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2 웰컴 투 hell's 레이드!(2)
제1바벨탑으로 모여들기 시작하는 헌터들.
평균 등급 A급에 S급 헌터까지 끼어 있는 이 공격대는 바로 파이어볼의 ‘슈터’라는 집단이다.
파이어볼의 비공식 공격대인 슈터는 공격대원들의 평균 공격치가 상당히 높은 데다 던전에 대한 이해도도 풍부한 편이었다.
“가자.”
약 100명의 헌터들은 각자 팔에 플라즈마를 생성하는 팔찌를 차고 있었는데, 공격대장 ‘하인즈’는 긴 막대기를 휘둘러 그들의 앞에 화이트홀을 열어 주었다.
지이잉!
그러자 헌터들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화이트홀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헌터들은 화이트홀로 들어갈 때에 플라즈마 생성기의 전원을 켰고, 그렇게 생긴 플라즈마 보호막이 헌터들의 신체를 보호해 주었다.
“우리 펀드가 대단하긴 해. 플라즈마 보호막을 만들 생각을 하다니 말이야.”
“워낙 자금 규모가 크니까.”
지금까지 인간은 맨몸으로 화이트홀에 들어가 본 역사가 없었다.
학자들의 실험에 의해 인간의 육신은 화이트홀이라는 아공간 안에서 분자의 상태로 변해 버린다는 사실이 밝혀졌기 때문이다.
허나, 그 생각을 뒤집은 것이 바로 이 플라즈마 보호막이었다.
물리적인 공격을 방어하는 것은 물론이고 화기, 화학물질 등에서도 뛰어난 방어력을 보여 주고 있었으며 심지어는 아공간을 통과하는 것도 가능했다.
지이잉!
화이트홀이 꿀렁이며 반대편 통로로 공격대를 인도했다.
그들이 발을 디딘 곳은 62층 광물존.
파이어볼에서는 통상 ‘몰먼밭’이라고 불리는 곳이었다.
지금까지는 이곳을 아수라 길드에서 관리해 왔었는데, 이제부터는 파이어볼이 직접 관리를 할 수밖에 없게 되어 버렸다.
하인즈는 화이트홀 생성기의 전원을 끈 후, 그것을 배낭에 잘 갈무리해 두었다.
“빌어먹을 아수라 같으니. 우리가 투자한 돈이 얼마인데 이렇게 사람을 고생시키나?”
“애초에 이용광이라는 인물이 가진 그릇이 그것밖에는 안 되는 거죠.”
“혼자서 잘난 척은 다 하더니.”
하인즈의 투덜거림과 함께 공격대가 ‘몰먼 소굴’로 진격하기 시작했다.
이때까지만 해도 하인즈는 자신이 도대체 왜 이런 허드렛일까지 도맡아야 하는 것인지 이해를 하지 못하고 있었다.
허나, 몰먼 소굴 앞에 당도했을 때, 그는 크게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몰먼의 마을: 몰먼시티]
[몰먼시티에 오신 것을 환영한다요!]
공격대 일동은 거의 동시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이건 또 뭐야?”
“황당하기 짝이 없군. 누가 이딴 애들 장난 같은 간판을 세워 놨어?”
“요즘은 초등학생도 던전에 오르나?”
슈터는 평균적으로 던전에서 15년 이상 굴러먹은 베테랑들인데, 그들에게도 지금 이 광경은 너무나도 황당하기 짝이 없었다.
허나, 놀라운 일은 그게 다가 아니었다.
“……탑?”
“포탑이라고 해야 하나. 도대체 저게 뭐야?”
높이 3미터의 포탑은 둥근 원형으로 길게 뻗어 있었는데, 직경은 대략 2미터쯤 되어 전체적인 느낌은 약간 뚱뚱하다 싶은 정도였다.
이걸 포탑이라고 부르는 이유는 원통 최상부에 6개의 포구가 존재했기 때문이었다.
“아니, 도대체 어떤 또라이가 던전에 저런 걸 설치해 두었지?”
“요즘 3층까지만 채굴이 활발해져 있어서 상부로 올라가는 사람들이 별로 없다고 했던 것 같기는 한데. 그래서 그런 건가?”
“일종의 쉘터 같은 걸 구축해 놓은 거라는?”
“하지만 여긴 중부지역이잖아.”
도대체 누가 던전 62층에 저런 구조물을 만들 수 있단 말인가?
‘……뭐야, 이거? 누구지? 누가 이런 걸 만들어서 설치해?’
하인즈는 포탑을 자세히 살펴보곤 크게 놀라지 않을 수 없었는데, 그 정교함이 가히 첨단 시스템을 동원했다고 볼 수 있을 정도였다.
이런 구조물을 일부러 만든다는 건 사실상 불가능한 일이다.
통상적으로 화이트홀 안으로 정밀기계를 밀어 넣는다는 건 자살행위와도 같은 짓이다.
그 안에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아무도 모르기 때문이다.
“이거, 안쪽에서 조립한 것 같지?”
“……그게 가능합니까?”
“글쎄. 그거야 모르는 일이지.”
각성에서 파생되는 능력은 그 한계가 정해져 있지 않다.
만약 특수 능력이 기계를 만들거나 소환하는 일이라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는 얘기였다.
허나, 일이야 어쨌건 간에 하인즈는 여기서 멈출 생각이 없었다.
“거슬리면 부수고 가면 그뿐이다. 전진한다!”
공격대장의 지시에 따라서 대원들이 진형을 갖추고 전진하기 시작했다.
슈터의 기본 포지션은 일반적인 전술 대형과 크게 다르지 않지만, 정글러가 다른 공격대보다 압도적으로 많다는 것이 특징이었다.
정찰과 선제 타격을 담당하는 정글러가 많기 때문에 슈터의 클리어 타임은 일반 길드의 평균치보다 거의 15% 정도 빠르다고 볼 수 있었다.
정글러들이 길라잡이가 되어 전진하기 시작했다.
허나, 그 시작과 동시에 뭔가 불길한 소리가 들려왔다.
위이이이잉……!
[몰먼시티에 침입자 확인]
[포탑, 움직인다요!]
사이렌이 울리더니 던전 벽을 따라 일렬로 늘어서 있던 200개 남짓한 포탑이 일제히 포구를 개방하기 시작했다.
우웅, 철컥!
하인즈는 깜짝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머신건?”
“유탄발사기도 있습니다!”
“뭐야, 그럼 저 안에 화기가 들어 있었다는 소리잖아? 그게 가능한가?”
만약 던전 안으로 화기를 들고 들어올 수 있었다면, 어쩌면 지금보다 훨씬 더 높은 층까지 클리어가 가능했을지도 모른다.
허나, 적어도 지금까지는 던전 안에 화기를 들고 들어간 사례는 없었다.
“대장님! 후퇴해야 하는 것 아닙니까?!”
“……막아서는 놈들이 있으면 쳐 내는 게 우리 슈터의 전통이다. 물러설 수는 없다.”
“하, 하지만……!”
“돌격!”
슈터는 불굴의 의지를 가진 집단이다.
비록 명예를 좇는 사람들과는 아예 결이 다르다곤 해도 나름대로의 자존심이 상당히 강한 집단이었던 것이다.
하인즈는 방패를 들고 스스로 탱커를 자처했다.
“진형을 갖추고 전진한다!”
“넵!”
그의 뒤를 따르며 파티를 보호하기 시작하는 탱커들.
허나, 탱커들의 노력이 무색하게도 몰먼시티의 화력은 상상을 초월했다.
우우웅……!
가볍게 떨리며 에너지를 충전시키는 소리가 사방팔방에서 들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쏟아지는 포화는 가히 압도적이라 할 만했다.
두두두두!
푸른색 포탄이 사방에서 쏟아져 슈터를 공격했고, 그 공격에서 팔다리가 잘려 나가거나 몸통이 반으로 쪼개지는 사태가 발생했다.
서걱!
“끄아아아악!”
“……입자 분쇄?!”
지금까지는 특수 능력으로만 존재한다고 여겨지는 입자 분쇄가 포탑을 통해 쏟아지자, 슈터는 패닉에 빠지고 말았다.
허나, 천지를 진동시키는 포탑의 공격을 맞으면서도 슈터는 포기하지 않았다.
“어쩔 수 없다. 우리에겐 그저 전진밖에는 답이 없어!”
“물러서지 마라! 끝까지 밀어라!”
방패를 가진 탱커들은 포탑이 쏟아 내는 포화를 묵묵히 견뎠고, 원딜들은 그 뒤에서 포탑을 조준 사격하며 공방전을 벌였다.
그러다가 한 원딜러가 포탑을 사격해서 파괴시켰다.
콰지지직……!
“포문 안쪽이 약점입니다!”
“오호, 좋아! 돌파구가 생겼으니 이제는 거칠 것 없지!”
포탑만 파괴할 수 있다면 이런 포위 상황에서도 충분히 돌파가 가능할 것으로 보였다.
허나, 그것은 그들의 착각에 불과했다.
착, 착, 착……!
마치 군인들의 행진처럼 박자를 딱딱 맞춰서 들려오는 발소리가 참으로 인상적이었다.
그런 발소리는 이내 멈추었다.
착착!
“바로!”
“오우오우옹!”
“적이다! 전투준비에 들어간닷!”
“알겠다요!”
중무장을 한 채 질서 정연한 모습을 보여 주는 몰먼.
하인즈는 그 모습에 몹시도 당황하고 말았다.
“……뭐야? 몰먼이 민병대를 조직했나?”
“몬스터가 민병대도 조직할 수 있습니까? 생전 처음 듣는 얘기입니다만.”
“당연한 소리이지만, 나도 처음 들어 봐.”
몰먼은 지금까지 파이어볼의 노예로 생각되어 왔던 몬스터다.
자신들 스스로야 한 종족이라고 말하곤 하지만, 파이어볼의 입장에서는 몬스터는 몬스터고 사람은 사람이었던 것이다.
하인즈는 황당함을 지우고 전투에 임했다.
“가자! 저놈들이 뭔 짓을 하든 간에 우리는 우리의 일을 한다!”
“넵!”
몰먼족이 아무리 포탑을 끼고 싸워 봤자 몰먼은 몰먼이라는 생각이었다.
허나, 몰먼족은 이제 완전히 다른 종족이 되어 버렸다.
“슈퍼 총총! 변신이다!”
“몰먼족, 전투준비를 한다요!”
제법 우람한 팔뚝과 어울리는 중화기, 그리고 그 뒤로 연결된 푸른색의 정체 모를 물체가 어쩐지 이질적으로 느껴진다.
몰먼족은 중화기를 잡자, 거의 다른 자아가 튀어나온 듯 행동하기 시작했다.
“우헤헤헤! 슈퍼 몰먼이다요!”
“슈퍼 몰먼 나가신다요!”
눈이 180도 돌아간 느낌이랄까.
미친놈들이 우르르 몰려나와 중화기를 들이대니 천하의 하인즈도 찔끔 긴장할 수밖에는 없었다.
“……뭐, 뭐야? 이놈들이 갑자기 미쳤나?”
“그래 봤자 털 난 두더지가 뭘 할 수 있겠습니까?”
“하긴. 그야 그렇지. 공격!”
사상 초유의 사태, 인간이 몰먼족과 주먹다짐을 하게 생긴 것이었다.
***
몰먼시티에 적이 출현했다는 보고를 받고 62층으로 향하는 태하와 일행들.
헬창스는 행여나 몰먼시티가 멸망하면 어쩌나 하고 노심초사하며 던전으로 발을 들여놓았다.
“……몰라, 어쩌면 좋아! 몰먼이들이 다치면 어쩌죠?”
“그런 걱정은 할 필요 없을걸요?”
윤정은 아주 자신만만해했다.
그녀는 몰먼족이 이제는 스스로를 지킬 수 있으며 심지어는 어지간한 인간보다도 돌파력이 좋다고 역설했다.
“몰먼족은 기본적으로 마력에 대한 이해도가 높더라고요. 그래서 그런지 중화기를 다루는 솜씨가 예사롭지가 않았어요. 그런 녀석들을 적으로 마주하게 된다면 과연 어떤 느낌일지, 솔직히 상상조차 되지 않네요.”
“그 정도로 몰먼족이 발전했을 줄이야. 솔직히 잘 믿기지가 않네요.”
“그럼 직접 보고 다시 말해 볼까요?”
그 작고 귀여운 몰먼족이 적에게 무력으로 대항하고 있다니, 한나나 희란의 입장에서는 마음속에 혼란이 찾아올 정도로 심란한 소식이었다.
허나, 그들이 62층 몰먼시티 초입부에 도달했을 때, 그 걱정은 씻은 듯이 사라지게 되었다.
두두두두, 콰앙!
연발로 유탄을 발사해 대며 광기로 가득 찬 웃음을 터뜨리는 몰먼들.
“우헤헤! 죽어라요! 슈퍼 몰먼 나가신다요!”
“……거의 눈이 뒤집어졌는데요?”
이상하게도 몰먼족은 무기만 잡으면 180도 돌변하게 되는데, 그런 광기에 사로잡히게 되면 몰먼은 그저 귀엽고 깜찍한 종족이 아니라 던전의 포식자처럼 적을 쓸어버리곤 했다.
총총이 보여 주었던 그 특성을 몰먼은 그대로 답습하고 있었던 것이다.
선봉에 선 총총은 적들을 쓸어버리자고 독려까지 하고 있었다.
“우리 몰먼족은 남에게 괴롭힘 당하지 않는다! 참지 않는다!”
“우오우오! 우리 몰먼족은 당하지 않는다요!”
“죽이자!”
“우헤헤헤!”
아마 그동안 파이어볼에게 쌓인 것이 제법 많았을 것이다.
지금까지 몰먼족을 노예처럼 부려 먹고 생명의 존엄성까지 짓밟았으니 어쩌면 당연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그렇게 쌓여 있던 분노를 폭발시키는 몰먼족.
그들의 분노가 해소될 때쯤엔 아마 파이어볼도 남아나지는 않을 것 같았다.
태하는 방패를 스트랩에 잘 묶었다.
“자, 그럼 우리도 몰먼족을 도와서 외세의 침략에 맞서 볼까요?”
“갑시다!”
“렛츠 고우, 브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