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3 전율의 마녀(1)
미국에서 빅토리아를 부르는 별명이 있다.
바로 전율의 마녀.
그녀는 명 속성 계열의 마법을 사용하는데, 상당히 다양한 종류의 공격을 구사하는 데다 머리까지 좋아서 마녀라는 별명이 붙은 것이었다.
“……그러니까, 제가 보호막을 치면 그 위로 명 속성 전격 마법을 부여해서 공격과 방어를 동시에 하겠다고요?”
“그런 겁니다.”
“생각보다 머리가 잘 돌아가시네요.”
명 속성의 마법을 사용하긴 하나, 빅토리아는 방어와는 전혀 상관이 없는 능력을 가졌기 때문에 방어력에는 상당히 취약한 모습을 보였다.
허나, 그와 반대로 희란은 철저히 방어에 특화된 모습을 보여 주기 때문에 두 사람이 힘을 합치기만 한다면 그것만으로도 시너지는 충분히 날 것이었다.
[스킬: 길항]
[서로 다른 듯, 반대되는 성향의 근육이 힘을 낼 때에 더욱 확실한 근 성장이 보장됩니다]
[‘빅토리아’와 ‘유희란’을 연계시키면 보너스가 발휘됩니다]
원래 길항작용이라는 것은 서로 상반되는 작용을 동시에 일으키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팔을 굽힌다고 쳤을 때, 이두는 힌지처럼 접혀서 팔을 굽힐 것이고 삼두는 고무가 늘어나듯이 길어져서 근육을 받쳐 준다.
이것을 두고 길항작용이라고 부르는데, 슈퍼세트 트레이닝의 기본은 바로 이렇게 반대되는 작용의 근육을 동시에 트레이닝해서 근 성장의 효과를 극대화시키는 것이다.
‘그 길항을 여기에 사용한다고……?’
마치 물과 기름처럼 서로 섞이지 않을 것 같은 두 사람이 오히려 시너지를 낸다는 것이 마이트의 생각인 모양이었다.
만약 그렇다면 태하는 이것을 운명으로 받아들일 수밖에는 없었다.
“……한번 해 볼까요?”
“뭘 말이에요? 보호막에 전격 마법을 덧씌우는 거 말이에요?”
“그래, 그거! 괜찮은 생각인 것 같아! 전차 앞에 방어막의 장벽을 세우고, 그 위에 전격 마법을 걸어 준다면 충분히 방어를 하고도 남을 것 같은데 말이야.”
“음, 그건 그렇죠.”
“한번 해 보자고! 빅토리아, 한번 해 봅시다.”
빅토리아는 태하의 말에 그저 가만히 고개를 끄덕였고, 희란도 지금 이 순간만큼은 서로가 앙숙이 될 뻔한 관계라는 것도 잊은 듯했다.
[스킬: 순백의 배리어]
[스킬: 라이트닝 스톰]
[혼합 스킬 - 라이트닝 배리어: 배리어 속에 라이트닝 스톰이 녹아듭니다]
단순한 전격 계열 마법이었다면 저 수많은 몬스터들을 지져 죽인다는 것은 생각처럼 쉬운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제아무리 마력이 넘치는 사람이라고 해도 수만 마리의 몬스터를 전기 통구이로 만드는 것은 불가능에 가까운 일이었으니 말이다.
허나, 희란은 거의 10분에 가까운 유지 시간을 가진 배리어를 사용할 수 있고, 거기에 마법을 녹인다면 몬스터가 배리어에 가로막혀 전진하지 못하는 그 순간에 조건부로 전격 마법이 발사될 테니 효율성은 몇십 배로 올라갈 것이 분명했다.
-끄어어어……!
“옵니다!”
“다들 자세 똑바로 잡아요! 옆으로 스파크가 튈지도 모르니까요!”
군인들은 눈부신 배리어와 그 주변을 맴돌고 있는 라이트닝 스톰을 발견하곤 서로 몸을 다닥다닥 붙여 체온을 나누었다.
본격적으로 전투가 시작될 것이라는 생각에 자신도 모르게 전우의 온기에 기대고 있었던 것이다.
“……할 수 있다! 2중대, 가자!”
“우오오오오!”
병사들의 함성 소리가 울려 퍼지자, 그들의 기세가 스킬을 타고 퍼지기 시작했다.
[스킬: 협응]
[뭉치고 합심하면 이겨 내지 못할 시련은 없습니다]
[‘혼합 스킬 - 라이트닝 배리어’에 시너지 효과를 더해 줍니다]
인간이란 홀로 설 수 없다는 걸 너무나도 잘 알기에 마이트는 특유의 따뜻함으로 이와 같은 스킬을 만들어 둔 것이었다.
그의 따뜻함은 전장에서 진가를 발휘했다.
콰지지지직!
-끄웨에에엑!
“발사! 조져 버려!”
“국가와 국민을 지킨다!”
두두두두!
사방에서 탄화가 쏟아졌고 전기의 방어막에 걸린 몬스터들의 머리에 사정없이 바람구멍을 내어 버렸다.
분명 인간의 모습을 하고 있었지만, 탄환에 맞아 머리가 터진 몬스터들은 흉측한 참모습을 드러내고 말았다.
그러한 시체가 쌓이고 쌓이면서 주변에는 메케한 연기가 가득 차기 시작했다.
치지지직…….
“시체가 불에 타고 있습니다! 방독면이라도 써야 할 것 같은데요?”
“잠깐! 혼합 스킬에 막혀서 연기가 우리의 반대쪽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이대로 내버려 두면 적들은 훨씬 더 혼란스러워할 테죠. 가만히 놔두자고요.”
순백의 배리어는 독극물까지 막아 주는 아주 고마운 스킬이기 때문에 시체가 연소하면서 생기는 연기까지 막아 주고 있었다.
그 연기가 적에게 돌아가자, 시야가 흐려진 괴물들은 우왕좌왕하며 갈 곳을 잃고 헤매기 시작했다.
-끄에에에……?
“자, 이때입니다! 공격을 퍼붓자고요!”
병사들은 태하의 신호에 맞춰서 연기 속의 적들에게 탄화를 쏟아 냈다.
그러자 괴물들은 끔찍한 소리를 내며 몸부림쳤다.
“꺄아아아악!”
“으아아아앙!”
“……끄아아아악!”
마치 사람들을 한곳에 모아 놓고 학살하는 듯한 끔찍한 비명 소리가 병사들의 고막을 그대로 강타해 버렸다.
그러자 이내 경직되는 병사들.
“사, 사람……?”
“아니요! 저것들은 사람이 아닙니다!”
태하는 협응 스킬에 진실의 눈을 담아서 보내 주었다.
스스스스……!
그러자 연기 속의 괴물들이 갖고 있는 진실한 모습이 병사들의 뇌리에 아주 또렷하게 각인되어 버렸다.
병사들은 분노를 폭발시키거나 그 자리에서 구토를 하는 등 극심한 감정 변화를 겪었다.
“죽어라, 이 괴물 새끼들아!”
“우웨에엑……! 더, 더 이상은 못 하겠어…….”
괴물 진영이나 인간 진영이나 아수라장이 된 것은 매한가지였다.
태하 역시 두 번 다시는 이런 역겨운 싸움을 하고 싶지 않다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
무려 30분이나 계속된 학살 끝에 수만 마리의 괴물들을 모조리 없앨 수 있었다.
국방부는 화염방사기를 동원하여 괴물들을 그 자리에서 소각했고, 타고 남은 재는 다시 소각장으로 가지고 가서 잘게 부숴 흔적도 남기지 않도록 했다.
“후욱, 후욱……!”
“……방독면을 뚫고 들어올 수도 있습니다. 순백의 배리어가 다 되기 전에 나가야 합니다. 모두들 긴장하고 퇴로부터 확보할 수 있도록 하자고요.”
방독면을 쓴 채 건물 지하로 내려간 태하와 수도방위사령부의 병사들은 부화장을 확실하게 파괴하기 위해 수색을 펼치고 있었다.
지금으로선 이곳에 기계 및 수색 장비를 들여보내는 것이 불가능했으므로 모든 것을 직접 사람이 도맡아서 하고 있었던 것이다.
빅토리아는 그런 병사들이 앞을 잘 볼 수 있도록 빛을 내는 구체를 만들어서 공중에 띄워 놓았다.
곳곳에 있는 구체 덕분에 병사들은 지하실 구조를 확실하게 파악하여 작전을 수월하게 진행할 수 있었다.
총 3,500평 규모에 다소 복잡한 구조로 이뤄진 지하실은 각종 설비와 주차장으로 구성되어 있었는데, 지상의 쇼핑몰을 이용하는 손님들을 위해 주차장을 섹터별로 나눠 놓은 것이 오히려 독이 되는 상황이었다.
지도를 손에 쥐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상황 파악이 쉽지 않은 지금, 태하는 좋은 생각을 해냈다.
“데스벳!”
-끼리릿!
“주변을 수색해 줘.”
총 50마리의 데스벳이 날아다니면서 주변을 수색하기 시작했다.
연기가 자욱한 이곳에서 제대로 숨을 쉴 수 있는 생명체는 존재할 수 없으나, 데스벳은 일종의 언데드이기 때문에 연기를 마신다고 해서 죽지는 않는다.
때문에 자유롭게 이곳저곳을 누비면서 정찰을 수행한 데스벳은 태하에게 꽤 많은 정보를 제공해 주었다.
-끼릿!
“흠, 그렇게 많은 알이 있단 말이지.”
데스벳은 이곳에 최소 수천 개의 알이 아직 남아 있다고 전해 주었다.
그 위치까지 정확하게 다 알고 있었지만, 지금으로선 알을 일일이 다 깨부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태하는 일단 밖으로 후퇴했다.
순백의 배리어의 시한이 얼마 남지 않았기 때문에 더 이상의 작전 수행은 불가능했던 것이다.
“아무래도 안 되겠는데.”
“어떻게 하면 좋죠?”
앞으로 최소 한 시간은 쉬어 줘야 하는 희란을 가만히 바라보던 빅토리아.
그녀는 태하의 옆구리를 손으로 가리키며 말했다.
“그 친구들, 사용할 순 없는 겁니까?”
“친구들이라니요.”
“몬스터 말입니다.”
간단하게 말해서 몬스터를 저 안으로 들여보내면 사건은 아주 쉽게 끝날 수 있을지도 모른다.
허나, 태하는 만약의 사태를 걱정하는 것이었다.
“DNA를 흡수하면 그대로 받아들이는 놈들입니다. 만약 오크를 들여보냈다가 오크의 유전자를 먹고 그 자리에서 진화라도 하면 곤란하지 않겠어요?”
“그럼 스켈레톤은요?”
“……스켈레톤?”
“뼈다귀에서 유전자를 채취하기가 쉽지는 않을 것 같은데요. 아니면 골렘이라든지.”
“음, 그러고 보니?”
골렘은 돌이라서 유전자를 채취하는 것 자체가 불가능할 것이고 스켈레톤 역시 엄연히 따지면 유기물에 가까우니 DNA를 흡수하는 건 쉽지 않을 것이었다.
태하는 메이지를 소환했다.
-크헬헬……!
“메이지, 스켈레톤을 소환해서 저 안에 있는 몬스터 알들을 전부 파괴해 버려.”
-크헬!
충성스러운 태하의 친구 메이지는 스켈레톤 수천 마리를 소환하여 지하실로 들여보냈다.
끼리릭!
허나, 잦은 소환 때문인지, 어쩐지 스켈레톤들이 힘이 좀 빠져 보이는 느낌이 든다.
“이봐, 메이지.”
-크헬?
“왜 이렇게 다들 매가리가 없어? 무슨 일 있어?”
-크헤엘…….
메이지는 태하에게 이것이 어떻게 된 사정인지 털어놓았다.
녀석의 말에 따르자면, 던전에 있던 화이트홀이 하나씩 사라짐에 따라서 몬스터의 힘도 조금씩 약해지고 있다는 것이었다.
“……아하! 화이트홀 효과가 사라지고 있는 것이구나!”
빅토리아는 메이지의 말을 자연스럽게 알아듣곤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니, 그렇다면 일전에 있었던 데스워리어 군단의 전투력은 어떻게 설명할 수 있는 겁니까?”
“있는 힘, 없는 힘 다 긁어낸 것이라고 하네요. 녀석들도 요즘 전투력이 예전 같지 않은 모양입니다.”
꼭 소환수로 싸우는 스타일은 아니지만, 던전의 친구들이 약해졌다는 건 확실히 전력의 약화를 뜻하는 일이긴 했다.
태하는 조만간 무슨 수를 써서라도 몬스터의 전력을 증강시켜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앞으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몰라요. 지금부터라도 몬스터들을 강화시킬 방법을 찾아봐야 합니다.”
“던전을 무너뜨리려는 세력들이 점점 악해지고 있기 때문인가요?”
“그런 셈이죠.”
헬파이어는 태하가 미처 생각지도 못했던 방법으로 인류를 위협하고 있었다.
어쩌면 조만간 태하가 모든 것을 걸고 놈들과 싸워야 하는 상황이 또 올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 수밖에는 없었다.
옆에서 그 얘기를 듣고 있던 희란이 물었다.
“그럼 대장, 몬스터를 훈련시키면 어때요?”
“훈련?”
“저 녀석들에게도 점진적 과부하가 적용된다면? 몰먼처럼 말이에요.”
“……총총이 그랬던 것처럼 말이야?”
“그래요. 총총도 그랬고 다른 몰먼들도 그랬죠. 과거의 몰먼족은 그저 광부들에 불과했지만, 지금은 그 누구보다 뛰어난 전사들이 되었잖아요.”
“그러고 보니…….”
“훈련만이 살길, 맞죠?”
확실히 그렇다.
어떤 상황에서든 쇠질보다 좋은 건 없다.
“……그래, 쇠질이 진리라는 걸 왜 잊고 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