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21화 (121/197)

121 다구리에 장사 있나?(1)

한림초등학교 방어 작전이 벌써 30분째 진행 중이었다.

하도 많은 실탄을 소모했기 때문에 사방은 탄피 천지였고 몬스터의 붉은 피로 학교는 어느새 혈옥으로 변해 있었다.

“허억, 허억……!”

어느새 태하의 심신도 지쳐 있었고 가빈의 영력도 서서히 떨어져 가고 있는 상황이다.

나란히 서서 달려드는 적들을 쳐 내는 태하와 가빈.

“아저씨, 정면!”

“오케이!”

쿠우웅!

묵직한 주먹을 휘두르는 기형 인간의 공격을 방패로 막아 낸 태하는 곧바로 주먹을 내질러 놈의 명치를 타격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가빈은 곧바로 영력을 주입시킨 유황불로 놈의 온몸을 태워 버렸다.

화르르륵!

-끄에에에엑!

머리카락 타는 냄새가 진동했고 병사들은 그 냄새에 절로 얼굴을 일그러뜨렸다.

허나, 그뿐이었다.

하도 많은 몬스터를 잡아 죽이고 태워 버렸더니 사람과 비슷한 것이 죽어도 이제는 별다른 감상도 없어진 것이었다.

“벌써 수천 마리는 죽인 것 같은데. 아직도 나올 게 더 남았나?”

“……멀리서 놈들이 달려오는 소리가 들려. 여전히 우리는 적진 한가운데 있는 게 분명해.”

“빌어먹을, 저놈들이 도대체 뭘 노리고 이렇게까지 몰려드는 거지?”

가빈은 가만히 생각을 해 보았다.

과연 자신이 정신 빠진 키메라였을 때, 무엇을 향해 달려들었던 것인가?

“……DNA.”

“유전자 정보?”

“이 학교에 저놈들이 노리는 유전자 정보가 있는 거야.”

태하는 이 학교에 다니는 학생들 중에서 저놈들이 노릴 만한 유전자 정보를 가진 사람은 오로지 한 사람뿐이라고 생각했다.

바로 은하였다.

“중대장님!”

“네, 특무관님!”

“지금 당장 고은하라는 학생을 찾아서 상태를 확인해야겠습니다! 최우선으로 처리해야 할 일입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의무부사관을 보내도록 하겠습니다!”

만약 은하가 저놈들에게 한 번이라도 공격을 당했다거나 피를 빨린 적이 있다고 한다면, 상황은 절망적으로 돌아갈 수도 있었다.

‘드리머는 이 세상을 파괴로 몰아넣을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힘을 지녔다. 그 피를 빼앗기면 무슨 일이 일어날지 몰라!’

태하는 예전에 은하가 일으킨 폭발을 직접 목격한 적이 있었다.

비록 자의식에 의해서 생겨난 폭발은 아니었지만, 만약 그걸 인간이 스스로 조절할 수 있게 된다면 이 세상에는 지옥이 강림할 수도 있는 일이었다.

그만큼 은하의 DNA는 중요한 것이었다.

잠시 후, 의무부사관과 함께 고상근 부녀가 밖으로 나왔다.

“특무관님!”

“허어, 고 사장님! 무사하셨군요!”

“우리를 위해 이곳까지 직접 와 주시고, 정말 감사합니다!”

“아니, 그런데 생사 여부만 확인해 달라고 했더니 왜 여기까지 나오신 겁니까?”

“음, 그게…….”

은하는 태하의 손을 잡으며 말했다.

“나도 도울게요!”

“은하야, 너는…….”

“저것들, 지금 쓸어버리지 않는다면 얼마나 더 많은 피해가 일어날지 아무도 몰라요. 그렇다면 내가 정면에 나서는 것이 맞지 않을까요?”

태하가 고상근을 쳐다보자, 그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무래도 헌터의 DNA가 이쪽에도 진하게 녹아 있는 모양이었다.

바로 그때였다.

하늘에서 뭔가 빛이 번쩍이는 듯한 느낌이 들더니, 이내 빠른 속도로 낙하하기 시작했다.

휘이이잉……!

“저, 저게 뭐지?!”

“미사일인가?! 아님 유성?!”

태하는 본능적으로 방패를 들어서 바닥으로 떨어져 내리는 유성우를 막아섰다.

헌데 그 유성우는 누군가를 공격하기 위한 것이 아니었다.

스르릉……!

마치 빛으로 빚은 요정처럼 살포시 태하의 방패를 밟고 내려서는 남자.

그는 바로 무한의 소환술사 로드리고였다.

“그야말로 난장판이로군.”

“……로드리고? 여긴 어떻게?”

“공명을 통해 이곳이 가장 중요한 포인트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하! 그래서 방어 차원에서 온 건가?”

“물론.”

로드리고는 손을 휘이 내저었다.

그러자 그의 손을 따라 그려진 원 안에서 고블린들이 쏟아져 나오기 시작했다.

-키헤헤헤!

“……고블린?”

“최소한의 에너지로 최대의 효율을 낼 수 있는 몬스터, 바로 고블린이다. 그저 1마리로는 어쩔 도리가 없다곤 해도 이것들을 100마리, 1,000마리 만들어서 내보내면 인해전술이 되는 거지.”

“흠, 만약 그 고블린이 강화가 된다면…….”

“이 세상의 그 어떤 적도 능히 막아 낼 수 있다. 이것이 바로 효율성이라는 것이지.”

로드리고가 하필이면 고블린만 소환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었다.

극강의 가성비, 모든 것을 압도하는 인해전술이 바로 그의 모토였던 것이다.

태하는 로드리고의 어깨에 슬며시 손을 올렸다.

[액티브 스킬: 부여]

[로드리고의 주문력과 환수 강화 스킬에 강화 능력을 부여합니다]

[‘절대적인 공명’ 스킬과 ‘대사형의 오러’에 보너스를 받습니다]

태하의 부여 스킬이 발동하자, 고블린들이 일제히 탈피를 시작했다.

우드드득!

기껏해야 1미터가 조금 넘을 법했던 고블린들의 키는 이내 160cm까지 자라났고, 우람한 근육을 가진 전사들로 거듭났다.

-크허허허!

“……허어, 이건 또 뭐지?”

“마이트의 선물이라고나 할까? 나의 특성 스킬이라고 해 두지.”

“대단하군! 이 정도의 강력함이라면 보스 몬스터도 두렵지 않겠어!”

로드리고의 아공간에서는 그야말로 고블린이 물 쏟아지듯 소환되기 때문에 고블린이 강화된다는 것은 단순히 전력의 증강 정도로 생각할 것이 아니었다.

그야말로 게임 체인저, 그 자체였던 것이다.

고블린들은 각자의 무구를 들고 몬스터를 향해 달려들었다.

-쿠헤헤헤! 죽어라!

그야말로 난도질, 골육상잔의 전투가 벌어졌다.

허나, 상대방의 숫자도 결코 만만치는 않았다.

대한민국 수도 서울의 인구 800만 중에서 1%만 먹혔어도 벌써 8만 마리의 몬스터가 생성된 셈이었다.

그런 몬스터 군단의 군세는 고블린 웨이브와도 쌍벽을 이룰 정도였던 것이다.

그야말로 박빙의 승부.

허나, 그런 박빙의 승부를 뒤집어 버릴 친구들이 등장했다.

퍼엉!

-짜잔!

“홍이……?”

“대장! 우리 왔어요!”

희란은 홍이와 함께 포털을 타고 학교로 넘어왔고, 그녀의 뒤로 메이지와 그 친구들이 줄을 이어 서 있었다.

홍이는 몬스터 군단의 머리 바로 위로 데스워리어와 블랙나이트 군단을 소환해 냈다.

쿠우웅!

엄청난 위용을 자랑하는 데스워리어 군단.

이제 전투는 또 다른 국면으로 접어들게 될 것이었다.

-쿠오오오! 간다!

데스워리어의 점멸과 블랙나이트들의 돌격 스킬은 전선을 뒤집을 정도로 화려한 볼거리를 제공해 주었다.

마치 화려한 네온사인 조명이 터지듯, 돌격 스킬이 만들어 내는 형형색색의 오러가 폭죽처럼 터지기 시작했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끼에에에엑……!

전방에서 엄청난 크기의 몬스터가 달려왔다.

데스워리어의 덩치마저도 왜소하게 만들어 버리는 육덕진 몸통과 징그러운 내장들의 향연.

“데스……!”

-대장을 보호한다!

파바밧!

점멸 마법과 함께 앞으로 튀어 나가는 데스워리어.

데스워리어의 대검이 원을 그리고 횡으로 그어졌고 육덕진 몬스터는 그대로 팔이 잘려 나갔다.

서걱!

-끼에에엥!

“이겼다!”

승리를 확신하는 태하. 물론 그것은 검을 휘두른 데스워리어 본인도 느끼는 것이었다.

허나, 반전이 있었다.

파바밧!

징그러운 내장을 온몸에 휘감은 몬스터가 데스워리어의 점멸을 흉내 내기 시작한 것이었다.

-……?!

“저게 뭐야!”

심지어 놈은 점멸을 한 번에 두 번씩 할 수 있었다.

파, 파바밧!

점멸이 두 번 연달아 터지면서 데스워리어는 주먹으로 얼굴을 후려 맞을 수밖에 없었다.

쿠웅!

-크허억!

“……데스!”

-……점멸을 쓸 수 없다. 힘이 약해진 것 같다.

주먹 한 방에 녹다운이 되어 버린 데스워리어, 어쩐지 맷집이 예전 같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뭐지? 몬스터가 예전보다 많이 약해진 것 같은데?’

이대로라면 태하가 절대적으로 불리한 상황이 되어 버린다.

허나, 그 공백을 채워 줄 존재가 있었다.

-크헬헬!

아군의 후방에 나타난 메이지와 스켈레톤 군단이 전투준비를 마친 것이었다.

“……다행이로군.”

-크헬!

“자, 밟아 버려!”

무려 수만 마리의 스켈레톤이 미친 듯이 달려 나가기 시작했다.

***

같은 시각, 서울 시내 몬스터 소탕 작전을 진두지휘하고 있던 백선에게 뜻밖의 소식이 들려왔다.

“사부님, 공릉에서 무슨 와이번이 설치고 있다는 제보가 있습니다만.”

“……와이번? 갑자기 무슨 와이번이라는 겐가?”

“와이번이 몬스터들을 다 물어 죽이고 민간인을 구출하고 있다는데, 이걸 도대체 어디서부터 어떻게 믿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백선은 종전에 보았던 데스워리어의 선행을 떠올렸다.

그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성좌의 축복이라고나 할까.”

“성좌요?”

“뭐, 아무튼 간에 우리에게는 그리 썩 나쁘지 않은 일이니 걱정할 필요 없다고 모두에게 전하시게.”

“정말 괜찮을까요? 그것도 무려 보스 몬스터가 설치고 있는데…….”

“괜찮아. 모든 것은 성좌의 뜻대로 돌아가고 있으니.”

백선은 이제 슬슬 상황이 정리되어 가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던지, 현장을 제자들에게 맡기고 자신은 본부로 돌아가기로 했다.

그가 본부로 돌아오자, 유시연이 마중을 나왔다.

“마인드헌터, 상황은 어찌 되어 가고 있나?”

“일단 몬스터를 식별하고 격멸하는 데 온 힘을 집중하고 있습니다. 특공대를 파견해서 적의 부화 시설을 급습해서 타격하고 있고요.”

“부화 시설이라……. 그따위 것들을 도시의 지하에 만들어 두고 있을 줄이야. 그것들의 규모는 얼마나 되는 것으로 보이나?”

“현재까지 집계된 것만 해도 크고 작은 것이 무려 120개에 달합니다. 만약 여기서 박멸을 하지 못한다면 바퀴벌레처럼 살아남아 전 세계로 뻗어 나갈 수도 있을 것으로 보입니다.”

“세계로 뻗어 나간다? 이미 뻗어 나간 건 아니고?”

“……포털을 통해서 말입니까?”

“한국과 미국, 심지어는 일본에서까지 동시다발적으로 몬스터가 창궐하고 있었던 것을 생각한다면 지금 딴 나라도 안심할 처지는 아니라고 생각되네만.”

“안 그래도 주변 국가들이 지금 비상사태로 전환하고 있는 추세입니다만, 아직까지 이렇다 할 피해 상황은 보고되지 않아서 말입니다.”

“아마도 상황에 따라서 몸을 사리고 있는 것이겠지. 그러다가 세력이 커졌다 싶으면 다시 수면 위로 올라올 것이고.”

언데드 웨이브에서 좀비가 인간을 감염시켜 군대를 증강시키는 것처럼 현재의 ‘인간형 몬스터 군대’ 역시 일대일의 교환을 통해 군대를 증강시키고 있었다.

다만, 감염의 형식이 아니라 포식의 형태로 교환이 되다 보니 좀비 사태보다는 확산이 느린 것이었다.

허나, 문제는 한 번 시작된 교환은 걷잡을 수 없는 사태를 만들 수도 있다는 점이었다.

“각 정부에 이 점을 강조하시게. 일반인이 잡아먹히는 것도 충분히 문제이지만 정부 고위 관계자와 정치인, 심지어는 대통령과 헌터들까지도 물갈이가 될 수 있다고 말이야.”

“그놈들은 인간 행세를 할 때 뭔가 어설픈 면이 있다고 하지 않으셨습니까?”

“DNA를 뽑아먹고 진화를 거듭해 새로운 모습을 창안해 낸 것이 바로 그 인간형 몬스터들일세. 만약 여기서 변이, 돌연변이를 통해서 거듭 위장술을 가다듬는다면 어떻게 되겠나?”

“……인간과 아예 구분을 할 수 없게 되겠군요.”

“어쩌면 파이어볼은 그런 걸 노리고 있는지도 모르겠어. 인간 세상을 자신들이 지배하고 컨트롤해서 아예 세상을 뒤집어 버리려는 것이지.”

국가의 수반이나 수뇌부들을 일거에 먹어 치운다거나 서서히 장악하기 시작한다면, 인류의 체계는 제대로 작동하지 않게 될 수도 있었다.

백선은 그런 것을 두려워하고 있었던 것이다.

“국가수반들에게 어서 이 사실을 전하고 대응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시게.”

“예, 알겠습니다. 당장 어르신의 성명을 핫라인으로 전하겠습니다.”

어쩌면 지금부터가 진짜 전쟁의 서막인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절로 든다.

잠시 후,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연락이 왔다.

유시연은 사령관의 서한을 백선에게 전해 주었다.

“어르신, 방금 전에 연락이 왔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에서 계엄령을 선포하고 개개인의 신원을 일일이 확인하겠다고 합니다.”

“계엄령이라. 적절한 타이밍인지는 잘 모르겠네만, 신원을 확인하는 건 나쁘지 않은 일 같기는 해.”

“방금 전까지만 해도 현 정권에서 계엄령 선언을 계속 미루고 있었습니다만, 아무래도 방금 전 어르신의 그 전언이 청와대의 마음을 흔들었나 봅니다.”

“이제 그들도 정신을 차릴 때가 되었지. 언제까지 파이어볼에게 끌려다닐 수만은 없지 않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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