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43화 (143/197)

143 우리 용이 철들었네요!(1)

다소 황당한 요구, 드래곤이 헬스를 배우겠다니. 태하는 이게 무슨 개 풀 뜯어 먹는 소리인가 싶었다.

허나 놈의 얘기를 들어 보면 아예 말이 안 되는 것은 또 아니었다.

“아니, 그러니까 폴리모프를 한 상태에서 근력을 키워 몸을 만든다면 네 본체의 신체 능력도 향상된다 이거야?”

“그런 셈이죠!”

“거참 이상하네. 폴리모프는 자유자재로 몸을 바꿀 수 있는 마법이라면서. 그럼 근육질의 몸 따위야 자유자재로 만들 수 있는 거 아닌가?”

“그렇게 생각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래요, 이해는 갑니다! 하지만 형님, 이걸 아셔야 합니다. 폴리모프는 일종의 마법입니다. 그걸로 몸을 변화시키는 것에는 한계가 있어요. 인간의 형상을 입을 수는 있지만, 그 형상까지 조절할 수는 없죠. 나이라든지 외모라든지, 심지어는 신체 능력까지도요.”

“그게……. 흐음, 뭐라 할 말이 없군.”

“용족의 힘을 쓰지 않고 오로지 인간의 신체 능력만으로 힘을 쓴다면, 사실 저는 17세 소년에 지나지 않아요. 아직 성인도 되지 않은 말라깽이죠.”

태하도 능력을 쓰면 거의 무한대로 무게를 칠 수 있지만 운동을 할 때에는 절대 그렇게 하지 않는다.

점진적 과부하를 위해서였다.

만약 그렇다면 드래곤도 여러 가지 능력을 제외한다면 근력 운동을 할 수 있지 않을까, 그것이 바로 아르네시아의 생각이었던 것이다.

“참 희한한 드래곤이네. 내가 살다 살다 보디빌딩을 하겠다는 드래곤을 만나게 될 줄이야. 정말 상상조차 못 했다.”

“부탁드립니다! 시도라도 한 번 하게 해 주세요!”

“흠. 만약 네가 시도해서 안 되는 것이라면 그대로 끝이다. 알겠지?”

“넵!”

일단 이렇게 도움을 청하는데 들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다. 게다가 이놈이 강해지면 태하도 강해지는 것이니 나쁠 것 없지 않겠는가.

그는 아르네시아를 데리고 헬스장으로 향했다.

마침 월요일이라서 수많은 헬창들이 등판을 찢어 버리겠다고 아주 난리도 아니었다.

“우리 헬스장은 보통 등을 첫날에 넣어. 왜 그런지는 잘 모르겠는데, 아무튼 그래.”

“등을 넣다니요? 그게 무슨 말입니까?”

“음, 그러니까 헬스는 이를테면 온몸을 전부 분할해서 고립시켜 하는 운동이야. 근육을 다 따로따로 훈련한다는 얘기지.”

“허어! 상당히 비효율적이네요! 근육은 연계해서 움직이는 것이 보통인데요.”

“알아. 효율적인 운동은 아니지. 사실, 생명체가 살아가는 데 필요 이상의 근육은 오히려 걸림돌이 되기 마련이야. 그래서 야생의 동물들이 굶기 시작하면 가장 먼저 근육을 소모하도록 진화가 되어 있지.”

“그럼에도 불구하고 근육을 키우는 이유는 뭔가요?”

“좋으니까.”

“……그게 다입니까?”

“뭐 다른 이유가 필요한가? 그냥 좋으니까 하는 거야. 다른 이유는 없어.”

선수가 아니고서야 일반인에게 헬스는 자기만족의 운동이다. 누가 돈을 주는 것도 아니고 밥을 주는 것도 아니다.

오로지 자신과의 약속, 도전, 목표 달성을 위해서 달려가는 것이 바로 보디빌딩이라는 종목이다.

“네가 그걸 알아야 해. 드래곤은 절대로 알 수 없는 근 성장의 성취감, 아마 너는 죽을 때까지 모를 수도 있는 느낌이지.”

“성취감이라! 하긴, 저는 살면서 그런 걸 느껴 본 적이 없습니다. 말하는 대로 즉각 다 이뤄지는데 그럴 겨를이 있을 리 없잖습니까.”

“만약, 정말 만약에 네가 보디빌딩을 할 수 있게 된다면, 그 성취감이라는 걸 내가 무럭무럭 느끼게 해 주지. 정말이야.”

“오오, 느껴 보고 싶습니다. 그리고 형님처럼 되고 싶어요!”

지금의 아르네시아는 173cm의 키에 깡마른 몸을 가진 소년에 불과하다.

아무리 강력한 힘을 가졌다고 해도 인간의 모습으로 변하면 주변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멸치’에 불과한 것이다.

저런 몸을 가지고 평생 살라고 한다면, 태하는 차라리 죽음을 택할지도 모른다.

그게 바로 헬창의 정신이니까.

“그럼 여러 말 할 것 없이 일단 해 보자. 네가 능력을 빼고 힘을 어떻게 쓸 수 있는지 알아보자고.”

“넵!”

태하는 가장 먼저 아르네시아에게 턱걸이를 시켜 보기로 했다.

힘을 가늠하는 가장 좋은 척도는 맨몸 운동을 과연 얼마나 할 수 있는가, 바로 그것일 것이다.

“턱걸이가 뭔 줄 알아?”

“네, 그럼요! 체력장 할 때 많이 한다면서요.”

“에잇, 그건 옛날얘기고. 요즘은 저렇게들 한다고. 봐 봐.”

태하는 고립관의 수많은 턱걸이 렉을 손으로 가리키며 그 아래 매달린 사람들이 어떻게 움직이는지 관찰했다.

아르네시아는 그들의 동작을 바라보며 입을 떡 벌렸다.

“어우, 저게 턱걸이라고요? 쉽지 않을 것 같은데.”

“일단 한번 해 봐.”

태하는 기본동작을 알려 주고 아르네시아가 처음부터 풀업을 할 수 있도록 보조해 주었다.

일단 첫 번째 동작은 너무 가볍게 올라갔다.

스윽.

“음……?”

“아, 죄송합니다! 능력을 써 버렸네요.”

“그냥 힘이 센 건 아니고?”

“아니요. 느낌이 달라요. 이건 아닌 것 같네요!”

“흠, 그럼 다시 한번.”

아르네시아는 정신을 집중하더니 이내 팔과 등에 힘을 주었다.

“헙!”

“어라……?”

“아, 안 올라가는데요? 꿈쩍도 안 합니다.”

“너, 뺑끼치는 거 아니야?”

“아니요! 지, 진짜로 안 올라갑니다.”

“하긴, 그게 정상이긴 하지.”

처음부터 풀업을 할 수 있는 사람은 그리 많지가 않다. 만약 생전 처음으로 풀업을 하는데 쭉쭉 올라가는 사람이 있다면, 그는 타고난 재능을 가졌다고 할 수 있다.

태하는 아르네시아에게 턱걸이 대신에 할 수 있는 운동을 알려 주기 위해 장소를 옮겼다.

바로 ‘행복관’이었다.

“우리 헬스장의 행복관은 말이지, 마니아 이외에 일반인들을 위한 장소라고 할 수 있어. 어시스트 머신은 물론이고 수많은 머신들이 자리하고 있지. 운동을 배우는 단계라면 반드시 거쳐 가야 할 곳이야.”

“우와, 무슨 기구가 상당히 많네요! 아까 거긴 죄다 무슨 역기뿐이던데요.”

“올드스쿨 보디빌딩과 뉴스쿨 보디빌딩의 차이랄까? 뭐 그렇게 볼 수 있겠지.”

“오호!”

“아무튼 오늘은 여기서 등 운동을 한번 해 보자.”

태하는 주변을 스윽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구석에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던 헬창소년단원을 불렀다.

“희수야! 잠깐 이리 와 볼래?”

“네, 코치님!”

“이 친구에게 등 운동을 좀 알려 줄 수 있어?”

“네? 제가요?”

“기본적인 거 몇 개만 알려 줘. 렛풀다운이라든지 어시스트 머신이라든지.”

“아! 그건 할 수 있죠!”

“그래, 그럼 부탁 좀 할게!”

태하는 고등학생들에게 아르네시아를 맡겨 놓았다.

그는 ‘제가 이 꼬맹이들과 무슨 운동을 합니까?’라고 반항했지만 소용이 없었다.

배우는 자세, 기본을 아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했던 것이다.

‘뭐, 그래도 내일이면 아주 몸살이 났다고 끙끙 앓겠지.’

만약 근 성장에 동반되는 근육의 미세 손상이 없다면, 아르네시아는 어차피 퇴출이다.

***

늦은 오후의 헬스장.

태하는 비지땀을 흘리며 아주 힘차게 쇠질을 하고 있었다.

“오늘도 쇠질이시네요?”

“아아, 누님!”

“우리 동생은 참 성실하기도 하지. 그렇게 근육을 키워서 누굴 잡아먹으려고?”

“잡아먹어요?”

“후후.”

그녀의 음흉한 눈빛을 보니 어째 오늘도 사람을 구워삶으려는 모양이었다.

태하는 저 불여우에게 홀리기 전에 말을 돌렸다.

“그나저나 여기까진 어쩐 일이세요? 고립관에는 고립될까 봐 오기 싫다면서요.”

“……그래도 와야 할 일이 있었으니까요. 그리고 이것도 계속 맡다 보니 제법 괜찮아지네요. 뭐랄까, 남성호르몬이 짙게 묻어 있어서 약간의 흥분을 일으킨다고 해야 하나?”

“흥분…….”

머릿속으로 음란마귀가 스쳐 지나가려던 찰나, 그녀는 태하에게 한 뭉텅이의 서류 뭉치를 건네주었다.

서류 앞부분에는 ‘드래곤의 특성’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드래곤의 특성?”

“논문이에요. 총 3,600페이지로 구성되어 있죠.”

“허어! 드래곤의 특성에 대해 연구할 수 있는 사람이 존재했었던가요? 나는 금시초문인데.”

“나도 몰랐다가 며칠 전에 알았어요. 드래곤 연구소라는 곳이 있다고 하더군요.”

“드래곤 연구소? 일반인이 어떻게 80층까지 올라간다고 드래곤을 연구한단 말인가요?”

“글쎄요. 이제부터 그걸 차근차근 알아가 봐야겠죠?”

드래곤의 특성을 연구한다는 이 사람들, 과연 정체가 무엇일까.

놀라운 것은 이들이 단순히 드래곤만 연구하는 사람들이 아니라는 것이었다.

“예전에 드래곤의 알을 훔쳐서 유전자 연구를 하는 사람들이 있다는 괴담이 퍼진 적이 있었어요. 그걸 인간에게 주입시켜서 하프 드래곤을 만든다나 뭐라나. 아무튼 간에 당시에는 그저 초등학생들이 퍼뜨리는 도시괴담으로만 간주되었는데, 이번에 드래곤에 대해서 조사하다가 그 연구소가 정말로 존재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던 거예요.”

“그렇다면 정말로 알을 훔쳐서 DNA를 추출했다는 건가요?”

“아마도 그런 것 같아요. 논문을 읽어 보면 알겠지만, 드래곤의 유전자를 추출해서 이미 실험까지 진행했다는 부분이 있어요. 실제 드래곤을 가지고 실험하지 않았다면 결코 알아낼 수 없는 것들이죠.”

헤츨링을 잡아서 와이번의 먹이로 준 놈이나 알을 훔쳐서 유전자 실험을 한 놈이나 미친놈인 것은 매한가지이다. 허나 굳이 급을 따지자면 후자가 더 미치광이에 가깝지 않나, 태하는 그런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결정적으로 이 사람들, 아수라 연구소의 후원을 받았던 것으로 드러났어요.”

“……아수라 연구소?”

“청룡방이 아수라 컴퍼니를 인수한 이후에 연구소 및 계열사에 대한 조사를 계속했었거든요. 그런데 몇몇 풀리지 않는 미스터리들이 있었죠. 차명 계좌인데, 도대체 이게 누구의 차명인지 알아낼 수 없었거든요.”

“허어!”

“아무튼 이 정보들을 바탕으로 골드 드래곤을 상대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물론, 그 전에 드래곤 연구소부터 찾아가 보는 것이 순리이겠죠?”

“물론이죠! 아수라 컴퍼니가 드래곤의 알까지 빼돌렸다니!”

“내가 아는 기본 정보로는 이들이 호주에 기거하고 있대요. 호주로 가서 놈들의 정체에 대해서 자세히 알아보고, 만약 단속이 필요하다면 무력이라도 행사해 보는 게 좋겠어요.”

“좋습니다. 그럼 헬창스 전원을 소집하도록 할게요.”

드래곤의 알을 훔쳐 왔을 정도면 예사 전투력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 아닐 것이다.

태하는 본능적으로 이번 작전에서 대규모 전투가 벌어질 것임을 예감하고 있었던 것이다.

일행들을 소집하고 드래곤 연구소에 대한 얘기를 하나도 빠짐없이 해 주었다.

그러자 일행들은 당장이라도 달려 나갈 것처럼 흥분했다.

“아수라 컴퍼니의 관계 회사라니! 당장 족쳐 버리자고요!”

“우선은 그들이 과연 어떤 관계가 있는 것인지 알아봐야 합니다. 침투하는 데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요?”

헬창스는 이미 업계에 얼굴이 많이 알려진 상태였다.

만약 이대로 연구소로 들어갔다간 단박에 싸움이 터질 게 뻔했다.

“몬스터나 기계를 이용하는 건 어때요?”

“몬스터……?”

“데스벳이라든지, 소형 자폭 로봇이라든지. 많잖아요?”

“오호, 하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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