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30 사탄도 울고 갈 놈들(2)
현직 국회의원이 머리를 빡빡 밀고 국민들 앞에 사죄하는 석고대죄 행사가 열렸다.
최준원은 광화문 거리에 거적때기 하나 깔아 놓고 무릎을 꿇었다.
물론 그 옆에는 아들 최하성도 함께 있었다.
“……사죄드립니다! 아들 농사 잘못 지어 놓고 뻔뻔하게 권력을 휘두르려 한 점, 죽음으로 용서받고 싶었으나 죽지 못해 무릎을 꿇습니다!”
“죄송합니다…….”
최하성은 아버지를 따라서 무릎을 꿇기는 했으나, 뭔가 시큰둥한 표정이었다.
그런 그에게 시민들이 지나가다가 한마디씩 했다.
“애새끼가 아주 싸가지가 바가지구먼! 사죄를 하려면 똑바로 하든가!”
“쯧쯧! 이러니 자식 교육을 잘 시켜야 하는 거야. 저거 봐, 인간쓰레기로 자라났잖아.”
“……우리 아들이 저랬으면 다리몽둥이를 부러뜨려서 아주 병원에 평생 입원을 시켜 놨을 텐데!”
저마다 최하성을 욕하기 바빴다.
1년 내내 석고대죄를 해도 모자랄 판에 저렇게 무성의한 태도로 일관하고 있다니, 육두문자로 두들겨 맞아도 할 말이 없었다.
허나, 최하성은 끝까지 정신을 못 차렸다.
“에이, 이런 씨발! 이게 다 뭐하는 짓이야?! 안 해! 더 이상은 못 해!”
“저, 저 어린놈의 새끼가 말하는 꼬락서니 좀 보소! 인마, 인생이 그렇게 호락호락한 줄 알았냐?! 잘못을 했으면 벌을 받아야지!”
“……좆까, 하고 싶으면 너희들이나 하든가. 내가 이걸 왜 해?!”
“허어!”
모두 끌끌 혀를 차기 바쁘다.
이 세상에 저렇게까지 뻔뻔하고 천연덕스러운 쓰레기가 또 어디 있을까 싶은 표정들이었다.
최준원은 슬그머니 자리에서 일어서더니 버둥거리는 아들의 귓불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짜악!
“……아, 아빠?”
“앉아라. 어디서 감히 죄인이 시민들에게 대드는 거냐! 감옥에서 평생 콩밥이나 처먹어 봐야 정신을 차리겠어?”
“하지만 이건 아니잖아! 좆밥 새끼 하나 털었다고 석고대죄라니! 지금이 무슨 조선 시대인 줄 알아?!”
“죽지 않고 이렇게 사죄를 드릴 수 있는 것만 해도 어디인데! 보좌관들은 뭐하나? 저 쓰레기 같은 놈을 앉히지 않고!”
보좌관들도 떨떠름해하긴 마찬가지였다.
사실상 이대로 판이 끝나 버리면 정치생명도 이대로 끝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냉정하게 판단했다.
“의원님, 지금까지 고마웠습니다. 저희들은 이만 물러갑니다.”
“……보좌관들까지 이럴 거예요?”
“어쩔 수 없잖습니까. 우리도 일단은 살아야 하니까.”
산 사람은 살아야 한다는 마인드.
최준원은 더 이상 보좌관들을 잡지 않았다. 아니, 잡을 수가 없었다. 만약 자신이었다고 해도 보좌관들처럼 이곳을 떠나고 말았을 테니까.
이제 최준원은 주변에 아무도 없이 오로지 아들과 둘이서 시민들의 뭇매를 견뎌 내야만 했다.
그는 읊조리듯 조용히 아들에게 말했다.
“……잘 들어라. 우리가 지금 이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대한민국이 문제가 아니라 이 세상 어느 나라를 가도 인간답게 살 수 없어.”
“어째서? 우리가 뭘 그렇게 잘못했기에? 아무리 내가 양아치 짓을 했어도 이건 정도가 너무 심하잖아.”
“정치라는 게 원래 그렇다. 이해관계가 얽힌 상태에서 섣불리 나섰다간 이렇게 화를 입기도 하는 법이지.”
사실, 아들이 양아치 짓을 했다고 여당 대표가 이렇게까지 군다는 건 오버 액션이긴 했다.
허나, 여기에는 그만한 사정이 있음을 그는 너무나도 잘 알기에, 이제는 현실에 순응하려는 것이었다.
“……물갈이가 될 거다. 아마 우리 집안은 거기에 휩쓸려 망하고 말겠지.”
“그럼 이게 다 무슨 소용이야?”
“그나마 생명과 재산이라도 지키려면 해야 한다. 살고 싶으면 이 아비 말을 따라. 알겠냐?”
이 세상은 아직 소년이 이해하기엔 너무 복잡한 것이 많았다.
허나, 적어도 한 가지는 확실히 알 수 있을 것이다.
뛰는 놈 위에 나는 놈 있다는 걸 말이다.
***
이른 아침, 태하에게로 최준원이 찾아왔다.
며칠째 석고대죄를 하고 국민들에게서 돌팔매질까지 맞아 가며 버텼던 터라 얼굴이 아주 반쪽이 되어 버린 듯했다.
“뭡니까. 나를 찾아온 이유가.”
“……이젠 만족하셨을 것 같아 사죄를 드리고 싶어 찾아왔습니다.”
최준원은 태하의 앞에서 꾸벅 고개를 숙였다.
허나, 태하는 여전히 시베리아의 겨울바람처럼 차갑기 그지없었다.
“내게 이럴 필요 없어요. 이번 사건에서 최대의 피해를 입은 사람은 바로 괴롭힘을 당한 학생들일 테니까.”
“성일이라는 학생 말입니까……?”
“그래요.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서 지금 헬스장을 다니면서 여러 운동을 병행하고 있죠. 아마 죽을 때까지 그 트라우마는 지워지지 않을 겁니다.”
“트라우마……. 치료를 위해 병원에 다니지는 않고요?”
“아니요. 최고의 치료는 쇠질 아닙니까?”
“……그, 그렇군요.”
“TV로 보니 아드님께서는 여전히 반성의 기미가 보이지 않던데. 이래서야 성일이가 마음을 풀겠습니까?”
“끄응.”
“아무튼 간에 여러모로 고생이 많으십니다.”
“……그럼 저는 이만.”
최준원은 선처라는 것을 받긴 애당초 글러 먹었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던 모양이다.
그는 더 이상 구차하게 굴지 않고 헬스장을 떠나갔다.
슥삭, 슥삭…….
평소와 같이 헬스장 바닥을 닦고 그 위에 향수까지 살짝 뿌려 주며 청소를 하는 태하.
그는 헬스장의 위생은 최우선 사항이라고 생각하는바, 하루에도 몇 번식이나 청소를 하곤 한다.
이건 누군가 시켜서 한다기보다는 자신의 신념을 따르는 일종의 의식 같은 것이라고도 할 수 있을 것이었다.
그렇게 30분쯤 바닥을 열심히 닦고 있을 때쯤이었다.
“헌터님! 큰일 났어요!”
“큰일이라니요?”
“지금 헬스장 주차장에서 학생들이 주먹다짐을 하고 있다고요!”
“……네?!”
당장 대걸레를 바닥에 던져 놓고 밖으로 나가는 태하.
그는 자신을 불러온 용팔과 함께 헬스장 뒤편 주차장으로 달려갔다.
그곳에는 7명의 학생들과 함께 마주 선 성일이 있었다.
성일은 자신을 그렇게도 괴롭혔던 하성과 주먹을 마주 대고 있었는데, 벌써 눈두덩이 붉어져 있는 것이 주먹이 몇 번 오간 모양이었다.
“……좆밥아, 너 때문에 지금 이게 무슨 난리냐?”
“그러게 처신을 잘했어야지.”
“어쭈? 요즘 헬스 좀 한다더니 맷집도 는 거냐? 뭐, 좋아. 맷집이 늘면 때리는 재미도 더 있겠지.”
용팔은 발을 동동 굴렀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저 성일이라는 아이가 또다시 트라우마를 안고 살아가게 될까 봐 두려웠던 것이다.
“……저 아이, 어쩌면 좋아요? 트라우마라는 거, 겪어 보지 않으면 절대 모를 일이거든요.”
“알아요. 저도 트라우마가 있었으니까.”
“구해 줘야 하지 않을까요?”
태하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저 하성이라는 양아치 새끼가 하는 짓을 생각하면 눈이 뒤로 돌아가고도 남을 정도로 열이 받았다.
허나, 성일은 결코 물러서지 않고 하성의 앞에서 버티고 서 있었다.
‘피하지 않아. 근성이라는 것이 생긴 거지.’
폭력이나 괴롭힘, 따돌림 같은 문제는 가해자의 정신머리가 썩어 있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러나 사회에서는 이렇게 말하곤 한다.
애초에 저항할 의지를 갖고 있었다면 괴롭힘 따위는 당하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말이다.
그렇다. 만약 저항할 수 있었다면 괴롭힘은 당하지 않았을 것이다.
허나, 문제는 그렇게 지독한 괴롭힘에서 벗어날 수 있을 정도로 강인한 정신과 힘을 가진 존재가 과연 있기는 하냐는 점이다.
“일단은 의지를 가졌다는 것이 중요합니다. 내버려 둬요.”
“그러다가 또 당하면요……?”
“저 아이는 당할 걸 알면서 싸우고 있어요. 그렇다는 건 각오가 되어 있다는 뜻이고, 저 상태에서 근성을 보여 준다면 양아치들도 별수가 없게 되겠죠. 양아치가 왜 양아치겠어요?”
“……그야 그렇죠.”
태하는 아무런 행동도 하지 않기로 마음먹었다.
물론, 화가 나고 가슴을 졸이긴 한다.
성일이라는 소년이 또다시 상처를 받지는 않을까, 노심초사하는 마음이야 용팔과 같았다.
허나, 그는 마음을 굳게 먹었다.
“이겨 낼 겁니다. 어쩌면 그게 진짜 마이트가 바라는 것인지도 모를 것이고요.”
성좌는 스스로를 돕는 자를 응원한다.
태하는 그리 믿고 있었던 것이다.
***
퍼억!
“크윽!”
호기롭게 하성에게 맞섰지만 역시나 피지컬 차이는 어쩔 수가 없었다.
하성은 어려서부터 이종격투기를 배웠고 아버지의 후원에 힘입어 여기저기서 사람을 많이 패고 다녔다.
이론과 실전, 모두 다 갖춘 쓰레기가 바로 하성이라는 뜻이었다.
“하아, 하아……!”
“숨이 벌써 거칠다? 아가리 털던 것에 비해선 기대 이하인데? 실망이야, 정말.”
“……닥쳐!”
성일의 주먹이 공기를 갈랐다.
허나, 애석하게도 그의 주먹은 공기만 갈랐을 뿐, 목표물에 안착하지 못하고 허공을 부유하고 말았다.
그 모습에 하성은 웃으며 중단에 킥을 꽂았다.
빠각!
“콜록, 콜록!”
“이런 좆밥이 누굴 병신으로 아나. 주먹은 말이야, 이렇게 쓰는 거야!”
놈은 웃으며 성일의 안면을 후려갈겼다.
한 대, 두 대, 심지어 여섯 대를 연타로 치는 바람에 안면이 쪼개지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끼이잉……!
귓전에 이명이 맴돌기 시작한다. 아무래도 이제 한 대만 더 맞으면 기절할 것 같은 본능적인 느낌마저 들었다.
허나, 이상하게도 그는 더 악이 받쳤다.
“……더 때려, 씨발 놈아.”
“뭐……?”
“더 때리라고! 더 때려!”
“그래, 씨발! 소원이면 더 때려 주지!”
빠각!
하성은 성일의 안면을 몇 번이고 더 때려 주었다. 심지어 사방으로 선혈이 흩날려 마치 대학병원 응급실을 연상케 할 정도였다.
이제는 양아치 친구들도 인상을 찌푸렸다.
“……하, 하성아. 이제 그만하자.”
“그만? 씨발 놈이 누구한테 그만하래. 네가 대신 맞을래?”
“그, 그건 아니고…….”
“그럼 닥치고 가만히 짜져 있어.”
비틀비틀 시야가 어지럽게 꼬여 댄다. 다리는 벌써 풀려서 서 있는 것조차 힘들 지경이었고 척추의 마디마디가 죄다 시려 오는 듯 온몸이 떨려 왔다.
허나, 성일은 쓰러지지 않았다.
“때려, 씨발 놈아! 겨우 이게 다냐?! 때려, 때려 보라고!”
“……어쭈? 깡다구 좀 생겼나 본데, 우리 좆밥 육형제보다도 나은 것 같다?”
“육형제? 왜 육형제야? 너까지 칠형제지.”
“근데 이 개새끼가?!”
성일은 막무가내로 도발을 했다.
어차피 얻어맞을 것이라면 최소한 자신의 속 안에 있는 분노까지 전부 표출해 버리고 싶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스스스스……!
성일의 몸에서 은은한 연기가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각성을 시작합니다]
작은 소년의 체구에서 피어나던 은은한 연기는 어느새 그의 온몸을 휘감더니 이내 성좌를 불러내기에 이르렀다.
놀랍게도 그의 성좌는 바로 ‘바벨탑의 흑막’이었다.
[특성: 고통]
[인생은 고통의 연속입니다. 고통은 최고의 예술이기에 세상은 아름다운 것입니다.]
[각성 보너스: 인내의 열매(패시브), 고통의 협주곡(패시브)]
[등급 판정: F실버]
[각성이 완료되었습니다]
바벨탑의 흑막이 강림한 성일은 벌써 안광부터가 달랐다.
“……인생은 고통이야, 그렇지?”
“가, 각성을 해?”
“큭큭큭! 인생은 고통이야! 복창해! 어서!”
이제 괴롭힘은 끝났다.
턱!
하성의 목덜미를 부여잡은 성일은 그대로 녀석을 가볍게 들어 올렸다.
마치 옷걸이에 사람을 걸어 놓은 듯, 하성은 버둥거리며 그 손아귀에 매달리고 말았다.
“허, 허허억……!”
“……이제부터는 내가 너에게 고통을 줄 차례야. 어때, 흥분되지 않아?!”
입장이 반전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