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헬스레이드-110화 (110/197)

110 준비(2)

운동이 한바탕 끝나고 난 뒤, 덕림헬스로 돌아왔던 헬창스는 미국 헬창들의 비매너 행위를 목격했다.

그에 대해서 한마디 따끔하게 쏘아붙인 헬창스.

그랬더니 미국 헬창들이 벌 떼처럼 들고일어난 것이었다.

“……원판은 제자리에 놓아야 한다고 했더니 엿 먹으라고? 그게 말입니까?”

“흠, 정말 그랬어요?”

태하는 씩씩거리는 청룡방 헌터들의 말을 듣곤 미국 헬창들을 쳐다보았다.

그러자 그들은 씨익 웃으며 답했다.

“네, 그랬죠. 엿이나 먹으라고 하세요. 내가 헬스장에서 뭘 어떻게 하든 그게 무슨 상관인데요?”

“여긴 신성한 단련의 장입니다. 당신들이 함부로 할 만한 곳이 아니라고요. 그리고 땀이 저게 뭡니까. 노린내 나게시리.”

“……뭐요?”

아무래도 기선 제압에서 열이 받은 파워드 피스가 한마디로 꼬라지를 부린 게 분명했다.

그런 꼬락서니를 보고 있자니 뼛속까지 헬스인인 헬창스가 열이 받지 않을 수가 없었던 것이다.

“정말 별것도 아닌 걸로 열을 내네. 엿 한번 먹으라고 한 게 그리 열 받아요?”

“그럼 당신들은 매너 좀 지키라 했다고 해서 엿을 먹으라고 합니까? 좀생이처럼.”

“……아까부터 말을 좀 이상하게 하시네?”

이러다간 정말 한바탕 싸움이라도 날 것 같았다.

바로 그때, 용팔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거참, 마음에 안 들게 행동하시네.”

“뭐요……?”

“그렇게까지 주도권 경쟁을 하고 싶으면 차라리 일대일로 맞짱을 뜹시다.”

“맞짱?”

“한판 붙자고요. 일대일로.”

도대체 왜 이렇게까지 일이 커진 것일까?

이것은 본질적으로 남성호르몬이 문제였다.

모든 동물의 DNA에는 영역 싸움에서 절대 질 수 없도록 투지 본능이 내재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잘 모르는 수컷끼리 만나면 기 싸움이 벌어지는 것이다.

하물며 대규모 공격대를 구성하는 프로젝트에서 주도권을 잡으려 하는 사람들이 있다면 그 기 싸움이 어떻겠는가?

제임스 디콜트는 옳다구나 하고 무릎을 쳤다.

타악!

“좋아! 그럼 그렇게 합시다.”

“……일대일로 싸우자고요?”

“왜요. 쫄립니까?”

태하는 슬쩍 웃었다.

“싸움을 잘하시나 봐요?”

“조금 합니다만.”

“그래요? 그럼 던전으로 따라와요.”

사상 초유의 PK가 시작되었다.

***

던전 1층에 모인 200명의 헌터들.

소식을 듣고 모인 청룡방과 파워드 피스가 서로 갈라져 서 있었다.

가장 먼저 나선 것은 태하였다.

싸우기 좋게 윗옷을 벗고 나온 태하.

그의 엄청난 근육에 일단 청룡방 측 분위기가 살아났다.

“우오오오오!”

“역시, 남달라!”

이 분위기, 어디선가 느껴 본 적 있는 것 같았다.

태하는 학창 시절이 떠올랐다.

‘예전에 옆 학교 쓰레기들이 우리 학교 애들을 괴롭힌다고 해서 이렇게 갈라져 자주 싸우곤 했지.’

비록 일진 놀이까지는 아니더라도 태하는 어려서부터 자주 싸우고 다녔다.

친구들이 어디서 맞고 오는 건 절대로 못 참는 아이였던 것이다.

추억이라면 추억일까, 태하는 그때의 생각이 불현듯 떠오르며 스르르 미소를 짓게 되었다.

그에 반해 제임스 디콜트는 다소 긴장한 모습이 역력했다.

“후우, 후우……!”

“재미있겠네요.”

“무기 없이 주먹으로만 붙는 겁니다. 스킬도 없어요. 아시죠?”

“제가 양아치인 줄 아십니까?”

“좋아요, 준비되면 시작합시다.”

“난 지금도 준비되었는데?”

다소 유치하긴 해도 이렇게 주먹다짐을 해서 상황이 정리된다면야 얼마든지 치고받을 용의가 있었다.

그건 제임스 디콜트 역시 마찬가지였다.

“간다!”

먼저 주먹을 날리는 제임스.

선빵필승이라는 건 만국공통이기에 제임스는 거침없이 주먹을 내지른 것이었다.

쉬이익!

스킬을 뺀 주먹이었어도 그 스피드가 상당히 빨랐다.

‘복싱 베이스는 아니야. 이종격투기?’

복싱과 이종격투기는 떼려야 뗄 수 없는 관계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패턴이 완벽히 같다곤 할 수 없다.

태하는 직선이 아닌 약간 호를 그리며 날아드는 펀치를 옆으로 슬쩍 흘렸다.

그러자 기다렸다는 듯이 무릎이 날아왔다.

“크흠!”

무릎을 손으로 쳐 낸 태하는 다음 공격을 어떻게 할지 찰나에 생각에 잠겼다.

과연 어떻게 하면 이 사람을 놀라게 할 수 있을까?

‘그래, 그거다.’

태하는 오른발을 뒤로 쭉 들어 올렸다.

그러곤 마치 전갈처럼 날카롭고 재빠르게 제임스의 턱을 노린 태하.

빠각!

“커흑!”

“맞았네? 방금 건 럭키킥이었는데.”

엄청난 유연성, 그리고 그에 상응하는 타격감까지.

그야말로 주변은 찬물을 끼얹은 듯이 조용해졌다.

태하는 다시 똑바로 서더니 손가락을 까딱까딱하며 상대방을 도발했다.

“컴온.”

“……제기랄!”

다시 돌격하는 두 사람.

누가 먼저랄 것도 없이 펀치를 날렸다.

허나, 이번에는 서로 피하지 않고 펀치를 그대로 맞아 주었다.

파바박!

“크흑!”

“……오호, 제법인데?”

태하는 충분히 피하면서 펀치를 칠 수 있었다.

그건 제임스 역시 마찬가지, 허나, 그들이 굳이 펀치를 피하지 않은 이유는 탱크처럼 난타전을 유도하여 서로의 파괴력을 시험하기 위함이었다.

쉭쉭!

다시 주먹이 교차되었다.

이번에도 그들은 피하지 않고 상대방에게 재차 주먹을 뻗었다.

퍽퍽퍽퍽!

그야말로 무식한 난타전이 시작되었다.

***

단 한 방에 태하의 펀치력이 대단하다는 것을 깨달은 제임스.

허나, 태하는 거의 무한대에 가까운 깊이를 보여 주었다.

그 이후로 몇 대인지 가늠할 수조차 없을 정도로 많은 펀치가 빗발쳤다.

그것을 고스란히 다 맞은 제임스는 이제 눈앞이 아련해지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

쉬이이익!

‘……맞으면 그로기다!’

이번 펀치는 아까와는 조금 달랐다.

점점 더 강력해지는 펀치, 이번부터는 한 방 한 방이 전부 결정타가 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던 것이다.

허나, 피할 수는 없었다.

지금 펀치를 피하면 정면 승부에서 도망치는 꼴이 되기 때문이다.

“젠장!”

이제는 상대방과 최대한 비슷한 정도의 펀치를 뻗어 내는 것 말고는 답이 없었다.

허리의 반동, 그리고 어깨까지 완벽하게 사용해서 뻗어서 치는 정석적인 복싱의 펀치가 날아갔다.

빠가각!

서로 한 대씩 펀치가 교차했다.

허나, 고통은 달랐다.

끼이이……!

귀에서 쇳소리가 났다.

이명이 들리며 천장이 빙글빙글 도는 듯한 느낌도 난다.

“……허, 허어억!”

그야말로 돌망치 같은 느낌의 펀치였다.

도대체 인간의 펀치가 이렇게까지 강력할 수 있나 싶었다.

다리가 풀렸지만 간신히 버티고 선 제임스.

그는 이제 한 대만 더 맞으면 곧 쓰러질 것 같았다.

허나, 태하는 잠시 시간을 주었다.

“음, 잠깐만 쉬었다가 합시다!”

“……우우우! 계속 해야지!”

사방에서 야유가 쏟아졌다.

심지어 청룡방 측에서도 도저히 이해가 안 된다는 듯이 태하를 쳐다보았다.

다 이긴 승부에서 한 발짝 뒤로 빼는 것 같았기 때문이다.

일이야 어찌 되었건 간에 꼴사납게 뒤로 발라당 뻗는 것은 면한 제임스는 가쁜 숨을 몰아쉬었다.

“허억, 허억……!”

태하는 그런 그에게 음료를 건네주었다.

“자, 마셔요.”

“……뭡니까?”

“승부는 승부, 사람이 미워서 주먹질을 한 건 아니잖습니까?”

이기는 쪽에서 저런 소리를 하니 도대체 얼마나 얄미운지 몰랐다.

제임스는 태하의 손을 쳐 냈다.

탁!

“됐습니다…….”

“드세요. 여기서 다치면 우리 길드에게도 손해입니다. 공격대의 대장이 이런 꼴이 되면 어쩌라는 겁니까?”

자존심 때문에라도 마시기 싫었지만, 태하의 말도 틀린 것은 아니었기에 어쩔 수 없이 음료수를 받았다.

그는 다소 짜증이 난다는 듯이 음료수를 넘겼다.

꿀꺽!

“헛……?!”

음료수 한 모금이었지만, 그야말로 기적과 같은 일이 벌어졌다.

방금 전까지만 해도 어지러워서 쓰러질 것 같았는데, 이제는 눈앞이 환해지는 것 같았다.

태하는 웃으며 말했다.

“어때요? 죽이죠? 내가 만든 포션입니다.”

“……보충제라면서요?”

“헬창에게는 보충제가 포션이죠. 안 그래요?”

그제야 또렷하게 보이는 태하의 표정.

그의 눈빛과 마주친 제임스는 뭔가 형언할 수 없는 따뜻함 같은 것을 느꼈다.

‘……뭐지?’

남자가 남자를 좋아하는 그따위 징그러운 감정이 아니었다.

큰형, 혹은 아버지를 보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태하는 그에게 손을 내밀었다.

“이쯤 했으면 서로 비긴 것으로 하고 앞으로 잘 지내봅시다. 굳이 끝장을 볼 필요는 없잖아요?”

“……비긴 것으로 하자고요?”

“당신이나 나나 지친 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런데 굳이 서로 피를 볼 필요는 없잖습니까? 안 그래요?”

절로 고개가 끄덕여진다.

그저 자존심만으로 우격다짐을 하는 무식한 꼰대가 아니라 태하는 아주 유연하고도 따뜻한 강자였던 것이다.

‘……리더의 자질이 있군.’

두 사람은 악수를 나누었다.

리더가 싸움을 끝냈어도 아직 앙금이 남은 청룡방과 파워드 피스는 끝까지 일대일 승부를 벌였다.

무려 네 시간이 넘는 싸움 끝에 그들은 악수를 나눌 수 있었다.

앞서 리더들이 치졸하지 않게 싸움을 끝냈으므로 그들도 어쩔 수 없이 화해한 것이었다.

허나, 모두가 화해를 하니 묵혔던 감정의 골이 메워졌다.

“……양키들, 한잔하러 갑시다.”

“술 대결?”

“콜!”

물론, 경쟁심은 사그라지지 않았다.

그것은 수컷들의 본능이기 때문이었다.

물론, 몇몇 여성 헌터들은 한심하다는 듯이 그들을 쳐다보았다.

“어차피 동맹을 맺게 될 텐데 왜 저럴까?”

“저런 게 남자라는 동물 아닌가요.”

***

늦은 밤.

이용광 사망 현장을 다시 찾은 박찬수 총경.

그는 가만히 서서 주변을 둘러보았다.

“……밀수. 그래, 할 수 있지. 헬파이어라면 충분히 그럴 수도 있어. 하지만 도대체 어떻게? 어떻게 이용광을 흔적도 없이 죽일 수 있었던 거야?”

밀실 살인, 그보다도 난이도가 높았다.

도대체 증거 하나, 목격자 1명, 심지어는 CCTV에 모습까지 남아 있지 않을 수 있단 말인가?

침투는 어떻게든 할 수 있다고 쳐도 사람이 알아서 죽도록 만드는 건 쉬운 일이 아니었다.

박찬수는 그 자리에 서서 한동안 다잉 메시지가 있었던 바닥을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주머니에서 현장을 기록했던 사진을 꺼내었다.

사진과 바닥을 번갈아 보던 박찬수.

그는 돌연 고개를 돌려 쇠창살을 바라보았다.

여전히 그때의 흔적이 고스란히 남아 강렬한 느낌이 뿜어져 나오는 손가락 자국.

손가락 자국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박찬수.

바로 그때, 그의 눈에 뭔가 희미한 금빛 물체가 보였다.

그것은 돋보기로 자세히 보지 않으면 잘 보이지도 않을 정도로 작았다.

“……뭐지? 금인가?”

박찬수는 주머니에서 핀셋과 지퍼백을 꺼내어 그 물체를 담았다.

그는 이것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아보기 위해서 국과수를 찾아보기로 했다.

다음 날.

국과수에 있는 대학 동기 한유주를 찾은 박찬수.

그녀는 이것에 몇 가지 시약을 부어 보곤 이내 정체를 밝혀냈다.

“금이네.”

“금……?”

“그런데 그냥 금은 아니고, 조금 특이한 금이야.”

“특이한 금이라니?”

“혹시, 금성탑이 왜 금성탑인지 들어 본 적 있어?”

“……금성탑? 갑자기 그 얘기가 왜 나와? 알아듣게 설명해 봐.”

한유주는 한 장의 사진을 꺼냈다.

그 사진 속에는 온통 사방이 금빛으로 가득한 동굴이 찍혀 있었다.

“금성탑의 전투사제들이 싸운 흔적이야. 1년쯤 지나면 사라지긴 하는데, 이 금색 물질이 전부 금이야. 우리는 이걸 시한부 금속이라고 불러.”

“뭐야, 그럼…….”

“그래. 그 현장에는 전투사제가 있었던 거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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