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9 헬창 드래곤즈(1)
전격 마법이 태하의 몸통을 마구 흔들었고, 그의 신형은 위아래로 빠르게 흔들렸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태하는 바닥에 와이어를 고정시킨 채 끝까지 버티고 또 버텼다.
“난 죽지 않아!”
“태하 씨! 거의 다 되었어요!”
“……그럼 최대한 빨리!”
스스스스……!
협곡의 물이 아르네시아의 몸에 차오르더니, 이내 얼음보다 차가운 냉수가 블루 드래곤을 향해 나아갔다.
-크아아앙!
한참 전격 브레스를 쏟아 내고 있던 블루 드래곤은 곧바로 태세를 전환시킬 수밖에는 없었다.
잘못하면 자신의 몸이 축축하게 젖어 버릴 것 같았던 것이다.
-……빌어먹을!
놈은 숨을 곳이 마땅치 않다고 생각했던 모양인지, 곧바로 머리로 땅을 파고 모래 안으로 들어가려 용을 썼다.
허나 아르네시아는 그것마저도 예상하고 있었다.
-그럴 줄 알았다!
그는 마치 분수를 뿌리듯 브레스를 공중으로 약하게 분사하였고, 엄청난 양의 물이 마치 분수처럼 사방으로 퍼져 나갔다.
그러자 땅이 축축해져 블루 드래곤의 발이 묶여 버렸다.
-젠장!
-지금입니다, 외국인 형님!
“오케이!”
란돌은 극한의 냉기를 뿜어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성좌에게서 축복을 받은 란돌은 이미 인간의 한계를 극복했고, 심지어는 스스로 작은 블리자드를 만들어 낼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냉기를 습득할 수 있었다.
그의 손이 바닥에 닿자, 축축했던 바닥이 얼면서 순식간에 사막은 빙판으로 변해 버렸다.
꽈드드드득!
완전히 발이 묶여 버린 블루 드래곤은 몹시도 당황하고 말았다.
-……어떻게 인간 따위가 이 몸의 발을 묶을 수 있단 말인가?!
-아직 끝나려면 멀었다!
아르네시아는 계속해서 물줄기를 끌어당겨 자신의 몸에 축적하기 시작했다.
그리고 잠시 후, 그는 그 물을 이용해서 비를 만들어 냈다.
우르르릉……!
마른하늘이 어느새 우중충해지더니 금방이라도 비를 쏟아 낼 것처럼 으르렁거리기 시작했다.
허나 그것은 비를 위한 구름이 아니었다.
-그럼 잘 가라, 파란색 도마뱀아!
-……설마, 눈 폭풍?!
초당 100ml에 달하는 눈이 쌓인다고 생각하면, 그야말로 지옥도가 펼쳐질 것이 분명했다.
게다가 실버 드래곤은 배리어까지 사용할 수 있기 때문에 눈보다도 더 지독한 냉풍을 만들어 공격할 수 있을 것이었다.
블루 드래곤은 너무 당황한 나머지 웃음이 터지고 말았다.
-으하하! 저런 머저리들에게 당하다니. 우리 용족의 운명도 여기까지인 모양이로군.
-자, 그럼 닥치고 순순히 운명에 따르도록 해라!
아르네시아의 배리어가 블루 드래곤의 주변을 감싸기 시작했고, 잔뜩 찌푸려졌던 하늘에서는 미친 듯이 눈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이윽고 점점 강력해지는 눈발과 냉풍.
쐐에에에엥!
-……크으으윽!
“저대로 얼어 죽겠군. 그나저나 대단하네. 어떻게 실버 드래곤과의 협공을 생각해 낸 겁니까?”
태하의 질문에 란돌은 그저 어깨를 으쓱거릴 뿐이었다.
“뭐, 임기응변이랄까요? 게다가 드래곤이 동료로 있는데 써먹지 않을 이유는 없잖습니까?”
“역시. 머리가 좋은 사람은 뭐가 달라도 다르군요.”
“사람이 연승을 하면 기분이 좋아져서 그렇게 건강이 좋아진답니다. 저는 그저 건강을 추구한 것뿐이라고요.”
“아무튼 이걸로 우리가 이긴 것 같네요.”
태하는 이제 슬슬 블루 드래곤의 드래곤 하트를 먹어 치울 준비를 했다.
***
잔뜩 일그러진 얼굴로 85층으로 향하는 소년이 있었다.
그의 이름은 바로 샤이언.
“……젠장, 이게 뭐야? 인간의 노예 따위가 되다니.”
“스스로 노예임을 인정하는 거냐?”
“그럼 노예가 노예임을 인정하지 않으면? 그럼 뭐가 달라지나?”
샤이언은 단 한 마디를 해도 틱틱거리지 않으면 입안에 가시가 돋치는 스타일이었다.
도대체 저렇게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생물이 있나 싶을 정도로 매사에 부정적인 면도 강했다.
“블루 드래곤은 다들 너처럼 네거티브한 게 특징이냐?”
“흥! 위대한 우리 블루 드래곤들은 궁극의 전격을 다루는 종족으로서 자부심이 상당히 높다. 그러니 모든 것을 우리 아래로 보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야말로 오만방자함의 끝판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겠으나, 한 가지 신기한 점도 있었다.
그렇게 난리를 치고 욕을 하는 것치곤 자신의 처지를 상당히 잘 받아들인다는 점이었다.
태하는 그게 너무나도 황당하지만 재미있기도 했다.
“뭐야, 지는 건 싫어도 진 걸 굳이 부정하지는 않겠다는 협객 정신 같은 건가?”
“흥! 어떻게 생각하든 네 마음이다. 그걸 내게 묻지 마라!”
샤이언은 이제 완벽하게 태하의 수하가 되었으므로 그가 하는 말이 무엇이든 답을 줄 것이었다.
태하는 그에게 85층에 대해서 물었다.
“뭐, 그래서. 85층에는 뭐가 살지?”
“……질문 한번 잘했다. 바로 위층에는 화이트 드래곤이 살고 있다.”
“아하! 화이트 드래곤!”
“그년에게 어이없게 패배하는 바람에 내가 84층에 머물게 되었다. 빌어먹을, 그놈의 블리자드만 아니었어도!”
“블리자드라. 그쪽은 또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루는 모양이지?”
“그렇다! 내가 정말 냉기에 약하지만 않았어도 그런 계집 정도는 한입에 물어 죽이는 건데!”
그야말로 상성대로 층이 갈렸다고 보면 쉬울 것이다.
실버 드래곤은 전기에 약하니 블루 드래곤에게 패배한 것이고, 블루 드래곤은 냉기에 약하니 화이트 드래곤에게 패배한 것이다.
만약 다른 층에서 다른 드래곤과 각각 싸웠다면 승부가 어떻게 되었을지는 또 미지수였을 것이 분명했다.
“참으로 재미있는 종족이네. 이런 식으로 패배자와 승자가 갈리다니 말이야.”
“그나저나 백룡 년을 이길 수 있겠나? 그년, 보통이 아니다. 저 은색 머저리도 아마 그년에게는 상대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 속성과 빙 속성은 상성이 좋지 않았던가?”
“나보다는 나아도 저 머저리 은색 도마뱀은 머리가 모자라서 그년을 이길 수 없어.”
뭔가 특단의 대책이 필요했다.
화공이 특기인 원딜러들이 꽤 있다고는 하나, 드래곤의 공격력은 그야말로 절대적이라서 굳이 브레스가 아니더라도 충분히 사람 수백 명쯤은 죽이고도 남을 것이었다.
“흠…….”
“태하 군, 그렇다면 이런 방법은 어떠한가?”
“아아, 어르신!”
“몬스터를 이용하는 것이지.”
“몬스터라니요?”
“적은 아마 화공에 약하겠지. 불은 얼음을 녹이니까 말이야.”
“네, 아마도 그럴 겁니다.”
“만약 그렇다면 저쪽에서 냉기의 마법을 사용하면, 우리는 화공계로 맞서는 거지. 이를테면 메테오와 같은 것들로 말이야.”
“하지만 우리는 그렇게 대단한 마법사가……. 아아?!”
“메테오 스톰과 같은 엄청난 마법을 구사할 수는 없다고 하더라도 우리는 그것을 충분히 흉내 낼 수 있는 인재들이 있지 않던가?”
정말로 그랬다. 한나와 아리사의 만남만으로도 충분히 화공계를 만들어 낼 수 있는데, 거기에 임혁수까지 힘을 더한다면 충분히 공격력을 높일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면 추위에 과연 어떻게 버틸 것인가. 바로 그것이었다.
“극한의 냉기를 버틸 수 있는 방법만 고안한다면 우리가 다음 층을 공략하는 건 그리 어렵지 않을 걸세.”
“다음 층을 공략할 방법이라.”
***
휘몰아치는 냉풍, 그리고 끝도 없이 굽이치는 설산과 등성이.
태하는 먼 곳을 바라보며 전의를 불태웠다.
“이곳만 통과하면 우리에게도 승산은 있어. 다음 던전이 바로 레드 드래곤의 구역이라고 했지?”
“네, 형님! 불과의 싸움이라면 굳이 형님께서 손을 쓰지 않으셔도 됩니다! 제가 순식간에 정리할 자신이 있거든요!”
물과 불의 싸움에서 불이 이길 확률은 그렇게까지 많지 않다.
특히나 물이 압도적으로 많다면 그 싸움은 사실 해 보나 마나 아니겠는가.
다만, 그러자면 이곳 설원부터 넘어야 할 것이었다.
“으으, 추워……!”
“샤이언. 네놈은 정말 정신력이 형편없구나. 몰먼족의 전기 패널을 가지고 있어도 춥다니 말이야.”
“……젠장! 추운 걸 어쩌란 말이냐, 이 머저리 은색 도마뱀아!”
태하는 이곳 설원을 극복하기 위해 많은 생각을 해 보았지만, 역시 몰먼족의 도움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냉혹한 땅에서 버틸 수 있는 힘은 결국 따뜻함에서 나온다.
밖에서 이 따뜻함을 줄 수 있는 장비를 만든다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겠으나 몰먼족이 장비를 던전에서 제작한다면 얘기는 달라질 것이었다.
해서 태하는 총총에게 전기 패널과 휴대용 배터리 제작을 의뢰하였고 몰먼족은 흔쾌히 제작을 수락했다.
단 3일 만에 만들어진 전기 패널은 활동하는 데 큰 지장을 주지 않으며, 무려 380시간이나 지속되는 배터리를 가진 것이 장점이었다.
이런 장점을 가진 전기 패널을 두툼한 옷에 넣어 두고 혹한의 땅에 도착한다면 아무래도 사람이 버티는 데는 문제가 없지 않을까, 태하는 그리 생각했던 것이다.
그의 생각은 적중했고 파티에서 단 한 사람만 빼고는 전부 추위에 잘 적응하고 있는 편이었다.
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제는 있었다.
바로 눈보라였다.
“일단 85층에서 버티는 건 가능한데 문제는 블리자드와 같은 마법입니다. 형님, 만약 블리자드나 눈사태와 같은 눈 계열 마법이 쏟아진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합니까?”
“흠……. 우선은 배리어로 버텨 봐야겠지. 그러고 난 후에 화염 계열 마법으로 숨구멍을 뚫어서 살아남는 방법을 생각해 봐야 하지 않겠어?”
“하지만 설원에서 화이트 드래곤은 거의 절대자입니다. 이길 수 있을지…….”
“길고 짧은 건 대봐야 아는 법. 일단은 부딪쳐 보자고.”
아무리 호적수라고 해도 어딘가에는 약점이 존재하기 마련이다.
태하는 그 약점을 집요하게 파고들 생각이었다.
“레이드 마스터님, 화계를 최대한 효율적으로 운용해야 할 텐데 말입니다. 뭔가 뾰족한 수가 있을까요?”
“뾰족한 수는 없어도 날카로운 수는 만들 수 있죠.”
유시연은 드래곤과의 싸움에서 압승을 장담한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라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녀는 최소한 자신의 손에 주어진 것들을 어떻게 사용해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는지 잘 아는 사람이었던 것이다.
그녀는 아르네시아와 임혁수가 제대로 시너지를 낼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아르네시아는 수 속성이죠? 얼음은 원래 물에서 비롯되었고, 얼음은 끓는 물에 약하기 마련입니다. 만약 아르네시아의 브레스를 따뜻하게 데울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요?”
“……냉기의 브레스를 뚫고 갈 수도 있겠네요!”
“그래요. 이 근방을 전부 따뜻하게 만드는 겁니다. 마치 온천처럼요. 그런 다음에 적절히 전력 계열 마법을 섞어서 화이트 드래곤을 공격한다면 우리가 승기를 잡을 수 있지 않을까 싶은데요?”
짜임새가 좋은 그녀의 전략에 아르네시아와 임혁수는 무릎을 쳤다.
만약 제대로만 통한다면 얼마든지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누님, 역시 대단하십니다!”
“레이드 마스터가 있고 없고의 차이가 크긴 하구먼?”
“혁수 형님, 그럼 합을 잘 맞춰 봅시다! 저는 형님만 믿을게요!”
“그려! 내가 우리 동생을 아주 따뜻한 남자로 만들어 줄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