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4 전율의 마녀(2)
이른 아침, 조선엽이 태하를 찾아왔다.
그는 태하에게 최근 코어회사의 주가가 5% 정도 빠졌다는 보고서를 주기 위해 직접 발걸음을 옮긴 것이었다.
“전체 주가의 5%가 빠진 것은 실로 엄청난 일입니다.”
“……5%라니.”
시가총액이 1조 원이라고 친다면 500억이 공중으로 흩어진 셈이다.
헌데 만약 대한민국 코어 시장을 지배하고 있는 태하의 코어회사의 주식이 5% 빠진다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
“투자 이탈이 발생할 수도 있습니다.”
“왜 이렇게 주가가 많이 하락한 거죠?”
“코어 시장의 불안정성 때문이 아닌가 싶습니다만.”
“불안전성이요?”
“코어 수급이 갑자기 폭발적으로 늘어났다는 보고가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직후에 코어 가격이 떨어지기 시작한 거죠.”
“……수요와 공급의 균형이 무너진 것이로군요.”
“네, 바로 그겁니다.”
회사의 주가가 흔들린 것 자체는 그리 큰 문제가 아니었다.
어차피 돈이라는 건 또 벌면 되는 것이니까.
허나, 코어 생산량이 늘어난 이유에 대해서는 한 번 더 신중하게 생각해 봐야 할 것이었다.
“사냥 횟수가 증가한 겁니까? 어째서 코어 생산량이 늘어난 거죠?”
“전체적으로 몬스터의 질이 좀 낮아졌다고나 할까요?”
“……질이 낮아져요?”
“원래는 3배 이상 강력해졌던 몬스터들이 오히려 4배 정도 약해졌습니다. 그러니까, 화이트홀 사태 이전보다도 약해졌다고 볼 수 있는 거죠.”
“흠.”
“게다가 코어 가격이 하락하면서 은청석의 가치도 같이 하락했습니다. 얼마 전부터는 마정석 이슈가 다시 수면 위로 떠오르는 것 같던데, 앞으로 시장이 어떻게 될지는 저조차도 잘 모르겠습니다.”
마정석 이슈.
얼마 전, 파이어볼이 몰먼시티를 습격했을 때 일부 발견되어 시장에 미량이 풀려 일어난 사건이다.
몬스터의 코어에 비해서 10배 이상의 순도를 가졌으며, 이것을 가지고 에너지를 제조할 경우엔 그 안전성과 출력이 훨씬 높다는 것이었다.
“은청석의 가격이 하락하면서 우리가 이득을 본 딱 그 수준에서 손을 떼야 할 지경이 되었습니다.”
“원자력발전에 대한 미래 가능성은요?”
“지금으로선 정부들이 일제히 손을 뗀 상태라서 뭐라 드릴 말씀이 없네요.”
지금도 몰먼시티에서는 하루에 1.5톤씩 은청석을 생산하고 있는데, 그 재고가 계속 쌓인다면 몰먼들도 공치사를 하게 되는 셈이었다.
‘여러모로 상황이 좋지 않군.’
태하는 파이어볼이 시장을 너무 크게 흔들어 놓는 바람에 정신이 반쯤은 나가 버릴 것 같은 느낌에 사로잡히고 말았다.
지이이잉……!
별안간 울리는 스마트워치.
스마트워치로 전화를 건 사람은 다름 아닌 총총이었다.
-나리! 큰일이다요!
“큰일? 무슨 큰일이라는 거야?”
-69층까지 인간들이 쳐들어왔다요!
“뭐……?!”
***
같은 시각, 몰먼시티 아래 69층 입구.
총총과 몰먼족 기술자들은 화이트홀을 감지하는 센서를 돌리며 언제라도 반격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총총! 나리가 오실 때까지 가만히 기다리는 게 낫지 않겠냐요?!”
“아니다! 나리가 오시는 길을 우리가 지켜 드려야지. 헬창스가 무너지면 우리 마을도 끝이다!”
총총은 비단 의리 때문에 이러는 게 아니었다.
만약 태하 일행이 던전에 진입할 수 없게 된다면 몰먼시티는 그 자리에서 파멸을 맞이할 수도 있었기 때문이다.
잠시 후, 일반적인 화이트홀과는 다른 반응이 감지되었다.
삐비비빅!
“앗! 나리께서 오셨다!”
“살았다요!”
잠시 후, 태하와 동료들이 69층에 모습을 드러냈다.
희란과 한나는 몰먼족 기술자들에게 달려와 그 볼을 손으로 잡고 마구 돌리며 얼굴을 비비적거렸다.
“우리 예쁜이들!”
“누님 나리들! 고맙다요! 우리 몰먼족, 죽을 뻔했다요!”
“……나쁜 놈들 같으니! 우리 귀요미들을 괴롭히다니, 용서하지 않겠어!”
태하에게 다가와 그 발에 얼굴을 비비며 인사한 총총은 그에게 지금까지 일어난 일에 대해서 천천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69층에서 화이트홀이 생기려는 모습이 보였는데, 우리가 황급히 출동해 보니까 스파크가 튀더니 화이트홀 생성이 중단되었다요!”
“생성이 중단되다니?”
“자세한 건 우리도 잘 모른다요! 하지만 스파크가 튈 때마다 화이트홀을 마치 튕겨 내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요!”
마치 인체의 면역 시스템처럼 던전 안으로 들어오는 누군가를 튕겨 내는 것일까?
그 얘기를 들은 빅토리아가 물었다.
“총총? 그 얘기를 조금 더 자세히 해 줄 수 있습니까?”
“어떤 얘기 말이냐요?! 화이트홀 말이냐요?!”
“스파크가 튀었다고 했는데, 그때의 상황을 조금 더 자세히 설명해 줘요.”
총총은 바닥에 그림을 그려 가며 당시의 상황에 대해 조금 더 디테일하게 설명하기 시작했다.
그는 던전 벽을 묘사한 그림에 마치 물결처럼 요동치는 스파크를 표현해 냈다.
“이, 이렇게! 무슨 물결이 치는 것처럼 스파크가 흘러다녔다요!”
“……방어막과 같은 형상이었습니까?”
“아하! 그래, 방어막이었다요!”
“흠.”
“그 방어막 덕분에 인간들이 화이트홀로 쳐들어오는 것은 막을 수 있었다요! 하지만 지금 데스벳의 보고에 따르면 60층까지 자력으로 뚫고 들어오는 것 같다고 했다요! 그것도 10명이서 말이다요!”
몬스터들은 확실히 약해졌지만, 그래도 그나마 다행인 것은 더 이상 던전에 화이트홀이 열리지 않게 되었다는 점이었다.
태하는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윤정 씨. 화이트홀은 어떤 원리에 의해서 열리는 건가요?”
“흠, 글쎄요. 블랙홀 이론과 비슷하다고 듣기는 했는데, 사실 제대로 알려진 건 없어요. 우리가 아수라 길드를 인수했을 때에도 건진 것이라곤 중력과 무슨 연관이 있다는 것밖에는 없었잖아요?”
“그렇다면 플라즈마와 무슨 연관이 있을 수도 있나요?”
“플라즈마……?”
“자기장이나 플라즈마가 화이트홀 내부로 들어가는 방어막 역할을 하는 것 같았어요. 슈터를 상대했을 때 말입니다. 플라즈마 장비를 사용했던 것으로 기억하거든요.”
일행들은 무릎을 치며 당시의 상황을 상기시켜 냈다.
슈터가 몰먼시티를 습격했던 당시, 놈들은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팔찌를 차고 있었고 그것으로 방어막을 만들어 통로를 드나들었었다.
태하는 어쩌면 그 플라즈마가 던전을 방어하고 있는 것은 아닌가, 그런 생각이 들었던 것이다.
“만약 플라즈마, 혹은 전력, 자기장 등이 던전을 방어하는 것이라면 빅토리아의 힘으로 화이트홀을 없앨 수도 있는 것 아닌가요?”
“……내 힘으로 화이트홀을 없앤다니.”
“명 속성 능력자이면서 전력 계열 능력을 쓰잖아요. 그럼 가능하지 않을까 싶은데요.”
“아아!”
“던전에서 지금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 것인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적어도 우리에게 있어서 화이트홀을 무력화시킬 수 있는 수단이 생긴 것은 확실하네요.”
꽤나 반가운 발견이 아닐 수 없었다.
화이트홀에 대한 방어 대책을 논의하고 있는 이 와중에도 적들은 계속해서 밀고 올라오고 있었다.
“앗! 나리, 67층까지 왔다요!”
“갑시다. 우리가 내려가서 놈들을 직접 맞이해 줘야지요.”
몰먼시티를 지키는 것은 단순히 총총과 그 일족만을 지키는 일이 아니었다.
던전과 평화를 위해서라도 헬창스는 무력을 사용할 필요가 있었던 것이다.
***
한 차례 던전 공략 실패로 와해 수순을 밟을 뻔했던 슈터는 제2차 몰먼시티 습격 작전을 진행 중이었다.
화이트홀의 사용은 불가능해졌으나, 던전의 난이도가 족히 4배 이하로 내려가면서 돌파가 너무나도 쉬워졌다.
굳이 따진다면 슈터에게 있어서 화이트홀보다는 지금의 상황이 훨씬 나은지도 몰랐다.
“화이트홀 효과가 사라지면서 우리에게도 기회가 찾아온 모양이다.”
“네, 단장님. 확실히 그건 그렇습니다. 오히려 몬스터 때문에 신경이 많이 쓰였는데, 이제는 몬스터가 바리케이드 역할을 못 하게 되지 않았습니까?”
대규모의 인원만 있다면 이제 100층 돌파까지도 생각할 수 있는 상황이 되었다.
지금보다 던전이 강력했던 때에는 제아무리 강력한 청룡방이라도 100층 돌파는 불가능한 것으로 알려져 있었다.
허나, 4배의 난이도 하락이라면 충분히 해 볼 만하다는 생각이 들기 시작한 것이었다.
68층으로 올라가는 길.
전방에서 뭔가 묵직한 느낌을 주는 남자가 천천히 걸어오는 것이 보였다.
오우거도 한 수 접어줄 정도로 거대한 몸집과 카리스마, 그리고 그 주변을 맴도는 듯한 막강한 기운까지.
“……살기?”
“저놈이 바로 헬창 헌터인가 봅니다.”
원래는 골드라는 이명으로 더 유명했었지만 이제 태하는 헬창 헌터가 a.k.a가 되어 버린 모양이었다.
총 200명의 슈터들은 이내 원거리 딜링을 시작할 준비를 갖추고 있었다.
그들은 충격파 형식의 전자총을 꺼내 들었다.
“자, 시작하자! 대형을 갖춰라!”
슈터는 끝도 없는 연구를 통해 던전 안에서 사용할 수 있는 총기를 만들어 냈다.
그것은 바로 코어발전을 기반으로 한 충격파 전자소총이었던 것이다.
일종의 공기압을 발사하는 전자소총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뉘는데, 한 가지는 단순한 압력을 발생시키는 것이고 다른 하나는 음압을 이용하는 것이다.
압력을 응축시켜서 발사시키면 꽤나 넓은 범위를 공격할 수 있으며 장애물까지도 관통할 수 있다는 장점이 생긴다.
우우우웅……!
에너지를 응축시키기 시작하는 슈터의 충격파 부대.
그런 그들을 향해 헬창 헌터가 달려들기 시작했다.
파바밧!
점멸과 돌격을 자유자재로 사용하는 헬창 헌터는 그야말로 귀신처럼 슈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슈터는 이미 정태하라는 인간에 대해 어느 정도 연구를 완성시킨 상태였다.
“흥! 그런 단순한 공격에 당할 것 같으냐?!”
음파는 단순 충격파에 비해 충전 시간이 길지 않았고, 미리 충전시킨 탄환이 존재했기 때문에 태하가 달려드는 그 즉시 사용이 가능했다.
우우웅, 퍼어엉!
“으헙!”
“으하하! 아마 장기가 꿀렁꿀렁할 거다!”
잘못하면 압력에 의해 장기가 모두 터져 나가면서 죽는 음파 소총을 사용하는 슈터들의 표정은 너무나도 즐겁기 이를 데가 없었다.
우드드득!
장기 너머의 뼈까지 흔들릴 정도로 강력한 음파를 맞았으니 헬창스의 탱커는 사라졌다고 생각했다.
“이겼다!”
허나, 그건 슈터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태하는 오히려 음파를 맞고도 환하게 웃으며 공중에서 점멸을 시도했다.
파아앗!
“……허, 허억!”
“안마 고마워! 요즘 아주 찌뿌듯했는데, 아주 잘되었어!”
슈터가 한 가지 생각하지 못한 것이 있었다.
그것은 바로 태하의 신체는 저항력으로 똘똘 뭉쳐 있다는 점이었다.
워낙 단단한 근육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그 어떤 타격을 가해도 그에게는 흠집 하나 낼 수 없었던 것이다.
“강력한 수축!”
콰아아앙!
근육이 단단해지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 때쯤, 그의 주먹이 슈터의 음파 소총 대열을 후려갈겨 버렸다.
그러자 그 충격파로 대열이 무너져 버렸다.
“크허억!”
“……이 새끼, 뭐야?! 인간이 맞기는 한 거야?!”
진정한 의미의 괴물을 눈앞에서 목도한 이들은 크게 당황할 수밖에는 없었다.
이번에는 단순 압력을 사용한 충격파 소총을 사용하는 슈터.
“쏴라! 사정없이 갈겨!”
쿵쿵쿵쿵!
던전이 미친 듯이 울릴 정도로 강력한 충격이 가해졌다.
허나, 태하는 웃으며 그것을 맞으며 달려들었다.
“으하하, 안마 맛이 아주 좋구나!”
도저히 이길 수 없었다.
아니, 도저히 이길 수 있는 길이 보이지 않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마치 인간은 죽었다가 깨어나도 부술 수 없는 바위를 앞에 두고 싸우고 있는 것처럼 말이다.
“……오늘 이후로 슈터라는 이름은 이 세상에서 사라지는 것으로 하자고.”
“제기랄!”
“잘 가라.”
태하는 친절하게 슈터의 일원들에게 하나하나 일일이 주먹을 선물해 주었다.
빠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