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15화 (115/197)

115 더 위로!(1)

제1던전 73층 중앙지점.

빠각!

시원하게 몬스터의 골통을 후려갈기는 태하와 헬창스가 보인다.

75층까지는 헬창스 단독으로 돌파하고 그 뒤로는 대규모로 공격대가 투입될 예정이었다.

언제나와 같은 레이드.

허나, 이번에는 몬스터의 모습이 평소와는 많이 달랐다.

인간과 똑같은 외모를 가진 몬스터들이 헬창스를 죽이겠다고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먹자! 먹이다!”

“배고파! 밥 줘!”

헬창스는 몬스터를 죽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마음이 편치 않았다.

평소 같으면 헬창 특유의 기합과 괴성을 마구 질러 대며 스테로이드 마인드를 극한으로 끌어올렸겠지만, 지금은 그럴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였다.

서걱!

검으로 몬스터의 목을 치는 영수의 표정이 썩 좋지 못했다.

“……소름 끼치는군. 인간의 목을 친 것 같은 기분이 듭니다.”

“제기랄, 저런 것들은 또 도대체 어떻게 만들어 낸 거야?”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지만, 그들이 헬창스를 본격적으로 공격할 때에는 그 이면에 숨겨져 있던 내면의 공격성이 폭발했다.

우드드드득!

-크헤아아아악!

살갗이 터지면서 피부가 갈라졌고, 그 안에서는 안구와 장기 등을 재조합한 지옥의 생명체가 똬리를 틀고 있다가 튀어나왔다.

그야말로 인간의 본능적인 혐오스러움과 공포를 자극할 정도로 그로테스크한 괴기함이었다.

“……살아 있는 인간과 똑같이 생긴 몬스터라니. 끔찍하군요.”

“좀비도 이 정도는 아니었는데. 키메라 실험이라는 것이 이제는 좀 무섭게 느껴질 지경이네요.”

근딜러 3명은 끔찍하게 변해 버린 인간형 몬스터를 차례대로 죽여 나갔다.

구역질이 나다 못해 이제는 숨 쉬는 것조차 힘들었다. 아니, 어쩌면 자신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도 잊은 채 무기를 휘두르고 있는 것인지도 몰랐다.

허나, 그 어떤 시련에도 끝은 있기 마련이다.

중앙지점을 지나자, 신기하게도 몬스터의 행렬은 끝이 나 있었다.

“……지긋지긋하네.”

“그나저나 정말 제대로 된 모습의 몬스터는 존재하지 않는 것일까요?”

처음 헬창스가 던전에 진입했을 때, 73층에는 일반 몬스터가 존재하지 않았다.

인간의 모습과 그들의 목소리를 가진 혼종 몬스터들이 사람을 흉내 내며 여행자들을 포식하겠다며 달려들고 있었던 것이다.

그나마 72층은 좀 낫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이곳의 모습은 처참하기 이를 데가 없었다.

“일반 몬스터의 리젠이 이제는 멈춘 건가?”

“하지만 하층부는 아직도 몬스터가 리젠되고 있잖아요? 특히나 1층부터 3층까지는 지금도 활발히 채굴이 진행되고 있고요.”

윤정은 동료들의 얘기를 가만히 듣고 있다가 한 가지 가설을 내어놓았다.

“던전의 치유, 그게 아닐까요?”

“치유?”

“왜, 일전에 그랬다면서요. 던전이 붕괴될 것 같으니 태하 씨를 여기로 보낸 거라고요. 그렇다면 당신이 던전을 지날 때마다 뭔가 공간이 복구되는 것이 아닐까 싶은데요?”

“나는 치유의 능력은 갖고 있지 않은데요?”

“그런 것이랑은 차원이 다른 뭔가가 있어요. 분명해요.”

마이트가 태하를 선택했을 때에는 아마 그가 알려 준 것 말고도 뭔가 특별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허나, 마이트에게 그 대답을 듣고 싶어도 들을 수 있는 상황은 아니었다.

“언젠가 기회가 된다면 마이트에게 물어보고 싶네요. 내게 무슨 능력 같은 게 있는 것인지.”

“뭐, 아무튼 간에 73층 등반은 이제 곧 마무리가 될 것 같죠?”

73층은 그야말로 인간의 시체투성이였다.

만약 전쟁터에서 누군가를 일방적으로 학살했다면 딱 이런 느낌일 것이었다.

동료들은 분명 던전을 클리어했음에도 불구하고 어쩐지 찝찝하고 불쾌하며 상당한 죄책감마저 느끼고 있었다.

“……그나저나 던전을 공략한다고 사람처럼 생긴 생명체를 죽이는 것이 과연 옳은 행동일까요?”

“저것들은 인간이 아니에요. 키메라일 뿐이지.”

합리화가 필요했다. 옳은 일을 해 놓고 합리화를 한다는 것 자체가 좀 아이러니하긴 했어도 지금 이들에게는 분명 합리화가 필요했던 것이다.

서로를 위로하면서 74층으로 오른 헬창스.

74층은 상당히 포근하고 안락한 느낌의 동굴 형태로 되어 있었다.

“사람이 잠자기엔 딱 좋은 느낌인데요?”

“……아니, 잠깐만. 이 냄새, 어디선가 한 번쯤은 맡아 보지 않았어요?”

“저, 젖내?!”

“약간 달라요. 이거, 인간의 젖내는 아니에요.”

아이가 있는 집에서는 아기 특유의 젖내가 진하게 난다.

때문에 남성은 약간의 포근함과 이유 모를 안도감을 느끼게 되고 약간의 폭력성마저도 가라앉게 되기도 한다.

특히나 여성은 이 냄새에 민감할 수밖에 없는데, 아이를 낳아서 기르려는 인간 DNA에 깊숙이 박힌 종족 번식의 본능이 일깨워지기 때문이다.

허나, 이번 건은 그런 의미와는 아예 차원이 달랐다.

인간을 흉내 내는 극악무도한 몬스터.

바로 그것들의 소굴이었던 것이다.

두근, 두근!

동굴 전체가 살점으로 이뤄져 있었고 그 구조물마다 전부 생명이 부여되어 혈액을 공급받고 있었다.

거대한 심장으로부터 검붉은 피를 수혈받아서 살아가는 생명체 그 자체가 일종의 건물 역할을 하고 있었던 것이다.

“……살아 있는 마을!”

“이거 저번에 본 그 몬스터 둥지 아니에요?”

“젠장, 이게 여기 또 있었네?”

“……이번에는 포유류의 양식장 같은 느낌인데요?”

“인간의 탈을 뒤집어쓴 몬스터를 이곳에서 부화시켜서 키우는 모양이네요. 이 거대한 동굴이 새끼를 생산하고 젖을 먹여서 인간과 가장 가까운 모습으로 변화시키는 겁니다.”

“이것도 그 키메라 연구소에서 만들었을까요?”

“아마도 그렇겠죠? 아니, 그런데 왜 하필이면 이렇게 인간과 똑같은 모습이어야 했을까요?”

동료들은 자연적으로 이주현을 바라보았다.

주현은 나름대로 의학적인 추리를 하기 위해 머리를 굴렸다.

“흠……. 이렇게 생각해 볼 수 있어요. 자연적인 진화를 바탕으로 생각을 해 본다면, 아마도 천적인 인간을 따라서 이런 방식의 진화를 택했을 가능성이 높죠.”

“그럼 인간을 천적으로 생각해서 나름대로 방어 수단을 만들어 냈다는 건가요?”

“처음에는 이게 방어기제 형식으로 발현이 되었겠죠.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것이 공격성을 드러냄에 따라서 이처럼 공격의 기회를 노릴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낸 거고요.”

“썩을…….”

“하지만 내 생각에는 그건 아닌 것 같아요. 사실, 몬스터의 입장에서 스스로 진화를 한다고 가정한다면, 인간의 외형을 따라 할 필요는 없잖아요? 인간은 지능이 높아서 만물의 영장이라 불리는 거지, 사실 이렇다 할 무기 없이 홀로 남게 되면 들개 1마리에게도 사망할 수 있을 정도로 약해요.”

“하긴. 피부가 두꺼운 것도 아니고 발톱이 발달한 것도 아니고요. 게다가 힘도 그리 센 편도 아니고.”

“그렇죠? 이건 인간이 일부러 이런 방식으로 만들었다고밖에는 설명할 길이 없어요.”

도대체 몬스터를 왜 이따위로 만들었는지 궁금해지지 않을 수 없는 순간이었다.

어쨌든 태하 일행은 이곳을 정리하고 지상으로 내려가야 할 필요성을 느끼고 있었다.

“자, 갑시다! 어쨌든 정리는 해야 하니까요.”

“잠깐. 잠깐만요.”

이주현은 뭔가 잠시 생각에 잠기는 듯했다.

그러더니 근딜러들에게 두 가지 부탁을 했다.

“심장을 도려내서 통째로 들고 나갈 수는 없을까요? 저 새끼들도 살려서 1마리 데리고 나가고요.”

“……저 큰 걸 어떻게 가지고 나가요?”

“홍이가 포털을 열어 준다면 가능할 것 같은데요.”

“아하! 공간이동 마법을 사용해서 심장을 가지고 나가자는 건가요?”

“네, 그렇게만 할 수 있다면 이놈들이 도대체 무슨 의도를 가지고 이 짓을 벌이는 것인지 알 수 있을 것 같은데요.”

태하와 근딜들은 고개를 끄덕였다.

어떻게 해서든 이 사태의 진위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 지표를 찾아낼 수 있다면, 다른 건 몰라도 속은 뻥 뚫릴 것 같았기 때문이었다.

“그럼 일단 알부터 하나 채취하고 심장을 그냥 도려낼까요? 그럼 이번 던전은 알아서 클리어할 수 있을 것 같은데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그럼 심장을 통째로 도려내는 것으로 합시다. 다만, 그렇게 하자면 심장을 안전하게 떼어 낼 수 있는 방안을 마련해야 할 것 같은데요?”

이주현은 영수의 어깨를 툭툭 쳤다.

“검을 제일 잘 쓰는 사람과 의사가 직접 집도를 하면 어때요?”

“괜찮은 방법 같네요. 그럼 조심하세요.”

“오케이!”

영수와 주현은 동료들이 알을 채취할 동안 심장을 도려내기 위한 수술에 들어갔다.

둥지의 심장은 의외로 얇은 연골이 둘러싸고 있었는데, 칼로 가르면 아주 쉽게 갈라질 정도였다.

허나, 칼을 대자마자 온 사방이 시끄럽게 울려 대기 시작했다.

-끼에에에엑!

“……으으윽, 귀청 떨어지겠네!”

“아무래도 마취가 좀 필요할 것 같은데요?”

“때려서 기절을 시키면 되려나?”

“아니요. 마취제를 투여하는 게 좋겠어요.”

이주현은 퍼펙트서전의 특성 스킬을 사용해서 이 거대한 몬스터의 혈액에 직접 호르몬 조절제를 투여하기 시작했다.

[액티브 스킬: 주입]

[특정 약물이나 호르몬제 등을 주입시킵니다]

그러자 마취를 유도하는 호르몬 물질이 주입되면서 몬스터는 빠르게 잠에 빠져들기 시작했다.

이주현은 마취 유무를 알아보기 위해서 나이프로 심장을 살짝 썰어 보았다.

푸욱.

놈은 아무런 미동조차 없이 아주 깊은 잠에 빠져 있었다.

“휴우, 다행이네요.”

“그럼 이제 시작할까요? 먼저 개흉부터 하면 되는 건가요?”

“네, 맞아요. 일단 겉껍질부터 갈라 낸 후에 연골을 살며시 갈라서 그 안의 내용물을 좀 보자고요.”

심장이라고 추측되는 장기는 직경이 무려 25미터나 될 정도로 넓었다.

그 넓은 심장 위로 올라간 영수는 대검을 아주 섬세하게 다루면서 외피를 벗겨 냈다.

그러자 새까만 근육이 고동치는 게 보인다.

두근, 두근!

“움직임이 아주 좋네요. 건강한 것 같아요.”

“그나저나 저걸 자르면 출혈이 생길 텐데, 그건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혈관을 막아야죠. 심장으로 들어오는 혈관, 그리고 피를 보내 주는 혈관을 막아 버리면 괜찮을 겁니다. 해당 부위에 출혈을 멈추게 해 주는 물질을 투여하면 되겠죠?”

“그럼 먼저 출혈을 멈추도록 혈관부터 막으면 어떨까 싶은데요.”

“좋은 생각이네요!”

주현은 당장 심장으로 들어오는 길목을 차단해 버렸다.

그러자 혈관이 꽉 막히면서 더 이상 피가 돌지 않게 되었다.

“이제 제가 지정하는 곳부터 잘라 내요. 아셨죠?”

마치 장기를 적출할 때처럼 이주현은 아주 섬세하게 지시를 내리며 심장을 최대한 보존하는 선에서 수술을 집도했다.

영수는 생각보다 길어지는 수술에 약간 버거워하는 것 같기도 했으나, 그는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심장을 떼어 냈다.

“적출했다! 마탄 형님! 여기 얼음 좀 쏴 줘요!”

“오케이! 지금 쏴 줄게!”

임혁수는 엘리멘탈 블릿으로 몬스터의 심장을 순식간에 얼려 버렸다.

꽈드드득!

이제 적출도 끝났겠다, 태하는 홍이를 소환해서 이곳을 나가기로 했다.

-짜잔!

“사랑하는 우리 홍이, 저 심장 좀 밖으로 꺼내 줄래?”

-헤헷, 알겠어! 자아, 간닷!

퍼엉!

분홍색 연기와 함께 사라지는 거대한 심장.

그러자 동굴이 진동하며 무너져 내리기 시작했다.

“……갑시다! 바로 아래층으로 가야 해요!”

바로 그때였다.

끼이이이잉!

헬창스의 바로 앞으로 두 갈래로 나누어지는 화이트홀이 나타났다.

“뭐야……? 이게 왜 여기서 나오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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