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44 우리 용이 철들었네요!(2)
호주 캔버라에 위치한 드래곤 연구소는 ‘DD컴퍼니’라는 이름으로 운영이 되고 있었다.
사람들은 이곳이 줄기세포를 연구하는 곳이고 대체 장기라든지 화장품을 만드는 곳으로 알고 있었다.
“지상이 2층, 지하는 없다고 나와 있네요?”
“지적도상으로 봤을 때에는 그저 단순히 화장품만 만들어서 파는 것처럼 보이네요. 줄기세포 실험도 이제 더 이상 하지 않는다고 나와 있고요.”
이 세상에는 위장 회사, 그러니까 실제로는 존재하지 않는 페이퍼컴퍼니가 무수히 존재한다.
이런 회사들은 거의 대부분 탈세와 자금 세탁에 동원되곤 하는데, 때로는 재벌들의 비자금 창구로 사용되는 경우도 왕왕 있다.
거의 대부분은 회사의 등기만 존재하고 텅 빈 건물에 회사가 세워지곤 하는데, 이처럼 버젓이 영업을 하면서 뒤로는 이상한 짓을 꾸미는 경우도 있다.
“예전에 미국이 중국의 차이나 머니에 당해서 역합병으로 건실한 기업들을 마구 잃었을 때가 있었죠. 그 당시에는 미국의 잘못이니, 중국의 잘못이니 말이 많았는데. 지금 보니 회사를 위장시켜서 이상한 짓을 하는 건 어느 나라나 존재하는 것이었네요.”
“음, 일단 저 안으로 데스벳부터 좀 침투시켜 볼까요?”
“그나저나 안 들키겠어요? 데스벳이 아무리 쓸모가 많다곤 해도 경비에 걸리지 않을까요?”
“후후, 다 방법이 있죠.”
태하는 점멸을 이용해서 건물과 건물 사이를 날아다니며 DD컴퍼니의 옥상에 닿았다.
파아아앗!
순식간에 점멸로 거리를 좁히는 태하의 이동 방식은 그야말로 홍길동이 축지법을 쓰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이윽고 태하는 환풍구 안으로 까만 가루 같은 것을 흘려보냈다.
스르르……!
“이게 뭐예요?”
“데스벳이요.”
“데스벳? 이 가루들이요?”
“데스벳은 자신의 몸을 자유자재로 늘였다가 줄일 수 있어요. 그리고 원한다면 이처럼 가루의 형태로 자신을 쪼갤 수도 있고요.”
“허어, 신기하네요!”
“그러다가 상황이 여의치 않으면 사람을 기절시킬 겁니다. 그러곤 그 뇌 안으로 들어가서 잠복해 있다가 결정적인 순간에 밖으로 빠져나올 수도 있고요.”
“그런 대단한 능력이 있는 줄은 미처 몰랐네요. 얘네들, 정말 효자가 따로 없어요.”
“내 생각에도 그래요.”
태하와 작전을 함께하는 윤정은 혹시나 상황이 잘못될 때에 대비해서 초소형 로봇도 함께 잠입시키기로 했다.
지이이잉!
마이크로 송신기가 부착된 로봇은 드론처럼 조종할 수 있지만, AI가 장착되어 있기 때문에 알아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아낼 것이었다.
“지상에서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수색할 수 있도록 코딩이 되어 있어요. 하지만 만약 놈들이 이상한 낌새라도 챈다면 끝이에요!”
“만약 일이 그렇게 된다면 데스벳이 로봇을 먹어 치우면 되죠. 데스벳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탈출할 수 있으니 안심해도 될 것이고요.”
“흠, 그래요. 그럼 저 박쥐들을 한번 믿어 보도록 하죠.”
이 작은 녀석들이 과연 이번 작전에서 어떤 성과를 만들어 낼지, 태하와 윤정은 숨죽이며 지켜보았다.
***
회사 안으로 들어와 천장에 바짝 붙어서 비행하고 있는 데스벳.
녀석들은 지하로 내려가는 길을 찾기 위해서 건물 전체를 하나도 빠짐없이 뒤졌다.
허나 어떻게 된 일인지 아무런 이상도 감지할 수 없었다.
-끼리이잇…….
짐짓 심각한 표정이 되어 버린 녀석들.
그러다가 한 녀석이 지적도상에는 나와 있지 않은 의문의 창고를 찾아냈다.
“오호, 지적도상에는 없었던 거야. 이야, 꼼꼼한데?!”
-끼릿!
신난다는 듯 창고로 들어간 데스벳들은 방의 이곳저곳을 살피며 혹시라도 빈틈이 있는지 탐색해 보았다.
이곳저곳에 몸을 비비적거리고 때로는 박치기를 해 가면서 충격을 주기도 했다.
그러다가 한 녀석이 실수로 형광등을 들이받아 버렸다.
“헛! 깨지겠어!”
태하는 녀석들의 비행을 지켜보다 그만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줄 알았다.
허나 실수는 또 다른 기회를 만들어 냈다.
끼이이익!
튼튼하게 자리 잡고 있던 옹벽은 마치 스위치를 누른 듯, 자동으로 쭉 밀려 들어가 버렸다.
“찾았다! 얘들아, 그 안쪽으로 들어가!”
-끼릿!
데스벳들은 조심스럽게 밀실 안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행여나 이곳에 방범 센서라든지 부비트랩 같은 것이라도 있으면 큰일이기에 최대한 조심스럽게 접근했다.
헌데 이곳에는 딱히 이렇다 할 방범 장치는 되어 있지 않은 모양이었다.
“무슨 깡다구로 이런 밀실에 트랩 하나 없는 거지?”
“이미 1차로 밀실을 구성해 두었잖아요. 뭐랄까, 일종의 자신감 같은 거 아닐까요?”
“외부에서 침입자가 들어오지 않는 이상, 이곳을 찾기란 쉽지 않기는 하겠네요.”
방범 장치를 하지 않은 것은 그럴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데스벳들은 계속해서 밀실 안쪽으로 날아갔다.
그러다가 녀석들은 이곳저곳에 쇠창살이 가득한 밀실을 발견해 냈다.
“무기들이…….”
“어? 저건 신성 무구 아닌가요?”
전투사제들은 거대한 십자가 모양의 둔기를 주로 사용하는데, 더러는 아주 거대한 낫을 휘두르는 사제들도 있다.
이 무구들에는 한 가지 공통된 특징이 존재하는데, 그것은 바로 성스러운 표식이었다.
“신성 무구에는 금색 망치가 새겨져 있죠?”
“……네, 맞아요. 듣기로는 금성탑에서 신성력으로 새겨 넣는 것이라고 하던데. 그래서 지워지지 않는 금색의 문양이 남는 것이라고요.”
“뭐야, 그럼 이곳은 금성탑이랑 관계가 있다는 거네요?”
“어쩌면 이 실험실 자체를 금성탑이 운영하고 있는 것인지도 모르죠.”
자세한 것은 알 수 없으나, 실험실이 비정상적으로 운영되고 있다는 것쯤은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이윽고 데스벳들은 병기창을 지나 다시 한번 복도를 따라 날아가기 시작했다.
길이가 제법 길어서 날아가는 것만 해도 5분이 넘게 걸릴 정도였다.
그렇게 얼마나 날았을까, 저 멀리에 ‘출입 엄금’이라는 푯말이 보였다. 데스벳들은 이쯤에서 다시 가루로 변했다.
스스스스스!
“어쩌려는 걸까요?”
“아마 바람을 타려는 것이겠죠?”
“바람이요?”
이런 지하 시설은 환기 시스템이 구축되어 있지 않는 한 사람이 오래 머물 수가 없다.
만약 사람을 혹사시켜 일을 시킬 것이 아니라고 한다면 충분히 공기가 순환되고 먼지나 불순물을 걸러 주는 필터를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라고 할 수 있었다.
데스벳들은 오랜 수색 경험으로부터 그런 노하우를 터득했고, 자신들이 아는 가장 자연스러운 방법으로 침투를 수행하고 있었던 것이다.
가루로 변해 순환 시스템에 올라탄 데스벳들은 바람의 흐름을 따라서 빠르게 이동했다.
공기는 실험실 바닥을 통해 바깥으로 배출되도록 되어 있었는데, 데스벳들은 그 중간에 하차해서 실험실 안에 안착할 수 있었다.
끼리리리릭!
-끼릿!
“우와, 진짜로 성공했네!”
“저 녀석들, 이제는 아주 프로가 다 되었네요.”
“그나저나 이 실험실 말이에요. 규모가 상당한 것 같죠?”
“적어도 1,500평 이상은 되는 것 같아요. 어쩌면 이런 실험실이 지하로 더 이어져 있을지도 모르고요.”
도대체 캔버라 지하에 이런 시설은 어떻게 만든 것인지 의문이 들 정도로 넓은 공간.
태하는 그 공간을 샅샅이 뒤지라고 지시했다. 데스벳들은 태하의 지시에 따라서 넓게 산개하여 사방을 살폈다.
잠시 후, 태하의 눈에는 놀라운 광경이 펼쳐져 있었다.
-후욱, 후욱……!
아직도 살아서 숨을 쉬고 있는 새끼 용이 수족관 안에 들어가 간신히 영양소를 공급받으며 연명하고 있었던 것이다.
“……유전자 정보를 빼내고 실험을 거듭하고 있는 모양인데요?”
“악독한 놈들! 드래곤은 지성체잖아요. 인간을 가둬 놓고 악독한 실험을 자행하는 것과 별반 다를 게 없다고요!”
윤정이 화를 내는 것도 무리는 아니었다.
헬창 드래곤즈의 모습을 보면 보통의 인간과 다를 바가 없었고, 심지어는 그 생각의 깊이가 때론 인간을 가볍게 뛰어넘을 때도 많았기 때문이다.
태하는 이곳에서 드래곤을 빼내는 것이 급선무라고 생각했다.
“우선 이곳 실험실에 우리도 잠입하는 것이 좋겠어요.”
“싸움이 벌어진다면 어쩌죠?”
“싸워야죠. 저런 쓰레기들을 살려 줘 봤자 또다시 쓰레기 짓밖에 더 하겠어요?”
“……좋아요. 전면전을 벌여야 한다면 그렇게 해 보자고요.”
데스벳을 곳곳에 심어 놓은 후 태하는 동료들이 있는 곳으로 향했다.
그는 실험실에서 본 것을 그대로 말해 주었고 헬창스는 더 이상 이곳을 가만히 놔둘 수 없다는 의견 일치를 보였다.
“돌파합시다.”
“하지만 너무 소란스럽게 돌파를 해 버리면 저 안에 있는 많은 전투사제들과 싸워야 할 겁니다.”
한나의 표정은 아까부터 이미 무너져 있었지만, 전투사제들과 싸워야 한다는 말을 듣자 더더욱 침울해졌다.
지금까지 자신이 몸담고 있었던 금성탑이 어쩌면 악의 축 중에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니 가슴이 답답해진 것이었다.
태하는 그녀의 어깨를 토닥여 주었다.
“잘못을 바로잡는 겁니다. 만약 금성탑이 뿌리부터 썩어 있다면 당신이 그 뿌리부터 바꿔 주면 되는 거잖아요?”
“……맞아요. 뿌리부터 바꿀 거예요!”
처음에는 어머니의 복수로 시작했으나, 이제는 금성탑이라는 한나의 고향을 정화시키는 일로 변해 가고 있었다.
일행들은 총 네 갈래로 갈라져 각자 맡은 구역의 전투사제들을 해치우기로 했다.
두 팀은 환풍구, 한 팀은 지하 수로, 나머지 한 팀은 정면을 담당하기로 했다.
정면은 태하가 맡기로 했는데, 최대한 어그로를 끌어 줘야 하기 때문에 적들을 황당하게 만드는 것이 목표였다.
태하는 일단 웃통부터 까고 시작했다.
훌러덩 옷을 벗은 태하가 한나, 용팔과 함께 정문으로 들어섰다.
경비원은 황당하다는 듯이 태하를 쳐다보며 물었다.
“뭡니까? 공공장소에서 옷을 벗는 행위는 좀 자제를 하는 편이 좋지 않겠어요?”
“미스터 올림피아인데, 몰라보시네요.”
“……그렇습니까? 제가 보디빌딩은 별로 안 좋아해서요. 아무튼 나가 주셨으면 합니다만.”
“그렇게는 못 할 것 같은데요?”
“뭐요……?”
아무리 페이퍼컴퍼니라도 웬 미친놈이 쳐들어와서 홀딱쇼를 하는 걸 반기는 회사는 없을 것이다.
경비원은 자연스럽게 자기의 할 일을 하려는데, 태하는 그의 목덜미를 손으로 꽉 움켜쥐었다.
“커, 커허어어억!”
“사장 나오라고 그래. 씨발, 내가 오늘 아주 칼춤을 좀 춰 줘야겠으니 말이야!”
난데없이 사람의 목을 조르니 사방팔방에서 경비원들이 우르르 몰려나오기 시작했다.
아무리 적게 잡아도 200명은 될 법한 경비원들.
이곳은 캔버라 한가운데에 있고 일반적인 회사라고 등기를 냈으니 200명의 경비 병력은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되는 숫자였다.
“아주 작정을 하고 있었네. 자기들이 위험한 실험을 자행하고 있다는 것을 시인하는 셈이야. 안 그래요?”
“……뭐가 어떻게 되었든 간에 나는 이놈들을 좀 쓸어버려야겠어요!”
한나는 오우거의 돌망치를 들고 미친 듯이 돌격했다.
마치 팽이가 도는 듯, 빙글빙글 도는 그녀의 모습은 압도적인 위압감을 뿜어냈다.
퍼버버버벅!
“크허어억!”
“……각성자?! 제기랄, 이런 미친놈들이 왜 우리 연구소에?!”
“쭉쭉 밀어 버리자고요!”
태하와 용팔은 그녀의 뒤를 따르면서 보이는 족족 적들을 쳐 내기 시작했다.
200명으로 시작했던 경비 병력은 단 5분 만에 바닥을 드러냈다.
“제, 제기랄!”
“버튼을 눌러!”
한나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버튼……?”
위이이이잉!
경비원들이 가지고 있던 버튼을 누르자 사이렌이 울리면서 연구소 전체에 두툼한 차폐막이 내려와 밀실을 만들어 버렸다.
그러곤 그 밀실 사이에서 각종 장애물들이 튀어나와 마치 인공 정글을 보는 듯한 느낌을 자아냈다.
한나는 그 모습을 보곤 충격을 금치 못했다.
그 광경은 한나가 금성탑에서 수련했던 ‘단련의 장’과 똑같이 생겼기 때문이었다.
“……확실하네요. 이것들, 금성탑의 일원들이 분명해요!”
잠시 후, 태하의 동료들이 한곳으로 다 모였다.
그들은 300명이 넘는 전투사제들을 피해 이곳까지 밀려 나온 것이었다.
“젠장! 각개격파를 했었어야 했는디! 미안혀, 대장!”
“아니요! 죽어도 같이 죽고 살아도 같이 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