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56화 (156/197)

156 고인물 뉴비(2)

동남아시아에서 발견된 냉동원은 지금까지 12개로 추산되는데, 아직까지 추가로 발견된 냉동원은 없었다.

청룡방은 이를 추격하면서 한 가지 재미있는 사실을 알아냈다.

“…반 헌터연합?”

“스스로를 빌런이라도 칭하는 사람들이죠. 레지스탕스라고 부르기도 하고요. 그런 그들이 냉동원을 조달한 것으로 보입니다.”

유시연이 조사한 결과, 반 헌터연합이라는 반사회적분자들이 냉동원을 가져다 심어놓은 것으로 밝혀졌다.

“레지스탕스라. 도대체 무엇에 저항한다는 겁니까?”

“글쎄요. 이 사회에 불만이 많으니, 그 모든 것에 저항한다는 의미 아니겠어요?”

“미친놈들.”

“맞아요. 미친놈들이죠. 부패한 사회에 염증이 났다면, 부정부패를 저지르는 놈들을 벌하면 될 것을. 굳이 수많은 희생자를 만들 필요가 없잖아요?”

정말로 이 사회가 정화되기를 바랐다면 수 천 만이나 되는 사람들을 얼려죽일 계획 따위는 세우지 않았을 것이다.

그들이 어떤 대의를 갖고 움직이든 간에 민간인들을 학살하려 했던 행동은 절대 용서받을 수 없는 일이었다.

태하는 그런 그들을 벌하는 것이 마땅한 일이라고 생각했다.

“빙하기를 만든 근원을 없애는 것도 중요한데, 그런 미친 짓을 하는 놈들을 제거하는 것도 중요한 일이겠군요.”

“물론입니다. 그리고 이번 조사를 통해서 추가로 알아낸 사실인데….”

유시연은 고개를 들어서 한나를 스윽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녀는 입을 꾹 다물며 무슨 말이든 해도 괜찮다는 듯한 행동을 보였다.

“…금성탑이 연관되어 있는 것 같아요.”

“금성탑이요? 그 레지스탕스인지 하는 미친놈들과 말입니까?”

“아무래도 금성탑이 배후세력 중 하나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청룡방은 꽤나 자세하게 이 사건을 조사 중이었는데, 사건의 진상을 밝히기 위해서 무던히도 노력 중이었다.

이곳저곳 손을 대지 않는 곳이 없을 정도로 열심히 조사한 그들은 레지스탕스의 행동노선에서 가짜 성흔을 발견했던 것이다.

“금성탑, 이젠 정말로 좌시할 수 없는 정도가 되었어요. 어쩌면 헌터협회 전체가 금성탑과 싸워야하는 일이 벌어질지도 모르겠군요.”

심란한 표정의 한나. 태하와 동료들은 스스로 고향이라 여기던 곳을 내 손으로 치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알기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한나는 한동안 말이 없다가 불현 듯 이렇게 말했다.

“우선…. 빙하의 근원부터 없애는 것으로 하죠. 헌터협회가 금성탑의 움직임을 제어하면서 시간을 벌어줄 수 있잖아요?”

“흠, 그건 그렇죠.”

“그럼 앞길은 정해졌네요. 그렇게 하자고요.”

평소와 다름이 없는 듯, 평온한 표정의 한나.

허나 동료들은 알고 있었다.

단 한 톨의 투덜거림도 없는 진중한 모습, 원래 한나의 모습은 절대 아니라는 것을 말이다.

그날 저녁.

태하는 백선을 찾아갔다.

지난 레이드에서 태하와 그 동료들의 능력을 확인했던 백선은 한 가지 결론에 도달했다.

“이제부터 탑은 헬창스가 전담한다. 그게 낫겠다는 생각이 들어.”

“그럼 통합공격대는 어쩝니까?”

“나와 마인드헌터가 그들을 이끌고 금성탑과 파이어볼을 치는데 동원하도록 하겠네.”

파워드 피스는 백선을 존경하고 있고 유시연의 능력에 감탄을 금치 못하고 있다.

그런 그들이라면 대의를 위한 행동에 기꺼이 동참해 줄 것이었다.

“알겠습니다. 그럼 헬창스와 탑의 수호자들은 탑을 오르는데 전력을 다하겠습니다. 하지만 그 전에 우선 이 빙하기부터 끝내야하지 않겠습니까?”

“그래, 일단 빙하기가 문제이니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겠지. 자네는 이제부터 탑을 오르는데 필요치 않은 모든 직책을 내려놓게. 청룡방 특무관은 시연이에게 맡기고 자네는 본업과 탑을 오르는데 집중하는 거지.”

태하는 꽤나 많은 시간을 탑 이외에 보내고 있었는데, 이런 효율적이지 못한 방법으로는 100층 돌파 이후에 나머지 탑을 돌파하는 것도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했던 것이다.

그런 백선의 생각에는 태하 역시 동의하는 바였다.

“알겠습니다. 그럼 그렇게 하도록 하겠습니다.”

“명심하시게. 자네는 이제부터 이 세상을 등에 짊어진 아주 중요한 사람이 되었어. 우리 헌터협회는 자네를 서포터하는 역할을 맡았을 뿐, 모든 것은 자네에게 달렸다는 뜻이지.”

“경거망동하지 않고 부화뇌동하지 않겠습니다.”

“그래. 그 두 가지만 하지 않아도 자네에게 큰일은 벌어지지 않을 걸세.”

세삼 압박감이 느껴진다.

허나 이 압박감을 이겨내야만 한다는 사실은 변하지 않는다.

태하는 탑을 정복하고 나면 이제 시골로 내려가 헬스나 하면서 살 생각이었다.

“탑을 모두 정복하면 시골로 내려갈 것입니다. 한적한 곳에 헬스장이나 차려고 살아갈 생각이거든요.”

“낙향을 생각하는 겐가?”

“세상을 등지려 합니다. 이제는 복잡한 세상살이에 좌지우지 되고 싶지 않아서요.”

“나쁘지 않은 선택이로군.”

“낚시나 하면서, 적당히 풍류도 좀 즐기면서, 그러고 살고 싶습니다. 가끔은 술도 한 잔씩 하고요.”

“그래, 그런 인생이 좋지. 너무 팍팍하게 사는 것보다야.”넘치지도, 모자라지도 않은 인생.

태하의 남은 인생계획은 그렇게 설계되어 있었던 것이다.

***

며칠 후.

파워드 피스와 청룡방, 그리고 전 세계에 있는 모든 헌터협회가 서울로 모여들었다.

극비리에 마련된 이 자리는 백선이 직접 주관한 것이었다.

“핫라인을 동원해서 저희들을 한 자리에 모으시다니요. 어르신께서 정말 중요한 일이 있으신 모양이로군요.”

“의외입니다. 백선께서 저희들을 한 번에 소집하시니.”

유로파 최고의 길드 블랙 브릿츠의 수장 리처드 아슈필드와 캐나다 랭킹 1위의 레드필의 수장 헨리 아카서스가 백선에게 감상을 평했다.

백선은 그들에게 금성탑과 파이어볼의 만행에 대해 차근차근 설명했다.

그들의 만행, 그리고 앞으로의 계획까지 말이다.

그러자, 60개 길드의 수장들이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금성탑이 끝내 우리를 배신하는군요.”

“아니, 아니지. 그들은 애초에 우리와는 다른 길을 걷고 있었던 겁니다. 아예 길이 달랐다고요.”

“아무튼 간에 이제부터 금성탑은 우리의 적이니 혈전이라도 준비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맞습니다. 혈전을 준비해야할 타이밍이라고 생각됩니다.”

금성탑을 신성한 집단으로 여겨온 모두에게 있어 생체실험과 하프 드래곤 프로젝트와 같은 일들은 도저히 용납할 수 없는 것이었다.

더군다나 파이어볼과 그다지 좋지 않은 관계에 있었던 헌터협회들은 이번 싸움에 전력을 다할 것임을 시사했다.

“절대로지지 않습니다. 우리 헌터협회들이 기필코 그들을 쓸어버릴 것입니다.”

“다들 고맙소. 대의와 신의를 저버리지 않고 이렇게 발 벗고 나서주니 말이오.”

“하지만 어르신, 헌터 골드가 100층 돌파를 목전에 두고 있다고 들었습니다. 사상최초 100층 돌파를 앞둔 가운데 이런 엄청난 일을 벌여도 되는 것일까요? 파이어볼이 뒤통수라도 치면 큰일인데 말입니다.”

이제 100층 돌파는 아시아만의 관심사가 아니었다.

태하의 100층 돌파에 참여하는 사람들이 오대양육대주에 걸쳐 모여들었기에 다들 관심을 보일 수밖에는 없었다.

더군다나 100층 돌파가 이뤄지면 이제 각 헌터협회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맞이하게 된다.

새로운 메타, 새로운 공략법이 널리 퍼지게 될 것이기 때문이었다.

그를 기대하는 헌터협회들에게 섣부른 전쟁은 상당히 껄끄러운 일이었던 것이다.

백선은 차분히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우선 헌터 골드가 작금의 빙하기 사태를 먼저 종식시키고 세계의 평화를 찾아오는 동안 우리는 금성탑을 견제하여 다시는 이런 일이 벌어지지 못하도록 할 것이오. 그리고 난 이후, 우리는 계속해서 금성탑, 파이어볼을 따라다니면서 압박해야만 하오. 그래야 100층 돌파를 이뤄내는 데까지 어려움을 겪지 않을 테니.”

“음, 다시 말하자면 우리가 그들과의 전쟁을 벌이는 것이 도리어 헌터 골드를 도와줄 수 있는 일이란 말입니까?”

“그런 셈이오. 우리가 격렬하게 싸우면 싸울수록 헌터 골드는 힘을 받게 될 것이외다.”

“으음, 그렇다면야!”

이제는 헌터길드들도 이번 전쟁의 중요성에 대해 깨달은 모양이었다.

백선은 이 기세를 몰아서 몬스터의 레이드가 아닌 헌터 간의 전쟁을 선포했다.

“그럼 이제부터 우리 헌터길드들은 하나의 뜻으로 저 사특한 마도들을 멸하는 것으로 하겠소. 결의안을 만들어 각 정부에 제출하도록 합시다.”

“예, 어르신!”

백선의 주도 하에 각 길드장들은 각자의 피로 만들어진 지장을 결의안에 찍었다.

이들이 굳이 피로 결의안에 지장을 찍는 것은, 이 결의안이 그 어떤 누구의 강요도 없이 스스로 피를 내어 찍었다는 것을 증명하기 위함이었다.

게다가 피로 찍은 지장은 DNA검사를 하면 본인의 참여유무가 밝혀지기 때문에 법적인 효력도 있었다.

그 상황을 카메라로 담은 헌터협회들은 정부와의 접선을 준비했다.

***

이른 바 헌터협회의 전쟁 결의안이 정부에게로 넘어갔다.

유엔을 비롯한 나토 등 각 국가 간의 동맹체계에도 약간의 변화가 생길 조짐이 보였다.

이른 아침부터 백선과 태하를 초청한 청와대는 금성탑과 파이어볼과의 전쟁에 국가는 전폭적인 지원을 아끼지 않을 것임을 피력했다.

“우리 대한민국 정부는 자랑스러운 헌터들의 결의에 찬사를 보내는 바입니다. 혹시 필요한 조치라도 있으신지요?”

“파이어볼과 금성탑의 자금줄을 압박해야 할 필요가 있습니다. 아마 한국의 재벌 중에서도 이들과 내통하는 세력이 분명 있을 테니, 그 기업들에 대한 제재법안을 통과시켜주셨으면 좋겠습니다.”

“기업을 제재하는 법안이라. 국회의원들이 가만히 있지 않을 텐데요.”

“정치적으로 다소 희생이 따를지라도 이것은 반드시 집고 넘어가야 할 문제입니다. 또 다시 빙하기를 맞이하여 민간이 희생되는 사태는 벌어지면 안 되지 않겠습니까?”

“음! 그건 그렇지요. 우리 영해나 영토에 빙하기가 도래할 수도 있는 것이고요.”

“맞습니다. 우리 영토가 침범을 받지 않았다고 해서 안심할 수 있는 건 절대 아니지요.”

청와대는 태하와 백선의 뜻에 따르기로 했다.

“좋습니다. 여러분의 뜻에 따르기로 하겠습니다. 다만, 저희들에게 한 가지 협조를 해주셔야겠습니다만.”

“협조라니요?”

“청룡방 특사들, 그리고 헌터협회와 제네시스의 수사기관들에게서 정보를 공유받았으면 합니다.”

백선은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정부와의 협력은 당연한 일이지요.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그렇다면 그 정보를 바탕으로 법안상정에 반대하는 놈들을 확 감옥으로 보내버리겠습니다.”

대한민국 한 복판에서 공산주의를 찬양하는 것만큼이나 금성탑과 파이어볼을 옹호하는 것은 미친 짓이었다.

그런 짓을 법의 울타리 안에서 제압하겠다는 것은 어쩌면 지극히 당연한 일이었다.

다만 그렇게 하자면 CIA급의 정보력은 필수였던 것이다.

“아무쪼록 저희 청와대를 믿어주셔서 감사드립니다.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우리의 고향을 지키는 집단입니다. 당연히 협조해야지요.”

이제부터 금성탑과 파이어볼, 악을 추종하는 세력들은 대한민국에서 축출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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