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13화 (113/197)

113 아나볼릭한 승리(1)

썩어도 준치라는 말이 있다.

파이어볼은 S급 용병들까지 보유하고 있을 정도로 엘리트 집단인지라 어지간한 공격에는 잘 무너지지 않는다.

두두두두……!

사방 천지에서 파이어볼의 공격대를 조져 버리겠다고 포화를 쏟아 내고 있음에도 절반 이상이 활발히 날뛰고 있었다.

슈터의 대장 하인즈는 몰먼의 족장인 총총을 쳐 죽이겠다고 돌격해 왔다.

쐐에에엥!

바람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하인즈의 등급은 S급.

그는 바람을 조종하여 자신의 몸을 공중으로 띄운 후, 거의 음속의 속도로 날아와 총총을 공격했다.

쿠우웅!

허나, 그 공격은 태하에게 가로막히고 말았다.

“……어딜 감히?”

“나리! 감사하다욧!”

“뭘. 우리는 이제 패밀리잖아?”

하인즈는 총총과 태하를 공격하여 잠시라도 주도권을 가져오려 애를 쓰고 있었다.

휘이이잉…….

그의 손에서 뻗어 나온 바람이 서서히 한 지점으로 모여들더니, 이내 아주 작은 소용돌이로 변하기 시작했다.

하인즈는 그것을 아주 작은 줄기로 압축하여 태하에게 쏘아 보냈다.

피융!

총탄의 위력에 족히 100배는 될 법한 강력한 압력이 태하의 목덜미를 노리며 들어왔다.

식겁한 태하는 잽싸게 방패를 들어 올렸다.

까가가가강……!

“……팔이 저릿저릿하네!”

“오호, 대단하군. 인간이 압축 회오리를 견딜 수 있는 줄은 몰랐는데 말이야.”

“이 세상에는 참으로 여러 부류의 사람이 있으니까 말이야. 네놈의 모가지를 따는 일도 충분히 벌어질 수 있지 않겠어?”

“상상력이 참으로 풍부해서 부럽군.”

스스스, 파앗!

그야말로 바람과 함께 사라진 하인즈.

총총은 온 신경을 집중해서 그의 소리를 쫓았다.

“……나리, 왼쪽이다요!”

총총의 말처럼 하인즈는 바람과 함께 다시 나타나 묵직한 공격을 태하의 왼쪽 옆구리에 밀어 넣었다.

끼이이잉……!

마치 초고속 절단기가 쇠를 자르려 다가오듯, 날이 바짝 선 바람의 톱니가 태하의 옆구리를 썰어 버릴 기세로 밀려들었다.

태하는 일단 스트랩으로 옆구리를 감싸서 바람의 톱니가 만드는 공격을 막아 냈다.

끼기기긱!

급한 불을 끄긴 했지만 내장이 다 뒤집히는 것 같은 느낌까지는 어찌할 수가 없었다.

“쿨럭, 쿨럭!”

폐가 진동 때문에 자꾸만 떨려서 기침이 나왔고 진동이 온몸을 지배해서 쉽게 움직일 수 없을 지경이었다.

마치 전기에 감전된 사람처럼 몸이 위아래로 통통 튀는 느낌이 든다.

“……제법이네, 이 새끼!”

“그럼, 당연하지. 너희 같은 버러지 각성자들하곤 차원이 다르다고나 할까?”

“개 쑥 뜯어 먹는 소리 하고 자빠졌네!”

태하는 총총의 뒷덜미를 잡곤 그대로 하늘 높이 집어 던졌다.

꽤나 육중해진 총총이지만, 그는 태하의 손에 이끌려 하늘 높이 날아올랐다.

슈웅!

“……으헤엣! 총총, 난다요!”

태하는 총총을 따라서 그 즉시 단거리 점멸을 펼쳤다.

그러면서 총총을 낚아챈 태하는 순식간에 포지션을 바꾸어 하인즈를 공격하기 시작했다.

“쏴 버려!”

“우헤헤, 슈퍼 총총의 슈퍼 탄환이다요!”

푸른색 화염이 넘실거리는 총총의 대물 저격탄이 연달아서 하인즈의 심장과 옆구리를 노리며 들어갔다.

바로 그 순간, 태하는 총총을 등에 올려놓은 채로 자유낙하 했다.

팅팅팅!

바람의 가드가 탄환을 튕겨 내자, 태하는 하인즈의 머리통을 방패로 후려쳐 버렸다.

그러자 동굴에 마치 미사일이라도 떨어진 듯한 묵직한 소리가 들렸다.

쿠우우웅!

“……크허억!”

“어때, 방패 맛 좋지?”

태하와 총총은 지금까지 수많은 역경을 함께 겪으며 성장해 왔기 때문에 이처럼 합이 잘 맞아떨어졌던 것이다.

반면 그 모습을 상상조차 할 수 없었던 하인즈는 무척이나 당혹스러운 표정이었다.

“……몬스터와 인간이 한 팀이라니. 믿을 수가 없군.”

“원래 친구 사이에는 인종과 국경도 없는 법이지.”

아무래도 더 이상의 공격은 무리라고 판단되었던 모양인지, 하인즈는 슬슬 도망칠 궁리를 하고 있었다.

그는 주머니에서 화이트홀 생성기를 꺼내더니 이내 그 전원을 켰다.

지이이잉……!

“……저렇게 간단히 화이트홀을 만들어 낸다고?”

“그럼 꼬맹아, 나중에 또 보자. 나는 바빠서 이만.”

“이대로 네 공격대를 버릴 셈이냐?”

“적자생존의 법칙 몰라? 살아남을 사람은 살아남고 도태될 사람은 도태되어야 생태계가 돌아갈 것 아니야. 안 그래?”

놈은 뻔뻔하게도 혼자서 화이트홀을 타고 유유히 사라져 버렸다.

총총은 그런 놈을 끝까지 따라가서 죽이겠다고 길길이 날뛰었다.

“우오우오옹! 저놈, 죽여야 한다요!”

“그만, 총총. 화이트홀을 보통의 생명체가 넘나든다는 건 자살행위야. 너도 잘 알잖아?”

“……하지만 주범이 바로 앞에 있다요!”

“조금만 참아. 어차피 파이어볼은 헬파이어와 함께 무너지게 되어 있어.”

이제 슬슬 이곳에서의 전투가 정리되어 가는 느낌이 든다.

그만큼 몰먼족과 헬창스의 하모니가 좋았다는 뜻일 것이다.

허나, 이것은 또 다른 갈등 국면을 야기하는 일이었다.

태하는 손을 들어서 전투를 멈추었다.

“그만! 이제 그만 싸우고 각자의 자리로 돌아갑시다!”

“태하 씨, 지금이라도 이놈들을 쳐 죽여서 아예 말살을 시켜야 하는 거 아닐까요?”

“보내 줍시다. 어이, 너희들도 도망치려면 지금 도망쳐라. 살려 줄 수 있는 시간은 5분 남짓이니 열심히 도망쳐야 할 거야.”

기회를 잡은 슈터는 걸음아 나 살려라 하고 달리기 시작했다.

파바밧!

도망칠 때의 속도는 공격할 때와의 속도와는 비교도 될 수 없을 정도로 빨랐다.

순식간에 사라진 슈터들을 바라보며 한나가 물었다.

“……못 살아! 이러다가 역공을 당하면 어쩌려고 그래요?”

“다 생각이 있어요. 그러니 안심해도 좋아요.”

“하여간 한 번만 더 이랬다간 봐요! 아주 내가 혼쭐을…….”

몰먼을 생각하는 마음이 하도 지극해 ‘몰먼 이모’라는 별명까지 가진 한나는 태하를 한참이나 닦달했다.

바로 그때였다.

총총이 태하에게 다가와 금붙이를 건넸다.

“나리! 금이다요! 이거, 가져도 된다요!”

“금? 여기서 금도 채굴이 되었던가?”

“사금 지역이 있기는 한데, 노다지는 없다요! 아무래도 아까 그놈들이 흘리고 간 것 같다요!”

“……금을 흘리고 가?”

금붙이는 대충 성인 남성 손가락 한 마디 정도 되는 크기였다.

이 정도 금이라면 적어도 100g 이상은 나갈 것으로 보였다.

“아니, 누가 도대체 싸움터에 금을 가지고 나와? 미치지 않은 이상에야…….”

“아니요. 이거, 그런 금 아닌 것 같아요.”

한나는 금붙이를 유심히 살펴보더니 몸을 부르르 떨기 시작했다.

이것은 그녀가 극심한 불안이나 분노를 느낄 때에 나오는 행동이었다.

“……한나 씨, 괜찮아요? 괜히 울면 근 손실 나는 거 알고 있죠?”

“지금 근 손실이 문제가 아니에요.”

“그, 근 손실이 문제가 아니라고요?!”

헬창스는 근 손실보다 더 큰 문제가 있다는 말에 큰 충격을 받았다.

“그런 문제가 있어요? 아니, 나라가 망했다거나 지구가 종말을 맞는다거나…….”

“파이어볼의 공격대에 금성탑의 전투사제가 끼어 있어요.”

***

금의 진위 여부를 판별하기 위해서 찾은 종로 귀금속 상가.

이곳은 과거 금은방을 하던 사람들이 정부의 주도로 만든 안전 구역에 모여들어 생겨났다.

귀금속 상가에서는 보통 금괴나 은화, 다이아몬드 같은 보편적인 귀금속들이 거래되는데, 요즘에는 각종 능력자들에 의해서 생겨나는 ‘유사 금’의 유입이 많아 전문가들이 항상 상주하고 있었다.

“음, 24k 순금이네요. 다만, 형질 변형에 의해 임시적으로 생겨난 금입니다. 유사 금이라고도 하죠.”

“……맞네요. 성흔.”

“아, 그래요. 신의 계시를 받은 사제가 남긴다고 해서 성흔이라고도 하죠. 그런데 이 정도 성흔을 남길 정도면 최소 B등급 이상은 되어야 할 텐데요? 금성탑 B급 사제와는 가까운 사이이신가 봐요?”

금성탑은 워낙 폐쇄적인 집단이기 때문에 밖으로 자기들의 존재를 잘 드러내지 않는 특성이 있다.

때문에 그들이 밖으로 나와 활동할 때에는 생각보다 큰일이 벌어졌다는 것을 의미하곤 했다.

“……이럴 수가. 금성탑이 파이어볼과 내통하고 있었다니.”

“왜, 일전에 마왕을 부활시키는 일족과 파이어볼이 내통하고 있다는 말을 한 적이 있었잖아요. 그것과 무슨 관련이 있지는 않을까요?”

“그럴 수도 있죠. 하여간 이 쓰레기들, 이제는 아주 바닥을 찍네요. 정말 구제 불능이야.”

한나는 자신이 속한 금성탑이 이렇게까지 썩었다는 것에 염증을 느끼고 있었다.

결국 그녀는 금성탑을 그냥 나올 생각까지 한 모양이었다.

“……못 견디겠어요. 금성탑에서 나오고 싶네요.”

“그렇게 괴롭다면야.”

“그려, 나와 버려! 내가 회계사 사무실에 자리 하나 마련해 놓을 테니께!”

모두가 한나의 선택을 지지해 주었다.

허나 한 사람, 윤정은 생각이 달랐다.

“다 좋아요. 다 좋은데, 금성탑에서 나오면 어머니의 복수는요?”

“……엄마.”

“그래요. 돌아가신 어머니가 어째서 유명을 달리하셨는지, 최소한 그 정도는 알아야 하지 않겠어요?”

그제야 한나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녀는 주먹을 꽉 말아 쥐었다.

“……듣고 보니 그러네?”

“당신이 의지를 갖고 행동하지 않는 한 어머니의 한은 풀어 드릴 수 없어요.”

“할 거예요! 금성탑을 탈탈 털어서 엄마의 한을 풀어 줄 거예요!”

“우리들도 성심성의껏 도울게요. 그러니 이제부터 금성탑의 요직에 올라가기 위해서 최대한 어려운 임무를 많이 받아 오세요. 기왕이면 우리의 목적에 부합되는 것이라면 더 좋을 것이고요.”

“알겠어요! 그렇게 할게요!”

다소 혼란스러운 분위기의 헬창스.

그때쯤, 이들의 혼란을 가중시키는 소식이 들려왔다.

지이이잉!

태하의 스마트워치가 울렸다.

전화를 받는 태하.

요즘은 신경에 스마트폰이 직접 연동되기 때문에 버튼 하나면 상대방과 전화를 하고 영상통화를 할 수 있다.

“네, 여보세요?”

-청룡방 특무관 되시죠?

“누구십니까?”

-안녕하십니까? 본청 특수수사과장 박찬수 총경이라고 합니다.

“……특수수사과요?”

-여기 좀 특이한 사건이 있는데, 한번 보시겠습니까?

***

특무관 신분으로 찾은 사건 현장.

잠실의 한 모텔에서 사람 2명이 상반신과 하반신만 각각 남은 채로 발견된 사건이 벌어져 있었다.

내장 조각은 물론이고 뇌수와 혈액, 심지어는 각종 장기에서 흘러나온 체액으로 인해 고약한 냄새가 진동하고 있었다.

태하에게 손수건을 건네는 경찰들. 허나, 태하는 손수건은//그것을 받지 않았다.

그는 워낙 몬스터의 시신을 많이 다루다 보니 인간의 것은 끔찍할 뿐, 냄새는 아무렇지도 않았다.

자세히 시신을 살피는 태하.

“상반신과 하반신을 뜯어 먹었네요. 그것도 한입에.”

“잘 아시는군요.”

던전에서는 하루가 멀다고 사람이 죽어 나간다.

특히나 비각성자 집단의 리더였던 태하는 지금까지 무수히 많은 시신을 봐 왔다.

그런 그에게 이 정도는 일상적인 일이라 할 수 있었다.

허나, 그런 그에게도 오늘의 사건은 결코 일상적이라고 할 수는 없었다.

“던전 밖에서 사람을 물어뜯어 죽인 사건이 발생했다……?”

“던전에서 몬스터가 탈출할 수 있는 확률이 얼마나 됩니까?”

박찬수 총경의 질문에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0%입니다. 절대 그럴 수 없는 구조라서요.”

“그럼 저건 뭡니까? 지금까지 일어났던 탑 외 레이드는 뭐고요?”

“그건 인위적인 소환에 의한 겁니다. 단순 탈출은 불가능해요.”

“그렇다면 이번에도 누군가 소환을 자행했다는 겁니까?”

태하는 말없이 고개만 끄덕였다.

그는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이미 파이어볼의 연구소는 습격해서 전부 파괴하였고, 이제는 몬스터를 소환하는 통로도 정리해 두었다.

‘도대체 어디서? 아니, 그보다 누가 이런 짓을 벌인 거지?’

답이 없는 퍼즐을 맞추고 있는 느낌.

허나, 그런 태하의 눈에 퍼즐의 정답이 될 수도 있는 흔적이 보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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