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18화 (118/197)

118 네 번째 수호자(2)

백선과 경찰청장의 친필로 만들어진 요청서를 들고 수도방위사령부를 찾아간 태하.

수도방위사령관 조학선 중장은 요청서를 받곤 눈을 질끈 감았다.

“……언데드 사태가 터진 지 얼마나 되었다고 이런 일이 발생하나?”

“수도방위사령부에서 최대한 빨리 사태를 진화시켜야 합니다. 그리고 국방부 전체가 움직여서 각 시도를 통제해야 하고요.”

“젠장, 이 정도 사태라면 계엄령이 선포될 수도 있겠는데.”

“협조 부탁드립니다.”

조학선 중장은 고개를 끄덕였다.

“별수 있습니까? 지금 이 시점에서 미적거리다간 수도는 물론이고 대한민국 전체가 날아가게 생겼는데.”

“핫라인을 통해 병력을 동원하면 얼마나 걸리겠습니까?”

“일단 수도방위사령부에 진돗개 하나를 발령하고 5분 대기조 전원을 긁어서 출동시키면 초동 조치에 최소 1개 중대 병력은 투입시킬 수 있을 겁니다. 그 이후에 최소 30분 내로 전 병력이 흩어져서 단독 전투를 치를 수 있도록 하겠습니다.”

“좋습니다. 그럼 국지전을 전제로 병력이 소집되었다고 청룡방에 알리겠습니다.”

수도방위사령부에 협조를 요청하고 돌아오는 길.

그는 유시연의 부름을 받았다.

유시연은 태하에게 광대역 무전기를 건네주었다.

“이걸로 통제하겠습니다. 청룡방 특무관께서는 정부와 헌터협회를 오가면서 상황을 전달해 주세요. 할 수 있죠?”

“그럼 우리 헬창스는요?”

“헬창스는 다른 헌터들과 같이 자기가 사는 인근 지역을 수색하고 보호하는 역할을 하게 될 겁니다.”

“흠, 알겠습니다.”

태하는 특무관 임무를 수행하기 전, 일단 헬스장으로 향했다.

덕림헬스 안에는 소식을 듣고 헬창스와 헬스장 회원들이 한자리에 모여 있었다.

그는 이번 사태에 대해 역설하고 어지간하면 이곳 헬스장에 모여 있으라고 전했다.

“떨어지면 안 됩니다. 몬스터가 언제 치고 들어올지 몰라요.”

“아니, 그보다도 이 중에 몬스터가 섞여 있지 말라는 법이 없잖아요?”

“그래서 헬창스가 곁에 있는 겁니다. 유사시에는 우리 길드원들이 여러분들을 보호해 드리기 위해서죠.”

“흠…….”

“가능하면 동네 주민들도 다 함께 모였으면 좋겠는데, 그건 불가능하겠죠?”

“다른 주민들은 동사무소와 파출소, 소방서에 모여 있다고 하니까 그건 걱정할 필요 없어요.”

마을 곳곳에 이제는 피난처가 마련되어 있기 때문에 핵폭탄이 떨어져도 생존할 수 있게 되었다.

덕림헬스도 그런 피난처 중에 하나였기에 회원들은 가족들을 불러 모아 대기하고 있었던 것이다.

“혹시 잊은 가족이 없는지 확인하시고 부재중이라면 헌터협회에 반드시 말씀해 주세요.”

“알겠어요!”

태하는 주머니에서 홍이와 까미를 꺼냈다.

퍼엉!

-짜잔!

-크르르릉!

“홍아, 까미야. 이 동네를 잘 지켜 줘. 알겠지?”

-어라? 그럼 아빠는?

“난 임무를 수행하러 가야 해서.”

-그럼 같이 가! 여긴 까미가 있으면 되지!

“만약 여기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생긴다면? 이렇게 하면 되지!

퍼엉!

홍이가 분홍색 연기를 터뜨리자, 데스워리어와 라이먼트가 소환되었다.

사람들은 데스워리어를 보고 잠깐 놀라긴 했지만, 이미 몇 번이나 도움을 받았기에 익숙해하는 모습이었다.

라이먼트는 사람들이 놀라지 않게 재빨리 이주현의 팔을 타고 쏙 숨어 버렸다.

-크헤헤! 대장, 화끈하게 한바탕하자고! 어디, 어디야?! 오호, 데스워리어! 형님이 오셨는데 인사도 안 하냐?!

-……거 더럽게 시끄럽네.

이 둘만 있어도 어지간한 몬스터는 막아 낼 수 있을 것이고, 필요하다면 홍이가 소환을 해 줄 수 있을 테니 걱정은 없었다.

태하는 고개를 끄덕였다.

“좋아, 뭐 이 정도라면.”

태하는 이제 안심하고 체육관을 떠날 수 있을 것 같았다.

헌데 그런 태하에게 가빈이 다가왔다.

“아저씨, 같이 가.”

“어딜?”

“나도 같이 움직이고 싶어.”

“어째서?”

“……나도 이제는 도움이 되고 싶어서. 그리고 그 키메라들, 내 손으로 보내 주고 싶어.”

태하는 눈을 들어 보현 관장과 희란을 쳐다보았다.

두 사람은 슬그머니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좋아! 그럼 메이지는 여기에 두고 갈까? 스켈레톤 부대가 하나쯤은 필요할 수도 있잖아.”

“좋아.”

뼈다귀 뭉치를 바닥에 던지는 태하.

끼리리릭!

메이지는 보현 관장과 아주 진한 인사를 나누었다.

“오호, 메이지이이이!”

-크헤에에엘!

“오랜만이야, 브로.”

-크헬!

둘이 죽이 참 잘 맞아서 다행이다.

***

서울을 중심으로 시작된 몬스터 격멸 작전.

로드리고는 경찰청과 함께 일정한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서 배포했다.

-몬스터를 구분하는 가장 결정적인 부분은 눈빛입니다. 몬스터는 보통의 인간과 다르게 눈알이 정상적으로 움직이지 않으며, 눈동자의 색도 평소와는 많이 다릅니다. 또한, 열 마디 이상을 하게 되면 혀에 힘이 빠져 말이 어눌해지게 됩니다…….

“지금으로선 눈빛과 대화밖에는 방법이 없는 건가?”

카본파이버 스포츠카를 타고 수도방위사령부로 가는 길.

태하는 라디오를 통해서 가이드라인을 전해 들었지만, 아직까지는 뭔가 뚜렷한 단서는 찾지 못했다는 느낌을 받았다.

가빈은 그런 태하에게 두 번째 단서를 제공했다.

“인간에게 DNA를 주입한 게 아니라 아예 태아 때부터 유전자조작으로 태어났다면 인간의 관습에 대해서 잘 모를 거야. 행동이 평소와 많이 다를 수밖에는 없겠지.”

“오호, 그렇군? 아나볼!”

태하의 부름에 자동차의 AI가 대답했다.

-네, 주인님.

“방금 전에 가빈이가 한 얘기를 녹음해 줘.”

-저장했습니다.

AI는 실시간으로 블랙박스를 녹화하고 있기 때문에 지나간 얘기라든지 장면 등을 다시 불러올 수 있다.

이제 곧 수도방위사령부에 닿게 될 태하.

-주인님, 전화가 왔습니다.

“누구야?”

-조선엽 딜러입니다.

“연결해.”

태하의 귓전으로 조선엽의 목소리가 직접 들려왔다.

-여보세요? 태하 씨!

“네, 조 딜러님. 무슨 일이세요?”

-혹시 신문 보셨어요?

“신문이요?”

-파이어볼과 헬파이어가 합병된답니다.

“……합병이요?”

-파이어볼이 헬파이어를 흡수해서 단일화를 꾀한다는 것 같더군요.

“흡수합병이라니, 얼마 전까지만 해도 서로 치고받고 싸우고 있었던 거 아니었어요?”

-아니요, 아닌 것 같습니다. 또한, 은청석에 대한 매도가 빗발치고 있어요.

“……매도라니요. 수요가 이미 부족으로 가고 있는 것 아니었나요?”

-미국에서 원전 시설 수리 방안에 대한 안건을 발표했는데, 은청석 도금이 취소되었다고 합니다.

“뭐지……?”

-아무래도 속은 것 같아요. 이거, 파이어볼이 작전을 쓴 것 같다는 생각이 드네요.

지금까지 태하는 헬파이어가 적대적 인수합병에 진심이라고 생각했다. 그건 조선엽도 의심할 여지가 없다고 입을 모았었다.

조선엽은 자신의 실수를 인정했다.

-파이어볼을 너무 얕잡아 봤습니다. 그놈들, 엘리트 집단이었다는 걸 잊고 있었어요.

“그럼 이제 어쩝니까?”

-일단은 관망해 보시죠. 어쨌거나 우리는 이득을 보았습니다. 이미 3조 원에 달하는 물량이 팔려 나갔고, 우리는 그 돈을 차곡차곡 쌓아 두었지요. 만약 최악의 상황에 다다라서 전량 우리가 매입한다고 해도 최소 1조 원 수익은 거둘 수 있습니다.

“흠……. 그럼 일단 걱정은 없는 거네요?”

-그렇습니다. 최소한 금전적으로는 손해 볼 것 없다는 말입니다.

그나마 다행이었다. 만약 여기서 금전적으로도 손해를 봤다면 타격이 너무 컸을 테니 말이다.

“좋습니다. 그럼 우리는 계속해서 움직이겠습니다.”

-여긴 걱정할 필요 없습니다. 뒤통수를 맞았으니 그에 대해 제대로 응징해 주십시오.

“물론이죠!”

***

공릉의 한림초등학교 안.

과거 좀비 사태로 인하여 최우선 방재 시설로 지정된 초등학교는 거의 요새와 맞먹을 정도의 방어력을 갖추게 되었다.

무엇보다도 학생들의 가족들을 보호하기 위해 수도방위사령부와 수도기갑사령부가 각각 1개 중대씩 파견해 둔 상태였다.

다시는 초등학교에 그와 같은 참사가 일어나지 않도록 미연에 방지하려는 것이었다.

상근과 은하도 초등학교에 모여서 구호물자를 받아 잠시 머물고 있었다.

“아빠, 괜찮겠지……?”

“물론이지. 태하 아저씨가 움직이고 있으니까 금방 진정될 거야.”

“헌터들이 다치면 어떻게 해?”

“그야.”

“우리가 도와줘야 하는 건 아닐까?”

이제 은하는 꿈을 조절할 수 있는 능력을 갖게 되었다.

은하의 상상력을 상근의 능력에 덧붙여 실제로 살아 움직이는 환수를 만들어 낼 수 있는 근간을 갖추게 된 것이었다.

일종의 각성을 하게 된 은하는 이제 바깥으로 나가서 자신도 사회에 공헌하고 싶다는 욕구를 품게 되었다.

허나, 상근은 그것을 매우 못마땅해했다.

“엄마를 따라서 박사가 되겠다면서. 박사님은 원래 레이드 같은 건 하지 않는 법이야.”

“윤정 언니는 레이드에서 택티션을 맡고 있잖아.”

“……그거랑 이거랑은 달라. 아무튼 안 돼.”

“왜?”

“글쎄, 안 된다면 안 되는 거야!”

상근이 여기까지 올 수 있었던 것은 딸을 살리겠다는 집념 덕분이었다.

헌데, 만약 허무하게 딸을 잃는다면 그는 과연 버틸 수 있을까?

덜덜 떨려 오는 상근의 손.

은하는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금세 깨달았다.

“미안, 아빠. 다시는 그런 말 하지 않을게.”

“……절대 싸우면 안 돼. 알겠지?”

“응, 그럴게.”

“약속하자.”

“하지만 아빠. 아빠나 내가 위기에 처하면 그땐 어떻게 해?”

“……스스로를 보호하는 건 괜찮아. 하지만 먼저 나서지 않기로 해. 약속.”

“그래, 약속할게.”

부녀는 마주 잡은 손에 더욱 꼭 힘을 주었다.

그러곤 오늘 이곳에서 나가면 뭘 할까, 저녁에는 뭘 먹고 내일 아침에는 쉬는 날이니까 뭘 할까, 이런 소소한 고민들을 늘어놓았다.

“오늘 저녁에는 원래 샤부샤부를 먹기로 했었지? 우리 딸이 소고기 좋아하는데, 오늘 못 먹어서 어쩌지?”

“내일 먹으면 되지. 그리고 내일 아침은 쉬는 날이니까 물놀이 가는 건 어때?”

“오호, 좋지! 그럼 가는 길에 고기 좀 사 가서 구워 먹을까?”

“새우랑 조개도!”

“오케이, 새우랑 조개! 메모해 둘게.”

어느 순간부터 부녀는 걱정과 고민보다는 행복한 일을 더 많이 떠올리게 되었다.

당장 눈앞에 걱정거리가 놓여 있다고 하더라도 이 걱정거리가 치워지고 나면 생길 행복에 집중하는 것이었다.

그렇게 긍정적으로 생각하기 시작하자, 그들의 아픈 과거도 이제 조금씩 잊혀 가고 있었던 것이다.

쿠우웅……!

허나, 지금의 상황은 그들이 생각하는 것보다도 더 좋지 않은 모양이었다.

“……지금 이거 뭐지?”

“아무래도 헌터들이 싸우고 있으니까. 이따금 전투가 벌어지면 지금과 같은 충격이 느껴질 수도 있지. 특히나 강타 계열의 헌터들의 경우엔 진동이 훨씬 더 클 테니까.”

도시에 미사일을 쏘는 경우는 과거 메피스토 사태처럼 뚜렷한 적이 있을 시, 공격이 유효할 수 있다는 판단이 들 때뿐이었다.

지금의 이 진동은 미사일이라기보다는 강타 계열의 일격필살 스킬이 분명해 보였다.

은하는 손발이 간질거렸다.

“……지금 내가 나간다면 더욱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텐데!”

“바깥일은 어른들에게 맡기고 은하 너는 당장 내일의 일을 생각하면 되는 거야. 알겠지?”

아무리 타일러도 헌터의 본능이 꿈틀거리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은하의 모친도 그랬었으니까.

‘언제까지고 행복 회로만 돌리면서 아이를 가둬 둘 수는 없을 텐데…….’

사실, 고상근도 잘 알고 있다.

아버지가 아무리 말린다고 해도 성인이 된 이후의 은하는 절대 헌터의 운명에서 벗어날 수 없다는 것을 말이다.

허나, 그는 자신이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해서 딸의 앞길을 예비해 주고 싶었다.

‘10년만 더, 아니 최소한 5년만 더. 그때까지만 참아 줘, 딸아!’

고상근의 바람은 과연 이뤄질 수 있을 것인가?

쿠웅, 쿠웅, 콰아아앙!

이따금씩 들리던 진동은 점점 커지더니 이내 학교의 외벽을 무너뜨리기에 이르렀다.

수도기갑사령부 산하 전차병들이 무너진 외벽 앞을 막아섰다.

끼리리릭……!

귓전 바로 옆에서 전차의 무한궤도 장치 돌아가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제기랄!”

순간, 고상근은 직감했다.

오늘이 바로 딸이 각성하는 날임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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