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0 소녀, 각성하다!(2)
쿠웅!
실로 경악을 금치 못할 정도의 크기를 자랑하는 몬스터.
수도방위사령부의 병사들은 마른침을 꿀꺽 삼킬 수밖에는 없었다.
“……거대하군.”
“중대장님, 이럴 땐 도대체 어떻게 해야 하는 겁니까?”
“어쩌긴. 우리는 그저 명령에 따를 뿐이다.”
병사들은 더 이상 질문을 하지 않았다.
제아무리 중대장이라고 해도 건물 벽을 비스킷 부수듯이 때려 부수는 괴물을 어찌할 도리는 없을 것 아닌가.
그런 병사들에게 중대장이 물었다.
“중대장이 너희들에게 묻겠다. 군인은 누구에게 충성하는가?”
“국가와 국민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적은 누구냐?”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위협하는 모든 존재들입니다!”
“그렇다면 너희들의 앞에 서 있는 저 괴물은 어떻게 처리하는 것이 좋겠나?”
“싸워서 이겨야 합니다!”
“좋아, 그럼 가는 거다! 중대, 전투준비!”
소총을 견착 시키고 몬스터의 주요 부위에 가늠자를 가져다 댔다.
아마 저 정도 크기라면 총알이 아무런 소용이 없을 수도 있었다.
허나, 병사들은 그에 연연하지 않는다.
자신들은 그저 국민의 생명과 재산을 지키기 위해 싸울 뿐, 그 어떤 잡념도 남아 있지 않았던 것이다.
바로 그때였다.
쿠그그극……!
땅이 갈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디서부터인가 진동이 느껴지기 시작했고 금방이라도 발밑에서 뭔가 튀어나올 것만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뭐, 뭐지?”
병사들은 당황했고 거대한 몬스터 역시 자신의 발밑이 간지러운 모양인지 적지 않게 동요하는 모습을 보였다.
쿵, 쿵……!
발밑을 연신 번갈아 보느라 육중한 12개의 발을 차례대로 들었다 놓았다를 반복하는 괴물.
그런 괴물의 균형이 무너진 것은 한순간이었다.
끼기기긱!
-크헤에에……?
순간, 땅 한쪽이 푹 꺼지면서 괴물의 신형이 좌측으로 쑥 기울어져 버렸다.
그러곤 이내 아스팔트를 뚫고 나오는 엄청난 크기의 아가리.
-쿠오오오오!
“……뭐, 뭐야?! 아, 악어?!”
“이 세상에 저렇게 큰 악어가 어디 있다고?!”
“몬스터다!”
몬스터를 잡아먹는 몬스터라니, 그것도 바벨탑 밖에서 저런 괴수들이 싸우는 모습을 보게 될 줄은 중대장도 상상하지 못했을 것이다.
바닥을 뚫고 나온 몬스터는 초등학교를 위협했던 괴생명체를 한입에 집어삼키더니 이내 자취를 감추어 버렸다.
병사들은 어안이 벙벙해져선 눈을 끔뻑끔뻑할 뿐이었다.
“……상황 종료인 건가?”
“험험! 중대는 인원 및 장비 점검에 들어간다! 뒤로부터 번호!”
그야말로 손 하나 까딱하지 않고 상황이 종료되었기 때문에 약간 머쓱한 기분마저 들었다.
허나, 만약 제대로 붙었다면 중대의 생명은 장담할 수 없었을 게 분명했다.
‘하늘이 도우셨군.’
초등학교 방어 중대의 중대장 안성균 대위는 이제야 한숨 돌릴 만해졌다고 생각했다.
그는 공포에 떨고 있었을 시민들과 학생들의 안위를 점검하고 그들에게 보급품을 추가로 지급해 주기로 했다.
“사주경계를 설 경계조를 편성하고 나머지는 대피소 안을 살필 수 있도록.”
“네!”
“몬스터에 대한 소식은?”
“강북구에서 3천 마리의 몬스터를 잡아서 사살하였고, 4천 마리 남짓이 도주한 것으로 보인답니다.”
“……많이도 튀었군. 그렇다면 우리의 작전시간은 하루가 될지, 한 달이 될지 아무도 모르는 것인가?”
작전시간이 길어지는 건 중대에게 있어선 그렇게까지 큰 문제는 아니었다.
허나, 이곳에서 버티고 있는 시민들에게 있어 작금의 사태가 장기화되는 건 확실히 문제가 될 수도 있었다.
“보급품을 조금 더 끌어와야겠군. 임화수 중사는 당장 연대 본부로 가서 추가 보급을 받아 올 수 있도록.”
“예, 알겠습니다.”
초등학교 방어 중대의 임시 행정보급관 임화수 중사는 6명의 명사들과 함께 연대 본부로 출발하기로 했다.
앞으로 며칠을 더 버텨야 할지 모르는 상황에서 임화수 중사의 임무는 가장 막중하다고 할 수 있었으므로 안성균은 그에게 장갑차 한 대와 트럭 한 대를 각각 지급해 주었다.
“가능하면 공병대를 지원해 줄 수 있냐고도 좀 물어봐 주고.”
“만약 불가능하다면 어떻게 합니까?”
“……우리가 알아서 해 봐야지 뭐.”
상황이 그렇게까지 좋지는 않았다.
허나, 이런 상황임을 모르고 온 것은 아니기 때문에 안성균은 최대한 침착하게 상황을 지켜보려 노력하고 있었다.
그런데…….
쿠웅, 쿠웅!
어디선가 다시 한번 묵직한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한다.
“……발걸음?”
“아까와 비슷한 크기입니다!”
“제기랄!”
두 번의 요행을 바란다는 것은 생존이 걸린 전장에서는 그렇게까지 바람직한 일이 아니었다.
안성균 대위는 드디어 자신의 군 생활이 여기서 끝나나 보다 싶었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운이 좋았다고 생각했는데, 역시 무리였던 건가?’
***
“……어디로 몰려들고 있다고요?”
“공릉동 한림초등학교라고 합니다.”
너무나도 익숙한 이름이었다.
태하는 당장 공릉으로 출발할 채비를 차렸다.
그는 홍이를 소환했다.
“홍아!”
-짜잔!
“공릉동으로 가야 해! 지금 거기에 초등학생들을 위협하는 몬스터들이 몰려들고 있대!”
-……앗, 그럼 당장 가야 해!
단숨에 포털을 여는 홍이.
태하는 가빈과 함께 포털로 과감하게 뛰어들었다.
파앗!
가빈은 태하에게서 DNA를 물려받았기 때문에 홍이의 포털에 들어가도 문제가 없었다.
두 사람은 마치 익숙한 집 안의 문지방을 넘어가듯 자연스럽게 포털을 넘어갔다.
그러자 벽이 무너진 가운데 탱크 한 대를 사이에 두고 대치 국면을 벌이고 있는 몬스터와 군인들이 보인다.
두두두두!
“막아라!”
“이번에는 작은 놈들도 달려듭니다!”
“제기랄, 그럼 작은 놈들부터 막아!”
마치 이곳에 무슨 좌표라도 찍힌 것처럼 사방에서 몬스터가 몰려들어 마치 밀물이 바다를 채워 나가는 것 같은 착각이 들게 만들었다.
태하는 가빈과 함께 그 대열의 중간으로 끼어들었다.
“가자, 가빈아!”
“……아이들을 지켜야 해!”
줄줄이 달려드는 몬스터의 숫자만 해도 족히 수천은 될 법했다.
만약 좀비 떼가 이만큼 달려들었다고 해도 학교는 결코 무사할 수 없었을 텐데, 이번에는 그보다 지능이 훨씬 높은 몬스터가 웨이브를 이루고 있다는 게 문제였다.
허나, 태하는 이에 대해 아주 유연하게 대처했다.
“대열 중간에 마법진을 만들어서 맥을 끊은 다음에 학생들과 군인들이 있는 진영으로 넘어가자고!”
“……알겠어!”
가빈은 유황불이 일렁거리는 마법진을 만들어서 바닥에 깔아 두었다.
그러자 푸른색 불길이 넘실거리는 원형 화형장이 만들어졌다.
화르르륵!
화형장 안에는 몬스터에게 산 채로 잡아먹힌 무시무시한 원혼들이 들어 있었는데, 그 집념이 지옥의 유황불과 합쳐져 강력한 시너지 효과를 냈다.
-……죽어라!
불길을 뚫고 나오는 원혼들의 손이 몬스터들의 발목을 붙잡자, 영원히 꺼지지 않는 불길이 옮겨붙었다.
지옥의 유황불은 이용광이 가장 즐겨 쓰던 특성 스킬로서 한 번 붙으면 대상이 사라질 때까지 지속되는 특징이 있었다.
이런 불길 속에 발목을 잡아당기는 원귀까지 있으니 몬스터의 대열은 어느 순간부터는 확연하게 줄어들었다.
대열 중간에 병목현상이 생겨서 병력의 소통이 원활하지 못했던 것이다.
태하는 밀려드는 몬스터를 막아선 채로 치열한 전투를 시작했다.
빠각!
-크헤엑!
“여러분! 조금 더 안쪽으로 피하세요!”
“……헬창 헌터다! 이제 살았어!”
이미 두 번이나 인류를 구해 낸 태하이기 때문에 시민들의 신뢰는 그야말로 하늘을 찌를 듯이 드높았다.
허나, 제아무리 태하라곤 해도 이렇게 많은 몬스터를 혼자서 막는다는 것은 무리가 있는 일이었다.
‘……다른 건 문제가 안 된다.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다고 한다면 몬스터가 내가 커버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날 수도 있다는 점이겠지.’
벌써부터 몬스터가 1~2마리씩 사정권을 벗어났다가 스트랩에 붙잡혀 사망하는 사례가 빚어지고 있었다.
태하는 어떻게든 빈 곳을 막아 내야 함을 절감하고 있었다.
“대위님!”
“넵!”
“병력의 화력을 제 양옆 쪽으로 집중시켜 주십시오! 아무래도 근딜이 커버하기엔 범위가 너무 넓어서 말입니다!”
“알겠습니다!”
양 날개를 커버할 수 있는 화력만 생긴다면야 다른 건 근육으로 알아서 할 수 있었다.
자신감이 붙은 태하는 조무래기들을 주먹으로 쳐서 이 세상에서 하직시켜 주었다.
빠바박!
-크에엑……!
“한 방에 두 놈!”
인간을 흉내 냈기 때문에 피부 자체는 그렇게 두꺼운 편이 아니었지만, 때리는 촉감이 그다지 좋지는 않았다.
사람의 생살을 두들기는 듯, 약간 물컹한 느낌이 그대로 전달되었기 때문이다.
‘……썩 내키는 전투는 아니로군.’
도대체 누가 이런 아이디어를 낸 것인지는 몰라도 머리 하나는 정말 기가 막히게 좋았다.
여느 동물이 그러하듯, 이해관계가 엮이지 않은 동족에게는 무릇 친절을 베풀게 되기 마련이다.
인간으로 위장하여 그 촉감까지 완벽하게 재현해 낸다면, 놈들은 어떤 방식으로든 살아남을 수 있을 것이었다.
빠가각!
마치 회전하는 풍차처럼 한 바퀴 빙그르르 돌면서 적들을 나락으로 보내 버린 태하는 곧바로 정면을 응시하였다.
바로 그때, 병사들의 경악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민간인이다!”
“특무관님! 전방에 민간인 무리가 있습니다!”
“민간인……?”
몬스터 무리 바로 앞에 아리따운 여성들이 중요 부위만 아슬아슬하게 가린 채 달려오고 있었다.
비록 TV에 나오는 연예인들처럼 절세가인들은 아니더라도 지나가다가 한 번쯤은 고개를 돌려 봄 직한 미모였다.
군인들은 슬며시 총구를 내렸다.
“……구해야 합니다!”
“잠깐! 뭔가 좀 이상하지 않아요? 몬스터 무리에 사람이 섞여 있는데도 공격을 안 하잖아요.”
“그야 우리 쪽에 볼일이 더 많아서 그런 것 아닐까요?”
태하는 서판 조각이 만들어 내는 오러가 있기 때문에 저놈들의 소갈머리가 더럽고 추악하다는 것을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다.
허나, 그렇지 못한 민간인들은 지금 현혹되어 총에서 손을 떼고 알아서 자신의 목숨까지 바치려 하고 있었던 것이다.
‘현혹되었다. 빌어먹을, 흉내 낸 것은 인간의 질감뿐만이 아니었던 건가?!’
놈들은 DNA를 흡수하면서 인간이 갖고 있는 미의 기준이 무엇인지 알아냈고, 수컷들의 본능을 자극하는 시각적 효과가 과연 어떤 것인지 깨달았던 것이다.
제아무리 국민들을 보호하기 위해 모인 군인들이라곤 해도 그들은 이제 스무 살이 갓 넘은 혈기 넘치는 청년들에 불과했다.
태하는 병사들에게 정신 차리라고 불호령을 내렸다.
“땍! 다들 정신 차려요!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라 괴물이라고요!”
“저, 저렇게 가녀리고 예쁜데요? 우리가 구해 주지 않으면 다 죽을 겁니다!”
“……빌어먹을, 아주 다들 뻑이 가 버렸네.”
이대로는 방어선이 뚫릴 게 뻔했다.
그때쯤, 난감해하는 태하의 가슴 깊은 곳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스킬: 협응]
[근육이 서로 협응하여 힘을 발휘하듯, 인간은 결집될수록 강력해집니다]
[Lv.1 협응 - 선한 영향력을 나눕니다]
태하는 한 병사의 손을 잡았다.
그러자 서판 조각이 가진 ‘진실의 눈’이 그의 손을 타고 흘러들어 갔다.
“허엇!”
“보이십니까?! 저게 바로 놈들의 추악한 진실입니다.”
“우, 우욱……!”
“동료들의 손을 잡아요! 어서!”
마치 전선처럼 하나둘 연결되기 시작하는 병사들, 그렇게 연결 고리가 하나씩 만들어지자 병사들은 과연 진실이 무엇인지 깨닫기 시작했다.
“……괴, 괴물이었잖아?!”
“저놈들은 대한민국의 국민들을 잡아먹었고, 우리가 지켜야 할 존재들로 위장해서 우리를 조롱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정의를 실현해야 하지 않겠어요?!”
“옳습니다!”
“자, 그럼 계속 갈깁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