨탑에게 감쪽같이 속은 거라고요.”

    “새로운 발견이네요. 바벨탑이 사실은 다른 차원으로 이어지는 통로였다니 말이죠. 만약 정말 그렇다면 우리는 한 가지 차원이 아니라 100개의 서로 다른 차원과 통해 있었다는 말이 되는 건가요?”

    “그런 셈이죠.”

    “100개의 서로 다른 차원이라! 그렇다면 마족이 바벨탑을 만들었을 당시, 이곳저곳에 화이트홀을 뚫어서 통하게 만들어놓았다는 뜻이 되는 걸까요?”

    “그럴 수도 있고, 아니면 아예 독자적인 공간을 구축해놓고 그 안에 훈련용 몬스터를 풀어놓았을 수도 있는 거고요.”

    몬스터들 사이에서도 동족상잔이 그렇게까지 흔한 일은 아니지만 와이번이 새끼 드래곤을 잡아먹었던 것을 보면 이곳에서도 어느 정도 먹이사슬은 존재한다는 것이 밝혀 진 셈이었다.

    공격성과 파괴의 욕구가 강한 몬스터가 먹이사슬을 침범하지 않고 각자의 층을 지킬 수 있었던 것은 어쩌면 차원과 차원을 나눠놓았기 때문인지도 몰랐다.

    그렇다면 여기서 한 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그럼 몰먼족은 뭔데요?”

    “하아, 맞다! 그들은 또 뭐지?”

    도대체 몰먼족은 어떤 방식으로 아공간에 구멍을 뚫어서 마음대로 돌아다닐 수 있게 된 것일까?

    그에 대해서는 이주현이 새로운 가설을 내놓았다.

    “몰먼족은 애초에 몬스터가 아니지 않았을까요?”

    “몬스터가 아니었다?”

    “몰먼은 스스로 말도 할 수 있고 엄청나게 발달한 두뇌로 연구와 개발까지 할 수 있는 종족들입니다. 이렇게 똑똑한 종목이 몬스터라고는 생각되지 않아요.”

    이주현은 몬스터와 사람의 가장 큰 차이를 바로 두뇌에 있다고 생각했다.

    그는 총총을 자리에 앉혀놓고 설명을 이어나갔다.

    “잘 보세요. 몬스터의 가장 큰 특징은 심장 대신 코어로 움직인다는 겁니다. 드래곤을 몬스터가 아닌 하나의 종족으로 구분할 수 있는 것도 바로 여기에 있는 거예요.”

    “아하! 코어가 아닌 드래곤 하트로 움직이기 때문인가요?”

    “바로 그겁니다! 인간과 가장 다른 점이 바로 코어라면, 몰먼족은 몬스터가 아닌 셈이죠. 드래곤도 마찬가지이고요.”

    “그러니까, 말하자면 코어를 가진 몬스터는 차원을 넘나들 수 없지만 드래곤이나 몰먼은 가능했다는 말이잖아요?”

    “그런 셈이죠. 우리는 몰랐었지만, 몰먼족은 꽤 오래 전부터 층과 층을 넘나들었다고 했습니다. 그렇다는 건 우리가 모르는 뭔가 그들만의 방식이 있었다는 뜻이겠죠?”

    몬스터와 사람의 차이를 설명하는 이론이 나왔고, 그에 헬창스는 어느 정도 이해하는 표정이 되었다.

    또한, 빅토리아의 다중이계이론은 지금으로선 가장 신빙성 있는 가설이라고 할 수 있었다.

    태하는 일단 이것을 가지고 돌아가서 본격적인 연구에 착수하기로 했다.

    “우선은 이 상자를 가지고 한국으로 돌아갑시다. 그래서 그곳에서 바벨탑의 미스터리를 완벽하게 풀어보자고요.”

    “좋죠!”

    ***

    임무를 마치고 돌아온 태하와 헬창스는 곧바로 다음 작전지역에 대한 브리핑을 받았다.

    청룡방이 지목한 곳은 미얀마와 캄보디아, 그리고 라오스, 스리랑카 등이었다.

    “지금으로선 미얀마가 가장 강력한 냉동원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고되고 있습니다. 허나 지금 남은 곳 중에서 가장 강력하다는 것이지 동남아에 빙하기를 가지고 올 정도는 아니라고 하는군요.”

    “듣던 중 반가운 소리로군요. 이제 이놈의 빙하기는 거의 다 끝나가는 거잖아요?”“그렇긴 해요. 정말 축하드립니다.”

    빙하기를 몰고 올 정도가 아니라면 하루 안에 네 개를 모두 회수하는 것도 가능할 것 같기는 했다.

    허나 유시연은 급할수록 돌아가라고 조언했다.

    “최대한 신중하게 움직입시다. 괜히 섣부르게 움직였다간 우리가 큰 코 다칠 수가 있다고요.”

    “그럼 한 번에 하나씩만 제거하자는 겁니까?”

    “그게 가장 빠른 방법이라고 봐요. 게다가 여러분들이 냉동원을 깨부수면서 10개가 넘는 냉동원이 사라지고 말았습니다. 아무래도 거미줄식으로 복잡하게 꼬인 일종의 네트워크를 형성하고 있었던 거죠. 제 생각에는 네 개를 제거하기 전에 작전이 끝날 수도 있겠어요.”

    네 개를 전부 다 제거하는 것보다는 당연히 하나를 제거해서 사태를 끝내는 것이 베스트였다.

    허나 헬창스는 행운과는 거리가 너무 멀었기 때문에 과연 그게 의문이긴 했다.

    “이번에는 뽑기운이 좋기를 바라야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이번 작전에서는 초장에 운이 너무 좋아서 강력한 연쇄반응으로 빙하기가 완전 종식되면 좋겠네요.”

    다른 날은 몰라도 부디 이번만큼은 제발 운이 좋기를 빌어보는 헬창스였다.

    브리핑이 끝난 후, 태하는 유시연에게 봉인된 상자를 건네주었다.

    “이것 좀 연구해주시겠어요?”

    “이게 뭔데요?”“상자 안에 아공간이 들어 있어요. 그 안으로 들어가면 어나더 월드가 펼쳐지죠. 마치 던천처럼.”

    “…이 상자가 또 하나의 던전이라는 소리인가요?”

    “그럴 수도 있다는 겁니다. 아직 확실한 것은 아무것도 없고요.”

    “그런 일이 있을 수 있다니?!”

    어지간해서는 흥분하는 법이 없었던 유시연은 크게 반색하며 상자를 받았다.

    그녀는 상자를 당장 열어보고 싶었으나, 그렇게 했다간 또 어떤 일이 벌어질지 몰랐기 때문에 초저온 상태에서 연구를 진행하기로 했다.

    “당장이라도 연구를 파바박 마쳐버리고 싶네요! 하지만 여러분들의 희생과 고난을 생각하면 절대 그럴 수가 없지요. 이번에 유인우주선을 발사한다던데, 그때 같이 날려 보내면 어때요?”

    “만약 상자의 힘을 제어할 수 없게 된다면요?”

    “흠…. 그렇다면 초저온 상태의 밀실에서 연구를 진행하면 될까요?”

    “아하, 그것도 괜찮겠네요!”

    “좋아요. 앞으로 빠른 시일 내에 성과를 내볼게요. 다들 기대하라고요!”

    “이렇게까지 기뻐하실 줄은 몰랐는데. 아무튼 좋아해주시니 우리도 좋네요.”

    “흥분하지 않을 수 없는 소식이니까요. 아참, 이번에는 제 쪽에서 좋은 소식을 좀 준비해봤어요.”

    “좋은 소식이요?”

    “미국 쪽에서 파이어볼 관련 정치인들 12명을 체포했다는 소식이 있어요.”

    “12명이요…? 아직 그런 소리는 들어보지 못했는데.”

    “당연하죠. CIA쪽에서 극비리에 체포해서 구금 중이니까요.”

    “아하!”

    “아마 이번 작전으로 인해 전 세계 모든 국가들과 관련된 연결고리를 찾을 수 있게 되겠죠. 피에리뇽 가문과의 접점도 찾아낼 수 있을 것이고요.”

    관건은 피에리뇽 가문이 과연 어떤 방식으로 마수를 뻗치고 있느냐, 그리고 그 선은 과연 어디까지 뻗어져 있는가, 바로 그것들이었다.

    태하는 미국의 유력 정치인들과 그 가문들이 상원을 움직여서 파이어볼에게 지금까지 수많은 특혜를 부여했을 것이라고 직감했다.

    “덩어리가 커지겠네요.”

    “물론이죠. 그리고 앞으로는 타이탄 컴퍼니의 행보가 중요해요. 돈으로 사람을 억누르는 놈들이잖아요? 앞으로 어떤 나비효과가 일어날지 아무도 모르니까요.”

    일전에 유시연은 태하에게 타이탄 컴퍼니가 시장의 판도를 바꿔줘야 한다고 역설했던 적이 있었다.

    태하도 그에 대해서 깊이 공감하는 바였다.

    “그래요, 타이탄 컴퍼니가 움직일 차례가 되긴 했죠.”

    “이제부터는 조금 더 과감하게 움직여 주실 건가요?”

    “네, 물론입니다.”

    ***

    작전시작 삼일 전.

    태하는 조선엽과 만나 제철 회를 즐겼다.

    술 한 잔이 간절했으나 아직까지 태하는 입에 술을 대지 않았다.

    쌈장이나 초장 없이 간장에 고추냉이만 살짝 얹어서 쌈채소와 회만 씹어 먹는 태하를 보며 조선엽은 그야말로 대단하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엄청난 절제력이네요. 이 훌륭한 안주를 앞에 두고도 술을 입에 대지 않는다니.”

    “목표한 바만 이루고 난다면 저도 이제부터는 술고래로 좀 살아보고 싶습니다. 하지만 그때까지는 조금만 절제하고 살아가려는 거죠.”

    인간의 3대 욕구인 식욕, 수면욕, 성욕은 성인군자들도 조절하기 힘들다고들 한다.

    태하 역시 인간이기 때문에 3대 욕구를 조절하기가 결코 쉽지는 않으나, 초인적인 인내심으로 지금까지 버텨오고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몸매관리를 할 필요가 없어진다면 적당히 관리하면서 살 생각입니다. 그때가 된다면 제대로 한 잔 하자고요.”

    “이야, 헬창헌터와의 술자리라니. 정말 기대가 됩니다.”

    술을 마시지는 않기에 다이어트 사이다를 잔에 채우고 조선엽의 잔에는 술을 가득 따라주었다.

    태하는 술잔을 채운 후, 타이탄 컴퍼니의 일에 대해 논의했다.

    “들으셨는지 모르겠습니다만, 피에리뇽 가문이 이번 사태의 흑막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래서 코어산업에서 한 발 물러나 마정석에 힘을 실어주었으면 하는데요.”

    “마정석에 힘을 실어준다…?”

    조선엽은 술잔을 단번에 꺾어버렸다.

    마정석은 오로지 태하 한 사람이 유통시키고 있었기에 그가 물량을 어떻게 조절하느냐에 따라서 그 가치는 달라지게 되어 있었다.

    허나 문제는 그러면 그럴수록 던전에 대한 침입자 문제가 훨씬 더 크게 불거질 것이라는 점이었다.

    “이미 한 번 산지에 침입자가 생겼었다고 말씀하셨던 것으로 기억합니다. 그렇다면 마정석의 산지를 아는 사람이 한 사람은 아니라는 소리인데, 가격상승을 감당하실 수 있겠습니까?”

    “그때는 마정석이 아니라 은청석 때문에 그리 된 것이었고요. 사실, 마정석의 산지를 아는 사람은 저 한 사람분입니다.”

    “…오호, 그래요?”

    “그리고 이제는 산지가 공격당해도 충분히 방어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그렇게 만들어놓고 있거든요.”

    “흐음, 그렇다면야. 가격을 크게 올린다거나 수요를 늘려도 문제는 없겠군요.”

    수요와 공급의 밸런스 문제는 사실 시장형성이 이뤄진 이후에 생각해도 늦지 않는 이슈다.

    헌데 시장형성은 태하가 마음만 먹으면 가능해지니, 이제부터는 그 조율에 들어가겠다는 것이었다.

    “펀드를 운용하면서 시장형성에 심혈을 기울여 기반을 다져놓겠습니다. 회장님께서는 틈나는 대로 마정석을 채굴해서 시장에 내놓으시면 됩니다. 그럼 우리 회사가 마정석을 단독으로 유통하게 될 것이고, 그것은 다시 말해서 독점적 시장형성을 이룰 수 있게 된다는 뜻이죠.”

    “독점이라. 이에 대해 제재는 받지 않을까요?”

    “받을 수도 있습니다. 독과점방지법은 미국 굴지의 제조사들에게도 피해갈 수 없는 것이거든요. 하지만 만약 공급처가 딱 하나뿐이라면 얘기는 달라집니다. 제재는 받아도 결국 회사는 굴러가게 되는 거죠.”

    “흠, 그럼 뭐 걱정할 필요가 전혀 없다는 뜻이겠네요?”

    “그렇습니다. 게다가 신문을 보니 사방에서 돈 받아 쳐 먹고 다니는 정치인들이 다수 사라졌다던데, 그럼 뭐 우리로선 장사하기 더 쉬워진 셈이죠.”

    부패한 정치인들은 어떻게 해서든 자신의 이득을 위해 정계를 움직이려 한다.

    이들은 돈이 있는 곳에 적을 두고 움직이기에, 이번 파이어볼 사태에서 살아남지 못하고 함께 쓸려나간 것이었다.

    “이제는 나만 잘하면 되겠네요.”

    “반드시 이 세계에 평화를 가져다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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