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1 웰컴 투 hell's 레이드!(1)
이른 아침, 태하는 약간 나른한 눈으로 여의도 코어 거래소의 전광판을 바라보고 있었다.
[신규 광물 입점: 은청석]
[가격: 1g당 81,343원]
은청석이 코어 거래소에 입점하자마자 광물업계는 그야말로 발칵 뒤집히고 말았다.
현재 금의 가격이 1g에 7만 원도 채 하지 않는 것을 생각한다면, 그야말로 폭풍의 핵이 될 수도 있었다.
코어 거래소는 증시와는 등락 폭이 비교도 안 될 정도로 높다.
출발 가격이 8만 원이면, 과연 이게 얼마나 오를지는 그야말로 상상조차 할 수 없다는 뜻이었다.
“출발이 좋네요.”
“이 정도면 오늘 얼마까지 갈 것 같아요?”
“하루 공급량이 1.5톤이면 최소 g당 100만 원까지는 올라가지 않을까 싶습니다만.”
“오호……?”
“아마 물량이 꾸준히 풀리면 가격이 약보합세로 굳어질 수도 있긴 하겠죠.”
“약보합세, 그러니까 가격이 100만 원에서 살짝 처지거나 약간 높아진 채로 유지될 것이라는 말이죠?”
“하하, 맞습니다. 이제는 경제 용어 정도는 다 아시네요.”
“책이라면 그냥 닥치는 대로 다 읽으니까요.”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경제의 기역자도 몰랐던 태하는 이제 어느 정도 경제 상식을 장착하게 되었다.
조선엽이 무슨 말을 해도 거의 다 알아들을 수 있는 수준까지는 왔다고 볼 수 있었다.
“은청석은 100만 원에서 약보합세를 유지하다가 한순간에 가격이 폭등할 겁니다. 그 중간에 상승세를 부추기는 세력이 등장할 것이기 때문이죠.”
“우리 말입니까?”
“그래요. 우리가 상승장을 만들 와일드카드가 되는 겁니다.”
태하는 헬파이어의 발등에 불을 떨어뜨려 놈들을 벼랑 끝으로 떠밀 생각이었다.
그 첫 번째 작전이 바로 은청석의 가격을 폭등시켜서 시장을 지배하겠다는 의지 자체를 꺾어 버리는 것이었다.
허나, 조선엽은 이것만으로는 헬파이어를 무너뜨릴 수 없다고 생각했다.
“우리가 가격을 천정부지로 올리면 아마 헬파이어는 이 시장에서 손을 떼거나, 반대로 불나방처럼 달려들어 장렬히 산화하게 될 겁니다. 마치 아수라처럼요. 하지만 그것만으로는 놈들을 와해시키는 건 불가능할 텐데요.”
“불가능하죠. 그래서 그레이엄 가문의 도움을 좀 받을 생각입니다.”
“그레이엄이요?”
태하는 슬그머니 미소를 지었다.
“아마 조간만 아주 재미있는 일이 생길 것 같아요.”
“……재미있는 일이라니.”
조선엽은 태하가 또 무슨 기상천외한 일을 꾸미는가 싶어서 연신 고개를 갸웃거렸다.
그런 그에게 태하는 다른 떡밥을 던져 주었다.
“아 참, 내가 말했던가요? 은청석보다 더 기가 막힌 걸 찾아냈다고요.”
“기가 막힌 거요? 어떤 것이요?”
“마정석 말입니다.”
“……마정석?”
“이것만 가지고 있으면 아예 코어를 만들어 낼 수도 있고 은청석보다 족히 100배는 훌륭한 물질로서 멜트다운을 막아 낼 수도 있죠. 잘만 하면 폭주가 없는 영구적 에너지원을 손에 넣을 수도 있을 것이고요.”
“그, 그런 물질이 존재한다고요?”
영구적 에너지원이 생긴다면 인류는 또 한 번의 전환점을 맞이하게 될 것이다.
에너지를 둘러싼 힘 싸움은 사라지게 되고 완전한 친환경 에너지의 구현으로 지구는 보다 살기 좋은 행성이 될 게 분명했다.
다만, 이제 에너지 시장의 지배계급은 오로지 한 사람으로 좁혀지게 될 것이다.
“우리가 마정석을 유통한다면, 과연 이 시장은 어떻게 돌아가게 될까요?”
“……완전한 지배. 독과점이 되겠죠.”
***
은청석이 시장에 슬슬 풀릴 때쯤이었다.
파이어볼에 대한 투자금이 무려 5% 이상 빠지는 대변이 벌어졌다.
미국의 증시는 크게 흔들렸다.
최근 파이어볼이 제1바벨탑에서 수익을 내지 못하면서 사실상 수익률이 마이너스로 전환되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나왔던 것이다.
“후욱, 후욱……!”
늦은 밤, 고립관에서 홀로 스쿼트를 치고 있던 태하에게 별안간 인기척이 느껴졌다.
활짝 열려 있던 고립관의 문으로 들어온 사람은 바로 빅토리아였다.
“지금 미국 증시에는 아주 폭탄이 떨어졌는데 사건을 일으킨 장본인은 여유롭게 운동을 하고 계시네요.”
“왔으면 같이 운동이나 좀 하실래요?”
빅토리아는 운동을 원하는 태하의 말을 한 귀로 듣고 한 귀로 흘려버렸다.
그녀 또한 운동을 좋아하긴 해도 이렇게 무식하게 쇠질을 하는 건 딱 질색이었기 때문이다.
플랫 벤치 위에 신문 몇 권을 올려놓았다.
[헬파이어, 친정 파이어볼을 떠나나?]
[불과 불의 싸움! 과연 승자는?]
[헬파이어, 파이어볼에 대한 공격적 인수합병 시도 있었던 것으로 드러나 충격]
신문은 오로지 한 가지 주제를 다루고 있었다.
심지어 지금 미국 증시가 출렁거리고 있는데도 다른 헤드라인을 다룰 정도로 집중력이 높았다.
“당신의 이독제독이 먹혀들었네요.”
“월가도 찌라시에 흔들리다니, 사람 사는 건 다 똑같군요.”
“단순한 찌라시였다면 그랬겠죠. 하지만 그게 그레이엄 가문에서 나왔다는 게 중요한 것 아니겠어요?”
그레이엄 가문은 태하의 부탁을 받아 월스트리트에 파이어볼의 공격적 인수합병 시도라는 정보를 흘렸다.
파이어볼과 헬파이어의 시가총액은 월가에서도 거의 최상위 포지션을 다투고 있었기 때문에 그들의 집안싸움은 자연스럽게 투자 심리를 뒤흔들게 되었던 것이다.
스쿼트를 끝내고 레그익스텐션 머신으로 향하는 태하.
빅토리아는 그런 그에게 수건을 건네주었다.
“당신, 곰인 줄 알았는데 곰처럼 생긴 여우였네요?”
“그거 칭찬인가요?”
“글쎄요. 내심 안도하는 마음이 들었다고나 할까요? 칭찬인지 아닌지, 저도 잘 모르겠네요.”
태하는 수건으로 이마에 흐른 땀을 닦은 후 윗옷을 벗어 던졌다.
그러자 성난 근육들이 꿈틀거리며 그녀를 맞이했다.
“벗어도 되죠?”
“벗고 나서 물어보면 무슨 소용인가요.”
“그럼 입을까요?”
“됐어요. 편한 대로 하세요. 저도 오빠가 둘 있어서 이해해요.”
어쩐지 빅토리아 앞에서는 한없이 편해진다.
하루 종일 정신이 연결되어 있으니 마치 한 몸이 된 듯한 착각이 들어서일 것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태하가 그녀를 막 대하는 건 아니었다.
“어때요? 이 정도면 헬파이어를 무너뜨리는 데 부족함은 없겠죠?”
“물론이죠. 다만, 앞으로 얼마간 헬파이어가 제1바벨탑에서 은청석을 채굴하겠다고 덤빌 텐데. 그게 걱정이네요.”
“뭐, 별수 없죠. 열심히 몸 키워서 제대로 PK 붙는 수밖에.”
대퇴사두가 거의 터질 듯이 부풀어 올랐지만 태하는 운동을 계속했다.
레그익스텐션에서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로 운동 종목을 변경한 태하는 대퇴사두를 타깃으로 열심히 근육을 괴롭혀 댔다.
“으으으……!”
그런 그의 옆에서 운동을 구경하며 대화를 이어 나가는 빅토리아.
그녀는 비 오듯이 흐르는 태하의 등을 수건으로 훔치며 말했다.
“PK가 시작되면 아마 파이어볼도 가만히 있지 않을 겁니다. 잘못하면 양방향에서 공격을 받을 수도 있어요. 아시겠지만, 파이어볼은 화이트홀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놈들이잖아요? 위험성이 2배는 높아지겠죠.”
“……으으, 그건 그렇겠네요!”
불가리안 스플릿 스쿼트를 고중량으로 다루는 사람은 별로 없지만, 태하는 대퇴사두에 가해지는 타격감이 좋아서 바벨을 어깨에 짊어지고 운동을 한다.
그런 전투적인 태하에게 빅토리아는 물까지 떠다 주며 은근히 보조자 역할을 해 주었다.
“뭔가 대책을 세워야 합니다. 화이트홀을 사용하는 만큼 몰먼들이 위험에 처할 가능성도 높으니 말입니다.”
“흠……. 그렇지. 몰먼시티가 제1타깃이 되겠군요.”
은청석은 몰먼시티에서 생산되기에 어떤 식으로든 그곳을 타격할 것이 분명했다.
허나, 태하는 그렇게까지 크게 걱정은 하지 않았다.
대수롭지 않게 종목을 바꾸어 워킹런지로 넘어가는 태하.
“흐으읍……!”
“뭔가 방책이 있는 거죠?”
“……지금의 몰먼은! 예전의 몰먼이! 아니니까요!”
한 발자국을 뗄 때마다 대퇴사두가 터질 듯이 아려 왔다.
워킹런지는 타깃점을 어디로 두느냐에 따라서 매번 다른 자극을 맛볼 수 있는데, 태하는 주로 이것을 대퇴사두로 맞추곤 했다.
“지금의 몰먼은 예전의 몰먼이 아니다……?”
“우리도 대책을 세우겠지만, 아마 몰먼도 가만히 있지는 않을 겁니다.”
빅토리아는 요즘 총총에게서 보이는 엄청난 광기를 떠올려 보았다.
그러자 걱정이 눈 녹듯이 사라져 버렸다.
“……내가 괜한 걱정을 했나 보네요.”
“후후, 파이어볼 놈들. 아마 깜짝 놀랄 겁니다. 예전의 몰먼인 줄 알고 덤볐다가 아주 큰코다치게 되겠죠.”
***
윤정에게서 파이어볼과 헬파이어의 소식을 접한 몰먼들.
총총은 참아 왔던 분노를 폭발시켰다.
“……더러운 파이어볼 같으니. 덤비면 다 쓸어버린다요!”
“우오우오옹!”
입을 동그랗게 오므리며 내는 몰먼 특유의 울음소리는 듣는 사람으로 하여금 눈을 반짝이게 만들 정도로 귀엽고 깜찍했다.
허나, 그 기세만큼은 어지간한 전쟁터의 군인들 못지않았다.
“박사 나리! 우리 몰먼족, 전부 무장시킬 수 있는 방법이 있냐요?!”
“내가 생각을 해 봤는데 말이야. 이 마을의 에너지를 안정화시키는 안정기를 사용한다면 충분히 방어타워를 건설할 수 있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 말이야.”
“안정기……!”
몰먼족은 코어발전으로 에너지를 끌어와 사용하는데, 이 근방에는 마력이 흐르는 만큼 상당히 신경 써서 안정기를 설치해 두었다.
최근 윤정은 몰먼시티의 안정기를 몇 번이고 리뉴얼해서 저항성을 안정화시켜 두었고, 이제는 그것을 무기로 사용해도 손색이 없을 정도였다.
“같이 방어타워를 짜 보자! 몰먼족의 파워를 놈들에게 제대로 보여 주는 거지.”
“오우오우옹! 좋다요! 감사하다요, 박사나리!”
“그래서 말인데, 내가 몇 가지 시안을 가져와 봤는데. 어때? 오늘부터 폐관수련에 들어가 볼 테야?”
총총은 언제든지 폐관수련을 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허나, 그것은 몰먼족 전체에게도 해당되는 말이었다.
“납품할 물량은 이미 맞춰 놨다요! 우리 몰먼족, 모두 폐관수련에 동참한다요!”
“오우오우옹!”
안 그래도 몬스터가 판치는 던전에 방어타워까지 건설한다니, 헌터들이 들으면 쌍욕을 박아 주고 나갈 일이었다.
허나, 몰먼족에게 있어 이것은 생존과도 직결되는 문제였다.
총총은 몰먼족 장인들을 모아 놓고 윤정이 직접 설계한 방어타워의 부품을 하나씩 만들기 시작했다.
“방어타워는 마정석으로 돌린다. 안정기 시스템이 제일 중요하다!”
“알겠다요, 총총! 그런데 총총, 방어타워만 세워 놓으면 그놈들을 막을 수 있냐요?”
총총은 질문한 장인의 뒤통수를 힘껏 후려쳤다.
따악!
“오욱!”
“이런 바보! 놈들은 강하다! 폐관수련만이 답이다!”
“폐관수련을 하면 얼마나 강해지냐요?”
“총총, 슈퍼 몰먼 됐다!”
“……오우오우옹!”
“몬스터도 이긴다. 그러니까 그놈들도 이긴다!”
이제 몰먼족은 제법 헬창티가 나기 시작했다.
매사에 의욕적이라는 것, 그리고 무엇을 하든 열정이라는 게 폭발한다는 것.
그것이 바로 헬창의 기본 모토가 아니겠는가.
“장비를 만든다. 그리고 그걸로 수련한다!”
“피 토할 때까지 하는 거다요!”
앞으로 보름 남짓 폐관수련이 있을 것이다.
아마 그때쯤이면 세상이 깜짝 놀랄 만한 작품이 완성되지 않을까, 윤정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재미있는 일이 벌어지겠는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