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26화 (126/197)

126 모여 봐요, 근육의 숲!(2)

이른 아침, 습관적으로 스마트워치 속 증시를 확인하는 태하.

[코어 가격: 2.3% 상승]

[속보 - 코어 가격 가파르게 상승!]

[속보 - 스탠더드 코어의 가격 상승, 생산량 감소로 에너지 회사들 당혹]

[속보 - 코어업계 자금 경색 우려!]

태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후후, 티칭의 효과가 있었던 건가!”

역시 몬스터들을 트레이닝시킨 효과가 있긴 했던 모양이다.

허나, 벌써 운동 한 달이 다 지나가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성장은 여전히 좀 더딘 편이었다.

태하는 몬스터들의 운동 패턴을 살피기 위해서 던전에 올랐다.

던전 곳곳에는 기다란 쪽지 같은 것이 나부끼고 있었다.

“음, 이게 뭐야?”

쪽지를 잡아서 읽어 보니 오우거들이 나름대로 만들어서 사용하는 혼합 문자가 적혀 있었다.

오우거는 정말 기본적인 의사소통이 가능한 문자를 사용하는데, 태하가 그걸 종이에 적어서 서로 소통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던 것이다.

언어가 없으니 글로써 소통하라는 것이었다.

“인간이 SNS를 하거나 메신저를 하는 것과 같은 건가? 이게 유행을 타나 봐.”

뭔가 귀엽기도 하면서 신기하기도 하다.

이윽고 태하는 오우거들의 운동 현장을 찾았다.

-쿠우우, 오! 쿠우우, 오!

오우거들이 한자리에 모여서 스쿼트에 매진하고 있었다.

타고난 비율은 상당히 좋지만 유난히도 하체가 부실한 오우거들은 헌터들이 하반신을 노리면 여지없이 무너지곤 했다.

때문에 태하는 백스쿼트와 프론트스쿼트를 집중적으로 시켰고, 힙 쓰러스트나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 같은 엉덩이 운동도 빼놓지 않고 시켰다.

“흠, 자세 나쁘지 않아!”

-쿠오오오!

태하의 앞에서 대퇴사두를 드러내 놓고 한껏 포즈를 잡으며 근육을 자랑하는 오우거.

허나, 여전히 하체의 성장이 마음에 드는 수준이 아니었다.

그는 가만히 생각에 잠겼다.

“도대체 뭐가 문제지?”

-……쿠오?

오우거들의 눈동자가 좌우로 크게 흔들리기 시작했다.

지금까지 나름대로 열심히 운동을 하고 있다고 생각했는데, 성과가 썩 석연치 않다는 것에 불안함을 느끼고 있었던 것이다.

태하는 오우거들에게 운동을 다시 시작하게끔 지시했다.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부터 다시 시작해 보자. 자세 잡아 봐!”

운동은 3인 1조로 진행되는데, 오우거들의 개체가 엄청나게 많은 만큼 거의 집단체조의 느낌으로 운동이 이뤄진다.

엉덩이를 주로 타깃으로 한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는 백스쿼트에서는 느낄 수 없는 아주 깊고 진한 자극을 느낄 수 있다.

주동근이 될 발은 한 발자국 앞으로, 그리고 나머지 한 발은 벤치나 의자에 올려놓고 앞굽이 자세를 취하는 것이 바로 스플릿 스쿼트다.

이 과정에서 엉덩이의 엄청난 스트레칭이 이뤄지기 때문에 마치 근육이 끊어져 쿡쿡 쑤시는 듯한 엄청난 자극이 느껴지게 되는 것이다.

-쿠오, 쿠오……!

“자세는 괜찮은데.”

자세는 상당히 좋았다.

허나, 오우거들의 운동 패턴을 보면 크게 두 가지 문제점이 있었다.

하나는 쉬는 시간이 너무 적다는 것, 그리고 다른 하나는 집중력이 떨어진다는 것.

-크우우우……!

운동 중간에 노래를 부른다거나 친구들이 보낸 쪽지를 읽는다든지, 오우거로선 인간의 SNS나 유행가와 같은 걸 즐기는 개체들이 상당히 많았다.

“……인간이 헬스장에서 하루 종일 스마트폰이나 쳐다보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겠지.”

헬스장에 가 보면 스마트폰을 들여다보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상당히 많다.

운동을 하러 와서 운동에 집중하지 않고 스마트폰을 들여다본다는 건, 그저 적당히 몸을 움직이는 몸부림에 지나지 않는다.

제대로 운동이 되고 근력 운동이 노가다로 변질되지 않으려면 헬스장에서 핸드폰 따위는 버리는 것이 옳다는 소리다.

태하는 오우거들에게 운동 중간에 잡담을 삼갈 것을 주지시켰다.

“운동 중간에 한눈을 팔아선 절대 몸을 만들 수 없어. 알겠어? 오로지 근육을 조지는 데 온 신경을 기울이란 말이야.”

-쿠오오!

커뮤니케이션을 지나치게 좋아하는 오우거들에게 집중력을 높이라고 조언했으나, 반대로 너무 지나치게 집중하는 놈들도 있었다.

태하는 쉬는 시간이 아예 없이 그저 무식하게 운동하는 오우거들을 잡아들였다.

“으음! 아니지, 그렇게 한시도 쉬지 않고 10초 이내로 휴식 시간을 가져가는 건 옳지 않아. 호흡도 제대로 잡히지 않았는데 무슨 근력 운동을 한다는 거야.”

-쿠오……?

“그래. 운동은 힘들라고 하는 거지. 그게 맞기는 한데, 웨이트트레이닝이라는 건 기본적으로 체력을 키우기보다는 근육을 키워 주는 거라고. 호흡이 흐트러진다면 근육에 자극은 전해지지 않을 거고, 그건 다시 말해서 근 성장이 아니라 오히려 근 손실을 가져올 수도 있다는 거지.”

-……쿠오오오!

근 손실은 몬스터에게도 공포스러운 법이다.

오우거들은 가히 충격적인 태하의 말에 당황한 듯, 자신도 모르게 바벨을 바닥에 내려놓았다.

쿠우웅!

태하는 손가락을 들어 보였다.

“자, 잘 봐. 손가락을 하나씩 접는 거야. 천천히, 천천히. 이거 하나당 1초씩. 최소 총 30번이 될 때까지는 쉬어 주는 거야. 알겠지?”

-쿠오오.

“쉬어야 근육도 커지고 운동 수행 능력도 올라가는 거라고. 알겠어?”

-쿠오오오!

운동 강도의 상승은 중량의 상승만큼이나 중독적이다.

숨이 턱 밑까지 차오르는 느낌에 한 번 중독되면 자신을 더욱더 극한으로 몰아붙이게 되는데, 이것의 역기능이 바로 정체기나 부상인 것이다.

“적당히 쉬면서, 끝까지 집중하면서!”

올바른 닦달, 오우거들은 그에 자극을 받는다.

***

[속보 - 코어 가격의 상승률 무섭다!]

[속보 - 가격 상승률을 잡기 위한 코어대책위원회 발족]

몬스터들의 근육량 상승 폭이 가파르게 올라감에 따라서 코어 가격의 상승세도 가히 압도적일 정도로 올라가고 있었다.

이제는 아시아 시장에서의 코어 수급은 사실상 불가능하다고 판단되는 분위기에 이르고 있었다.

“스탠더드 코어 중에서 F급이나 E급 코어를 제외한다면 이제 거의 대부분 수입으로 눈을 돌리고 있는 모습입니다.”

“하지만 스탠더드 코어의 활용도는 아주 높은 편 아닌가요?”

“물론입니다. 자동차나 전자 제품에 들어가는 코어의 대부분이 바로 이 스탠더드 코어이기 때문이죠.”

조선엽은 아마 이대로 시장의 상승장이 고정된다면 대한민국 코어 시장은 이제 C급 이상의 코어를 생산할 수 없어 지나친 가격 상승이 조장될 수도 있다는 의견을 내놓았다.

이 정도면 던전은 이제 앞으로 이상무다.

‘됐네.’

던전의 난이도는 예전에 비해 거의 4배 이상 올라갔다.

물론, 태하의 군림 스킬을 적용받지 않는 몬스터들은 예전보다 훨씬 약해졌을 것이다.

이제 그는 재빨리 던전을 정복해야 함을 절감했다.

‘지금이 기회다. 지금이 아니면 정복을 할 수 없을지도 모른다!’

100층 끝까지 공략을 해야 던전으로 쳐들어와 바벨탑을 무너뜨리고 은청석을 약탈하는 인간들이 사라질 것이다.

태하는 그를 위해서라도 반드시 100층으로 올라가야 한다고 스스로 다짐을 굳혔다.

그날 오후.

태하는 빅토리아를 찾아갔다.

요즘 그녀는 서울의 호텔에서 묵고 있는데, 대규모 레이드를 조율하느라 하루도 쉴 수 있는 날이 없었다.

딩동!

객실문 초인종을 누르자, 곧바로 문이 열렸다.

“응, 대장 왔어요?”

“……어라?”

“뭐해요? 왔으면 들어오지.”

문을 열고 나온 사람은 엉뚱하게도 희란이었다.

도대체 희란은 왜 여기에 있는 것일까.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 태하는 그녀들이 어째서 함께 있는 것인지 금세 알 수 있었다.

호텔의 거실 한가운데에는 거대한 화이트보드가 서 있었는데, 그 앞에 앉은 윤정과 빅토리아는 뭔가 열심히 계산을 하고 있었다. 그리고 희란은 그 옆에서 수식을 달달 외고 작은 실험용 통을 들여다보며 신성 마법을 사용하고 있었던 것이다.

“실험을 하고 있는 거야?”

“네, 그런 셈이죠.”

“무슨 실험을 하는 건데?”

“화이트홀을 정말로 무력화시킬 수 있는가? 바로 그것에 대한 실험이죠.”

화이트홀은 이제 단순히 몬스터의 이상 현상을 설명할 때에 사용되는 이론이 아니었다.

언제 어디서든 파이어볼이 등장하여 도시를 쑥대밭으로 만들 수 있는 무기로 생각해야 하는 존재가 되어 버린 것이었다.

해서 빅토리아는 윤정과 희란의 도움을 받아서 그것을 무력화시킬 수 있도록 연구 중이었다.

“어때요? 데이터는 괜찮아요?”

“플라즈마와 신성 마법만 있다면 충분히 와해 가능합니다. 조금만 더 고생합시다.”

“음, 그래요. 그럼 일단 밥 좀 먹고 할까요?”

“그럽시다. 뭐 먹을래요?”

“돈가스.”

“좋습니다. 포크커틀릿.”

“……돈가스.”

“포크커틀릿이 올바른 표현입니다.”

“그게 그거지. 별걸로 다 딴지를 거네.”

역시 두 사람은 상성이 별로 좋지 못한 듯하다.

씁쓸하게 웃는 태하, 그런 그에게 윤정이 웃으며 물었다.

“그나저나 헬창 헌터씨는 여기 어쩐 일? 우리 여자들이 모여서 여자들만의 일을 하는 데 괜히 끼고 싶어서 온 건 아니죠?”

“여자들만의 일이요?”

“후후, 은밀한 여자들만의 세계가 궁금해서 온 거 아니에요?!”

“……그럴 리가요.”

이제 여자들의 알력 다툼에 끼는 건 아주 딱 질색이다.

태하는 자신의 방문 목적을 알려 주고 밥을 먹으러 내려갈 참이었다.

“대규모 레이드, 이제 시작해야겠어요. 지금이라면 100층까지 순식간에 돌파할 수 있습니다.”

“……으음!”

“4배 약해진 몬스터, 이보다 더 좋은 기회가 또 있어요?”

빅토리아는 물론이고 윤정과 희란까지 태하의 의견에 동의했다.

지금보다 더 좋은 타이밍이 다시 올 수 없다는 건 틀림이 없는 사실이니 말이다.

***

대규모 레이드가 시작되기 전, 최종 점검을 하는 시간이 다가왔다.

파워드 피스와 청룡방, 헬창스가 청룡무고로 모였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헐뜯고 싸우기 바빴던 파워드 피스와 청룡방은 이제 제법 친해진 느낌이었다.

자주 만나는 헌터들도 꽤 많았고 술친구가 되어서 아예 딱 붙어 다니는 사람들까지 생길 정도였다.

태하는 그런 그들에게 대규모 레이드의 시작을 알렸다.

“우리는 80층부터 시작해서 100층까지 레이드를 할 겁니다. 모두 다 아시다시피 100층 돌파까지는 도대체 얼마나 걸릴지 아무도 모릅니다. 80층부터는 드래곤의 영역이라고 알려져 있기 때문이죠.”

“흠……!”

드래곤은 그 자체만으로도 엄청난 힘을 갖고 있으나, 그들을 보호하는 가디언들도 문제다.

보통은 6~7마리의 보스급 몬스터가 드래곤 1마리를 보호하는 것이 일반적인데, 그 보스급 몬스터의 강력함은 지금까지 태하가 경험했던 몬스터보다 훨씬 더 강력할 것이었다.

아수라 길드가 80층에서 헤츨링을 잡아서 탈출했던 것은 운이 억세게 좋았던 것이라 할 수 있었다.

“지금부터 레이드의 택티션 본부를 구성할 겁니다. 윤정 씨와 빅토리아, 그리고 몇 명의 지원자를 받아야 할 것 같은데, 지원자 있으십니까?”

파워드 피스는 엘리트 집단이나, 머리를 쓰는 걸 그렇게까지 좋아하지는 않는다.

그들은 뒤에서 전략이나 짜는 것보다는 단순하게 앞서 나가며 사냥을 하는 것이 체질에 맞는 것이었다.

태하는 그런 그들에게 한 가지 제안을 했다.

“그럼 이건 어떠십니까? 청룡방의 택티션인 유시연 이사님을 스카우트해서 배치하는 겁니다.”

“유시연! 마인드헌터 말입니까?”

“이번 몬스터 격멸 작전에서 보여 준 카리스마와 용병술이라면 대규모 레이드를 능히 해낼 수 있으리라는 확신이 듭니다만.”

대규모 레이드는 한 번에 몰살을 경험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한 일이다.

미국의 길드가 한국으로 지원을 온다는 것은 거의 기적이라는 말이 있는데, 그 말을 절감할 수 있을 정도로 위험하기 짝이 없었다.

그런 대규모 레이드에서 머리가 좋은 사람이 사령탑에 앉아 준다면 헌터들로선 안심이 될 일이긴 했다.

“좋습니다. 그럼 유시연 이사를 픽업하죠. 하지만 그 사람이 대규모 레이드에 응해 줄까요? 안 그래도 바쁜 사람으로 알고 있는데요.”

“뭐, 부탁을 해 봐야지요.”

대규모 레이드는 누군가의 명령으로 이뤄지는 행위가 아니다.

어디까지나 목숨을 걸어야 하는 일이기 때문이다.

만약 대의명분이 없는 일이라면 자신과 상관없는 대규모 레이드에는 참가하지 않는 것이 좋다는 게 상식일 정도였다.

허나, 태하는 유시연이 반드시 참여해 줄 것이라고 믿었다.

“그녀는 모험을 좋아합니다. 틀림없이 참가할 겁니다.”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