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5 금성탑의 실체(1)
금빛 오러를 머금은 금성탑 전투사제들의 무기에서는 강렬한 살기 같은 것이 뿜어져 나오는 것 같았다.
“사제라는 말이 무색할 정도로군.”
전투사제들의 숫자는 총 320명, 머릿수만으로도 차이가 나는데 이곳은 전투사제들이 실제로 훈련을 하는 단련장이었다.
한마디로 남의 홈그라운드에서 다구리를 맞게 생긴 셈이었다.
“다구리는 내 취향은 절대 아닌데.”
“옵니다!”
헬스하운드에게 달려드는 전투사제들, 그들의 무기 앞부분은 점점 진한 황금빛으로 물들어서 어느 순간에는 순백색의 이기가 생겨나기 시작했다.
순백의 이기는 공간의 일그러짐마저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렬한 기운을 뿜어냈다.
저것에 맞으면 제아무리 태하라도 성치 못할 것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방어진을 단단히 갖춥시다!”
“첫 번째 공격이에요!”
순간, 12개의 무기가 태하의 온몸 구석구석을 노리며 들어왔다.
태하는 접근전에서는 얼마든지 적의 공격을 막아 낼 자신이 있었기에 원판에 어깨를 딱 붙인 채로 방어진을 펼쳤다.
“와라!”
“……신의 은총을!”
비록 연구원을 가장하기는 했어도 꾸준히 수련을 해 온 것인지, 그들의 완력은 태하마저도 간신히 버텨 낼 정도로 강력했다.
쿠우웅!
순간, 지각이 울리는 듯한 느낌이 든다.
“……대단한데?!”
“헌터님, 또 와요!”
“제기랄!”
전투사제들은 단순히 힘만 센 것이 아니었다.
그들은 인간의 시력으로는 도저히 따라갈 수 없을 정도로 날렵한 움직임을 보여 주고 있었던 것이다.
쉬이이이익!
연타로 태하를 두들겨 패겠다고 달려드는 전투사제들.
아무래도 방어만으로는 이놈들을 이길 수 없겠다는 계산이 태하의 머릿속에서 본능적으로 이뤄졌다.
‘맞지 않더라도 괜찮아. 찰나의 틈을 만들어 낼 수 있다면, 내가 이 싸움을 유리하게 이끌어 나갈 수 있다!’
럭키펀치를 바라는 주먹질이 아닌, 그저 빈틈을 만들어 내기 위한 마구잡이식 휘두르기 공격이 자행되었다.
부우웅!
태하의 묵직한 펀치가 스치고 지나가자, 전투사제들은 화들짝 놀라서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섰다.
아무리 유리한 고지에서 싸우고 있다고 하더라도 움찔거림을 느낄 정도의 공격이 스치고 지나갔다는 것은 긴장감을 느끼게 하기엔 충분한 일이었다.
‘됐다!’
태하의 바람대로 놈들의 신형을 뒤로 물러나게 만들었다.
이제부터는 조금 더 새로운 방법으로 공략법을 찾아낼 수 있을 듯했다.
“근딜러! 앞으로 나갑시다!”
“아뵤옷!”
유신성은 50개의 분신을 만들어 내더니 이내 여의봉을 마구잡이로 휘두르며 적을 압박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그 양옆을 영수와 성일이 든든히 받쳐 주고 있었다.
그야말로 인해전술이라는 말이 떠오를 정도로 무식하게 불어난 유신성에게로 320명의 전투사제들이 떼로 달려들었다.
“막아라!”
“아뵤오오오옷!”
그야말로 신묘한 움직임, 마치 뱀처럼 이리저리 공격을 피해 가며 여의봉을 휘두르는 유신성의 활약은 눈부심 그 자체였다.
허나 그보다 더 신난 사람이 있었으니, 바로 ‘흑화’ 성일이었다.
성일은 복싱을 베이스로 한 타격계 중심의 공격 방식을 채택한 근딜러인데, 그의 탄탄한 몸에서는 검은색 소용돌이가 발생되어 적을 공격했다.
[패시브 : 흑화의 소용돌이]
[‘흑화’의 각성 보너스 스킬]
[적에게 공격이 10회 적중할 때마다 흑화의 소용돌이가 한 겹씩 중첩됩니다]
[소용돌이 1차 추가 시 : 적의 행동 둔화 20%]
[소용돌이 2차 추가 시 : 초당 HP15 스틸]
[소용돌이 3차 추가 시 : 적 끌어당김]
[소용돌이 4차 추가 시 : 적에 대해 초당 15회의 다단히트 피해]
[소용돌이 5차 추가 시 : 시전자의 이동 및 공격. 스킬 사용 속도 15% 증가]
[소용돌이 6차 추가 시부터 X 2의 추가 효과 부여]
“으하하하! 죽어라!”
까가가가강!
흑화의 소용돌이는 주변의 적들을 끌어당긴 후에 둔화시키고 다단히트까지 날려, 그야말로 전장을 아수라장으로 만들고 있었다.
성일은 군중 제어기는 물론이고 라이프 스틸에 스스로 버프까지 걸고 있었기 때문에 탱킹과 강력한 홀딩까지 알아서 해 주고 있었다.
한마디로 완벽한 근딜의 표상이라 할 수 있었던 것이다.
“대단하군! 저 정도 공격력이라면 어지간한 S급 헌터들은 명함도 못 내밀겠어요!”
“역시. 복싱 체육관에 보낸 보람이 있어.”
만약 흑화의 소용돌이만으로 적들과 싸웠다면 성일은 단순히 적을 끌어당기고 라이프만을 스틸하는 정도의 CC기 셔틀로 전락했을 수도 있었다.
허나 성일은 자신만의 공격 방식과 최적화할 수 있는 복싱을 베이스로 하여 거의 완벽에 가까운 전투를 펼칠 수 있게 된 것이었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성일은 점진적 과부하 스킬과 대사형의 오러에 대한 버프를 적용받고 있었기 때문에 일반 헌터들은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로 강력해져 있었다.
태하는 이 기세를 몰아서 적들을 끝까지 밀어붙이기로 했다.
“원딜들, 조금만 더 힘냅시다!”
“오오오!”
저돌적으로 밀어붙이는 근딜에 이어서 원딜들이 꾸준히 강력한 딜링을 선사해 주고 있었기 때문에 전체적으로 아주 만족스러운 전투가 펼쳐질 수 있었다.
허나 적들도 이대로 당해 주고만 있지는 않았다.
스스스스……!
순간, 눈이 금빛으로 물들면서 온몸에서 금색 오러를 뿜어내기 시작하는 전투사제들.
태하는 그들이 뭔가 필살기를 준비하나 싶었기에 잠시 공격을 멈추고 뒤로 한 발자국 물러서기로 했다.
“잠깐! 타임, 저놈들이 뭔가 대단한 걸 준비하는 것 같아요! 한나 씨, 저게 뭔가요?”
“……글쎄요. 나도 처음 보는 거라 뭐가 뭔지 잘 모르겠어요.”
금성탑에서 꽤 오래도록 살아온 한나조차 저것이 무엇인지 잘 모를 정도라면, 저들은 이곳에서 뭔가 새로운 것을 개발해 낸 것인지도 몰랐다.
태하는 조심스럽게 적의 행동을 살피며 방어진을 더욱 단단히 굳혔다.
“근딜들, 방어진을 더욱 탄탄하게 잡아 주세요!”
“넵!”
헬창스가 전방을 주시하고 있는 가운데, 놀라운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금빛으로 물들기 시작했던 전투사제들의 몸이 이내 부풀어 오르더니, 금색 비늘이 뒤덮인 괴물의 모습으로 변해 버린 것이었다.
-크아아앙!
“……어? 이 소리는 드래곤의 포효 아닌가요?”
“드, 드래곤?!”
지금까지 드래곤과 끝도 없이 싸워 왔던 터라 헬창스는 인이 배 버려 그 울음소리만 들어도 분간이 가능할 정도가 되었다.
그런데 그 소리가 사람에게서 나니 황당하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사람이 드래곤의 울음소리를……? 저런 스킬도 다 있나?”
“뭐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저것들은 사람이 아니에요. 고로 살려 둘 필요가 없다는 거죠.”
“흠. 그렇다곤 해도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볼 필요는 있지 않겠어요?”
태하는 적의 앞에 홍이를 소환했다.
퍼엉!
“짜잔!”
“홍아, 아르네시아를 소환해 줘!”
“응, 알겠어!”
홍이는 곧장 아르네시아를 적의 앞에 소환해 주었다.
이제는 슬슬 다부진 티가 나기 시작한 아르네시아가 함성을 내질렀다.
“으아아아앗! 헬창스, 파이팅!”
“흠, 너도 이제 슬슬 미쳐 가는구나.”
“형님! 저를 부르시다니, 영광입니다!”
“아르네시아, 저놈들을 좀 봐. 드래곤인가, 인간인가. 분간이 가지 않아서 말이야.”
아르네시아는 이내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사람은 아닌데요? 헌데 그렇다고 드래곤도 아니고요. 반인반수, 이도 저도 아닌 놈들인 겁니다.”
“이도 저도 아닌 놈들이라?”
“제 생각에는 하프 드래곤쯤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순간, 태하의 뇌리로 유시연이 했던 말이 스치고 지나갔다.
알 상태의 드래곤을 부화시켜 DNA를 채취했고, 그것을 가지고 유전자조작에 성공했다는 루머는 단순히 뜬소문이 아니었던 것이다.
“……인간이 만든 드래곤이다.”
“인간이 드래곤을 만들어요? 허어, 그게 가능한 일일까요?”
“아무튼 간에 저것들을 잡아서 어떻게 된 것인지 알아봐야겠어. 저놈들 중 몇 명을 포획할 만한 방법이 있을까?”
“생포는 힘들겠지만 유전자 샘플을 채취하는 건 가능하지요. 제가 잡아먹으면 되거든요.”
“잡아먹어……? 괜히 이상한 일이 생기는 거 아니야?”
“드래곤은 소의 위장처럼 소화기관이 6개로 이뤄져 있습니다. 그래서 먹는다고 해서 그것이 바로 소화가 되는 것이 아니라 제가 하고 싶을 때 소화를 시킬 수 있도록 되어 있죠.”
“오호, 그것 참 편리한 기능이로군.”
“그럼 좀 먹겠습니다!”
아르네시아는 드래곤으로 변신한 후, 적들을 향해 달려들기 시작했다.
-크르르르릉!
-……카아아앙!
인간과 드래곤이 싸우는데 마치 드래곤과 드래곤이 골육상잔을 벌이는 듯한 착각이 들었다.
그런 말도 안 되는 싸움은 그다지 길지 않았다.
“갑시다! 아르네시아를 도와서 저놈들을 쓸어버리자고요!”
“오오오!”
헬창스는 태하를 필두로 320마리의 혼종들을 쓸어버리기 위해 전진했다.
근딜들은 적을 압박하여 점점 구석으로 몰아넣고 있었고 원딜들은 그 뒤통수에 공격을 퍼붓고 있었기 때문에 그야말로 정신을 차리지 못한 채 흔들리고 있었다.
그 틈을 타고 아르네시아의 입이 적들을 하나씩 집어삼키기 시작했다.
-크아아악!
우드드득!
뼈가 부서지고 근육이 뒤틀리는 끔찍한 소리가 들려왔으나, 헬창스는 공격을 멈추지 않았다.
이들이 금성탑이라는 탈을 쓰고 과연 무슨 짓을 벌이고 있는 것인지 알아내기 위해서였다.
그런 일념 하나로 싸우다 보니 320명이라는 적들은 어느새 절반으로 줄어 있었다.
“드래곤 하나 끼었다고 일이 이렇게 쉽게 풀리다니.”
-헤헷, 별말씀을요! 그나저나 형님, 이놈들을 어디로 데리고 갈 생각이십니까?
“한나 씨의 친구 중에 해부학 전문가가 있대. 그 사람에게로 데리고 갈 거야. 그러니 빠짐없이 먹어 치우라고.”
-크흐흐, 감사합니다! 오랜만에 포식을 하네요!
아르네시아는 아주 만족스러운 식사를 함에 행복감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잉!
어디선가 강렬한 황금빛 줄기가 내려오더니, 이내 금빛 화염으로 변하여 사방으로 퍼져 나가기 시작했다.
화르르륵!
태하는 지금까지 살면서 자신이 본 범위 마법 중에서 단연 최고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그만큼 화려하고 강력한 마법이 60명의 전투사제들을 쓸어버린 것이었다.
이윽고 하늘에서는 금빛 드레스를 입은 여자가 내려왔다.
그 모습은 마치 설화에 나오는 선녀가 인간계로 왕림하는 것 같았다.
“황금성녀……?!”
“여러분들께서 저보다 먼저 이곳에 도착하셨을 줄은 몰랐네요. 아무튼 악의 화신들을 쓸어버려 주시니, 어찌 감사를 드려야 할지 모르겠군요.”
황금성녀는 한나를 처음 던전으로 보냈던 장본인이다. 한나는 그녀를 보자마자 이를 갈며 앞으로 나섰다.
“……황금성녀님!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죠?! 어째서 금성탑의 사제들이 적과 내통하고 드래곤으로 변신까지 할 수 있었죠?!”
“그래, 자매여. 흥분하는 것도 이해를 못 하는 건 아니야. 하지만 이 사건은 생각보다 복잡한 사연이 있어. 그걸 듣고 화를 내도 늦지는 않다고 생각되는데?”
“좋아요……. 한번 들어 보죠!”
눈물까지 글썽거리는 한나의 곁으로 다가온 희란은 그녀를 꼭 껴안아 주었다. 그러자 덜덜 떨려 오던 한나의 몸도 어느샌가 진정이 되었다.
윤정은 가까스로 진정된 한나를 대신해서 말했다.
“우리는 금성탑이 갖고 있는 모든 진실에 대해 알기를 원합니다. 진실을 밝히지 않는다면 우리 헬창스, 더 나아가서는 탑의 수호자들도 가만히 있지 않을 거예요.”
그녀의 말에 태하와 탑의 수호자들이 잔뜩 찌푸린 얼굴을 하고 앞으로 나섰다.
황유나는 태하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럼 이렇게 하죠. 당신이 생각하는 그 전문가, 나와 함께 찾아가도록 해요. 안 그래도 그녀와 약속을 잡아 둔 참이었거든요.”
“나미라 씨 말입니까?”
“지금 그녀가 기다리고 있어요. 저와 함께 폴란드로 가시죠.”
“……폴란드요?”
“금성탑에서 그녀를 사살하기 위해 암살자를 보냈어요. 그래서 제가 폴란드로 그녀를 빼돌려 두었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