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2 헬창소년단(2)
대규모 레이드가 나흘 앞으로 다가왔다.
이제 슬슬 개인 장비를 점검하고 물자를 점검하는 등 본격적인 레이드 준비가 진행되었다.
이번 레이드의 총대장은 태하이고 레이드 마스터는 유시연이다.
레이드 마스터는 레이드의 전략과 전술을 총괄하는 실질적인 공격대의 수장이다.
이제 수백 명의 목숨이 유시연의 손에 달려 있다는 뜻이었다.
“헬창포션은 언제 납품이 되나요?”
“지금 창고에 보관 중입니다. 언제든지 출고가 가능한 상태죠.”
“으음, 좋아요. 그럼 이걸로 레이드 준비는 마무리가 되겠네요.”
유시연은 특유의 용병술로 적재적소에 인원을 배치함으로써 레이드 준비를 보다 빠르게 마칠 수 있었다.
덕분에 나흘의 여유가 생겼으므로 조금 더 디테일한 조율이 가능해졌다.
그녀는 특별히 관리가 필요한 프로필들을 추려서 태하에게 전달했다.
“이 사람들은 최전방에 있는 당신이 직접 관리해 줘야겠어요.”
“관리라.”
“가빈이라는 그 소녀와 정체불명의 노인이 레이드에 참가한다니, 사실 신경이 쓰일 수밖에는 없네요.”
“노인이요?”
“팔순이 넘은 노인이 레이드에 참가한다는데 누구인지 자세한 프로필이 보안 사항으로 되어 있네요.”
태하는 속으로 실소를 흘렸다.
설마하니 제자들에게까지 자신의 정체를 숨긴 채로 레이드에 참가할 줄이야. 백선은 어쩌면 짓궂은 취향이 아닌가 하는 생각까지 들었다.
그는 짐짓 모르는 척 잡아뗐다.
“그래요. 내가 잘 관리하겠습니다.”
“당신만 믿을게요.”
과연 자기 스승이 특별 관리 대상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면 유시연은 어떤 표정을 짓게 될까.
지금까지 단 한 번도 당황한 모습을 본 적이 없었기에 태하는 절로 미소가 지어졌다.
그런 태하를 보며 유시연이 미묘한 웃음을 지었다.
“으음? 왜 웃어요?”
“아니요. 그냥…….”
“뭔가 숨기는 거 있죠? 그렇죠?”
“그럴 리가 있습니까? 당신은 마인드헌터인데.”
모든 것을 꿰뚫어 보는 유시연. 허나, 그녀는 아무 데나 자신의 능력을 마구 남발하지 않는다.
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어떤 생각을 하는지 마음만 먹는다면 읽을 수 있으나, 그것은 옳지 않은 일이라는 신념을 갖고 있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인생을 너무 쉽게 살면 재미가 없다고 생각하는 사람이었다.
“뭐, 좋아요. 그냥 내가 매력이 넘쳐서 그렇다고 생각할게요.”
“음, 그건 맞죠. 당신은 매력이 넘치잖아요?”
“후후, 그래요? 칭찬 고마워요. 그럼 오늘 일 끝나고 같이 데이트 좀 해 주겠어요?”
“데이트요?”
“매력이 넘친다면서요. 왜요? 연상은 별로예요?”
“아, 아니요. 그런 건 아니고요.”
“그럼 낙점! 오늘만큼은 당신은 내 거예요. 아셨죠?”
그녀는 굳이 능력을 쓸 필요도 없는 사람이다.
알아서 주변 사람들이 녹아서 얘기를 들어 주는데 뭐하러 마인드컨트롤까지 사용하겠는가?
‘불여시구먼!’
***
그날 저녁, 학교에서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헬스장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웅성, 웅성……!
무려 20명이나 되는 학생들이 모이니 재잘거림으로 아주 귀청이 떨어져 나갈 것 같았다.
허나, 그래도 학생들은 통제가 제법 잘된다.
“쉿, 주목!”
“주목!”
“오늘부터 여러분의 헬스 교사가 되기로 한 정태하입니다. 반갑습니다.”
“와아아, 멋져요!”
“잘생겼어요!”
여학생들보다도 남학생들이 태하에게 열렬히 반응한다.
아무래도 우락부락한 근육은 10대 소녀들의 취향이라기보다는 소년들의 우상이기 때문일 것이다.
물론, 태하의 얼굴만 놓고 본다면 어지간한 모델은 저리 가라이니 오로지 얼굴로만 평가하면 아이돌에 가깝긴 했다.
그러니 학생들의 잘생겼다는 말은 진심인 셈이었다.
태하는 조교로 성일을 섭외했다.
“자, 박성일. 아마 여러분들도 잘 알 테죠. 같은 학급의 학생이니 말이에요. 그렇죠?”
“네에!”
“원래 이 학생은 근골이 좁고 근육량이 상당히 부족한 편이었는데, 불과 한 달 만에 이 정도로 성장했습니다. 어때요? 잘 보여요?”
이제 성일은 가만히 서 있어도 제법 다부진 느낌이 날 정도로 성장해 있었다.
흔히 여학생들이 좋아하는 잔근육, 그중에서도 부피가 제법 있는 편이라고 할 수 있었다.
“……성일이가 원래 저렇게 몸이 좋았나?”
“뭐야, 미쳤나 봐. 성일이가 잘생겨 보이는데?”
“이렇게 보니까 약간 아이돌 느낌도 나는 것 같고!”
여자에게 최고의 성형이 다이어트라면, 남자에게 최고의 성형은 바로 보디빌딩이다.
아무리 추남이라고 해도 일단 몸이 좋으면 반은 먹고 들어간다는 것이 학계의 정설이었으니까.
성일은 쑥스러움에 얼굴을 붉혔다.
성좌의 영향으로 눈이 돌아가면 일단 미친놈이 되는 건 틀림이 없는 사실이지만, 평소에는 그저 평범한 학생이었던 것이다.
태하는 성일을 풀업 어시스트 머신으로 데려갔다.
“자! 오늘은 모든 운동의 기본, 어쩌면 트레이닝의 근간이 될 수 있는 풀업에 대해서 배워 볼 겁니다. 숙달된 조교, 머신 위로.”
“넵!”
“배운 대로. 딱 배운 대로만. 오케이?”
“오케이!”
성일은 태하의 지시에 따라 어시스트 머신 위로 올라갔다.
몸에 딱 붙는 헬스 웨어를 입어서 그런지 성일이 팔을 뻗어 그립을 잡자, 벌써 그의 근육이 움직이는 모습이 다 보였다.
“이렇게 봉을 잡고 어깨를 아래로 꾹 눌러 주는 겁니다. 견갑골을 뒤로 당긴 채로 내려 주는 느낌이죠. 우리는 이걸 후인하강이라고 불러요. 뭐라고요?”
“후인하강!”
“지금 보시는 이 조교는 후인하강이 상당히 잘되어 있는 모습입니다. 이렇게 되면 풀업을 수행할 시, 어깨의 개입이 최대한 줄어들게 되어 부상을 방지할 수 있어요. 물론 등 전체에 가해지는 대미지도 올라가고요.”
턱걸이 시작 자세를 잡은 성일의 견갑이 옆으로 쫙 펼쳐지자, 마치 목도리도마뱀이 목덜미를 쫙 펼친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그러자 학생들은 환호했다.
“오오……!”
“어머, 등이 움직여! 쟤는 이목구비는 초식남인데 등은 아주 화가 잔뜩 나 있네?”
“……내 스타일이야!”
여학생들이 아주 난리가 났다.
태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헬창소년단의 마스코트가 되어 주겠군.’
***
그날 밤, 헬스장을 정리하고 나온 태하는 유시연의 차를 얻어 타고 연남동으로 향했다.
그곳에 유명한 식당이 있다고 하는데, 굳이 밥을 거기까지 먹으러 가야 하나 싶었다.
“헬창이 먹을 수 있는 음식이야 뻔한데, 왜 차를 타고 연남동까지 가는 건가요?”
“예전에 그런 말을 들은 적이 있어요. 밴딩과 로딩? 뭐 그런 것 같았는데. 맞아요?”
“음……. 그런 말이 있기는 하죠. 몸을 쫙 비웠다가 채우는 느낌이라고나 할까요? 그런 느낌이죠.”
“글리코겐 저장치를 늘려 줘서 보다 폭발적인 힘을 낼 수 있게 해 준다면서요?”
“맞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헬창포션이 있어서 굳이 하지는 않지만요.”
“이번에는 하세요. 100층까지 올라가려면 갈 길이 멀잖아요?”
“그리 말씀하신다면야. 만약 먹는다면 치팅이라고 생각할게요. 그게 훨씬 마음이 편할 것 같은데요?”
“후후, 그럼 그렇게 하시고요.”
차를 타고 도로를 달리는 두 사람.
유시연은 차를 타고 가는 동안에 태하에게 자꾸 말을 걸었다.
“아이들 가르치는 건 어때요? 할 만해요?”
“네, 그럭저럭? 애들이 귀여워서 할 맛이 나긴 하네요.”
“그래요. 원래 아이들이 그런 법이죠. 아이들 좋아하나 봐요?”
“동물이랑 아이들은 싫어하는 사람이 별로 없지 않습니까?”
“음, 그런가?”
주로 질문을 하고 들어 주는 쪽을 택하는 그녀.
아마 그녀의 직업 특성상 이런 것이 일상화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잠시 후, 그녀는 주택가 앞에 차를 세웠다.
“다 왔어요.”
“여긴 주택가인 것 같은데. 식당은 상가 쪽에 있지 않을까요? 걸어가시려는 겁니까?”
“아니요. 바로 여기서 먹을 거예요. 우리 집.”
“……집이요?”
“왜요? 싫어요? 일부러 잔뜩 차려 놓았는데.”
말만 데이트지 그냥 동료끼리 밥 먹는 줄로만 알았던 태하는 덜컥 겁이 났다.
제아무리 정신줄을 잘 붙잡는다고 해도 유시연은 보통의 남자가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매력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매력, 아니 매혹이라고 해야 하나? 저 육감적인…… 보디를 그냥 지나칠 남자가 몇이나 되겠어?’
순간,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 든다.
허나, 호랑이에게 물려 가도 정신만 바짝 차리면 된다고 했다고, 태하는 심기일전했다.
“가시죠! 그렇게 차려 놓으셨다면야.”
“그래요. 그럼 갈까요?”
방금 전까지만 해도 태하는 유시연이 뭘 입고 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지만, 이제는 그녀의 의상까지 눈에 들어왔다.
몸에 딱 달라붙는 원피스에 높은 하이힐, 원피스는 왼쪽이 탁 트여서 허벅지까지 갈라져 있었다.
‘……위험하다. 아까는 몰랐는데, 이 정도면 거의 진돗개 하나 수준 아니야?’
그녀는 태하의 팔짱을 꼈다.
그러자 태어나서 진정 처음으로 느껴 보는 엄청난 촉감이 태하에게로 전해졌다.
“양식밖에 할 줄 몰라서 양식으로 차렸어요. 크림 스파게티, 좋아해요?”
“……조, 좋아하죠!”
“뭔가 통하는 게 있네요. 제가 원래 흰색 크림을 좋아해요.”
“그, 그렇군요…….”
그야말로 눈앞이 어질어질하다.
휘이잉!
안 그래도 원자폭탄급 바스트 때문에 눈앞이 핑 도는데 진한 향수 냄새까지 퍼지니 다리가 풀릴 것 같았다.
‘……마인드헌터. 아니, 그런 능력은 애초에 필요하지도 않았어. 이 여자는 그냥 존재 자체가 무기야, 무기!’
40평쯤 되는 주택은 총 2층으로 이뤄져 있었고 마당에는 2마리의 개가 뛰어놀고 있었다.
개들은 유시연이 돌아오자, 이리저리 뛰어다니면서 기쁨을 표했다.
“헥헥!”
“럭시, 앉아.”
“헥!”
“웰시, 손!”
“헥헥!”
“옳지, 잘했어!”
귀를 자르지 않은 도베르만 2마리는 마치 사람처럼 유시연이 하는 말을 척척 알아들었고 심지어는 심하게 뛰거나 짖지도 않았다.
개들은 태하에게 머리를 들이밀며 관심을 표했다.
“헥헥……!”
“덩치가 좋네. 너희들도 운동하니? 나중에 형이랑 산이나 좀 뛸까?”
“헥!”
“옳지, 착하다!”
개들이 제법 태하를 좋아하는 모양이다.
두 사람이 집 안으로 들어가자, 개들은 자연스럽게 마당에서 다시 뛰어놀기 시작했다.
“개를 밖에서 키우시나요?”
“아니요. 자유롭게 드나들게 내버려 두는 편이에요. 나중에 잘 때 씻겨서 들여놓으면 되거든요.”
“음, 애견가시네요.”
“동물 복지라고나 할까요. 말만 가족이라고 하고 하루 종일 집 안에 묶어 두는 건 사랑이 아니죠.”
유시연의 유연한 마인드는 여기에서도 엿볼 수 있다.
그녀는 심지어 동물이라고 하더라도 그 자유를 제한하는 행위는 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한마디로 존중과 배려, 그것이 그녀의 모토였던 것이다.
잠시 후, 태하는 아늑한 분위기의 집으로 들어갔다.
전체적으로 옅은 브라운의 컬러와 상아색으로 이뤄진 집 안은 보는 것만으로도 편안한 느낌을 준다.
그녀는 태하의 뒤로 걸어와서 어깨를 두드렸다.
“겉옷, 주세요.”
“아, 예……!”
“후후, 왜 그래요? 내가 잡아먹을까 봐 긴장이라도 되는 거예요?”
“그, 그건 아니고……. 뭐, 사실 절반쯤은 그런 것 같기도 하네요.”
“호호! 그러지 말아요. 그럼 꼭 내가 연하 킬러 같잖아요?”
그녀는 태하의 겉옷을 받아서 옷걸이에 걸곤 에어드레서에 넣어 잘 보관해 두었다.
이윽고 주방으로 들어가는 그녀.
길게 풀었던 머리를 질끈 묶고 앞치마를 두르니, 그녀는 또 다른 매력으로 다가왔다.
‘……뭐냐? 이 프로 의식이 느껴지는 모습은?’
요리를 하는 여자는 매력이 넘치기 마련이다.
그녀는 익숙한 손길로 상을 차리고 반조리 상태로 두었던 음식을 조리해서 놓기 시작했다.
“앉아요. 금방 끝나요.”
“아, 넵!”
스파게티에 들어갈 파슬리를 절구에 넣고 빻으면서 그녀는 태하에게 무심코 던지듯 물었다.
“그나저나 태하 씨. 내가 왜 집으로 초대한 줄 알아요?”
“글쎄요. 밥 먹이려고?”
“그것도 맞는데. 당신에게 맡기고 싶은 게 있어서 그랬어요.”
“맡기고 싶은 거요?”
“혹시 지옥경이라고 들어 보셨어요?”
“……지옥경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