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9 하노이의 아이스 타워(1)
그야말로 고공폭격을 하듯 거침없이 하늘을 질주하던 헬창 드래곤즈는 수직으로 하노이까지 날아왔다.
이블아이는 이질적인 기운을 뿜어내는 물체를 빠르게 찾아냈다.
-크후어억!
“오호, 그래! 저기 보이는 파란색 탑이야!”
연한 파란색의 탑은 높이 12미터에 몸통이 전부 얼음으로 이뤄져 있는 빙탑이었다.
이 단단하고 사악한 빙탑을 부수기 위해서 드래곤들은 합심하여 브레스를 쏘아냈다.
-후으으으윽, 크아아아앙!
사색의 브레스가 섞여 내는 엄청난 파괴력은 이 세상을 가득 채운 냉기마저도 녹아내릴 정도였다.
허나 허무하게도 드래곤의 브레스를 맞은 빙탑은 멀쩡하기만 하다.
스스스스…!
-…형님, 저거 뭔가요? 브레스를 튕겨내는데요?!
“미친, 저게 가능한 건가?!”
-아무래도 마법공격이 먹히지 않는 것 같다는 생각이 강하게 듭니다만.
“…마법공격이 먹히지 않아?”
-타격계열 공격으로 전환해야 할 것 같습니다!
“그렇다면 이럴 때 쓰는 이블아이의 특성스킬이 있지!”
태하는 이블아이의 눈동자를 탑에 똑바로 고정시켰다. 그리곤 그 시선을 통해 캔슬레이션의 강력한 빔을 쏘아냈다.
“자, 간다! 캔슬레이션!”
-크허어어어억!
강력한 마법무효화의 광선이 쏘아져 나갔고, 빙탑 인간의 파장을 와해시키며 직선으로 뻗어나갔다.
허나 빙탑에 선이 닿자, 그것이 눈 녹듯이 사라져버렸다.
태하는 이블아이의 몸통에 와이어를 꽂아 넣곤 강화스킬을 걸어주었다.
“한 방에 간다!”
-크헛!
힘을 받은 이블아이는 자신감 넘치는 광선을 쏘아냈다.
이번에는 아까와 달리 상당히 넓은 범위를 가진 광선이 날아가 빙탑을 타격하였다.
끼이이이잉!
-허억! 마력이 와해됩니다! 형님, 정말 짱이십니다!
“지금 감탄할 시간이 없어! 박치기를 하든 주먹으로 후려갈기든 한 방에 빙탑을 무너뜨리는 거다!”
-그렇다면 저희들이 근접전으로 탑의 아래를 마구 때릴 테니 형님께서 중단에 결정타를 날려주시겠어요?!
“좋아, 한 번 해보자!”
지금은 스킬을 지속적으로 사용하고 있는 와중이지만, 그렇다고 주먹을 뻗지 못할 정도는 아니었다.
태하는 마이트의 중량벨트를 허리에 찬 후, 스트랩으로 주먹을 꽁꽁 동여맸다.
“후우, 자, 그럼 간다!”
집중고립의 강력한 힘이 태하의 코어에서부터 전신으로 퍼져나갔다.
순간적으로 강화스킬도 레벨이 X2로 뛰어올랐고, 그의 온몸은 마치 다이아몬드로 수놓은 듯 단단해졌다.
쿠그그그그극!
-오오오옷! 웅장한 근육!
-역시 대사형!
“자, 간다아앗!”
태하는 드래곤들의 서포터를 받으며 빠르게 빙탑으로 쇄도해 들어갔다.
이블아이의 머리에 올라 타 진격하는 태하의 모습은 마치 만화에서 나오는 손오공을 보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스스스스!
은빛으로 빛나는 태하의 주먹은 탑의 중단을 향했다.
바로 그때, 드래곤들은 탑의 하단을 미친 듯이 공격해댔다.
쿠웅, 쿠웅!
주먹, 꼬리, 발길질, 심지어는 박치기를 갈기는 녀석도 있었다.
-…머, 머리 아픈데?!
-그래도 계속 박아! 이걸 넘어뜨리지 못한다면 우리도 다 끝이다!
-젠자아아앙!
드래곤들은 온몸이 피투성이가 되었어도 미친 듯이 공격을 감행했다.
태하는 드래곤들의 살신성인에 뒤지지 않을 정도로 강력한 공격을 쏟아냈다.
“이거나 먹어라!”
슈우우우웅….
순간, 사방에 있던 모든 기류가 태하를 향해 몰려드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그의 주먹은 마치 하늘이 메테오를 던지듯 빠르게 날아갔다.
콰아아앙!
지면에 운석이 충돌하듯 강력한 한 방에 빙탑을 가격했다.
그러자, 다시 한 번 주변의 기류가 멈추었다.
스스스슷.
이윽고 시작되는 작은 빅뱅.
쿠우우우웅…!
흙먼지가 작은 돔을 만들어냈고 빙탑이 만들어낸 파편이 사방으로 퍼지면서 드래곤들의 비늘을 스치고 지나갔다.
서걱!
-크흐으윽!
-웅크려!
날개에는 신경이 연결되지 않은 부분이 꽤 많았음으로 드래곤들은 두껍고 단단한 날개로 파편을 막아내고 있었던 것이다.
태하 역시 이블아이의 보호를 받으며 빙탑의 파편으로부터 피신할 수 있었다.
-크허어억!
이블아이는 그 특유의 진동으로 파편을 치워내 주었고, 태하는 무사히 폭발사태를 피해갔다.
그는 이블아이의 눈두덩을 툭툭 쳐주었다.
“고맙다!”
-쿠흐흐흑! 크헉!
한 차례 싱긋 웃어준 이블아이는 기분이 좋다는 듯, 태하의 주변을 둥둥 떠다니며 기쁨을 표현했다.
이윽고 태하는 드래곤들의 상태부터 살폈다.
“얘들아, 괜찮아?!”
-으으으윽!
-상처가 제법 있네요.
“이걸 마셔봐!”
태하는 대용량 헬창포션을 드래곤들에게 전해주었다.
일반인이 마신다면 운동수행능력만 증가하게 되지만, 대사형의 오러가 적용되는 사람들이 마시면 힐링포션에 수 십 배에 달하는 회복을 받게 된다.
꿀꺽!
순간, 드래곤들의 몸에서 빛이 나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상처가 아물기 시작했다.
-오, 오오오오!
-이정도면 데드리프트, 벤치프레스 슈퍼세트 쌉가능이겠는데?!
역시 헬창들은 이 순간에도 운동 밖에 생각하지 않는다.
아마도 두뇌의 회로가 그쪽으로 특화된 것이 아닌가 싶었다.
“아무튼 다들 무사해서 다행이다.”
-그나저나 형님, 아까보다 냉기가 훨씬 줄어든 것 같지 않아요?
“그래! 제트기류도 사라졌고!”
-도대체 저놈의 빙탑은 누가 만든 것일까요?
제트기류가 사라졌다는 것보다도 저것을 누가 만들었느냐가 더 신기할 따름이었다.
***
같은 시각.
헬창스는 그야말로 거짓말처럼 사라진 제트기류 덕분에 빙하가 점점 얇아지고 있음을 확인했다.
“햇살이 강하게 내리쬐는 덕분에 얼음의 표면과 바다 간의 온도차가 생겼어요! 이정도면 빠른 시일 내에 빙하가 사라질 수도 있겠는데요?!”
“후후, 좋아요! 그럼 몰먼호 다시 출동!”
“으헤헤헤! 간다요오오옷!”
몰먼호는 멈추었던 엔진을 다시 가동시켰다.
부아아아앙!
아까보다 확실히 강력해진 엔진은 빠르게 얼음을 뚫고 바다 깊숙한 곳까지 내려갈 수 있었다.
그들이 끝내 도착한 곳은 바로 바다 속의 거대한 얼음대륙이었다.
“정말로 땅이 있었네요. 이거, 단순히 생명체가 아니라 생명체 위에 땅을 다져놓은 것 같은데요?”
“그게 가능한가요?”
“만약 표피층이 마치 지층처럼 두껍고 거칠다면 가능해요. 땅을 다지는 것쯤이야 그렇게 어려운 일도 아니니까요. 다만, 시간이 좀 오래 걸린다는 단점이 있달까?”
“이걸 인간이 해낸 것이라고 가정한다면….”
“돈이 엄청나게 많이 들었겠죠?”
지금까지 밝혀진 바에 따른다면 파이어볼과 금성탑이 작금의 사태를 빗어냈다고 알려져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 모든 걸 인간이 자행했다는 소리인데, 지금 이들이 보고 있는 거대한 생명체 역시 인간이 만들었다는 소리였다.
“유전자조작으로 생명체를 거대하게 만들어놓은 후, 그 위에 토목공사를 했다면 충분히 가능한 일이겠지요.”
“미쳤네. 이 엄청난 공사를 하자면 돈이 한두 푼 든 게 아닐 텐데요?”
“맞아요. 거의 새만금간척사업을 민간이 알아서 진행한 정도이겠지요.”
“…간척사업에 맞먹는 돈이 들어가는 사업을 이렇게 비밀리에 할 수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될까요?”
“사실, 손가락에 꼽을 수 있어요. 아니, 수면 위로 드러난 단체들은 어쩌면 할 수 없는 일인지도 모르죠.”
공사를 진행하는 것이나 생체실험으로 괴생명체를 탄생시키는 것은 어떻게든 가능케 할 수 있는 일이다.
허나 문제는 어떻게 그 엄청난 돈을 정말 티 한 번 내지 않고 움직일 수 있느냐, 바로 그것이다.
“지금까지 수면 위로 자금이동의 전말이 드러나지 않은 것만 봐도 알 수 있듯이, 놈은 보통의 조직은 아니라는 거죠.”
“하지만 반대로 얘기하자면 이렇게 치밀하게 움직일 수 있는 놈들이 얼마 없으니, 얼마든지 뒤를 캐기 쉬워질 수도 있다는 뜻이 되지 않겠어요?”
“음, 하긴. 그건 또 그러네요.”
생각해보면 이만큼 굵직굵직한 인간들을 찾아내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은 아니었다.
재산규모가 이정도 되는 집단은 그리 많지 않기 때문이다.
“본격적으로 조사를 해보면 나오게 되겠죠.”
“아니, 그나저나 이놈을 어떻게 해치운담?”
뒷조사를 하는 것보다 지금 눈앞에 있는 이놈을 당장 해치우는 것이 급선무였다.
윤정은 택티션으로서 이 일을 과연 어떻게 처리할지 고민이 되었다.
그러다가 그녀는 불현 듯 이런 생각을 해보았다.
“아니, 잠깐. 지금 이 생명체에게서 의식이라는 것을 발견할 수는 있는 건가요?”
“어? 그러고 보니까 주변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든 간에 잠만 퍼질러 자고 있었네요!”
“어쩌면 의식이라는 게 전혀 없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마인드헌터가 이 일을 해결해 줄 수 있을지도 몰라요.”
희란은 당장 유시연에게 전화를 걸었다.
동남아시아 주요거점에서 대부분의 통신회선이 이미 복귀되어 전화를 거는 것쯤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었다.
심지어는 화상통화까지도 가능할 정도였다.
-헬창스?
“이사님! 부탁할 것이 좀 있어서요!”
-부탁? 갑자기 무슨 부탁?
“음, 그게 말이죠….”
차근차근 사정을 설명하는 희란, 그 얘기를 전해들은 유시연은 크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면서 그녀는 헬창스에게 한 가지 반가운 소식을 전해주었다.
-안 그래도 거대고래의 정신 상태를 진단했어요. 분석을 끝내고 그 안의 기억을 간추릴 수 있게 되었죠.
“허어, 정말요?! 그래서, 그 고래의 정신건강은 좀 어때요?”
-제어가 불가능한 다중인격. 그게 저의 결론이에요.
“제어가 불가능한 다중인격이라니. 다중의 인격을 제어할 수 있는 사람도 있어요?”
-얼마 전까지는 그게 불가능했었죠. 이를 테면 빙의라든지 하는 초자연적 현상이 말도 안 되는 것으로 치부가 되었었으니까요. 허나 각성자들이 생겨나면서 얘기는 달라졌어요. 이른 바 귀신이라고 하는 것들을 제어하는 한 편, 그것들을 자신 스스로에게 접신시켜서 그 힘을 사용할 수도 있게 되었으니까요.
“이용광…?”
-그래요, 마귀 이용광. 그가 딱 그런 케이스였죠. 헌데 그런 이용광도 이 고래가 그랬던 것처럼 처음에는 이걸 제어할 수 있는 힘이 없었어요. 그래서 청룡방에서 그에게 조금 특이한 힘을 실어주고 제어하는 법을 가르쳤죠. 마침내 그는 접신 후에도 이성을 제어할 수 있게 되었어요. 심지어는 그걸 이용할 수 있는 힘마저 갖게 되었죠. 헌데 그보다 더 대단한 능력자가 나타났어요. 바로 가빈이라는 사람 말이에요.
가빈과 성일은 학교를 다니는 틈틈이 레이드를 다니고 있었는데, 저번 원정에서도 그들의 활약은 아주 대단했었다.
그런 그녀의 능력을 똑똑히 지켜보았던 동료들은 절로 고개를 끄덕였다.
“엄청나게 많은 영혼들을 짊어지고 있으면서도 전혀 흐트러짐이 없었죠. 대단한 친구에요.”
-그래요, 가빈 씨. 그 가빈 씨가 다중인격을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가졌다고 볼 수 있어요. 하지만 고래의 경우엔 그렇지 못했던 겁니다.
“그럼 어떻게 되는 건가요?”
-자기 인격이 무엇인지 알 수가 없게 되는 거죠. 자아를 잃어버렸다고 해야 할까요?
“…너무 불쌍한데 그건.”
-해서 고래의 의식 속에서 무언가 단서를 찾는 건 불가능해요. 하지만 이것을 통해서 우리는 적어도 한 가지 정도는 알 수 있어요. 이렇게 영혼을 마구잡이로 주입시킨다면, 종국에는 다중인격으로 아예 자아가 터져서 아무것도 할 수 없게 된다는 것을 말이죠.
“흠, 그렇다면 이 미동조차 없는 몬스터 역시 그럴 가능성이 있겠네요?”
-거의 백퍼센트라고 봐야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