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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146화 (146/197)

146 금성탑의 실체(2)

폴란드 루블린에서 차로 약 네 시간 정도 떨어진 어느 시골 마을에 당도한 태하 일행은 허름한 목장으로 향했다.

목장은 인적이 드문 곳에 위치해 있었는데, 열 평 남짓한 목장의 남루한 오두막에는 지하로 내려가는 작은 입구가 바닥에 나 있었다.

태하 일행은 황유나를 따라서 바닥에 나 있는 계단을 타고 아래로 내려갔다.

그러자 여섯 갈래로 갈라지는 동굴이 모습을 드러냈다.

“여기서부터는 길을 잘 외워야 합니다. 잘못하면 길을 잃고 미아가 되어 버릴 수도 있으니까요.”

동굴은 그 어떤 특징도 없이 모두 똑같이 생겼는데, 황유나는 중간에 있는 세 번째 동굴을 향해 걸어갔다.

동굴은 거의 300미터 이상 이어져 있었는데, 놀랍게도 이 동굴을 빠져나가자 12개의 동굴이 모습을 드러내고 있었다.

마치 개미굴을 연상시키는 이 복잡한 구조의 지하 세계는 아마 적들의 침입에 대비해서 만들어 놓은 것 같았다.

“혹시나 해서 말씀드리는데, 여기서 길을 잘못 들면 함정에 걸려 목숨을 잃을 수도 있어요. 그러니 행여나 나나 나미라 씨 없이 혼자서 밖으로 나가는 일은 없었으면 좋겠네요.”

“……그러라고 등을 떠밀어도 나가기 싫습니다만.”

굳이 황유나의 말이 없었더라도 태하는 절대 밖으로 나가는 바보 같은 짓은 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녀를 따라서 걷다 보니 어느새 32개로 갈라지는 동굴에 도달했다. 거기서 다시 12개씩 나뉘는 복잡한 구조의 동굴을 무려 두 시간이나 걸어서 도착한 곳은 8층 높이의 모던한 느낌의 건물이었다.

“이곳이 바로 내가 10년에 걸쳐서 만든 세이프하우스입니다. 지하 15층 깊이에 쑤셔 박혀 있는 데다 완벽한 내진 설계를 갖추고 있어서 사실상 파괴는 불가능한 지역이죠. 지하수를 끌어다가 사용하기 때문에 식량만 잘 갖추고 있다면 죽을 때까지 버틸 수도 있어요.”

“이런 곳을 왜 만든 겁니까?”

“그건 안으로 들어가면 나미라 씨가 알려 줄 겁니다.”

태하는 황유나의 말에 따라 건물 안으로 들어갔다.

이곳은 전형적인 아파트의 형태로 되어 있었는데, 환기 및 온습도 시스템이 잘 갖춰져 있어서 숨이 탁 트이는 느낌이 들었다.

관리에 들어가는 돈도 만만치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황유나가 들어가자, 나미라가 그녀를 맞이하러 나왔다.

“성녀님!”

“연구는 잘 진행되고 있죠?”

“물론이죠. 아아! 한나 씨와 일행들도 왔군요! 반가워요. 던전 방어 프로그램에 동참해 주는 건가요?”

“던전 방어 프로그램? 그게 뭔데요?”

“바벨탑을 무너뜨리려는 세력에 대항하는 조직이에요. 규모가 그렇게까지 크지는 않지만, 성녀님께서 꾸준히 세력을 모으고 다닌 덕에 꽤나 준수한 전투력을 갖추게 되었죠.”

“흠, 그렇군요. 조직의 이름은 없나요?”

“세이렌, 우리는 세이렌이라고 불러요.”

“세이렌이라.”

어디선가 들어 본 것 같다는 생각도 든다. 허나 세이렌이 이렇게 음지에서 활동하는 한, 아무리 발이 넓어도 자세히 아는 건 불가능할 것이었다.

나미라와 황유나는 태하 일행을 데리고 304호실로 들어갔다.

304호는 슈퍼컴퓨터가 기역자로 늘어서 있었고 바로 옆방으로 통하는 문이 트여 있었다.

“여기서 컴퓨터로 시뮬레이션을 돌리고 바로 옆방에서는 DNA 분석을 해요. 놈들이 만든 키메라들을 잡아서 분석하는 거죠.”

“키메라! 아수라 길드의 작품을 말하는 겁니까?”

“네, 맞아요. 놈들이 만든 키메라의 유전자 구조를 분석하고 그들을 추적하고 있는 거죠.”

“유전자분석에 대한 성과는 좀 나왔습니까?”

“성과는 항상 나오죠. 다만, 저놈들이 워낙 방대한 양의 DNA 구조를 바탕으로 마구잡이식 키메라를 만들고 있어서 문제죠.”

“마구잡이식 키메라? 그게 뭡니까?”

“얼마 전 있었던 몬스터 창궐 사건을 기억하시나요? 숙주를 잡아먹고 스스로 그 인간이 되었던 것들 말이에요.”

끔찍했던 인간 복제 몬스터를 기억하지 못할 리가 없다. 거기서 로드리고를 만나지 않았던가.

로드리고는 키메라에 대해 누구보다 깊이 조사했다고 자부하는바, 당연히 큰 관심을 보였다.

“그 끔찍한 사건 뒤로 무슨 일이 있었던 건가?”

“전 세계 인구의 1/10 정도가 놈들에게 죽어 나갔던 것으로 기억해요. 어쩌면 그보다 더 될 수도 있고요. 하지만 문제는 단순히 희생자가 많았다는 것만이 아니라는 거죠.”

“사람이 죽는 것보다 더 심각한 문제도 있나?”

“6억 명이 넘는 사람들의 유전자 정보를 빼돌려서 축적했고, 그를 바탕으로 키메라 실험은 물론이고 각성 실험까지 하고 있다는 게 문제죠.”

“……각성 실험? 인간의 힘으로 각성자를 만들어 낸다는 건가?!”

“그런 셈이죠. 지금까지는 성좌, 혹은 바벨탑의 힘으로만 각성이 이뤄진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그게 아니었던 거예요.”

“그럼 유전자 정보 안에 답이 들어 있었다, 뭐 그런 건가?”

그녀는 로드리고와 동료들에게 네 장 정도 되는 보고서 형식의 문건을 건네주었다.

보고서 안에는 ‘유전자 증폭’에 대한 연구라는 제목이 붙어 있었다.

“이계 방사선에 대해서 들어 보셨어요?”

“던전에서 나오는 방사선 말인가?”

“그래요. 그 이계 방사선에 피폭되지 않기 위해서 광부들이나 헌터들은 방사선 억제 장치를 착용한 채로 던전에 오르게 되죠. 이 방사선이 체내에 축적되면 암이나 기타 심각한 병증을 유발한다고 알려져 있잖아요.”

“그래서 억제 장치를 구매하려 수많은 사람들이 돈을 들고 장비상을 찾아가는 거잖아.”

“하지만 이런 생각을 해 본 적은 없어요? 이 방사선이 정말로 인체에 유해한 것일까? 그렇다면 왜 유해한 것일까?”

“흠…….”

“우리 세이렌은 이에 대한 실험을 6개월 동안 진행한 적이 있는데, 그 실험에서 이런 데이터가 나왔어요. 방사선에 3개월째 피폭되면 암, 혹은 기타 중증 질환과 비슷한 현상을 보이게 된다고요. 하지만 거기서 다시 3개월이 지나면 각성을 하게 됩니다. 그와 함께 사람을 아프게 했던 질환은 사라지게 되죠. 일종의 환골탈태와 함께 말입니다.”

“……허어?!”

“한마디로 이계 방사선이라는 것은 사람을 개조시키기 위해 유전자 증폭이라는 일종의 패시브를 퍼트리고 있었던 거예요. 아수라 연구소는 이 사실을 이미 오래 전에 알아냈고, 그에 대한 실험을 통해 던전 밖에서의 각성까지도 연구했었던 거죠. 그리고 그 연구를 통해서 어쩌면 몬스터와 인간을 보다 강력하게 만들 수 있고, 심지어는 몬스터를 던전 밖으로 끌어낼 수 있다는 것도 알아낸 것이고요.”

“던전 밖으로 몬스터를 끌어낸다? 일전에 있었던 남산 사태, 혹은 좀비 사태와 같은 것들 말인가?”

“맞아요. 모두가 생각하고 있는 화이트홀, 사실은 그게 화이트홀이 아니라 던전에서 나오는 물질을 이용한 일종의 포털 마법이었던 거예요. 인간은 화이트홀을 만들어 낼 수 없어요. 그건 신의 영역이나 마찬가지거든요.”

“마법은 사용이 가능한 소수의 인간들만 사용할 수 있는 것 아니었나?”

“맞아요. 하지만 유전자조작을 통해서 포털 마법만 빼내서 사용할 수 있는 일종의 약물과 장비를 개발해 낸 거죠.”

“허어!”

“이 세상에는 기상천외한 일이 많이 벌어져요. 하지만 이놈들의 경우엔 그 정도를 지나쳤다고 볼 수 있겠죠.”

놀라운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인간이 인간의 유전자를 복사해서 무기화를 시킬 수 있다니, 경악을 금치 못할 일이었다.

한나는 이 사건과 어머니가 어떤 관련이 있었는지 궁금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다면 우리 엄마는 어째서 제거를 당한 건가요?”

“그에 대해서는 우리도 할 말이 별로 없어. 왜냐, 금성탑 자체가 원래는 던전을 없애기 위해 조직된 집단이기 때문이지.”

“……마왕을 숭배하는 놈들과 금성탑이 사실은 한통속이었다고요?”

“맞아. 믿기 힘들겠지만 사실이야. 우리 자매들은 모두 DNA 조작이 된 주사를 맞았고, 그로 인해 증폭된 드래곤의 본능 같은 것을 이식받았지. 그리고 최초로 빛의 마법을 사용했던 것으로 전해지는 광명조사 로널드 맥킨의 DNA를 통해 얻은 슈퍼 유전자를 이식받은 거야.”

“마, 말도 안 돼!”

“한나, 당신은 절대 자질이 뛰어나지 않다거나 재능이 없는 게 아니야. 그저 로널드 맥킨과 드래곤의 DNA와 맞지 않았던 것뿐이지.”

지금까지 자신이 믿어 왔던 모든 것을 부정당한 한나는 그야말로 그로기에 빠지고 말았다.

그녀의 동료들은 다리에 힘이 풀리고 만 한나를 부축해 주었다.

“……믿을 수 없어!”

“하지만 모든 것은 사실이야. 당신의 어머니이신 순백의 여전사께서는 금성탑의 비리 때문에 돌아가신 것이 아니라 탑의 명령에 불복했기 때문에 돌아가신 거고. 이 충격적인 사실을 어머니께서도 알고 계셨던 거지.”

“그래서 항명을 할 수밖에 없었던…….”

“맞아. 교단에서는 어머니의 시신을 회수해서 아예 DNA를 채취할 수도 없게 만든 후, 한나 자매를 금성탑의 충직한 부하로 키우려 했던 거야. 나 역시 거기에 반항하려 비밀리에 당신을 바벨탑으로 보낸 것이고.”

충격적인 얘기가 이어지니 더 이상 버티기 힘들 정도가 되어 버렸다.

허나 한나는 끝까지 그녀의 얘기를 듣고 있었다.

황유나는 이제 헬창스가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지, 그리고 금성탑은 어떻게 쳐부술지 얘기해 주었다.

“금성탑을 무너뜨리지 않는 한, 마왕을 부활시키려는 놈들은 판을 칠 겁니다. 여러분들은 무슨 수를 써서라도 금성탑을 해치워야 하는 거고, 우리는 그 대의에 힘을 실어 주고 싶습니다. 이 목숨 다하더라도 말이죠.”

“하지만 금성탑은 우리가 해치우기엔 너무 강력한 세력이잖습니까.”

“맞아요. 금성탑은 수많은 재벌과 정치인들의 비호를 받고 있으니까요. 하지만 언제까지나 저들을 그냥 내버려 둘 수는 없어요. 그 세력은 계속 커지고 말 테니까.”

“흠.”

“명심하세요. 우리가 발전하고 있는 동안 적도 똑같이 발전하고 있습니다. 적이 우리보다 세력이 강성하다는 것을 잊지 마시고 한시라도 빨리 대업을 이룰 수 있도록 하시는 것이 좋을 겁니다. 그래야 던전 100층을 돌파해서 적들의 의지를 꺾어 버릴 수 있죠.”

결국 던전 100층 진입을 위해서는 금성탑을 무너뜨릴 수밖에 없다는 소리였다.

허나 태하는 오히려 그 반대라고 생각했다.

“우선 100층을 돌파하는 것이 급선무라고 봅니다. 그래야 우리에게도 적들을 해치울 수 있는 아군이 생길 것이거든요.”

“아군?”

“용족 말입니다.”

웜급 드래곤과 에이션트급 드래곤의 격차는 하늘과 땅 차이다.

95층부터 나타나는 것으로 알려진 레전드급 드래곤은 에이션트급보다도 높은 전투력을 갖고 있다고 알려져 있으니, 만약 태하가 그들을 제압하기만 한다면 금성탑을 부수는 건 시간문제일 것이다.

“용족을 아군으로……?”

“벌써 웜급 드래곤들이 아군으로 돌아섰습니다. 그들과 에이션트급 드래곤을 무찌를 수 있겠죠.”

“둘 사이에는 하늘과 땅 차이의 격차가 존재할 텐데요?”

“괜찮습니다. 우리에게는 헬스가 있거든요.”

“……뭐가 있다고요?”

“점진적 과부하 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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