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2 다구리에 장사 있나?(2)
수도권을 중심으로 개개인의 신원을 하나도 빠지지 않고 확인한다는 계엄령의 첫 조치가 이뤄졌다.
수도방위사령부는 군단 병력을 전부 동원하여 수도권에 거주하는 시민들, 해외 노동자들 등을 대상으로 총원 조사를 실시했다.
이 과정에서 뜻밖의 일이 벌어졌는데, 그것은 바로 불법체류자들의 자진 출국 요청이었다.
-불체자들이 알아서 한국을 나가겠다고 한다네요. 본국에서는 일단 항구에서 무기한 대기를 시킨다고 하는데도 말이에요.
-그만큼 지금의 몬스터의 위장술이 대단하다는 뜻이겠지요?
-국립과학수사연구원은 이들의 위장술이 이제 곧 인간과 구분을 할 수 없어질 수도 있다는 쪽으로 무게를 싣고 있는 입장입니다. 다만, 소탕 작전이 원활하게 이뤄져 거의 대부분의 개체가 소멸되고 있다는 희망적인 소식이 들려오고 있긴 합니다.
체육관 앞에 쌓여 있던 몬스터의 시체를 치우며 귀로는 라디오를 듣고 있던 태하는 이내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또 한고비 넘긴 건가?”
“아직 몬스터의 부화실을 찾고 있다는데, 그게 마무리가 되어야 진짜 마무리가 되는 것이라고 하더라고요.”
“흠, 그렇다면 헬스장은 언제부터 문을 열 수 있대요?”
태하의 질문에 한나는 어깨를 으쓱거렸다.
“몰라요, 언제가 될지는. 일단 사람인지 괴물인지 구분을 할 수 있어야 뭘 어쩔 텐데, 지금은 그것도 안 되는 상황인 거잖아요?”
“……고립관이 또 고립되어 버리겠군.”
헬스장이 문을 닫아 버리면 보현파 제자들이 근 손실을 입게 될 것이고, 그것은 곧 헬창스의 전투력 약화로 이어지는 지름길이 된다.
비록 태하 본인이 근 손실을 입지 않으면 적어도 타격 저항은 플러스 상태를 유지한다곤 해도, 발전이 없는 삶은 사람을 답보 상태에 빠지게 만들기에 충분했다.
허나, 이는 때에 따라선 전환점이 될 수도 있었다.
“이참에 우리도 운동 체계를 점검하고 새로운 레이드를 시작해 보는 건 어때요? 80층 대규모 레이드도 이제 시작해야 하고요.”
“흠, 하긴. 그건 그러네요. 헬스장을 계속 돌리면서 레이드까지 한다는 건 다소 무리가 따르는 일이긴 하니까요.”
모든 것은 마음먹기에 달린 법이다.
이번 사태를 재정비의 기회로 삼아서 새로 시작할 수 있다면, 그 또한 레이드 제2막을 여는 계기가 될 것이었다.
힘차게 헬스장 앞을 정리한 태하와 일행들은 이제 막 개인 정비에 들어갈 참이었다.
허나, 그들에게는 쉴 틈도 허락되지 않는다.
지이잉……!
별안간 울리는 태하의 스마트워치에는 발신자 ‘백선 어르신’이라는 글귀가 적혀 있었다.
“예, 어르신! 정태하입니다!”
-초등학교 방어 작전에서 아주 혁혁한 공을 세웠다고 하더군. 자네가 참으로 자랑스러우이.
“과찬이십니다. 제 동료들 덕분에 성공한 작전인 것을요.”
-그래서 말인데, 자네와 동료들이 국방부를 좀 도와줘야겠어.
“국방부를 말입니까?”
-지금 헌터협회에서 지하로 숨어든 부화장을 추격하고 있는데, 아무래도 인력이 많이 모자란 모양이야. 해서 국방부도 병력을 20만 이상 차출해서 전국으로 보낼 참인데, 자네들이 그 참모진으로 좀 동참해 주었으면 하네만.
태하는 눈을 들어서 헬창스를 스윽 훑어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손가락으로 OK 사인을 만들어 보였다.
“지금 당장 준비해서 출발하겠습니다.”
-그래, 고맙네. 조금 있다가 오후 5시까지 과천에서 보세나.
“예, 어르신!”
도무지 쉴 틈이 없다.
허나, 이렇게 해서라도 사태를 예상보다 일찍 종결시킬 수 있다면 헬창스는 잠을 자지 않아도 피곤하지 않을 것이다.
***
과천 정부청사 앞에는 무려 5만 명의 병사들이 운집해 있었다.
앞으로 20만 규모의 병력이 전국으로 퍼져 나가면서 수색 작전을 펼치게 될 것인데, 이 5만 명은 그 선발대로서 헌터협회의 참모들과 함께 먼저 현장을 수색하게 될 것이었다.
헬창스는 2인 1조로 팀을 짜고 실시간으로 연락을 유지하기로 했다.
“무슨 일이 생기면 곧바로 연락하는 것으로 하자고요.”
“네, 헌터님! 그레이트하게 마무리하고 다시 봐요, 우리!”
“끝나고 다들 맥주 한 잔씩 하자고요. 알겠죠?”
“오오……!”
통풍을 유발한다고는 하지만, 역시 일 끝나고 마시는 치맥 한 잔은 인생의 가치를 일깨워 주는 여흥이 아닐까.
헬창스는 음주를 그렇게 즐기는 사람들이 아닌지라 500cc 맥주 한 잔이 회식의 전부였지만, 그래도 이들에게 있어서 이것은 인생 최대의 낙이었다.
희란과 같은 조가 된 태하는 군용차를 타고 서울 외곽으로 향했다.
태하의 어깨에 머리를 기댄 희란. 태하는 익숙하게 그녀의 어깨를 감싸며 자세를 편하게 해 주었다.
그 자세로 희란이 태하에게 스마트워치를 스윽 보여 주었다.
화면 안에는 영화관 상영 시간표가 적혀 있었다.
“대장, 오랜만에 영화나 볼래요?”
“영화 좋지. 요즘 재미있는 거 있어?”
“로맨틱 코미디가 대세라네. 어때요?”
“음, 좋아. 그럼 로맨틱 코미디로 주말에 한 편 땡기지 뭐.”
그러다가 희란이 태하에게 지나가는 말로 물었다.
“빅토리아라는 그 여자, 어때요?”
“음? 어떠냐니? 그게 무슨 소리야?”
“요즘 자주 만나고 다니는 거 알아요. 회원들이 그러던데, 야밤에도 헬스장에서 만나고 그런다면서요?”
“……내가 그랬던가?”
“예쁘긴 하더라, 그 여자.”
순간, 태하는 온몸이 빳빳하게 경직되는 것 같았다.
뭐랄까, 호랑이의 으르렁거림에 온몸이 굳어 버린 토끼의 느낌이라고나 할까.
식은땀이 삐질 나는 태하의 손을 잡은 희란은 그의 손가락으로 자신의 스마트워치 화면을 툭툭 건드렸다.
“저번 좀비 사태 때부터 본인 지문 인식이 없으면 예매가 안 된다네. 알고 있었어요?”
“……그, 그랬던가?”
“본인 인증을 하면 최근에 영화관을 몇 번 갔는지도 나온다던데, 알고 있었어요?”
“아, 아니.”
스마트워치 화면에는 태하의 영화관 방문 횟수가 0으로 찍혀 나왔다.
그제야 싱긋이 웃는 그녀.
“다행이네. 다른 사람이랑 영화관 다녀간 적은 없는 것 같으니.”
“내가 너 아니면 누구랑 영화관을 가겠어? 안 그래?”
“원래는 외간 여자랑은 연락도 잘 안 하던 사람이었는데 영화관이라고 가지 말라는 법 없잖아요?”
“……허, 험험!”
눈을 들어서 태하를 스윽 올려다보는 희란.
태하는 어쩐지 집에서 바가지 긁히는 심정이 무엇인지 어렴풋이 알 것만 같았다.
만약 이게 바가지를 긁는 것이라면 무조건 웃어야 한다.
“하하, 우리 그럼 주말에는 영화도 보고 쇼핑도 좀 할까?”
“쇼핑? 갑자기 무슨 쇼핑?”
“돈을 벌긴 하는데 제대로 쓴 적은 없는 것 같아서 말이야. 내가 옷 사 줄게.”
희란은 배시시 웃었다.
그녀는 손사래를 치며 거절 의사를 표명하고 있었다.
“에이, 됐어요! 무슨 옷이야.”
“왜? 사 줄게.”
“아이 참, 됐어요. 옷은 무슨. 그걸로 프로틴이나 사 먹자.”
“모처럼 만에 사 준다니까?”
분명히 손사래를 치고 있었어도 그녀는 웃고 있었다.
아무래도 기분이 풀린 모양이었다.
“……뭐, 그렇다면야. 어쩔 수 없지!”
안도의 한숨을 돌리는 태하.
‘여자 셋이 모이면 접시가 깨진다는 말이 있지. 아마 그건 수다 때문에 붙은 말이 아닐 거야.’
주변에 여자가 많기는 한데, 어째 명줄이 점점 짧아지는 느낌이 드는 것은 왜일까.
***
작전지역에 도착한 태하.
허나, 그의 앞에는 몬스터보다 훨씬 더 무서운 상황이 펼쳐져 있었다.
“……NF타워 지하에 초대형 부화장이 있다는 첩보가 있었습니다. 고로 대대적인 소탕 작전을 벌여야 할 테니 특무관께서는 현장 지휘를 최대한 잘해 주셔야 합니다. 아셨죠?”
“그, 그럽시다.”
대한민국 헌터협회에서는 마침 한국에 체류하고 있던 파워드 피스의 길드원들에게 도움을 요청했고, 빅토리아가 태하의 팀으로 합류되었던 것이다.
하필이면 이 타이밍에 빅토리아가 합류하게 되다니.
‘……내가 올해 삼재라고 했던가?’
하늘이 노래지는 느낌이 들었고 옆통수가 화끈거려서 머리가 뚫릴 것 같은 생각이 자꾸만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태하는 눈을 들어 왼쪽을 힐끔 쳐다보았다가 황급히 눈을 아래로 내리깔고 말았다.
그곳에는 가자미눈을 하고 태하와 빅토리아를 번갈아 보는 희란이 서 있었던 것이다.
“저기, 빅토리아 씨?”
“네. 말씀하시죠.”
“하고많은 인사들 중에서 왜 하필이면 빅토리아 씨가 이곳에 배속된 거죠?”
“제가 자원했으니까요.”
“……아하, 우리 대장이 이곳에 온다는 걸 알고 선수를 치셨다? 그걸 도대체 어떻게 아셨을까? 누가 알려 주셨나요?”
“아니요. 저 사람이 어디를 가든, 무슨 생각을 하든, 저는 그걸 다 공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당연한 일이라고 할 수 있겠죠?”
빅토리아는 마치 태하에게 있어 영혼의 단짝처럼 굴었다.
원래 태하의 소울 메이트는 희란이었는데, 그 자리를 빅토리아가 치고 들어오니 감정선이 묘하게 꼬여 버리는 느낌이 들었다.
헌데 문제는 빅토리아의 입장도 그리 썩 달갑지만은 않다는 점이었다.
“미안합니다만, 제가 이런 얘기까지 당신에게 해야 하는 이유는 뭔가요?”
“……뭐라고요?”
“절대적인 공명으로 이어진 사이이고 탑의 수호자로서 생각을 공유하는 것까지 당신에게 보고를 해야 할 필요는 없는 것으로 아는데요.”
빅토리아는 적대적으로 구는 사람을 딱 싫어하는 타입이다.
평소에는 순한 양 같은 사람이지만 희란 역시 수틀리면 일단 들이받는 스타일이라 서로 아예 상극이라 할 수 있었다.
‘……일이 점점 꼬이네.’
만약 저 두 사람이 급 친해져서 단짝이 된다면 몰라도 한동안 태하는 둘 사이에서 하루 종일 빨래질이나 당하면서 살아야 할 판이었다.
그야말로 숨이 턱턱 막히는 작전이 시작되려는 찰나.
쿠우우웅!
전방에서 묵직한 진동이 울려왔다.
“……폭발?”
“아니요. 폭발이 아니라 그냥 진동이에요.”
빅토리아의 읊조림에 희란이 즉답을 주었다.
그녀는 팀을 보호하는 데 특화되어 있다 보니 위험을 감지하는 능력마저도 상승하게 되었던 것이다.
“진동이라. 부화장에서 일어날 수 있는 진동이라고 한다면, 알이 일제히 깨지면서 생기는 압력 때문이겠군요.”
“보고에 의하면 저놈들이 알을 스스로 깨고 나올 때 그 피질을 벗기기 위해 압력을 사용한다죠. 그렇다면 이해가 되지 않나요?”
“음, 그건 그렇군요.”
서로 감정이 별로 좋지는 않아도 역시 일할 때에는 뭔가 달랐다.
태하는 그런 모습이 진심으로 멋있다고 느껴졌다.
‘프로는 달라!’
단단히 라인을 유지하고 있는 수도방위사령부.
그런 그들의 방어선으로 엄청난 숫자의 몬스터들이 몰려들기 시작했다.
솨아아아아……!
마치 폭포가 터지듯, 수만 마리의 몬스터가 쏟아져 나오는 모습은 그야말로 경악 그 자체였다.
태하는 즉각 방어 태세를 갖추었다.
“개체가 폭발합니다! 모두 방어진을 잘 갖추고 대기하자고요!”
전차와 장갑차가 대열을 이뤘고, 그 중간에 난 틈을 이용해서 병사들은 총구를 내밀었다.
상당히 단단하게 대열을 잡기는 했지만 몬스터의 숫자가 워낙 많아서 과연 이것으로 마무리가 될까 싶었다.
그러다가 빅토리아가 희란에게 물었다.
“신성 마법을 쓰신다고요?”
“그런데요.”
“제가 명 속성 마법을 쓰는데, 연계가 가능할까요?”
“명 속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