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14화 (114/197)

114 아나볼릭한 승리(2)

태하에 의해 소환된 레이스.

그녀는 태하가 건넨 한 장의 사진을 보며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게 뭔가요?

“어떤 살인 현장에서 발견된 거야.”

-군청색 부스러기라. 확실히 특이한 형태이긴 하네요.

사진 속에는 군청색의 돌 조각이 마구 흩어져 있었는데, 이것들은 마치 자성을 띠는 물체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내고 있었다.

혹시나 해서 국과수에 분석을 의뢰했더니 지구상에서는 일치하는 성분이 없다는 판정이 나왔다.

게다가 결정적으로 이것들은 자력을 갖고 있지 않은 것으로 분석되었다.

-자력이 없는데 서로를 끌어당긴다고 하셨나요?

“그런 물질이 존재했던가?”

-검색을 해 볼게요.

레이스는 태하의 궁금증을 해결하기 위해서 메피스토의 서고 검색 스킬을 사용했다.

대략 30초 후, 레이스는 검색 결과를 통지해 주었다.

-찾았어요!

“오호, 그래?!”

-이건 마정석이에요.

“……마정석? 우리가 아는 그 마정석 말이야?”

-네, 맞아요! 하지만 종류가 좀 달라요. 뭐랄까, 이건 마정석으로 소환 행위를 하다가 생긴 것이라고나 할까요?

“소환……?”

-고대 마왕의 군대에는 ‘모나크’라는 직위가 있었대요. 이 모나크는 마정석을 가지고 마왕의 군대를 공간이동 시키는 능력을 가지고 있었다고 하네요. 공간이동을 위해서 마정석을 사용하면 그것이 가루의 형태로 흩어지게 되는데, 그것은 마치 자력을 가진 돌처럼 서로를 끌어당기거나 밀어냈다고 하는군요.

“음, 그러니까 이 마정석은 모나크라는 놈들이 만들어 내는 것이라는 거지?”

-그런 셈이죠. 하지만 지금은 모나크가 존재하지 않아요. 정확히는 봉인되어 더 이상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게 된 거죠.

“흠, 그렇단 말이지.”

검색 결과를 가만히 바라보던 태하.

그는 불현듯 한 사람이 뇌리에 스쳤다.

“……잠깐! 이거, 일반인이 소환 스킬을 쓴다고 가정해도 생길 수 있을까?”

-경우의 수는 많죠. 만약 각성자가 소환이라는 스킬을 얻었고, 그 촉매가 마정석이었다고 한다면 말이 되긴 하겠네요.

지금 태하의 두뇌를 지배하는 생각은 오로지 한 사람의 이명이었다.

그것은 바로 ‘무한의 소환사’였다.

그는 이 사실을 바로 2명의 수호자에게 공유했다.

다음 날 오후.

란돌과 빅토리아가 태하를 찾아왔다.

“무한의 소환사가 사람을 잡아먹었다니……. 인간이 인간을 잡아먹으면 건강에 좋지 않을 텐데?”

“그보다는 도대체 이 사람이 왜 이런 짓을 한 것인지 그것이 더 중요하지 않겠습니까?”

빅토리아는 정보력을 최대한 동원했지만 아직까지 무한의 소환사에 대한 정보는 얻을 수 없었다.

그만큼 놈은 베일에 싸여 있다는 소리였다.

“청룡방에서는 정보를 찾을 수 없었습니까?”

“네, 청룡방에서도 별수 없나 보더라고요.”

란돌은 가만히 앉아서 곰곰이 생각을 해 보았다.

그는 샌드타워에 대해서 물었다.

“제1샌드타워는 한국에 있죠?”

“그렇죠.”

“그 샌드타워는 세계 각지에도 흩어져 있어요?”

“그런 셈이죠. 그런데 갑자기 그건 왜요?”

“그렇다면 이 샌드타워가 서로 연동되어 각기 다른 통로의 역할을 하고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연동이 된다고요? 샌드타워는 어떤 공간의 입구일 뿐이다, 뭐 그런 뜻인가요?”

“그럴 가능성도 있지 않겠어요?”

“으음!”

“우리, 샌드타워로 같이 한번 가 봅시다. 거기서 무한의 소환사를 같이 찾아보는 거죠.”

빅토리아는 란돌의 의견에 대체적으로 동의했다.

허나, 그녀는 그곳으로 들어갈 때에는 성좌가 없는 일반 헌터는 들어갈 수 없을 것이라고 선을 그었다.

“탑의 수호자만 들어가는 것으로 하죠. 괜히 다 같이 위험에 빠질 수도 있잖아요.”

“정말 들어가시게요? 샌드타워는 상당히 위험한 곳입니다. 아시죠?”

“알아요. 하지만 샌드타워에서 답을 찾지 못한다면 우리는 이 미스터리를 끝내 풀 수 없을지도 몰라요.”

이건 어느 정도 각오가 필요한 일이다.

태하는 일단 80층 대규모 레이드를 마무리한 이후에 시작하자고 제안했다.

“일단 대형 프로젝트가 기획된 상태이니, 그것만 마무리한 뒤에 시작하자고요. 어때요?”

“음, 그래요. 그럼 그동안은 우리 모두 한 지역에 모여 있는 것으로 합시다. 란돌 씨, 한국으로 거처를 옮기시죠.”

“란돌 씨랑 빅토리아 씨가 거처할 곳을 마련해 둘게요. 우리 아파트에 있는 공실은 어때요?”

“좋아요. 그럼 그렇게 합시다.”

***

월스트리트에서 헬파이어의 주가가 하루에 무려 10%나 폭락하는 대참사가 펼쳐졌다.

이와 같은 대참사가 펼쳐진 직후, 월가에서는 대낮에 사람이 10명이나 죽는 사건이 벌어졌다.

바로 ‘월가 살인 사건’이었다.

찰칵, 찰칵!

어지럽게 잘려 나간 시신을 보존해 놓은 현장으로 CSI와 FBI가 몰려들어 조사를 벌이고 있었다.

“……헬파이어와 파이어볼의 PK라니. 여기가 무슨 던전인 줄 아나?”

“죽은 사람만 10명이지, 중상과 경상까지 합치면 무려 50명이나 되는 대규모 PK였습니다. 이 정도의 규모는 던전 내부에서도 찾아보기 힘듭니다.”

“이 새끼들이 단체로 약을 처먹었나, 갑자기 왜 이러는 거야?”

“들리는 소문에 의하면 헬파이어가 작정하고 은청석을 대량 채굴해서 파이어볼을 공격적 인수합병으로 무너트리려고 했다고 하더군요. 파이어볼이 그걸 눈치채고 은청석의 원산지를 타격하려고 한 모양입니다.”

“원산지? 그게 어디인데?”

“그건 아무도 모릅니다. 다만, 은청석의 원산지를 타격하려다가 사람이 꽤 많이 죽었다고 하더군요.”

“……관계가 심각하게 꼬여 버렸겠군. 파이어볼이 은청석으로 헬파이어의 뒤통수를 치려다가 발각되었으니 말이야.”

“그러게 말입니다. 아무래도 레이드펀드들이 이번 사건으로 다들 큰 영향을 받을 것으로 보입니다.”

레이드펀드는 과거 석유회사와 비슷한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지금은 석유나 천연가스를 사용하는 곳은 존재하지 않기 때문에 레이드펀드는 유전을 경영하고 있다고 보는 사람까지 있었다.

만약 레이드펀드의 주가가 하락한다면 코어 가격에도 큰 문제가 생길 여지가 있다.

“코어 시장에 연락해 봐. 혹시 그쪽에서 손을 쓴 건 아닌지 말이야.”

“알겠습니다. 당장 조사에 착수하겠습니다.”

FBI는 곧장 시장 변동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인물들에 대해 조사하기 시작했다.

이 사건이 만약 코어 가격에 변동을 주기 위해서 작위적으로 벌인 일이라면 사태가 심각하기 때문이었다.

“그나저나 주동자는 잡혔나?”

“홧김에 붙은 거라고 하더군요. 주동자 따위는 없고 그저 이해관계 상충으로 주먹다짐을 한 거랍니다.”

“……이게 단순한 주먹다짐으로 무마될 문제야? 어떤 미친 주먹다짐이 사람을 10명이나 죽여? 자네들은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해?”

FBI가 이 사건이 보통 사건이 절대 아니라고 생각하는 이유가 하나 더 있었다.

싸움의 무대가 굳이 던전이 아니라 시가지였기 때문이다.

“둘 사이에 뭔가 모종의 밀약이 오갔을 것 같아. 살아남은 놈들을 잘 취조해 봐.”

“네, 알겠습니다. 하지만 이게 말처럼 쉽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아시다시피 이쪽에 있는 놈들이 워낙 입이 무거워서 말입니다.”

“……하긴.”

“아무튼 일단 최선을 다해 보겠습니다.”

그날 밤, FBI는 대한민국 경찰청으로 전화를 걸었다.

해외에서 걸려 온 전화는 곧바로 박찬수 총경에게로 연결되었다.

박찬수 총경은 FBI의 뉴욕본부장 마이크 토리안에게서 협조 요청을 받았다.

-박 총경께서 정보 제공을 좀 해 주셨으면 합니다.

“정보 제공이야 얼마든지 해 드릴 수 있지요. 하지만 한국과 미국의 사건이 무슨 상관이 있을까요?”

-우리 FBI의 생각에는 분명 서로 상관관계가 있다고 봅니다. 소속 헌터들을 다수 숙청한 사건이 아닌가, 그리 생각되거든요.

“……숙청이요?”

-제가 현장의 요원들에게는 직접적으로 언급하지는 않았습니다만, 그럴 가능성이 상당히 높아 보여서 말입니다.

“이용광처럼 말인가요?”

-그런 셈이지요.

최근 발생했던 이용광 사망 사건에 대해 경찰은 원한에 의한 살인, 혹은 레이드펀드의 숙청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아마 FBI 역시 어느 정도 그런 전제를 깔고 조사에 착수한 것 같았다.

박찬수는 만약 이 또한 숙청의 한 부분이라고 한다면 앞으로 더 많은 인명 피해가 일어날 것이라고 생각했다.

허나, 문제는 그걸 미연에 방지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점이었다.

그는 이번에 발생한 잠실 모텔 살인 사건에 대해 설명했다.

“이번에 몬스터가 객실에서 사람을 잡아먹은 사건이 발생했습니다.”

-……들은 것 같습니다. 몬스터가 사람을 딱 반씩만 먹어 치웠다고 하더군요.

“네, 그랬지요. 청룡방 특무관은 이 사건이 비단 몬스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한 인간의 소행이라고 생각하는 모양이더군요.”

-흠. 이야기의 흐름으로 보아 총경께서는 이 사건들이 어떤 연관성이 있을 것이라는 생각을 하고 계신 모양이로군요.

“아무래도 그쪽으로 무게가 실리는 건 어쩔 수가 없네요.”

-좋아요. 그럼 이렇게 합시다. 우리가 비공식적 합동수사본부를 발족시키는 겁니다. 그리고 관련된 모두를 조사하는 거죠. 그렇게 하다 보면 저놈들의 진짜 의도가 무엇인지 알아낼 수 있을 것도 같은데요.

“그렇다면 청룡방 특무관에게도 요청을 해 두는 것이 어떨까요?”

-그것도 나쁘지는 않겠네요.

***

미국 월스트리트 한복판에서 발생한 살인 사건에 대해서 태하는 뭔가 꺼림칙한 느낌을 받았다.

“아무래도 보통의 PK는 아닌 것 같은데요. 바벨탑 밖에서 싸우면 폭행, 사람을 죽이면 살인 아닙니까. 아무리 무식한 놈들이라고 해도 탑 밖에서 사람을 죽이지는 않죠. 감옥에 가긴 싫을 테니 말입니다.”

“그렇겠지요?”

박찬수 총경은 태하에게 이번 비밀수사본부와 협조해 달라는 협조 공문을 직접 주려고 찾아왔다.

태하는 이번 사건들이 만약 연관성이 있다면, 파이어볼이나 헬파이어만의 문제는 아닐 것이라고 생각했다.

“둘이 서로 싸울 이유는 충분합니다. 다만, 자기들이 무슨 마피아도 아니고 거리에서 싸울 이유가 없다는 거죠. 그런 의미에서 본다면 이건 단순히 이해관계 상충은 아닌 것 같네요.”

“우리의 생각도 같습니다.”

“흠, 도대체 왜……?”

“혹시 사건의 은폐, 혹은 시선 끌기 같은 것일까요?”

태하는 절로 고개가 살짝 기울어지는 것을 느꼈다.

박찬수의 말대로라면 저들은 지금 엄청난 사건을 꾸미고 있는 것이 분명해 보였기 때문이다.

순간, 태하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잠깐, 이것들이 공격적 인수합병을 준비했던 것도 뭔가 거대한 사건을 꾸미기 위함이었다면? 그럼 어떻게 되는 거야……?’

만약 태하의 생각대로 판이 돌아가는 것이라면 물을 먹은 건 저들이 아니라 오히려 태하였다는 결론에 도달하게 된다.

“……상황이 묘하게 돌아가네요.”

“우선은 우리 경찰과 FBI가 외부에서 수사를 할 테니 당신은 헌터업계를 좀 조사해 주십시오.”

“알겠습니다. 그리하죠. 그럼 저도 한 가지 부탁을 좀 드려도 될까요?”

“말씀하십시오.”

태하는 박찬수 총경에게 현장에서 발견되었던 마정석 부스러기를 건네주었다.

이건 박찬수 총경도 직접 보고 증거물로 남기기도 했던 것이라 고개를 갸웃거릴 수밖에는 없었다.

“이거, 증거물 보관실에 있는 거잖습니까.”

“이걸 사용했던 인간이 있는 것으로 추측됩니다. 이 인간에 대해 조사해 주셨으면 합니다.”

“……그런 인간이 있어요?!”

“무한의 소환술사. 비밀리에 조사해야 합니다. 하실 수 있겠어요?”

“물론 해야지요!”

“비밀리에 하지 않으면 인명 피해가 또 일어납니다. 괜찮으시겠습니까?”

“……저 혼자서 하겠습니다.”

그는 태하에게 스마트폰을 건네주었다.

지금은 잘 사용하지 않는 과거의 물건이었다.

“이걸로 연락하겠습니다. 제가 무슨 일이 생기면 이쪽으로 연락할 테니 위치 추적으로 저를 찾아 주십시오.”

“그러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