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6 더 위로!(2)
인천 송도의 ‘한국 몬스터 해부학회’를 찾은 헬창스.
그들은 이곳에 심장을 기증하여 그 장기 구조와 DNA 구조를 분석해 달라고 요청했었다.
그로부터 나흘 후에 연락이 와서 다시 송도를 찾아간 것이었다.
송도의 연구원들은 태하와 동료들에게 차근차근 설명을 해 주었다.
“음……. 일단 이것은 인간의 장기를 본떠서 만든 것이라고 해 두고 싶네요.”
“그렇게 보시는 이유가 뭔가요?”
“글쎄요. 지금으로선 정확히 알 수 없습니다만, 간단히 추론을 해 볼 수는 있어요. 인간의 심장은 단순히 피를 보내는 곳으로만 사용되지는 않습니다. 헌터들이 사후에 해부학회로 보내질 때가 종종 있는데, 그때 부검을 해 보면 심장에서는 일종의 코어와 비슷한 물질이 검출되기도 합니다. 그걸 연구해 본 결과, 우리가 아는 이 세상의 물질들 중에서는 일치되는 것이 없었죠.”
“그럼 인간의 장기를 본뜬 건 그 특별한 뭔가를 만들어 내기 위함이라는 건가요?”
“우리는 그 특별한 물질이 각성과 관련이 있지 않나, 그리 추측하고 있습니다.”
“……뭐야, 그럼 몬스터를 각성시키기 위해서 그 짓을 벌이고 있었다는 건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다고 봅니다.”
인간의 모습으로 몬스터를 만든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던 모양이다.
물론, 아직까지는 모든 것이 추론에 불과하지만 합리적인 의심을 해 볼 필요는 있었다.
연구원들은 곧이어 알 주머니에 대한 부검 결과를 내놓았다.
“그리고 이 새끼 몬스터를 해부해서 자세히 살펴보았는데 말입니다. 이놈들, 장기는 인간의 것을 갖고 있는데 표피 아래에 전혀 새로운 형태의 무언가를 지니고 있더군요.”
“무언가라니요?”
“뭐랄까요. 변신? 변형을 위한 도구인 것 같기도 하고요.”
“……아하! 그래서 극도로 흥분하면 살이 찢어지고 이상한 형태로 변하는 것이로군요.”
“허나, 신기한 건 이 변형이 일어날 때 장기의 변형도 같이 일어난다는 겁니다.”
“장기의 변형이라니요?”
연구원들은 헬창스를 연구실 안쪽으로 안내했다.
이곳에는 새끼 몬스터의 뇌를 보존 용액에 담가 놓고 전기 자극을 가하는 실험이 진행 중이었는데, 뇌와 연결된 장기들이 각각의 보존 용액 용기에 담겨 있는 것을 볼 수 있었다.
“자, 보세요. 뇌에 자극을 전달하면…….”
치지지직!
버튼을 누르자, 새끼 몬스터의 두뇌는 자극을 받았다.
이 자극이 가해지자, 놈의 뇌와 연결된 장기들이 갑자기 꿈틀거리더니 이내 180도 달라진 모습으로 변형되었다.
“……커, 커졌네?”
“크기뿐만 아니라 형태와 장기의 위치까지 변합니다. 한마디로 변신을 위해 특화되어 간다고 볼 수 있겠지요.”
DNA를 자유자재로 조작할 수 있다고 해도 이 정도면 정말이지 엄청난 정성을 쏟았다고밖에는 설명이 되지 않는다.
헬창스는 깊은 고민에 빠져들었다.
“도대체 이유가 뭘까요……? 이토록 인간의 겉모습에 집착하고 변신에 심혈을 기울인 이유가 말입니다.”
“글쎄요. 위장을 위한 것이었다면 설명이 될까요?”
“……위장이요?”
“동물이 겉모습을 바꾸는 이유는 위장을 위한 것입니다. 천적, 혹은 먹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위장을 하곤 하죠.”
“먹이에게 들키지 않기 위해서……?”
가만히 얘기를 듣고 있던 태하의 뇌리로 한 가지 장면이 강렬하게 스치고 지나갔다.
그는 마치 귀신에 홀린 사람처럼 한 단어를 읊조리기에 이르렀다.
“……화이트홀!”
“화이트홀이라니요?”
“이 심장을 가지고 나왔던 곳에 화이트홀이 있었잖아요! 그게 혹시 바깥으로 연결되어 있는 것이었다면……?”
“……!”
“이거, 어쩐지 심상치가 않은데요?”
사냥을 위해 위장을 선택했다는 말에 태하는 뭔가 번뜩이며 뇌리를 스침을 느꼈다.
그는 얼마 전, 잠실 모텔 살인 사건에 대해 물었다.
“잠실 모텔 살인 사건 있잖습니까. 그 피해자들의 시신을 부검하면서 DNA 검사도 같이 했겠지요?”
“물론입니다. 상흔 근처에서 채취한 DNA 샘플을 확보했었습니다.”
“혹시 그 DNA와 우리가 가져온 샘플을 비교해 볼 수 있을까요?”
“……설마 이 두 몬스터 사이에 접점이 있다고 생각하시는 겁니까?”
“그렇지 않을까 싶어서 말입니다.”
부디 그러지 않기만을 바라고 있지만, 아무리 생각해 봐도 답은 이미 나와 있다는 느낌이 든다.
연구원들은 태하의 주문을 받고 DNA 샘플을 대조하기 시작했다.
이미 DNA 구조 분석은 끝난 상태이기 때문에 이 2개를 대조하는 것은 어려운 일도 아니었다.
분석된 데이터를 바탕으로 진행되는 DNA 대조.
연구원들은 데이터를 산출하곤 얼굴이 와락 일그러지고 말았다.
“……동족으로 나오네요.”
“허어!”
“이미 저놈들은 이 땅 위를 배회하고 있었던 겁니다.”
***
같은 시각, 도쿄 시부야에서는 무려 500명의 사상자가 발생한 대규모 PK가 있었다.
능력자들끼리 맞붙어 사상 초유의 인명 피해가 발생한 이번 PK에 대한 대대적인 조사가 진행되었다.
이는 경시청은 물론이고 미국 FBI와 한국 경찰청, 심지어는 인터폴까지 초빙된 초대형 공조수사였다.
박찬수 총경은 경시청 마루야마 마사히로 경정과 사건 현장을 둘러보았다.
시신들의 상태는 차라리 열전의 전장을 보는 것이 속 편할 정도로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염력으로 온몸을 비틀어 버린 것인지 어쩐 건지 제대로 된 시신을 찾아볼 수가 없습니다.”
“……잔인한 놈들이로군요.”
마루야마 경정은 박찬수에게 따라오라고 손짓했다.
그는 박찬수에게 사건 현장 한쪽에 모여 있는 미라를 보여 주었다.
“50구. 신체에 남은 수분이란 수분은 죄다 빨려서 뼈와 가죽만 남았습니다. 심지어는 피부의 콜라겐까지 탈탈 털려서 백골이나 마찬가지인 상태죠.”
“이게 인간이 한 짓이라고요……?”
“그나마 이건 좀 나은 편입니다. 이쪽으로.”
마사히로 경정은 박찬수에게 보여 줄 것이 많다는 듯 바쁘게 걸음을 옮겨 이번에는 온몸 곳곳이 뜯겨 나간 광경을 보여 주었다.
“여긴 시신의 일부를 뜯어 먹힌 것 같은 광경입니다. 어때요?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아요?”
“……잠실 모텔 살인 사건?!”
“이거, 단순한 PK가 아닌 것 같아요.”
500구가 넘는 시신 중에서 100구 정도가 이렇게 처참한 몰골이었다.
마사히로 경정은 어쩌면 말라비틀어져 죽었다거나 온몸이 제멋대로 뒤틀린 것 역시도 몬스터의 포식과 연관된 게 아닌가 싶었다.
“먹이를 먹은 겁니다. 단순히 사람과 사람 간의 전투만 있었던 것이 아니고요.”
“목격자 진술은 없습니까?”
“원래 이 근방에서 도로공사를 한다는 제보가 있었고, 경시청에서도 통제 허가를 내려 줬었거든요. 그래서 이 근방에는 사람도 없었고 하필이면 CCTV도 먹통이었다지 뭡니까. 도로공사를 한다고 주변의 전기도 통제를 했었다고 하더라고요.”
완벽한 밀실 살인과 비슷한 느낌이 나는 이번 사건, 박찬수는 이게 정말 보통 일이 아니라는 직감이 왔다.
“한국, 미국, 그리고 이번에는 일본까지……?”
“어쩌면 조직적으로 사람을 먹어 치우는 집단이 있는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제가 말씀드렸었죠? 일전에 조사했었던 사건 현장에서 포털의 흔적이 발견되었었다고요.”
“포털! 그래요, 포털이 있었다고 했었죠.”
박찬수는 마사히로에게 군청색 가루 샘플을 건네주었다.
작은 지퍼백에 든 군청색 가루 샘플은 여전히 서로 붙어서 떨어질 줄 몰랐다.
“혹시 현장에서 이런 것이 발견되었는지 알아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게 뭔데요?”
“포털을 인위적으로 사용했을 때에 남는 흔적이라고 하더군요.”
“……포털을 인위적으로 사용해요?”
“화이트홀, 혹은 그와 비슷한 것을 사용한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알겠습니다! 지금 당장 알아볼게요!”
마사히로에게 증거물을 건네준 박찬수는 부하들에게 수사 일정을 조율하고 최대한 공조할 수 있도록 지시했다.
이제 현장을 떠나 경시청으로 들어가려던 박찬수에게 전화가 걸려 왔다.
“네, 박찬수입니다.”
-과장님, 큰일입니다! 지금 울산 공업단지 내 폭파 사고가 났는데, 몬스터가 창궐했다고 합니다!
“……뭐, 몬스터?!”
***
울산 제1공업단지 내에 위치한 제5화학공업구역.
이곳은 정제된 몬스터 코어를 가공하여 에너지원으로 포장해서 유통하는 구역으로, 산업단지 내에서도 중추적인 역할을 한다고 알려져 있다.
공업구역 중심 지역에서 발생한 폭파 사고와 몬스터 창궐을 조사하기 위해 급히 울산으로 내려온 태하는 방금 전에 일본에서 도착했다는 박찬수를 만날 수 있었다.
“방금 전에는 일본, 이번에는 울산. 정말 동에 번쩍 서에 번쩍 하시네요.”
“축지법이라도 쓰고 싶은 심정입니다. 그나저나 안 그래도 연락을 드리려고 했는데, 우연찮게도 이런 사건이 벌어지네요.”
“저도 그랬습니다.”
태하와 박찬수는 각자 들고 온 서류 봉투를 교환하였다.
마치 미리 짜기라도 한 듯 두 사람은 서로에게 줄 것이 있었던 것이다.
서류 봉투를 확인한 박찬수의 눈은 이내 휘둥그레졌다.
“……뭐, 뭡니까, 이게?!”
“말 그대로 제1던전에서 새끼들을 키워 화이트홀 너머로 보내는 놈들이 있었습니다. 지금 그놈들은 인간과 똑같은 모습으로 위장하여 사람들을 먹어 치우고 있고요.”
“마, 말도 안 되는 소리! 어떻게 그게 가능하단 말입니까?”
“저도 그게 의문입니다만, 파이어볼이라는 놈들이 하고 다니는 걸 보고 있자면 아주 불가능한 일도 아니라는 생각이 절로 듭니다. 그놈들, 겨우 막대기 하나에 팔찌 1개씩 가지고 포털을 만들어 넘나들고 있었거든요.”
“……벌써 화이트홀 연구가 마무리된 겁니까?”
“그런 것 같더군요. 아수라 연구소는 그저 쭉정이에 불과했을 뿐, 진짜 기술은 파이어볼에게 있었던 것이죠.”
“뭐, 이런 변이 있나?!”
“그나저나 500명이나 사망을 했는데, 하나같이 뭔가에 먹힌 것 같은 느낌이 드셨다고요?”
박찬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느낌이 드는 정도가 아니라 그렇게 확신하고 있습니다.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보통의 상흔으로는 인간이 저렇게 될 수가 없잖습니까?”
“……그렇다면 이번 사건도 이 포식자들과 관련이 있다는 것인가요?”
“그런 셈이죠.”
어쩐지 사건이 점점 더 복잡해져만 간다는 느낌이 든다.
두 사람은 서류 봉투를 손에 쥔 채 이번 사건 현장으로 터벅터벅 걸어갔다.
도대체 이번에는 또 무슨 경악스러운 일이 벌어지려는 것인지, 두려운 마음까지 든다.
박찬수가 도착하자, 주변을 경계하고 있던 경찰들이 경례를 올렸다.
척!
“충성!”
“그래, 고생 많아. 현장은 수습되었나?”
“주변에 있던 초급 헌터들이 고블린을 정리해서 대충 마무리는 되었습니다.”
“고블린?”
“한 120마리쯤 되는 고블린들이 주변을 배회하고 있다가 헌터들에게 정리되어 지금은 시신으로 남아 있습니다. 한번 보시겠습니까?”
박찬수는 태하에게 함께 가자는 눈빛을 보냈고 태하는 그의 뒤를 따라서 사건 현장으로 들어섰다.
그러자 보이는 고블린들의 무덤.
그는 고블린의 종을 확인하기 위해서 도감을 펼쳤다.
[몬스터 도감: 분석 중입니다]
[대상 종: 고블린]
[학명: ???]
[특징: 샌드타워에서 최초로 발견됨]
순간, 태하의 눈썹이 심하게 일그러졌다.
이놈들은 다름 아닌 무한의 소환술사가 끌고 왔었던 고블린이 분명했기 때문이다.
“무한의 소환술사, 그놈의 짓입니다.”
“허! 저번에 말씀하셨던 그 의문의 인물 말입니까?”
“네, 맞아요. 그놈이 폭발을 일으키고 도주한 것 같네요.”
“아니, 도대체 왜……?”
태하는 고블린의 시신을 천천히 살펴보았다.
전체적인 크기와 근육의 강도로 보아 일반적인 종보다 훨씬 더 강화가 된 느낌이었다.
또한, 고블린의 몸 곳곳에는 군청색 가루가 묻어 있었다.
“소환을 해서 이곳으로 불러냈었군요.”
“도대체 왜 이런 짓을 한 걸까요?”
무한의 소환술사는 어쩌면 파이어볼과 연관이 있는 것일까?
태하는 이놈이 파이어볼과 연관되어 있다면, 도대체 그 목적은 무엇인지 궁금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한참을 고민하고 있던 바로 그때였다.
“과장님! 여기 생존자들이 있습니다!”
“생존자……?”
“화학 유기물 보관 창고 안에 있던 사람들이랍니다!”
공단 내 한 구역이 통째로 날아갈 정도로 강력한 폭발이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사람이 살아 있었다는 것은 그야말로 기적이었다.
허나, 그들이 나왔다는 보관 창고 안으로 들어간 태하는 이게 기적이 아님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었다.
보관 창고 내에는 지하로 통하는 계단이 있었는데, 그곳으로 내려가 보니 온통 사방이 순백색인 연구 시설이 위치하고 있었던 것이다.
-키헤헤헤!
“……고블린?”
여전히 지하에는 고블린이 남아 있었다.
태하는 어쩌면 이곳에 무한의 소환술사가 있을지도 모른다는 직감이 들었다.
그는 박찬수에게 주변을 통제해 달라고 부탁했다.
“여기 용의자가 있을지도 몰라요! 주변을 통제하고 도망치는 자를 검거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쥐새끼 하나 빠져나가지 못하게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