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9 사탄도 울고 갈 놈들(1)
이 세상을 움직이는 원리는 아주 간단하다.
권력이 있는 곳에 힘이 있고 힘이 있는 곳에 사람들이 몰리기 마련이다.
민주주의는 기본적으로 이 권력이라는 것을 국민에게서 나오도록 해 두었다.
정치권에서 투표를 조작하지 않는 이상, 민주주의의 틀 안에서의 권력은 무조건 유권자에게서 나오는 법이다.
허나, 황당하게도 대한민국은 유권자에게서 표를 받은 국회의원들이 마치 현대판 양반처럼 군림하려 든다.
“……여당의 당 대표를 만나신다니요?”
“이번에야말로 참교육이 뭔지 제대로 보여 주려고요.”
마이트는 뿔이 아주 제대로 나 있었다.
그를 만족시켜 주려면 그 최준원이라는 작자를 아주 나락으로 보내 버려야 한다.
그러자면 여당이 발등에 불이 떨어졌다면서 ‘빤스런’을 하게 만드는 것이 최선이었다.
태하는 아수라 컴퍼니의 신임 비서실장 유한성에게 여당의 당 대표 차임석과의 자리를 마련해 달라고 부탁했다.
이제는 회사에 지분만 넣어 놓은 상태이지만, 태하는 아수라 컴퍼니의 주요 인사임이 분명했다.
유한성은 태하의 부탁을 당연히 들어주기로 했다.
“대주주께서 말씀하시는데 당연히 들어 드리는 게 도리이지요.”
“언제쯤 자리를 마련할 수 있을까요?”
“당장이라도 가능합니다. 지금 당장 부를까요?”
“부른다고요?”
“아아, 모르셨습니까? 차임석은 청룡방에서 저 자리에 앉힌 사람입니다. 코어 관련법과 관련해 헌터협회와 제네시스, 정치원의 균형을 잡기 위해서 말입니다.”
“음, 그래요?”
“그리고 저쪽에서는 회장님께서 부르시면 언제든 달려와야 할 의무가 있습니다. ‘타이탄’ 때문이라도 말입니다.”
타이탄이라는 회사는 태하와 조선엽이 만든 코어 투자회사로, 대한민국 코어 시장의 30% 이상을 먹어 치웠던 거물이다.
지금은 절반 이상을 좌지우지하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타이탄에서 만약 헌터협회와 제네시스의 균형에 관심이 없다면서 독자 노선을 걷겠다고 선언하면 지금의 정권은 바로 무너집니다. 아시겠지만, 코어 가격의 적절한 조절은 회장님께서 하고 계시지 않습니까?”
“아 참, 그랬었지요. 잠깐 잊고 있었네.”
때로는 펀드의 수익을 위해서, 때로는 광부들을 위해서, 때로는 민생을 위해서 태하는 코어 가격을 조정해 주곤 했다.
그렇게 대한민국 사회에 깊이 관계된 타이탄은 명실상부 재계의 중심이 된 것이었다.
“뭐, 그럼 지금 당장 만나 봅시다.”
그날 오후.
태하가 있는 고립관으로 여당의 당 대표 차임석이 달려왔다.
그는 태하를 보자마자 꾸벅 고개를 숙였다.
“……말씀 많이 들었습니다! 타이탄의 최대 주주시라고.”
“네, 그렇습니다.”
“설마하니 헌터 골드께서 타이탄의 최대 주주이실 줄은 전혀 몰랐습니다. 존경합니다!”
“뭐 존경까지야.”
상당히 심드렁한 표정의 태하, 그런 그를 보며 차임석은 비지땀을 찔끔 흘려 댔다.
“혹시 식사 안 하셨으면 제가 대접해도 되겠습니까? 제가 잘하는 한식당을 아는데…….”
“됐습니다. 보디빌더는 일반식을 먹지 않아요.”
“……죄송합니다! 미스터 올림피아라는 것을 깜빡했습니다.”
“그보다도 여당에 상당히 실망했다는 것을 표명하고 싶네요.”
“실망이라니요……?”
“무슨 그런 사람을 당에 영입시켜서 구의원을 맡깁니까? 같은 동네에 사는 사람으로서 아주 화가 치밀어 오르네요. 이대로는 정부와 여당에 실망해서 회사를 미국으로 옮기고 싶은 마음마저 듭니다.”
타이탄이 이적하면 대한민국의 경제는 휘청거릴 게 분명했다.
물론, 민생을 걱정하는 따뜻한 성좌 마이트가 그렇게 내버려 둘 리는 없겠지만 상황만 놓고 본다면 그럴 가능성이 농후하다는 것이었다.
“……무슨 그런 끔찍한 말씀을 하십니까?! 하하, 뭐가 문제인지 말씀만 해 주신다면 제가 알아서 정리를 싹 해 놓겠습니다!”
“정말입니까? 알아서 정리하실 겁니까?”
“아이고, 물론입니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태하는 차임석에게 정면 돌파만이 답이라는 식으로 지령을 내렸다.
그의 조건은 2개였다.
“최준원 의원 아들이 왕따의 가해자이고 무려 2년 동안이나 한 학생을 무자비하게 구타하고 갈취를 자행했다고 합니다. 그래서 제가 그 학생을 좀 교육해 주었더니, 무슨 정신병 드립을 하고 다닌다고 하더군요.”
“……왕따요?”
“세상에, 국회의원 아들이 헬스장 주차장에서 버젓이 담배를 피우고 침바다를 만드는 것으로 모자라 한 학생을 조리돌림하고 있더군요. 이게 나라입니까?”
“허어!”
“그걸로는 성에 안 찼는지 아비라는 작자가 헬스장에 찾아와서 그러더군요. 내게 무릎을 꿇고 사과하라고요. 긴말 안 하겠습니다. 최준원 부자가 잘못을 시인하고 국민들 앞에 석고대죄 하게 하세요. 그리고 국회의원직에서 사퇴하는 겁니다. 이게 내가 바라는 것입니다.”
차임석은 입을 꾹 다물었다.
그의 입장에서 본다면야 이건 정말 아무것도 아닌, 언론 플레이로 충분히 무마할 수 있는 수준일 것이다.
허나, 문제는 상대가 타이탄의 총수, 헌터협회의 떠오르는 신성이라는 점이었다.
안 그래도 요즘 태하 덕분에 헌터협회의 명성이 올라가서 국방부에서도 태하를 영웅으로 모시는 분위기였다.
여기서 잘못 입을 놀렸다간 그대로 요단강을 건너게 될 것이 뻔했다.
“……저희 당에서 최 의원을 내보내면 화가 풀리시겠습니까?”
“아니요, 그 부자가 국민들 앞에서 사죄를 해야 한다니까요? 아들은 벌을 받아야 할 것이고요.”
난감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이제 막 정권이 교체되고 정계가 정상화되고 있는 가운데 이런 혼란이 야기된다니 말이다.
허나, 이미 물은 엎질러졌다.
“알겠습니다! 회장님의 말씀에 따르겠습니다!”
***
그날 밤.
짜악!
한식당 ‘백학’에 뺨따귀 후려치는 소리가 울려 버렸다.
뺨을 맞은 사람은 최준원이었고 뺨을 친 사람은 차임석이었다.
“……미쳤어요? 지금 시국이 어느 때인데 감히 국민들 앞에서 꼬장을 부려요?”
“죄, 죄송합니다!”
“게다가 앞뒤 분간을 못 하고 우리 여당의 최대 후원자인 타이탄의 회장을 건드려요? 당신, 재산 몰수당하고 평생 손가락이나 빨면서 살아 봐야 정신을 차릴 거죠? 그렇죠?”
무릎을 꿇은 채 손이 발이 되게 빌던 최준원은 깜짝 놀라서 차임석을 올려다보았다.
그는 동네 헬스장 트레이너가 설마하니 그런 거물일 줄은 꿈에도 몰랐던 것이다.
“저, 저는 정말 몰랐습니다! 정말입니다!”
“알았든 몰랐든, 지금 타이탄이 발칵 뒤집어졌습니다. 자기들이 후원해 주는 여당의 일원이 지금 국민들의 재산을 갈취하고 폭력을 휘두른다는 것에 불신을 느끼고 있다고요. 알아요?”
“…….”
“옷 벗고 당에서 나가세요. 그리고 아들과 함께 대국민 사과를 하세요.”
최준원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다른 건 몰라도 국민들 앞에서 아들을 범죄자라고 얼굴에 낙인을 찍는 짓은 할 수 없었기 때문이다.
“죄송합니다! 다른 벌이라면 얼마든지 받겠습니다! 하지만 그건…….”
“아, 그래요? 그럼 어쩔 수 없죠. 그냥 죽으세요. 당장 국세청에서 당신 계좌부터 조사할 겁니다. 아시죠? 이제 국회의원 계좌에 불법 자금이 하나라도 들어가 있으면 그대로 전수조사에 착수한다는 거.”
이 세상에 털어서 먼지 한 톨 안 나오는 사람은 없다.
허나, 최준원 같은 경우에는 그 정도가 아주 심한 편이었다.
지금까지는 같은 당이라서 어느 정도 덮고 넘어가 주었던 것이지, 차임석이 마음만 먹는다면 최준원 정도는 발가벗겨 서울역 대합실로 몰아넣을 수도 있었다.
“노숙자 생활 한번 해 보시겠어요?”
“……죄송합니다!”
“그럼 당장 방송 준비하세요. 두말 안 합니다. 그분이 납득하실 수 있도록 최대한 성의를 보이는 걸 잊지 마시고요.”
“알겠습니다…….”
차임석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식당을 나가 버렸다.
이제 홀로 남은 최준원에게는 마지막 결정을 향한 한 걸음만 남아 있을 뿐이었다.
***
늦은 밤, 청룡무고로 백선이 찾아왔다.
태하는 백선에게 작설차를 대접하였고, 두 사람은 마주 앉아 다도를 즐기기 시작했다.
향을 음미하는 백선, 그런 그에게 태하가 물었다.
“청룡무고에는 오랜만이시죠?”
“그래. 감회가 새롭군. 내 젊은 시절이 고스란히 녹아들어 있다고나 할까?”
“이런 무고를 물려받게 되어 너무나도 영광입니다.”
“허허, 그래. 나도 자네에게 이런 무고를 물려줄 수 있어 영광이었다네.”
한 모금 차를 머금곤 잔을 내려놓는 백선.
그는 태하에게 ‘레이드 신청서’라고 적힌 종이를 한 장 건네주었다.
신청서 안에는 ‘차태근’이라는 이름이 적혀 있었다.
“차태근? 이게 누굽니까?”
“날세.”
“……예?!”
“나도 레이드에 참가하고 싶어서 신청서를 내는 걸세.”
태하는 지금 백선이 무슨 소리를 하는 것인가 싶어서 고개를 갸웃거렸다.
레이드의 주체라고 할 수 있는 백선이 신청서를 제출하는 건 도대체 무슨 의미인지 이해가 잘 되지 않았던 것이다.
“그냥 참관을 하시거나 사령부에 들어가시면 될 것을 굳이 왜…….”
“지금의 헌터협회는 백선이라는 사람을 필두로 돌아가고 있지. 하지만 고인 물은 썩기 마련이야. 이제는 헌터협회라는 막힌 수맥이 뚫릴 때가 되었다는 걸 생각할 수밖에는 없는 것이지.”
“그래서 일반 참가자로 공격대에 들어오시려는 겁니까?”
“나는 자네의 뒤로 한 발자국 물러나서 레이드의 단순한 일원이 되어 볼 생각이라네. 이제부터 모든 것은 자네와 자네의 동료들이 하기에 따라서 달렸다는 소리지.”
백선은 단순히 겸양을 지향하기 때문에 일반 참가자로 들어가려는 것이 아니었다.
그는 정태하라는 인물에게 과연 헌터협회를 맡겨도 되는 것인지, 그 자질을 가늠하기 위해서 공격대에 참가한 것이었다.
“지켜보겠네. 과연 성좌가 선택한 수호자가 맞는지, 그리고 그 선택은 과연 틀리지 않았는지 말이야.”
“실망시키지 않겠습니다!”
“그래, 물론 그래야지.”
차를 한 모금 더 마시는 백선.
작설차로 목을 축인 그는 화제를 전환시켰다.
“그나저나 여당 쪽과 무슨 마찰이 있었던 것 같은데, 원만하게 해결을 봤나?”
“힘으로 한번 찍어 눌러 줬습니다. 아무래도 안하무인인 것 같아서요.”
과연 백선은 이번 여당과의 마찰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태하는 최준원의 인성을 고발하면서도 한편으로는 불안한 마음이 들 수밖에는 없었다.
사람의 마음은 장본인이 아니고서야 절대 알 수 없는 일 아니겠는가.
허나, 적어도 백선은 이번 사태를 그렇게까지 나쁘게 생각하고 있는 것 같지는 않았다.
“우리 계획에 자네가 문을 열어 두었다고나 할까? 뭐, 그런 느낌이로군.”
“문을 열어 두다니요?”
“이제 곧 레이드펀드의 시장 개입을 막기 위한 에너지원 공정거래관리법을 발의할 생각이라네. 만약 이 법안이 국회를 통과하게 된다면 앞으로 레이드펀드는 시장에 영향을 끼칠 수 없게 될 걸세. 또한, 대한민국의 제1던전에서는 레이드를 할 수 없게 될 것이고 말이야.”
“파이어볼의 발을 묶어 버릴 생각이십니까?”
“작금의 사태는 파이어볼이 대한민국에 지나치게 깊이 침투했기 때문에 벌어진 것일세. 그 발을 묶는 건 당연한 일이지. 그런 면에서 본다면 여야의 적당한 물갈이와 공포 분위기 조성은 필수 불가결하다고 볼 수 있겠지.”
“제가 허튼짓을 한 건 아닌 것 같아서 다행입니다.”
“허튼짓이라니. 이 정도면 훌륭하지. 게다가 최준원은 국정원의 감시를 받는 요주의 인물 중에 하나야. 놈을 족칠 수 있는 카드를 만들어 낸 것은 아주 잘한 일이지.”
“요주의 인물이라니요?”
“그놈, 파이어볼과 연관이 있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