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0 하노이의 아이스 타워(2)
고래의 다중인격 이론을 들은 태하는 저 거대한 몬스터의 심장을 찾아내어 그것을 흡수시킨 후, 껍데기는 다시 회수해서 연구하기로 했다.
“초음파로 알아본 결과, 이놈은 날개가 없는 드래곤의 형태를 가지고 있더라고요. 아마 드래곤의 유전자를 가지고 실험을 했다가 아종이 태어났고, 그 안에 영혼을 들입다 밀어넣었겠죠.”
“드래곤의 아종이라니. 왜 그런 짓을 했을까요?”
“아무래도 몬스터 중에서는 드래곤의 영력이 가장 강력하다고 생각했을 테니까요. 하지만 드래곤들도 결국에는 인격을 가진 생명체에 불과해요. 그들이라고 해서 아직 자아가 있는 영혼 수 천 위를 마구 집어넣는 실험에서 살아남을 수 있을 리가 없죠.”
드래곤 4인방은 그 얘기를 듣곤 아주 치를 떨었다.
동족들을 살해하는 것만으로도 소름이 끼치는데 유전자실험에 아종의 복제까지 이뤄지다니,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형님, 정말 지독한 놈들입니다!”
“그래. 지독하지. 그러니 우리가 놈들을 해치워야 하는 거야.”
“그 전에 일단 저 친구부터 극락왕생을 시켜줘야 할 것 같은데요.”
“드래곤이 극락왕생을 찾아?”
“불교의 가르침을 저희들도 받았거든요. 그래서 이론 정도는 알아요.”
“허참, 신기한 드래곤들이네. 아무튼 간에 우리가 저 깊숙한 곳으로 들어가서 녀석의 심장을 떼어내야 해. 그러자면 상당히 힘든 여정을 거처야하겠지. 잠수시간도 길어 질 것이고.”
아르네시아와 에밀리는 자신들이 이번 작전에 지원하겠다면서 손을 들었다.
물과 얼음의 두 드래곤이 손을 잡는다면 확실히 작전이 수월해지기는 할 것이었다.
“오케이, 그럼 그렇게 하자. 총총은 몰먼호를 몰고 심해로 들어가줘.”
“알겠다욧!”
몰먼호가 심해로 들어가 몬스터의 심장부근으로 이동하면 태하가 와이어를 뻗어서 심장을 회수한다는 것이 목표였다.
다만, 문제가 있다면 심장을 회수할 때에 생길 엄청난 에너지 반응일 것이었다.
“그나저나 내가 저 거대한 심장을 먹어치울 수 있을까?”
“드래곤하트를 이용하면 어때요?”
“드래곤하트? 용의 심장 말이야?”
에밀리는 자신의 왼쪽 가슴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쪽으로 에너지를 나눠서 받는 거예요. 그러고도 감당이 안 된다면 몰먼호의 코어엔진으로 받고요. 만약 그래도 안 된다면….”
“그때는 우리 탑에 있는 모든 친구들을 동원해야겠지.”
“네, 그렇게 해서 성공할 수만 있다면!”
“그래. 어떻게 해서든 성공할 수 있다면 해봐야겠지. 그래, 네 말이 맞아.”
“오라버니, 그럼 우리 드래곤들 전부를 작전에 투입시켜주세요!”
“좋았어! 그럼 그렇게 하자고.”
태하도 겪어봤지만, 남의 에너지를 흡수한다는 건 생각보다 위험한 일이다.
잘못해서 자신이 가진 그릇보다 큰 에너지를 흡수하게 될 경우, 생명을 위협받을 수도 있는데다 남은 에너지가 폭발이라도 일으키면 주변 사람들까지 사망할 수도 있었다.
그런 위험한 일에 기꺼이 몸을 던지는 드래곤들.
물론, 그들에게도 한 가지 목표와 같은 것이 있기는 했다.
“형님, 에너지를 먹으면 근육도 같이 성장하죠?”
“근성장에 좋기는 하지.”
“오오, 그렇다면?!”
드래곤들의 목적은 오로지 하나.
바로 근성장이었다.
***
몰먼호와 드래곤들이 심해로 내려가기 시작했다.
“심도가 점점 높아진다요! 이제 곧 놈의 밑바닥으로 갈 거다요!”
점점 아래로 내려갈수록 놈의 윤곽이 뚜렷하게 드러나기 시작했다.
태하의 말처럼 놈은 거대한 드래곤의 형태였지만 날개가 없었고, 의식이 없는 듯 미동조차 하지 않고 있었다.
다만, 그 크기가 워낙 컸기 때문에 차라리 혼수상태가 되어 있는 것도 나쁘지는 않겠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거의 여의도 절반 만하죠?”
“그보다는 작겠지만, 확실히 그만큼 크기는 하네요.”
“살다보니 이렇게까지 거대한 몬스터를 다 보네. 신기하게 그지 없어요.”
그저 단순히 신기하다는 말로는 설명이 불가능할 정도로 거대했다.
심장의 크기만 해도 어지간한 아파트단지 만 할 텐데, 그걸 과연 먹어치울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잠시 후, 드래곤들이 먼저 밖으로 나가서 자리를 잡았다.
-형님, 준비 됐습니다!
“오케이, 한 번 해보자고!”
태하는 특수장비를 몸에 부착하고 심해잠수복을 입은 채로 나섰다.
까마득한 심해의 공포가 태하를 엄습해 왔지만, 그는 드래곤들을 믿고 작전을 실행하기 시작했다.
“자, 그럼 간다!”
-넵! 준비하겠습니다!
태하는 와이어를 뻗었고, 거대한 몬스터의 심장에 찔러넣었다.
끼이이이이잉!
마치 소형 드릴을 돌리듯이 빠르게 회전하며 몬스터의 살점을 뚫고 들어간 태하의 와이어는 어느 샌가 놈의 심장을 흡수하기 시작했다.
“…약탈 스킬이 시전되었다! 모두들 긴장해!”
-알겠습니다! 와이어 주세요!
“오케이!”
태하는 동생들인 드래곤들에게 와이어를 뻗었다. 그러자, 다섯 명이 서로 연결되면서 빠르게 에너지를 분산시키기 시작했다.
스스스스스!
“…어, 엄청나다! 지금까지 내가 먹어본 그 어떤 심장보다도 거대해!”
-이정도 코어라면 인간들이 죽을 때까지 전기걱정 안하고 살아도 되겠는데요?
“그러게 말이야! 이야, 이것 참!”
태하는 감탄을 금치 못하며 심장을 빨아들였다.
허나 도대체 얼마를 빨아들여도 심장은 완전히 흡수될 생각을 하지 않는다.
총총은 이제 곧 드래곤들에게서도 한계가 느껴질 것이라고 생각했던지, 몰먼호의 엔진으로 에너지를 받을 준비를 했다.
“대장 나리! 준비 되었다요! 명령만 내려달라요!”
“그래, 고맙다. 하지만 아직 아니야!”
잘못하면 몰먼호가 폭발할 수도 있다.
단순히 태하와 드래곤들만 희생한다면 후의를 도모해 볼 수도 있겠으나 탑의 수호자와 헬창스가 한 방에 전멸한다면 얘기는 달라진다.
태하는 그것만은 어떻게든 막아내기 위해서 온힘을 다해 심장을 흡수하고 있었던 것이다.
우득!
물론, 그렇게 하면서 그의 전신에 무리가 오는 것은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빡세다. 온몸이 다 찢어질 것 같아!’
신경이 다 찢어지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태하는 힘이 역류할 것 같았지만 숨조차 잘게 쪼개어 쉬면서 천천히 컨트롤했다.
“…얼마나 남은 것 같아?”
-형님, 이제 1/3정도 먹은 것 같습니다!
“빌어먹을, 더럽게도 크네! 뭔놈의 염통이 이렇게나 클 수 있는 거지?!”
간신히 버티고는 있었지만, 이대로는 절대 승산이 없었다.
후일을 도모하자면 드래곤과 태하가 여기서 마무리를 지어야했지만, 그건 절대로 불가능할 것 같았다.
“나리! 이제는 엔진을 돌려야한다요!”
“조금만 더! 아직 할 수 있어!”
“아앗! 그러다가 몸이 다 찢어진다요!”
“으으윽!”
신체의 손상률이 점점 높아지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패시브 스킬 : 인생은 고통이야, 몰랐어?]
[신체가 빈사상태가 되었을 경우, 신체능력이 크게 향상됩니다]
[스킬레벨이 대폭 상승합니다]
우득!
몸이 잘게 찢어지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신체가 끝도 없이 에너지를 갈구하는 상태로 돌입하기 시작했다.
심지어 태하의 몸은 찢어졌다 회복하는 주기를 극단적으로 줄여 실시간으로 성장할 수 있게 되었다.
마치 아니볼릭 상태에 들어와 있는 것처럼 말이다.
-허엇! 형님! 체내의 에너지가 계속 고갈상태가 되고 있습니다! 에너지를 마구 밀어넣어도 모자랄 지경이에요!
“스킬이다! 드디어 패시브 스킬이 터진 거야!”
-완전 아나볼릭한데요?! 근육이 터질 것 같아요!
보디빌딩은 누가 더 미친놈인지 시합하는 종목이라는 말은 전혀 틀리지 않았다.
태하는 매번 그 격언을 느끼면서 살아가고 있었지만, 이번에야 말로 그 진리를 찾은 느낌이었다.
찢어졌다 붙기를 반복하면서 끝도 없이 에너지 고갈상태를 만드는 신체.
그 덕분에 그의 장기의 능력치도 크게 상승했다.
“간의 대사가 엄청나게 빨라졌다! 근육이 붙는 속도를 감당할 수가 없을 지경이야!”
-형님, 이러다가 한 열 배쯤 벌크업이 되겠는데요?!
“하지만 마냥 좋아할 수만은 없어. 이런 극한의 상황을 계속해서 겪게 되면 신체가 적응을 하게 될 텐데, 잘못하면 우리가 근육에게 잡아먹힐 수도 있다!”
-아아!
“아나볼릭 상태를 즐기는 건 좋은데, 언제 어느 타이밍에 이걸 끊어낼지 잘 판단해야해!”
-넵!
드래곤들도 일단은 생명체다.
만약 잘못해서 이들이 아나볼릭에 자로잡혀 스스로의 신세를 망치게 된다면, 태하는 자책하며 살아갈 수밖에는 없을 것이었다.
우드드득!
등판에 찢어지는 느낌이 났다.
살이 터졌다가 다시 아물면서 피부조직이 얇아지는 느낌이 든다.
“젠장, 스킨이 또 얇아졌어. 이제는 한계에 도달했을 텐데?”
-피부조직이 더 이상 팽창할 수 없게 되면 어떻게 되는 겁니까?
“근육으로 버텨야지. 억지로!”
그야말로 최악의 상황이다.
피부가 근육의 팽창을 더 이상 받아들이지 못하게 된다면, 그 즉시 태하는 근육만 남은 채로 살아가게 될 것이다.
허나 그 전에 고마운 일이 벌어졌다.
두근!
-헛! 고갈입니다! 이제 곧 놈의 심장에 가득 차 있던 에너지가 고갈될 겁니다!
“…살았다.”
혼수상태의 몬스터는 여전히 미동조차 없었지만, 이제 놈의 심장은 서서히 빈사상태가 되어가고 있었다.
***
솨아아아아…!
덥지만 기분 좋은 바람이 태하의 콧가를 스치고 지나간다.
해변가에 가만히 누워서 바람을 쐬고 있던 태하의 곁으로 희란이 다가와 앉았다.
“아직도 여기서 이러고 있어요?”
“…승리를 만끽한달까.”
몬스터의 심장은 안정적으로 흡수되었고 태하와 드래곤들은 승리를 만끽하는 중이었다.
가만히 누워서 쉬는 태하의 곁에 앉은 희란은 맥주를 한 캔 건네주었다.
“마실래요?”
“크흐, 좋지! 안 그래도 지금 목이 마르던 참이었어. 알지? 헬창에게 목마름이란 얼마나 지독한 고통인 것인지.”
“알죠. 근육의 대부분은 수분으로 이뤄져 있으니까요.”
인체의 70%가 물인 것처럼 사람의 근육 또한 상당히 많은 수분을 함유하고 있다.
때문에 정말로 근육을 키울 생각이라면 물을 많이 마셔주는 것이 좋다.
태하는 한 모금의 맥주를 넘기곤 탄성을 내뱉었다.
“크아아아! 좋다!”
“그 좋아하는 술도 끊고. 참 열심히도 달리셨네요.”
“끊긴! 이따금 맥주 한 잔 마실 수는 있잖아? 그건 금주가 아니지.”
“어쨌든 간에.”
맥주캔을 슬그머니 내려놓으며 베트남의 지는 석양을 바라보는 태하의 눈에는 어느 새 찰나의 회상 같은 것이 생겨났다.
“난 말이야. 오늘을 위해 지금까지 살아왔다는 생각이 들어. 완벽하게 쉴 수 있는, 아무런 미련도 없는 인생을 살기 위해서 말이야.”
“완벽하게 쉴 수 있다…?”
“인간은 후회하면서는 절대 편하게 쉴 수 없어. 내가 그날 편하게 잘 수 있는지, 없는지는 숙면을 할 수 있는지 없는지를 보면 알 수 있다고들 하잖아.”
“만약 이 세상에서 가장 큰 업적을 가진 사람이 불면증을 가졌다고 한다면? 그건 뭔데요?”
“그건 그 사람의 그릇이 크거나 욕심이 많거나. 뭐 그런 것 아니겠어? 아니면 타고나길 그렇게 타고 났을 수도 있고. 아무튼 내가 하고 싶은 말은 두 발 뻗고 잘 수 있다는 것, 내가 그만큼 스스로에게 떳떳하다는 뜻이라는 거지.”
“음, 그래요?”
태하는 맥주를 바닥에 내려놓으며 말했다.
“던전을 공략하고 이제 더 이상 내가 필요 없어진다면, 이런 한적한 시골로 내려오고 싶어.”
“시골이라.”
“넌 어때?”
지금까지 어디를 가든지 그녀가 없었던 적이 없었다.
희란은 그런 그를 잘 알기에 지금 이것이 무엇을 뜻하는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나야 좋지. 대장만 있다면야.”
“그래, 고맙다.”
두 사람의 인생에도 어느 새 뉘엿뉘엿 황혼이 내려오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