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61화 (161/197)

161 또 다른 어나더 월드(1)

피에리뇽 가문에 대해 조사하는 과정에서 놀라운 사실이 밝혀졌다.

금성탑 자체를 피에리뇽 가문에서 세웠다는 것이었다.

“믿을 만한 소식통에 의해 금성탑과 피에리뇽 가문이 서로 자금을 주고받는다는 사실을 알아냈어요. 그래서 조사를 해봤더니, 금성탑이 유명해지기 전부터 이미 피에리뇽이 돈을 보내고 있었다는 사실이 밝혀졌어요.”

“…이건 좀 충격적인데.”

한국으로 돌아오자마자 유시연에게 금성탑에 대한 소식을 들은 태하는 피에리뇽이 도대체 얼마나 많은 악행을 벌이고 다녔는지 알게 되었다.

그중에 가장 충격적인 것은 단연 금성탑을 고결한 집단으로 위장시켜 헌터협회와 엮은 것이었다.

“듣자하니 교황청에도 로비를 했다고 하더라고요.”

“…교황청에 로비가 가능한가요?”

“물론이죠. 교황청에 반듯한 사람만 있다는 보장이 있나요? 그중에는 타락한 사람도 상당히 많죠. 바티칸 시국이 얼마나 오래된 곳인지 잘 알고 있잖아요?”

바티칸과 가톨릭의 문제점에 대해서는 상당히 오래전부터 성토하는 글과 목소리가 들려오고 있었다.

허나 이것을 바로잡을 수 있을 정도로 개혁의지가 깊은 교황이 없었다는 점, 그리고 교황이 개혁하고자 해도 조직 자체를 통째로 개혁하지 않는 한 비리를 뿌리 뽑을 수 없다는 것이 문제였다.

“지금은 교황청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들은 차치하고서라도 피에리뇽과 관련된 사람들을 잡아서 족쳐야하는 거죠.”

“프랑스 최고의 재벌가문, 귀족집안인 피에리뇽과 연이 닿은 집단이 어디 한 두 개이겠어요?”

“그렇지만 그중에서 가장 강성한 세력들을 추린다면 답이 나오겠죠. 우리는 그들부터 차근차근 족쳐서 금성탑과 파이어볼의 자금줄을 묶을 생각이에요.”

“흠, 그렇다면 각 국가들의 입장은 어떠한가요?”

“얼마 전에 청와대에 다녀오셨었죠?”

“네, 그랬었지요. 그래서 그들에게 파이어볼 조치를 받아냈습니다.”

“그 조치로 인해 일단 대한민국은 서서히 정리가 되는 분위기예요. 단순히 재벌이 부귀영화를 틀어쥐고 갑질을 한다는 등의 얘기가 아니잖아요. 목숨이 달린 문제이고 국토가 황폐화 될 수 있는 문제잖아요?”

“다들 이번 사태를 보고 느끼는 바가 큰 모양이로군요.”

동남아시아가 꽁꽁 얼어붙고, 그 여파로 전 세계가 이상기후에 시달리고 있다는 것만 해도 충격적인 일이었다. 헌데 그 배후세력을 비호하는 놈들이 있다는 것은 정말이지 참아줄 수 없었다.

결국 국민들이 들고 일어났다는 소리였다.

“재벌총수들도 생각을 많이 바꿔먹었어요. 우리 제네시스에게로 자기들도 이번 사태에 힘을 보태고 싶다는 러브콜을 보내왔어요. 원하는 것이 뭐냐고 물어봤더니, 그 사람들 말이 어서 빨리 무역망이 확충되었으면 좋겠다는 것이었죠.”

“생존을 위해서 기꺼이 힘을 보테겠다는 것이네요?”

“네, 그런 셈이죠.”

“철들었네요.”

“이제 일치단결이 되었으니 제대로 몰이사냥만 하면 되는 건데….”

“문제는 아직 100층 돌파가 제대로 끝나지 않았다는 점이겠죠.”

“맞아요. 솔직히 그게 가장 큰 부담이라고 할 수 있죠.”

헬창스가 100층 돌파를 이뤄내면 나머지 바벨탑들은 상당히 빠르게 정복할 수 있게 된다.

태하는 그 어디에서도 던전에 사는 몬스터들을 소환할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말이다.

다만, 100층으로 올라가는 동안에 과연 금성탑과 파이어볼이 가만히 있을 것인가. 그것이 가장 큰 문제였다.

“후방에서 적의 공격을 받게 된다면 100층 진입을 앞두고 헬창스가 전멸하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어요. 잘못하면 100층 돌파를 남에게 빼앗길 수도 있고요.”

“우리가 단순히 실패하는 것이 문제가 아니로군요?”

“솔직히 그것보다도 100층 진입을 남에게 빼앗기면 모든 것이 다 허사라는 것이 문제겠지요?”

“하긴. 그래서 애초에 대규모 공격대가 조직되었던 것이기도 하죠.”

“그래서 말인데, 제 1 바벨탑의 입장을 당분간 제한하는 것은 어떨까 싶은데요.”

“바벨탑의 입장을 제한해요? 그럼 그곳에서 생계를 유지하던 사람들은 어떻게 하고요?”

“이제부턴 그 대체제를 공급하는 겁니다. 당신이 가장 강력한 사업아이템으로 가지고 있던 그 마정석을 바탕으로 말이죠.”

“오호…?”

“마정석을 시장에 뿌려서 코어의 활용도를 크게 낮추는 겁니다. 물론, 마정석이 보급되어도 코어가 가진 절대적인 시장지배력이 사라지지는 않겠죠. 코어발전이 상용화 되었어도 얼마간 석유가 여전히 이 세상을 지배했던 것처럼 말이에요.”

인류가 석유라는 자원을 활용하기 시작했던 그때부터 사업가와 국가들은 끊임없이 석유에 대해 연구해왔다. 그리고 석유에 맞춰 산업기반을 개조하기 시작했고, 결국엔 모든 것이 석유에 의해 좌지우지 되는 세상이 도래하고 말았다.

허나 코어라는 획기적인 에너지원이 나오고 나서는 이제 더 이상 석유는 제왕으로 군림하지 못하게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석유는 아직도 이 사회에서 없어선 안될 존재였다.

아직 쉽게 대체제를 찾지 못하는 것들이 무수히 많았기 때문이었다.

아마 유시연이 생각하는 코어시장의 대체제 역시 그런 것이 아닐까 싶었다.

“단순히 코어가 없다고 세상이 망하지는 않아요. 조금은 혼란이 찾아올 수도 있겠죠. 하지만 마정석의 수요를 조금 더 앞당긴다면 세상의 패러다임은 완전히 바뀌게 될 겁니다. 오히려 천천히 일을 진행하는 것보다도 말이죠.”

“흠.”

“이제는 때가 되었다는 뜻이에요.”

태하는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

동남아시아 지역에 드리워졌던 암운은 생각보다 빠르게 사라졌다.

베트남 지역을 중심으로 제트기류를 생성했던 장막이 사라지면서 나머지 빙하기도 서서히 종식되는 모습을 보였던 것이다.

허나 여전히 그 뿌리를 뽑는 작업은 멈출 수가 없었다.

다만 다음 작업들은 예정보다 훨씬 더 빠르게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 약간 다행이라면 다행일 것이었다.

솨아아아아…!

작전지역까지 배를 타고 가는 헬창스.

태하와 동료들은 감회가 새롭다는 듯, 웃으며 항해를 즐겼다.

“방한복 안 입고 돌아다니는 게 도대체 얼마만인지 모르겠네요.”

“앞으로는 동남아로 반팔만 입고 여행하게 될 테니, 다시 한 번 여름을 만끽하도록 해보자고요.”

여름이 덥다고 싫어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여름의 낭만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들은 그 계절을 무척이나 사랑한다.

태하도 역시 봄, 여름을 사랑하는 사람 중 한 명이다.

그만큼 동남아시아가 빨리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았으면 하고 바랐던 것이었다.

배를 타고 얼마나 달렸을까.

저 멀리 빙산의 일각이 보이기 시작한다.

“작은 얼음덩어리가 있네요.”

“그래요. 일각에 불과한 덩어리죠.”

위성사진으로 봤을 때에 현재의 작전지역은 수심 30미터까지 뻗어있는 넓은 빙해지대가 생성되어 있었다.

예상되는 수온은 상당히 낮은 편이라서 물에 들어갈 때에는 반드시 방한복을 착용해야 할 것이었다.

“그럼 시작해봅시다.”

배에 잠수함을 싣고 온 태하와 동료들은 방한복을 입고 잠수함으로 들어가 작전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다.

작전시간은 해가 가장 높이 뜨는 정오시간이었다.

정오가 되면 햇볕이 내리쬐면서 냉기를 뿜어내던 세력이 주춤하게 되는데, 그때를 이용해서 잠수함을 띄워 냉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알아내려는 것이었다.

태하는 잠수함에 이블아이를 소환했다.

-크허억!

“이블아이, 이번에는 이곳에 있는 얼음 안을 잘 살펴줘.”

-크허어억!

충성스러운 눈동자는 태하의 명령에 따라 이 근방 5km를 살피기 시작했다.

잠시 후, 태하는 이블아이의 검색결과를 받아볼 수 있었다.

“이 근처에 강력한 냉기를 뿜어내는 물건이 있네요.”

“물건?”

“작은 상자? 네모난 상자 같은 것에서 냉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는데요?”

“상자라니. 그게 뭔데 이 바다를 꽁꽁 얼릴 정도가 되는 것일까요?”

당황스러운 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지만, 헬창스는 오늘도 여전히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상당히 오래되어 보이는 상자의 뚜껑은 약간 열려 있는 정도였는데, 그곳에서 강력한 냉기가 흘러나오고 있었던 것이다.

“살다보니 별 일이 다 있네. 이번에는 상자에서?”

“아니, 그보다도 이놈들은 도대체 이런 물건을 다 어디에서 구해 오는 거지?”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피에리뇽 가문에서는 유능한 사람, 기발한 책, 이상한 물건, 위험한 것들을 모은다고요. 그래서 초자연적인 현상을 따로 연구하는 기관을 설립했다고 하더군요.”

“위험한 것들…. 그러니까 지금 우리가 보고 있는 게 피에리뇽 가문의 수집품 중에 하나라는 거죠?”

“그렇지 않을까요?”

피에리뇽 가문의 저력은 비단 돈에서만 나오는 게 아니었다.

그들은 언제도 가문의 미래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생각되는 것들이라면 물불을 가리지 않고 모아왔던 것이다.

“그나저나 저걸 어떻게 해야 할까요? 상자를 그냥 꺼냈다간 사달이라도 날 것 같은 분위기인데.”

“흠, 일단 봉인부터 해보는 게 낫지 않을까요?”

“봉인이라. 상자를 봉인시킬 만한 게 뭐 있나?”

가만히 생각을 해보는 태하. 그러다가 불현 듯 한 가지 방법이 머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메이지를 소환했다.

-크헬헬!

“메이지, 에저드 호른의 능력을 사용할 수 있지?”

-크헬!

“그럼 에저드 호른의 아공간 속으로 저걸 집어넣어버리자고.”

과거 태하가 에저드 호른을 무찔렀을 때에 그는 끝도 없는 아공간 속을 해매고 다녔었다.

만약 홍이가 그를 따라서 아공간 속으로 들어오지 않았더라면, 지금쯤 그는 차원의 미아가 되어 영원히 고통받고 있을 것이 분명했다.

그 정도의 힘을 가진 아공간이라면 지금 저 상자를 충분히 가둬둘 수 있을 것 같다는 확신이 들었다.

“우리가 가서 상자를 봉인해서 돌아오자.”

-크헬헬!

스켈레톤은 유기체로 되어 있는 몬스터이기 때문에 기본적으로 추위나 더위를 느끼지 못한다. 게다가 어느 정도 마이너스 에너지가 흐르는 코어를 가진 스켈레톤은 극지에서도 버틸 수 있는 특성을 가지고 있었다.

태하는 보디슈트를 입고 메이지를 한 손으로 끌며 바다로 나아갔다.

솨아아아….

해류가 흐르는 소리가 잔잔하게 들린다.

“물이 아직 제대로 얼지 않았나보네.”

역시 빙탑이 있고 없고의 차이는 하늘과 땅 차이인 모양이었다.

태하는 물의 흐름을 따라서 의문의 상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러자, 상자가 조금 꿀렁거리는 느낌이 든다.

“움직인…건가?”

-크헬!

메이지는 마력의 흐름을 읽을 수 있다.

녀석은 태하에게 새로운 사실에 대해서 알려주었다.

-크헬, 크헬헬헬!

“…상자 안에 뭔가 들어 있는 것 같다고? 그리고 그걸 상자가 막아주고 있다?!”

-크헬!

“호오, 그래? 이를 테면 마정석 같은 건가?”

저 안에 도대체 뭐가 들어있는 것인지는 몰라도 상자가 냉기가 흘러나오는 것을 어느 정도 막아주고 있다는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태하는 일단 상자를 꺼내기 전에 뚜껑부터 덮어놓고 시작하기로 마음먹었다.

초음파로 진단했을 때, 상자가 있는 곳은 마치 동굴처럼 깊게 파여 있어서 사람이 충분히 헤엄쳐서 들어갈 수 있을 만한 조건이었다.

그는 잔잔한 물살을 가르며 헤엄쳤다.

“상자의 뚜껑이 열린 반대편으로는 물이 얼지 않아서 다행이야. 잘못했으면 저번처럼 하루 종일 얼음을 부수고 있었어야 할 것 아니야?”

태하는 메이지를 한 손에 꼭 쥐곤 물살을 가르며 앞으로 나아갔다.

그러다가 문득 어느 지점에 다다르자, 그의 앞을 가로막고 있던 물살이 사라지고 없었다.

스아앗!

“…허억!”

마치 마력으로 커튼을 친 느낌이었다.

태하는 마력의 장막을 걷어내고 그 안으로 들어갔을 때, 지금까지는 상상조차 하지 못했던 광경과 마주하고 말았다.

솨아아아…!

따뜻한 바람이 불어오는 광활한 초원, 그 위에 선 태하는 어리둥절해서 그만 입을 벌리고 있을 수밖에는 없었다.

밖에서는 분명 얼음동굴처럼 보였는데 안으로 들어서니 아예 전혀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던 것이다.

“…거의 끝을 모른다고 표현해야할까? 지평선 너머까지 산등성이가 굽이치는 것을 보니 상당히 넓은 곳임이 분명해. 젠장, 이런 공간을 도대체 어떻게 만든 거지?”

태하는 이런 풍광을 어디선가 많이 본 것 같았다.

그는 초원으로 발들이며 한 단어를 내뱉었다.

“바벨탑, 그래! 어나더 월드를 닮았어! 이거, 바벨탑이랑 똑같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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