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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138화 (138/197)

138 성좌의 핫한 아이템(2)

실버 드래곤 아르네시아는 태하를 형님으로 모시기로 했다면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진 사람이 동생입니다. 절 받으시죠.”

“아니, 나이로 따진다면 제가 한참 동생…… 아니, 아예 손자뻘도 안 될 텐데요.”

“이곳 동방예의지국의 던전에서 나이란 숫자에 불과하죠. 이긴 사람이 형님입니다.”

“우리 인간이 헤츨링을 훔쳐 가서 죽인 원수라면서요.”

“그야 아수라 길드라는 놈들이 한 것이고요. 그리고 헤츨링은 다시 리젠되었습니다.”

“허 참.”

드래곤이 예의를 따진다는 것 자체가 너무나도 황당한 일이지만, 이들은 벌써 수천 년째 이곳 한반도에서 살아왔기에 법도와 예의를 따진다는 것이었다.

다만, 이들은 힘의 논리에 의해 강한 자가 선배이자 형님이 된다는 말도 안 되는 법도를 가지고 있었다.

어쩌면 싸움만을 위해서 살아가는 진정한 전투 민족이 아닌가 싶었다.

“만약 형님께서 제 절을 안 받아 주신다면, 이 자리에서 심장을 빼서 자결하고 또 자결하기를 반복하며 평생을 고통 속에서 살아가야 할 겁니다. 설마하니 그런 극악무도한 짓을…….”

“……알았어. 알았으니까 그만 좀 해.”

“흠. 역시, 제가 형님으로 모실 만한 분이십니다. 겉모습은 마치 금강불괴와도 같습니다만, 마음씨는 비단결 같으시네요. 존경합니다!”

“아무튼 아르네시아, 이제는 84층을 정복해야 할 차례인데 말이야.”

“음, 그렇지요. 안 그래도 언제 84층을 정복하나 싶었습니다. 사실, 블루 드래곤 그 썩을 놈들이 오만방자하게 굴어서 항상 불만이었거든요.”

“드래곤끼리도 기 싸움 같은 걸 하나?”

“사실, 처음 바벨탑이 생겨났을 때 말입니다. 이 층이라는 걸 어떻게 나누게 되었는지 아셔야 이해가 가실 겁니다.”

태하는 어쩐지 듣지 않아도 어떻게 된 것인지, 그 사정을 알 수 있을 것만 같았다.

“뭐야, 설마하니 싸움으로 층수를 정한 건 아니겠지?”

“……어? 그걸 어떻게 아셨습니까? 역시 형님이십니다!”

“뻔하잖아. 네 말투를 들어 보면 알 수 있지.”

“으음! 형님은 역시 제 형님이십니다! 존경합니다!”

도대체 뭐가 좋다고 이렇게까지 따라다니는 것인지는 모르겠으나, 아르네시아가 있기에 다음 층 공략은 그리 어려울 것 같지는 않았다.

유시연과 빅토리아 역시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 듯했다.

“84층의 블루 드래곤은 어떤 특성을 가지고 있나요?”

“아아, 누님! 그게 말입니다. 블루 드래곤은 전격 마법을 씁니다. 누님과 같은 힘을 지니고 있죠!”

“블루 드래곤의 전격 마법이라. 꽤 강력하겠죠?”

“뭐, 강력하기는 하죠. 하지만 우리 누님의 능력에 비하겠습니까? 하핫!”

“전격의 드래곤이라…….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할 텐데? 약점이라 할 만한 건 없을까요?”

“블루 드래곤은 사막에서 삽니다. 그래서 냉기에 상당히 취약한 편이죠. 게다가 체온이 1도만 떨어져도 전격 마법은 고사하고 움직이는 것도 쉽지 않아집니다. 놈에게 이길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 냉기를 쓰는 것이죠.”

유시연은 그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불현듯, 한 가지 기가 막힌 전략을 떠올렸다.

그녀는 태하에게 홍이를 좀 소환해 달라고 부탁했다.

“홍이랑 얘기 좀 할 수 있을까요?”

“음, 그러세요.”

태하는 팔목의 팔찌를 만지작거렸고, 홍이는 태하의 부름을 받아 그 즉시 모습을 드러냈다.

퍼엉!

“짜잔!”

“홍아, 시연 누님이 너랑 얘기를 좀 하고 싶대.”

“응! 좋아! 무슨 얘기인데?!”

저번에 제법 친해진 태하와 시연은 이미 호칭을 정리한 모양이었다.

유시연은 손가락으로 드래곤을 가리키며 말했다.

“저 아저씨가 물을 사용하거든? 바로 아래층에 호수가 있는데 말이야, 그 호수를 이곳으로 옮기는 걸 좀 도와줄 수 있겠어?”

“호수를 옮겨?! 응, 그래! 재미있겠다!”

“좋아, 그럼 한번 해 보자!”

층과 층을 넘나들 수 있는 능력은 오로지 한 사람, 홍이밖에 없다.

심지어 화이트홀을 사용한다고 해도 각 층을 그렇게 지속적으로 왔다 갔다 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없을 것이다.

한마디로 홍이는 무적의 능력을 가졌다는 소리였다.

잠시 후, 84층에 도달하자 황량한 기운이 물씬 풍겨 온다.

휘이이이잉!

마치 고비사막을 보는 듯한 이 황량함은 인간에게 있어 막연한 공포심과 답답함을 선물해 주고 있을 정도였다.

“이곳에 블루 드래곤이 산다고요?”

“평소에는 모래 속에 들어가서 잠을 자다가 사냥감이 나타나면 곧장 모습을 드러내곤 합니다. 이곳의 웜급 드래곤은 저보다 천 살이 많은 놈이지만 인성이 그다지 좋은 편은 아니죠. 동방예의지국에서조차 놈에게 경어를 쓰는 건 치욕스러울 정도입니다.”

“얼마나 싸가지가 없길래 그래?”

“……만나 보시면 압니다.”

아르네시아는 그야말로 학을 뗄 정도로 놈을 싫어하는 것 같았다.

잠시 후, 사막을 향해 전진하던 일행들에게도 모래 폭풍이 불어닥치기 시작했다.

“배리어!”

서포터들은 모래바람으로부터 동료들을 보호하기 위해서 배리어를 쳤다.

그러자 동료들은 털끝 하나 다치지 않고 멀쩡할 수 있었다.

허나 모래 폭풍이 사그라지자, 그들의 앞에는 정말 생각지도 못했던 존재가 서 있었다.

-크르르릉……!

“벌써 찾아왔네.”

“흥! 저 파란색 도마뱀이 형님의 먹이가 되고 싶어서 찾아온 모양입니다!”

유시연은 주변을 빠르게 둘러보았다.

사방은 전부 모래로 가득 차 있었지만, 고비사막과 비슷한 형태로서 협곡도 있고 과거에는 강이 흐르던 흔적도 남아 있었다.

아마도 실제 사막의 지형을 본떠서 만들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이에요! 이곳에 물을 공급해서 물꼬를 트고, 사방을 촉촉하게 만드는 겁니다!”

“헤헷, 알겠어! 언니, 나 좋아해?”

“응, 당연하지! 언니는 홍이를 사랑해!”

“히힛, 그럼 간다! 뿅!”

홍이가 아공간의 문을 열자, 일렁이는 공간 너머로 시원한 바람이 불어오기 시작했다.

유시연은 아르네시아에게 물을 끌어오라고 지시했다.

“아르네시아! 물을 끌어다가 뿌릴 수 있겠어요?”

“그럼요, 누님!”

즉시 본체로 변신하는 아르네시아.

-크아아아앙!

역시 무지막지한 위용을 자랑하는 웜급 드래곤 아르네시아는 은빛 비늘을 반짝이며 아공간 너머에 있는 물을 순식간에 사막 위로 옮겨 놓기 시작했다.

솨아아아!

실버 드래곤은 해일을 일으킬 수 있을 정도로 물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데다 한 번 들이마신 양은 족히 백록담을 가득 채울 수 있을 정도로 흡수도 빨랐다.

덕분에 협곡에는 물이 차올랐고 곳곳에 시원한 감이 맴돌 정도로 사방 천지가 다 촉촉해졌다.

“……우와, 양이 엄청나네. 아니, 저 호수는 도대체 얼마나 깊었던 거야?”

-하하! 우리 실버 드래곤이 저곳에서 유영하며 놀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그럼 뭐, 얘기는 끝난 셈이네.”

이곳이 84층인지 83층인지 구분이 안 갈 정도로 물이 넘실거리도록 만드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0초 남짓이었다.

그러는 동안 유시연은 다시 홍이를 돌아가게 해 두었다.

“나중에 보자, 홍아!”

“응! 그럼 나는 뿅!”

퍼엉!

홍이는 돌아갔고, 이제부터는 공격대와 블루 드래곤의 싸움만이 남은 셈이었다.

유시연은 마탄의 사수 임혁수에게 냉동탄을 최대한 많이 사용할 수 있도록 준비하라고 일러두었다.

“우리는 지금부터 저놈에게 냉동 공격을 퍼부을 겁니다. 할 수 있겠어요?”

“어떤 방식으로 하느냐에 따라서 다르지 않것어?”

“당신이 생각하기에 어떤 방식이 가장 효율적일 것 같으세요?”

“나? 나 같으면…… 음…….”

임혁수는 빠르게 주변을 둘러보았다. 그러더니 손가락을 들어서 어느 한 인물을 가리켰다.

바로 란돌이었다.

“나라면 란돌을 내보낼 것 같은디?”

“아, 맞다! 란돌 씨!”

일행들 뒤에서 헬창들과 근육에 대해서 논하고 있던 란돌에게 유시연은 전투의 최전선으로 나가 달라고 부탁했다.

그러자 그는 임혁수가 반드시 필요하다며 그를 기용했다.

“이제는 혁수 씨도 냉동 부여가 가능하다면서요. 그럼 드래곤에게 냉 속성을 부여할 수 있지 않아요?”

“……그런 게 가능해요?”

유시연이 임혁수를 바라보자, 그는 당연하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당연하지! 가능하고말고!”

“그럼 그렇게 하세요. 아르네시아, 할 수 있죠?”

아르네시아는 흔쾌히 고개를 끄덕였다. 다만, 그에게도 한 가지 핸디캡은 있었다.

-다 좋은데, 한 가지 단점이 있어요. 우리 실버 드래곤은 모든 힘을 물에서 끌어오기 때문에 실질적으로 블루 드래곤과의 캐스팅 차이가 좀 납니다. 저놈이 우리를 공격해 올 때에 방어할 수 있는 수단이 필요해요.

“몇 초나 필요한데요?”

-한 1초? 길면 2초 정도요.

“그야 걱정할 필요 없죠. 태하 씨는 슈퍼아머를 가졌잖아요.”

-아 참, 그렇지! 역시, 우리 형님이셔!

“자, 그럼 란돌 씨와 아르네시아가 공격을 준비하는 동안 우리는 최선을 다해서 공격을 막아 내는 겁니다. 아셨죠?!”

“넵!”

저 거대한 적을 이기기 위해서는 단합이 가장 중요했다.

유시연은 이들의 마음을 하나로 모아 주었다.

스스스스……!

그녀가 정신을 집중하자, 마치 모두의 정신이 하나로 연결된 듯이 서로의 생각이 전해지기 시작했다.

놀라는 태하와 동료들.

“이, 이게 어떻게 된 겁니까?”

“마인드 체인이라는 스킬입니다. 그렇게 오래는 유지할 수 없으니까 10분 안에 전투를 끝내야 합니다. 아셨죠?”

이미 마음속으로 생각이 다 통하기 때문에 굳이 대답을 할 필요도 없었다.

서로의 생각이 이어지니 신호를 주지 않아도 일사불란하게 진형이 갖추어졌다.

최전방에 탱커, 그 중간에 근딜러, 서포터, 원딜러 순서로 진형을 갖추고 태하가 전력을 다해 공격을 막을 수 있도록 원톱으로 나섰다.

만약 태하가 공격을 막는 데 실패한다면 그 두 번째, 세 번째 방어 라인이 공격을 막아 줄 것이었다.

-크르르릉……! 버러지만도 못한 쓰레기들이 감히 이 몸 앞에 모습을 드러내다니. 그나저나 저 은색 머저리는 인간에게조차 패배하고 이곳까지 함께 올라왔단 말인가? 쯧, 용족의 수치 같으니. 나 같으면 콱 접싯물에 코 박고 죽을 텐데 말이야. 쪽팔리지도 않나? 네 모친이 그러고도 미역국을 먹은 걸 알면 용족 전체가 네 가문을 비웃고 손가락질할 거다.

“싸가지가 정말 없기는 없네. 뭐, 저렇게 입을 터는 것도 오늘이 마지막이겠지만 말이야.”

자기보다 약한 상대를 헐뜯고 욕하는 건 정말 신사답지 못한 행동이다.

아마 아르네시아가 그렇게도 블루 드래곤을 싫어했던 것은 저 신사답지 못하고 오만방자한 태도 때문이었을 것이다.

블루 드래곤이 앞에서 열심히 입을 털어 주는 동안 후방에서는 이미 공격 준비가 끝났다.

-됐습니다, 형님!

“오케이! 자, 덤벼라! 이 시푸르딩딩한 도마뱀 새끼야! 나중에 내가 너를 전기 통구이로 만들어 주마!”

-큭큭, 속 시원하다!

아르네시아는 예의범절을 무시하는 놈에게 욕설을 내뱉는 태하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내 주었다.

그러자 블루 드래곤은 곧바로 브레스를 준비했다.

츠츠츠츠……!

-크아아아앙!

지금까지 태하가 보았던 그 어떠한 전격 마법보다 강력한 브레스가 뿜어져 나왔다.

직경 5미터에 이르는 거대한 원통형 전격 마법은 주변의 공기마저 태우고 공간의 왜곡 현상까지 만들어 낼 정도였다.

태하는 스스로도 저런 엄청난 마법을 막아 낼 수 있을지 의문이었다.

허나 그는 마이트의 근육을 믿었다.

“후읍!”

복압을 한껏 끌어 올린 후, 자신을 강타하기 위해서 쇄도하는 드래곤 브레스를 방패로 막아 냈다.

끼기기기긱!

온몸에 전율이 일어나기 시작했다.

공격을 막아 내기는 했어도 전격 마법 특유의 진동파까지는 막아 낼 수 없었던 것이다.

‘아뿔싸! 진동이 일어나면 복압을 유지하기 힘든데!’

평온한 상태에서도 유지하기 힘든 것이 바로 복압이다.

헌데 거기에 진동까지 가세한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허나 태하는 이를 악물었다.

“……헬창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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