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4 이것은 무엇에 쓰는 물건인고?(2)
드디어 시작된 100층 등반을 위한 대규모 레이드.
태하는 공격대의 선봉에 서서 파티를 이끌었다.
공격대는 총 500명 규모로서 300명 선발대가 출발하면 200명 후발대가 뒤따르는 형식이었다.
휘이이이잉!
을씨년스러운 분위기가 흐르는 80층의 입구.
높이가 족히 50미터는 될 법한 거대한 동굴, 그곳에서 불어오는 냉랭한 바람은 사람의 오금을 저리게 할 만했다.
“……만만치 않을 것 같다는 본능적인 느낌이 드는데요?”
“당연히 만만치 않죠. 드래곤의 영역인데요.”
레벨이 오르면서 태하는 위험 상황을 직감할 수 있는 특유의 육감이 발달하게 되었는데, 이곳에서는 잘못하면 목숨을 잃을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자꾸 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헬창에게 후퇴란 없었다.
“자, 갑시다!”
“우오오오오!”
방패를 손에 꽉 붙들고 천천히 전진하는 태하.
바로 그때였다.
-크르르르릉…….
“으르렁거림이네요. 지금까지 들어 본 소리 중에서도 단연 압권일 정도입니다.”
“조심하세요. 보통의 몬스터와는 아예 차원이 달라요!”
태하는 고등학생 시절부터 거의 던전에서 살다시피 했던 사람이기에 별의별 몬스터들을 다 만나 보았다. 허나 용족은 그 자체만으로도 압도적인 포스를 뿜어냈다.
깊고 깊은 동굴로 계속해서 걸어 들어가는 태하.
여전히 동굴은 용족의 으르렁거림으로 가득 차 있었고, 이제는 강렬한 마력이 동료들의 어깨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무슨 중력 같은 것이 느껴져요.”
“드래곤 포스라는 건데, 한번 짓눌리기 시작하면 서 있는 것조차 힘들어진다고 하더라고요.”
일종의 다운포스와 같은 드래곤 포스가 있기에 80층에서 근딜러들은 상당히 고전을 할 수밖에 없었다.
이를테면 2배에 달하는 중력을 발에 걸고 싸우는 것이니, 몸으로 먹고사는 근딜러들의 입장에서는 그야말로 재앙이 아니겠는가.
허나 태하는 이에 개의치 않는다.
한 발, 한 발 신중하게 내디디며 앞으로 나아가는 태하와 공격대.
그러다가 불현듯 사방이 밝아졌다.
“홀리 라이트!”
희란이 만들어 낸 구체가 파티의 머리 위로 떠오르자, 80층의 세세한 전경이 눈에 들어왔다.
어둠 속에서 싸워야 한다는 압박감이 사라지니 공격대의 마음도 보다 편해진 느낌이었다.
그녀는 사람이 어둠을 직면하면 본능적인 공포감이 올라온다는 것을 알았기에 당장 홀리 라이트를 켠 것이었다.
“역시, 땡땡이의 센스. 알아줘야 해.”
“그런데 대장, 생각보다 몬스터가 그리 많지는 않네요. 아직까지 으르렁거림만 들리는 걸 보면 말이죠.”
“흠……. 그러게 말이야. 80층이 원래 이렇게 조용한 동네였나?”
초반부터 분명 엄청난 혈전이 예상되었는데, 이상하게도 개미 새끼 1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
태하는 뭔가 좀 이상하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이상하다. 이럴 리가 없는데.’
바로 그때였다.
“총대장! 조심해!”
“예……?”
태하에게 조언을 해 준 사람은 흰색 로브를 뒤집어쓴 노인이었다.
노인의 정체를 아는 유일한 사람인 태하는 그 경고가 어떤 것인지 잘 알고 있었다.
잠시 멈춰서 전방을 주시하던 태하.
순간, 그의 앞으로 엄청난 속도의 물체가 쇄도해 오기 시작했다.
쐐에에에엥……!
처음에는 화살, 혹은 총알인가 싶었던 태하는 정체불명의 물체가 점점 가까워지자 생각을 바꿀 수밖에는 없었다.
-크아아아앙!
“……제기랄, 드래곤?!”
“아니야! 드래곤보다는 작아! 드레이크다!”
80층부터 서식한다고 알려진 드레이크는 헤츨링보다는 크지만 웜급 드래곤보다는 작은 생명체로 알려져 있다.
비록 드래곤보다 약한 몬스터이지만 70층까지 올라오면서 봤던 그 어떤 보스 몬스터보다도 강력한 생물이었다.
헌데 자세히 보니 드레이크가 족히 30마리는 되는 것 같았다.
“……드레이크가 1마리가 아닌데요?!”
“이럴 리가 있나! 80층의 몬스터는 이렇게 떼를 지어 다니지는 않아.”
태하와 백선의 머리에 물음표가 그려졌다.
그리고 잠시 후, 이내 두 사람의 물음표를 해결해 줄 사람이 나타났다.
놀랍게도 드레이크 무리 앞에서 빗자루를 타고 날아다니는 소녀가 있었던 것이다.
“꺄아아악! 살려 줘요!”
“뭐야, 사람이 있었어?!”
“아니 도대체 저 사람이 여기까진 어떻게 올라온 거지?”
모든 것이 미스터리였다.
사람이 빗자루를 타고 날 수 있다는 것도 신기한 마당에 80층까지는 도대체 어떻게 올라온 것인지, 그리고 결정적으로는 왜 저렇게 드레이크를 끌고 날아다니는 것인지도 의문이었다.
자세한 사정은 나중에 들어 보기로 하고 태하는 일단 전투태세부터 갖추었다.
“방어진을 형성합시다!”
촤라락!
선봉으로 방패를 쥔 파티의 탱커들이 대거 모여들었다.
그들은 사각 방패를 손에 쥐고 있었는데, 마치 로마의 군단병처럼 일렬로 방패를 다닥다닥 붙여서 적의 공격에 대비했다.
이윽고 그들의 후미로 같은 모양의 방패를 손에 쥔 근딜러들이 달려왔다.
마치 지붕처럼 방패로 진형을 갖춘 그들은 태하의 신호를 기다렸다.
“우리는 이곳에서 끝까지 버티는 겁니다! 절대 물러서면 안 됩니다!”
“넵!”
“한나 씨! 증폭 스킬 부탁합니다!”
한나는 방어진의 바로 뒤쪽에서 대기하고 있다가 태하가 와이어를 뻗어 주자, 그것을 손에 잡곤 이내 증폭 스킬을 사용했다.
[액티브 스킬 : 강화]
[연결 고리를 가진 모든 대상에게 강화를 부여합니다]
[증폭 스킬과 시너지를 이뤄 380%의 강화가 추가로 부여됩니다]
한나의 버프가 태하의 강화 스킬을 만나자, 그야말로 강철보다 단단한 육체를 만들어 주었다.
선봉에 선 탱커들은 이내 눈이 휘둥그레졌다.
“……대단한데? 이게 바로 헬창들의 연결 고립이라는 건가!”
“집중하세요! 옵니다!”
태하의 바로 옆에는 백선이 서 있었는데, 그는 아직 스킬을 사용하지 않고 가만히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아마 파티가 위기에 처하면 곧바로 그의 스킬이 발동될 것이었다.
허나 아직 그는 자신이 나설 때가 아니라고 생각했던 모양이다.
‘백선 어르신께서는 아직 위급한 상황이 아니라고 판단하셨나? 드레이크의 위용이 대단한데 말이야.’
아직 태어나서 한 번도 드레이크와 마주해 본 적이 없었던 태하로선 자신이 과연 저것들을 막아 낼 수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백선은 태하의 능력이 드레이크를 막아 내고도 남을 것이라고 확신하는 모양이었다.
쐐에에에엥!
마치 태풍이 몰아치듯 태하 일행에게로 드레이크의 날갯짓이 만들어 낸 바람이 불어닥쳤다.
“헛!”
“대열이 흐트러지면 안 됩니다! 모두 단단히 몸을 붙여요!”
방패진이 깨진다면 후방에서 공격 지원을 받을 수 없게 되기 때문에 파티는 그걸로 끝이었다.
이를 악물고 버티는 탱커들, 그들이 젖 먹던 힘까지 다 쥐어 짜내 자리를 지키고 있을 때쯤이었다.
스스스스……!
어디선가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이내 드레이크들이 추격을 멈추고 그 자리에 서서 체공비행을 했다.
-크르르르…….
“……엄청나다. 헤츨링을 먹고 자란 와이번은 아예 상대조차 되지 않을 정도야!”
몸길이만 놓고 본다면 거의 아파트 20층 높이는 될 법했고, 날개는 그 몸통을 감싸고도 남을 정도로 넓었다.
이런 괴물들이 30마리나 뭉쳐 있으니 그 체온만으로도 주변이 후끈후끈해질 정도였다.
드레이크가 체공비행을 하면 할수록 주변은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콜록, 콜록!”
“젠장, 도대체 이놈의 연기는 어디서 나오는 거야?!”
“입! 입에서 나오고 있습니다!”
비록 드래곤에 비할 바는 못 되지만, 드레이크의 브레스는 이 세상에 존재하는 모든 광물을 녹여 버릴 정도로 강력하다고 했다.
보통 드레이크는 일반적인 색의 불을 내뿜는데, 아직까지 그 브레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는 알려진 바가 없었다.
태하는 오늘 드레이크를 마주하면서 브레스가 어떻게 만들어지는 것인지 약간은 알 것 같았다.
“마력을 태우는 겁니다.”
“마력을 어떻게 태워요? 그건 형태가 없는 거 아니었어요?”
“생각해 봐요. 가스레인지를 쓸 때 말이에요. 가스는 형태가 있던가요?”
“아아……!”
“그런 것과 같은 이치인 겁니다.”
이제는 마력의 흐름을 눈으로 읽을 수 있게 된 태하는 드레이크가 심장을 통해 마력을 태우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그렇다는 건 이제 곧 브레스가 덮쳐 올 것이라는 소리였다.
“다들 긴장하세요! 브레스가 쏟아질 겁니다!”
“젠장, 30마리가 내뿜는 브레스라니!”
“서포터 팀! 배리어 부탁합니다!”
총대장의 요청에 후방에서 차례를 기다리고 있던 서포터들이 일제히 마력을 운용하기 시작했다.
그중에서도 단연 압권은 다름 아닌 홀리 가드를 사용하는 희란이었다.
지이이잉……!
넓은 장막이 펼쳐지면서 50명에 달하는 탱커들의 몸을 감싸 주기 시작했고, 100명의 원딜러들의 몸까지도 한 방에 감쌌다.
그런 후, 희란은 다시 한번 배리어를 쳤다.
[액티브 스킬 : 앱설루트 배리어]
[무적의 배리어를 형성합니다]
[지속 시간 1분]
500명 전원을 지켜 주는 돔형의 배리어가 생기면서 주변의 마력의 파동과도 완전히 격리되었다.
덕분에 원딜러들은 총대장의 지시에 따라 공격을 감행할 준비를 더 안정적으로 할 수 있게 되었다.
“고마워, 땡땡아!”
“대장! 이제 곧 와요!”
“오케이!”
30마리가 쏘는 브레스의 양은 어쩌면 배리어를 부술 정도로 강력할 수도 있었다. 때문에 태하는 배리어가 있어도 긴장을 늦출 수가 없었던 것이다.
잠시 후, 태하의 머리 위로 새빨간 불길이 쏟아지기 시작했다.
-크아아아앙!
“쏟아집니다! 눈 질끈 감고 막아요!”
“으으으윽!”
불길은 사방 천지를 가득 채울 정도로 어마어마했고,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하면 잡고 있는 방패에 강력한 진동이 느껴질 정도였다.
만약 여기서 정신을 조금이라도 놓는다면 그대로 사망이라는 생각이 절로 든다.
바로 그때였다.
-끼에에에엑!
“……와이번?!”
“후방에서 와이번 떼가 몰려듭니다!”
“저 새끼들, 박치기를 할 모양인데요?!”
단단한 방패진을 돌파할 수 있는 것은 다름 아닌 돌격밖에는 없었다.
용족은 신체 능력만 뛰어난 것이 아니라 두뇌 역시 상당히 발달되어 있는데, 온전한 드래곤은 인간의 두뇌쯤은 가볍게 뛰어넘는 지성체로 알려져 있었다.
아마 이런 전술은 드래곤이 짜서 드레이크와 와이번에게 주입시킨 것이 분명했다.
“충격에 대비하세요!”
“옵니다!”
콰아아앙!
와이번이 전속력으로 날아와 부딪치자, 배리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방패진에 심각한 진동을 일으켰다.
태하는 이를 악물고 버텼다.
“크으으윽! 대단하네, 용족!”
“아직 끝나지 않았습니다! 또 옵니다!”
“젠장!”
무려 20마리나 되는 와이번이 한바탕 박치기를 하고 나자, 그 뒤를 이어서 30마리 남짓한 와이번이 달려오고 있었다.
태하는 잘못하면 이번 공격으로 방어진이 무너질 수도 있겠다 싶었다.
“……안 되겠어요! 내가 앞으로 나가는 수밖에!”
“그건 너무 위험해요! 잘못하면 총대장이 사망할 수도 있다고요!”
“하지만 이대로는 다 죽습니다!”
태하가 목숨을 걸고 앞으로 나가려 했을 때, 그의 어깨를 붙잡는 손이 있었다.
바로 백선이었다.
“내가 힘을 보태 줌세.”
그의 손이 닿자, 태하의 온몸이 순백색으로 물들기 시작했다.
[액티브 스킬 : 백색의 기운]
[무형의 기운이 방어력을 높여 줍니다]
[기본 방어력 X 415]
“헛!”
그야말로 신세계였다.
지금까지 태하가 맛보았던 그 어떤 버프보다도 강력한 것이 몸속을 타고 흘러드는 것 같았다.
태하는 그것을 동료들에게 곧바로 나눠 주었다.
[패시브 스킬 : 연결 고립]
[헬창과 헬창을 스킬로 이어 줍니다]
[액티브 스킬 : 강화]
[연결 고립을 강화시켰습니다]
순식간에 동료들을 타고 흐르는 백색의 기운.
그제야 파티는 태하의 옆에 있던 노인이 바로 백선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허어, 백선 어르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