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57 누군가에게는 축제, 누군가에게는 재앙(1)
대한민국 정부의 기업제재관련정책, 이른 바 ‘파이어볼 조치’가 시행될 것이라는 소식이 전해졌다.
이에 대해 전문가들의 갑론을박이 있었는데, 정부의 이러한 정책기조가 자칫 기업의 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는 것이었다.
청룡방 특사들은 기업생태계를 망칠 수 있다고 주장하는 학자들의 뒷조사를 시작했다.
“그들에게는 크게 두 가지 특징이 있습니다. 첫 번째로는 이력이 비슷하다, 두 번째로는 줏대가 없다는 것.”
“줏대가 없다?”
“이를 테면 이런 겁니다. 보수주의의 시장경제기반의 성장을 지지하는 글을 써서 전경련의 지원을 받은 반면, 공산주의를 옹호하는 주사파 집단의 칼럼을 대필했다가 욕을 먹기도 했죠.”
“한마디로 보수주의 주사파라는 건가요?”
“비슷합니다. 한마디로 이념 자체가 없고 돈이 되면 무조건 그에 따르는 놈들인 거죠.”
청룡방 특사인 유시연에게로 전달된 보고서에는 이처럼 뚜렷한 특징을 가진 학자들의 프로필이 일목요연하게 정리되어 있었다.
주체사상을 숭상하는 이른 바 ‘주사파’를 옹호하는 글을 쓰면서도 수출주도형 성장을 목표로 한 ‘서강학파’의 보수주의적 이론을 지지한 것이다.
한마디로 앞뒤가 전혀 맞지 않는다는 소리였다.
“그렇다면 파이어볼 조치를 규탄한다는 건 뒷돈을 받았다거나 자기 좋을 대로 그냥 글을 싸지르고 봤다는 소리가 되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이 높습니다. 보통 특정집단을 옹호하는 글이나 그 사상을 절대적으로 지지하는 글을 기고하면 금전적인 이득을 받기 마련입니다. 반대로 누군가를 비판하는 글을 쓰면 비판대상의 반대편 세력들이 돈을 쥐어주게 되죠. 한마디로 이놈들에게 글이라는 건 권력자들에게 잘 보이기 위한 도구에 불과한 겁니다.”
“저들이 실제로 금전적 이들을 보기는 했나요?”
“신문사의 논설주간을 맡는다거나 대학의 특강교수, 혹은 특정집단의 고문으로 들어가서 큰 돈을 벌어서 나왔습니다. 그로 인해 축적된 재산이 특정집단이 운영하는 펀드에 들어가서 막대한 재산증식이 이뤄졌고요.”
“언론조작을 위한 돈이 풀리고 있다, 그렇게 볼 수도 있겠군요?”
“네, 그렇습니다. 아마 수 백 억의 돈이 풀렸겠죠.”
“수 백 억이라. 백억 대 현금이면 언론도 조종할 수 있다는 거잖아요?”
“돈도 돈인데 거기에 권력과 유명세까지 합쳐져야겠지요.”
때론 인간은 권력에 집착한다.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주무를 수 있는 힘, 그런 절대적인 힘에 취하면 인간은 그때부터 추악한 본성을 드러내게 된다.
그러한 권력을 가진 사람들이 돈까지 거머쥐게 된다면 지금과 같은 일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었다.
“권력을 손에 쥔 사람들이 돕지 않았다면 지금의 그림은 그려지지 않았을 터, 관련 정치인들을 잡아서 족쳐보자고요.”
“안 그래도 언론조작과 관련해서 힘을 실어준 것으로 생각되는 정치인들의 명단을 뽑아두었습니다.”
“오호, 그래요? 행동이 상당히 빠르시네요.”
“적과 싸워 이기려면 우선 행동이 빨라야한다는 건 기본 상식이니까요.”
청룡방 특사는 특무관으로 재직했던 태하의 영향을 상당히 많이 받았다.
그들은 위기의 순간에 특유의 추진력으로 집단을 이끌었던 태하의 리더십에 감화되어 지금처럼 유연한 체제를 갖추게 된 것이었다.
유시연은 그런 청룡방 특사에게서 태하의 진한 향기를 느낄 수 있었다.
“사람이 든 자리는 몰라도 난 자리는 안다더니, 정말 그러네요. 정태하 전 특무관은 제법 괜찮은 상관이었나보죠?”
“최고의 특무관이었습니다. 한국은 물론이고 전 세계를 몇 번이고 위기에서 구해냈죠. 그리고 특사라는 이리떼의 진정한 리더가 되었고요.”
힘으로 제압하기보다는 부드러운 카리스마로 모두를 아우르는 태하의 대사형 기질은 청룡방 특사에게서도 잘 나타났던 것이다.
유시연은 태하를 닮은 특사집단에게 두 번째 지령을 내렸다.
“정치인들을 수색하는 한 편, 정부 관계자들 중에 조력자가 있는지 알아보세요.”
“정부요? 청와대 쪽 말입니까?”
“각 처부의 관계자들 중에 분명 관련자가 있을 겁니다. 그렇지 않고선 이렇게 빠른 대처가 가능했을 리가 없어요.”
철저하게 조사되지 않은 상태에서 학계와 재계, 시민들을 한 번에 공략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때문에 칼럼이라는 것, 혹은 논설이라는 것을 쓸 때에는 그에 걸맞은 조사와 고증은 절대적이라 할 수 있다.
고로 정부의 정책발표 직후, 이와 같은 글이 쏟아져 나왔다는 것은 말이 안 되는 알이었다.
유시연은 분명 어둠의 손이 함께 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분명합니다. 내 말이 맞을 거예요.”
“그렇다면 아예 말단부터 차근차근 조지는 것이 낫겠지요?”
“할 수 있다면 그렇게 하는 게 당연히 좋죠.”
어떤 집단을 조사할 때에는 말단부터 족치는 것은 거의 잘 짜여진 공식과도 같은 것이었다.
청룡방 특사들은 다방면으로 정부기관의 말단부터 서서히 털어볼 생각이었다.
***
베트남 연안으로 향하는 헬창스의 비행기 안.
궤도차량과 각종 전투장비 등을 실은 비행기 안에서 쪽잠을 자는 헬창스의 표정에는 결연함이 깃들어 있었다.
잠시 후, 헬창스의 비행기 내부에 파란색 등이 켜졌다.
-이제 곧 착륙합니다. 준비하세요.
전담 비행사들을 고용한 청룡방은 혹시나 모를 상황에 대비해서 윤정에게 기장 매뉴얼을 맡겼다.
만약 유사시에 파일럿과 코드파일럿이 동시에 사망할 경우, 윤정은 아리스를 코드파일럿으로 기용해서 작전지역을 빠져나가야 하는 역할을 맡고 있었던 것이다.
“인원과 장비부터 점검하자고요.”
“오케이!”
결연한 마음가짐을 가졌지만 여전히 헬창스 특유의 유쾌함과 호탕함은 간직하고 있었다.
작전을 할 때에도 아나볼릭함을 잊지 않겠다는 헬창스의 다짐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었다.
베트남 연해에 작전항공기를 착륙시키고 빙판 위로 나온 헬창스.
그들은 깊지 않은 연해를 걸으며 GPS장치를 가동시켰다.
“전방 5km 앞에 목적지가 있어요. 다들 옆 사람 잘 챙기면서 움직이자고요.”
헬창스의 택티션 윤정은 동료들을 이끌고 궤도차량을 몰기 시작했다.
끼리리리릭.
궤도차량을 타고 이동하는 동안에도 한기가 장갑을 뚫고 들어온다.
“…두꺼운 특수장갑까지 뚫고 들어오네. 어째 저번에 봤던 냉동원보다 훨씬 강력한 것 같죠?”
“보통의 냉기가 아닙니다. 이거, 어쩌면 우리가 감당할 수 없을 정도로 거대한 생명체가 잠들어 있는 것인지도 모르겠습니다.”
다른 사람은 몰라도 란돌은 안다.
빙하지대 던전을 누볐던 그는 냉기의 강도만 봐도 몬스터의 크기가 얼만한지 가늠할 수 있는 사람이 아니던가.
그런 란돌이 장담했다.
“큽니다. 그것도 상당히.”
“젠장, 작전이 쉽지 않겠는데요.”
“하지만 헬창스 전원이 모이면 할 수 있죠.”
“하긴.”
헬창스의 완전체는 탑의 수호자들만 모아놓은 것과는 아예 차원이 다른 힘을 갖고 있다.
만약 거대 고래보다 덩치가 두 배, 혹은 그 이상이 크다고 해도 지금의 헬창스라면 충분히 넘어설 수 있을 것이었다.
5km를 이동하는데 거의 15분 이상이 걸렸다.
아무리 궤도차량이라고 해도 이곳은 빙판인데다 바람이 미친 듯이 불고 있어서 전진이 쉽지 않았던 것이다.
“이제 거의 다 왔어요. 그런데 바람이 너무 많이 부는데요?”
“도대체 바람이 얼마나 불면 차가 앞으로 안 나갈 지경이지?”
“이정도 풍속이면 사람은 밖에 서 있을 수도 없을 겁니다. 장비에 신경을 쓰는 것이 좋겠어요.”
특수기능이 장착된 아이젠과 와이어 발사기 등을 장착한 헬창스는 궤도차량의 출입구 앞에 섰다.
긴장된 표정으로 인원을 점검하는 태하.
“바람이 불면 와이어를 잘 사용해야합니다. 사용법은 다들 숙지하고 있죠?”
“넵!”
“자, 그럼 갑시다!”
삐이이익!
궤도차량 입구에 있는 두 개의 등 중에서 녹색등에 불이 켜지더니 문이 열렸다.
그러자, 헬창스의 앞으로 눈을 뜰 수조차 없는 엄청난 칼바람이 불어왔다.
쐐에에에엥!
태하는 전용장비인 성좌의 스트랩을 이용해서 빙판에 와이어를 박았다. 그리곤 그것을 잡고 앞으로 나아갔다.
“…빡센데. 이거, 전투는커녕 사람이 서 있는 것조차 힘들겠어요.”
“이렇게까지 풍속이 빠를 줄은 몰랐어요.”
가만히 상황을 지켜보던 한나가 앞으로 나섰다.
“중력을 이용해면 어때요?”
“중력?! 아하, 그래! 중력을 이용하면 바람에 날아가지 않겠군요!”
만약 풍속이 너무 거세다면 인간은 그 이상으로 무겁게 만들면 된다.
유사시에는 중력을 적당히 조절해가면서 바람에 날아가지 않게 된다면 헬창스는 충분히 전투에 나설 수 있을 것이었다.
태하는 와이어를 뻗어서 한나에게 전달한 후, 나머지 동료들에게도 똑같은 방식으로 와이어를 뻗었다.
스스스스!
스킬이 사용되고 난 뒤, 동료들은 한결 수월하게 작전에 임할 수 있었다.
“오호, 좋은데요?!”
“이대로 작전을 진행하면 돼요. 하지만 시기적절하게 버프를 줄 수 없어요. 시너지 딜러 한 명 없다고 생각하는 게 편할 거예요.”
“오케이!”
완전체는 강력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완전체가 아니라고 힘이 약한 건 아니다.
헬창스는 이가 없으면 잇몸으로라도 물고 늘어지는 사람들이 아니던가.
쐐에에에엥!
칼날처럼 파고드는 돌풍을 해치고 앞으로 나아가는 헬창스.
그런 그들에게 점점 거대한 고동이 느껴지기 시작했다.
두근, 두근!
“느껴져요…?”
“네, 느껴집니다! 도대체 얼마나 덩치가 크면 여기까지 심장고동이 느껴지는 것일까요?!”
심상치 않은 기운이 강하게 느껴진다.
태하는 바짝 긴장한 채 걸음을 내딛었다.
스르르릉.
그가 한 발자국 더 내딛었을 때, 얼음 아래에서 뭔가 빛이 움직이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잠깐! 아래에 뭔가 있어요!”
“…네, 보이네요. 마치 네온사인처럼 움직이고 있네요!”
“제기랄, 엄청 큰데요? 이거, 어쩌면 단순한 생명체가 아닐 수도 있겠어요!”
도대체 이 아래에 뭘 묻어놓은 것일까?
태하는 이블아이를 소환했다.
-크헉!
“이블아이, 저 아래에 뭐가 있는지 한 번 살펴봐.”
-크허어어억!
이블아이의 눈에서 눈부신 빛이 쏟아져 나오더니, 이내 이 근방의 직경 5km를 스캔했다.
그 결과는 태하에게로 실시간으로 전해졌다.
서서히 밝혀지는 빙하 안의 존재.
“…어라? 이게 뭐지?”
“왜 그러세요?”
“땅…인 줄 알았는데, 아닌 것 같기도 하고.”
“그게 무슨 말이에요?”
“무슨 대지처럼 광활한데 숨을 쉬고 있다는 뜻이죠.”
“…허어!”
“이거, 보통의 일이 아닌데요?”
작은 섬만큼이나 거대한 몸집, 그러나 이놈은 분명 숨을 쉬고 있었다.
만약 이렇게 거대한 생명체가 잠에서 깨어난다면 과연 어떻게 될지 가늠조차 할 수 없을 지경이었다.
윤정은 택티션으로서 이 상황을 과연 어떻게 해쳐나가야 할지 앞길이 막막하기만 했다.
허나 그녀는 의외로 빨리 명쾌한 답을 내려주었다.
“저게 뭔지는 일단 부딪쳐보면 알게 되겠죠. 얼음을 깨고 저놈의 실체부터 좀 파악해볼까요?”
“몰먼호를 소환하자는 겁니까?”
“그보다도 초음파로 신호를 보내보는 거죠.”
그녀는 발로 바닥을 탁탁 두드려보았다.
그러자, 그녀의 발바닥 소리에 맞춰서 얼음 아래에서 불빛이 일렁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이것 봐요. 우리가 움직이는 그대로 반응을 하고 있어요.”
“…정말 그러네?”
“어떤 방법으로든 초음파를 쏴서 저놈을 자극한다면 얼음을 깨고 일어나게 만들 수도 있겠죠.”
“만약 너무 커서 공략할 방법이 없다면?”
“그 안으로 들어가죠 뭐. 괴물의 몸속으로 들어가서 직접 파괴시키는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