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8 이이제이(2)
몰먼족은 생각보다 더 대단한 광물을 다루고 있었다.
“가볍고 단단하며 불과 열에 강하며, 잘 늘어나고 얇은 막을 생성시켜도 수천 톤의 압력을 견딜 수 있는 유일한 물질입니다. 이런 물질은 지금까지 지구의 역사상 한 번도 발견된 적이 없죠.”
“……생각보다 더 대단한 물건이네요?”
“은청석은 코어 산업이나 블루샌드 산업보다 훨씬 더 각광받을 수 있는 사업이기도 합니다. 아니, 시간이 지나면 반드시 그렇게 되겠지요.”
“물론 공급량이 충분해져야 한다는 전제가 붙겠지요?”
“그렇습니다.”
왜 그토록 놈들이 발광을 했는지 이제 좀 알 것 같았다.
과연 파이어볼을 묻어 버릴 수 있을 정도로 강력한 자금줄이 될 만했다.
태하는 그레이엄 가문에게 광물을 팔아 달라고 요청했다.
“하루에 1.5톤, 우리가 단독으로 공급하겠습니다.”
“……매장량이 얼마나 되기에 그러십니까?”
“적어도 평생 끊이지 않고 1.5톤씩 생산할 수 있을 정도는 됩니다.”
“1.5톤이라! 상업에 사용되긴 조금 힘든 양이지만 멜트다운 방지용으로 사용하기에는 딱 안성맞춤이네요.”
태하가 굳이 1.5톤을 언급한 것에는 다 이유가 있었다.
바로 화제성 때문이었다.
“일단 처음에는 1.5톤씩 공급하다가 점차 물량을 늘려 가겠습니다. 그렇게 하면 수급과 공급의 불균형이 서서히 일어나면서 가격은 고공 행진을 거듭하게 되겠지요.”
“높아진 가격을 어느 정도 유지하면서 시장을 장악하겠다, 그런 뜻으로 해석하면 되겠습니까?”
“그렇습니다.”
마틴 그레이엄은 상당히 흥미롭다는 듯 태하를 쳐다보았다.
천연 광물의 공룡.
그런 그가 보기에도 태하는 범상치 않은 사람으로 느껴졌던 것이다.
그는 태하에게 한 가지 궁금한 것이 있었다.
“뭐, 좋습니다. 원하는 대로 해 드리죠. 하지만 우리와 계약하고자 한다면 한 가지는 확실히 짚고 넘어가야 합니다.”
“말씀하시죠.”
“그 광물, 정말 우리가 독점할 수 있는 겁니까?”
“판로를 다양화할까 봐 그러신다면 안심하셔도 좋습니다.”
“아니요, 공급처가 2개 이상으로 늘어나면 곤란하기 때문에 드리는 말씀입니다.”
시장의 건전성, 그리고 수요와 공급의 균형 잡힌 경제성 보장 등을 위해 독과점은 불법으로 철저히 통제된다.
독점방지법은 꽤나 오랜 전통을 가진 법이고, 물론 대한민국을 비롯한 신흥공업국에도 적용된다.
허나, 독과점이 허용되는 예가 딱 하나 있다.
그것은 바로 공급처가 세계에서 단 하나일 때.
“물론, 공급처가 딱 하나밖에 없다고 하더라도 어떻게든 공정거래법에 위반된다고 부득불 우겨 볼 수는 있습니다. 하지만 은청석의 경우에는 그게 불가능할 겁니다.”
“국가의 산업 기반을 한 단계 높여 주는 전략물자이기 때문에?”
“그렇죠. 천하의 미국이라도 어쩔 수는 없을 겁니다.”
미국은 누구보다 빠르게 바벨탑을 발견하고 그에 대한 실험까지 했었던 사람들이다.
때문에 최상위 포지션의 헌터들을 가장 많이 보유하고 있으며 국제시장에서 차지하는 코어 시장의 영향력도 단연 1위다.
군사력, 경제력, 심지어는 바벨탑에서의 경쟁력도 1위라는 소리.
그런 초일류 국가인 미국에게도 은청석은 거부할 수 없는 매력으로 다가올 것이었다.
“혹시 지금까지 은청석을 보유했다거나 그걸 생산한 사람들이 한국 이외에 다른 시장에도 있습니까?”
“아니요. 제가 알기론 없습니다.”
“그럼 제가 감히 말씀드리죠. 은청석은 제가 독점으로 공급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야.”
마틴 그레이엄의 눈빛은 아까와는 많이 달라졌다.
뭐랄까, 맛있는 먹이를 앞에 둔 맹수와도 같다고나 할까.
태하는 한껏 흥과 독이 올라 버린 마틴 그레이엄에게 한 가지 조건을 붙였다.
“다만 한 가지 도와주셔야 할 게 있습니다.”
“뭐든 말씀만 하시죠.”
“헬파이어와 파이어볼을 이간질시켜서 한쪽을 아예 무너뜨리고 싶습니다만.”
“……헬파이어를? 지금 제정신이십니까?!”
이번에는 놀라다 못해 경악으로 물드는 마틴 그레이엄.
레이드펀드에 대한 인식은 보통 해적으로 묘사되곤 하는데, 그들은 그야말로 무법자처럼 아무렇게나 사람을 죽이기 때문이었다.
“해적들은 인정사정 볼 것 없이 사람을 쳐 죽이는 놈들입니다. 만약 이간질한 것이 들통나기라도 한다면 우리는 물론이고 당신들까지 다 죽을 겁니다.”
“사실, 오늘 당신을 찾아온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이것이었습니다. 저는 두 집단을 파멸로 이끌어 갈 겁니다. 그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안 가릴 거거든요.”
“……왜 굳이 그래야 하는데요?”
“그것이 옳기 때문이죠.”
마틴 그레이엄은 깊은 고민에 빠지고 말았다.
사상 유례가 없을 정도로 강력한 경제성을 가진 광물, 그것을 독점할 수 있는 기회가 찾아왔지만 상대방이 너무 무리한 요구를 하고 있었다.
과연 그는 어떤 선택을 해야 하는 것일까.
깊은 고민에 빠져 있던 마틴 그레이엄에게 조선엽은 결정타를 날렸다.
“만약 여기서 거부하신다면 공은 하버스트 가문으로 넘어갑니다.”
“……하버스트?”
“아시다시피 시장점유율은 그레이엄, 그다음은 하버스트로 이어지기 때문이죠. 우리로선 어쩔 수 없는 선택입니다.”
자원 시장에서의 점유율은 그레이엄 가문이 근소한 차이로 앞서고 있었다.
허나, 만약 은청석이 하버스트 가문으로 넘어간다면 어떻게 될까?
마틴 그레이엄은 실소를 흘렸다.
“하하, 이것 참.”
“당신의 선택을 존중하겠습니다. 만약 결정이 어려우시다면 시간을 좀 드릴 수도 있는데요.”
“……아니요, 그럴 필요 없습니다.”
그는 태하에게 악수를 건넸다.
과연 이것이 굿바이를 의미하는 것일까?
아니었다.
“환영합니다. 천연 광물의 공룡이 된 것을 축하드리고요.”
***
이른 아침부터 분주하게 움직이고 있는 몰먼시티.
몰먼들은 하루 1.5톤의 은청석을 생산하기 위해서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었다.
초대형 드릴을 다섯 대씩이나 굴리는 한편, 채굴한 광물을 잘게 파쇄해서 은청석만 골라내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이 속도라면 하루에 5톤, 아니 10톤 생산도 가능하다요!”
“처음에는 1.5톤만 맞춰 주면 돼. 그 이상은 우리에게 불리하게 작용할 수도 있거든.”
“……알겠다요! 이번에는 생산에 차질 없도록 열심히 하겠다요!”
몰먼족의 다이어트 성공은 그야말로 기록적이라고 할 만했다.
몸무게의 절반가량을 감량하는 데 불과 3개월밖에 걸리지 않았고 그것을 꾸준히 유지할 수 있도록 몰먼시티 전체가 아침저녁으로 다 함께 운동을 해 주고 있었다.
칼같이 짜인 식단과 하루의 생활 계획, 그야말로 헬창스를 보는 듯했다.
“총총, 너 정말 리더십이 있구나.”
“헤헷! 모든 게 다 나리 덕분이다요!”
태하의 다리에 얼굴을 비비적거리는 총총.
그 모습을 지켜보던 주변의 몰먼들이 전부 달려와 태하에게 얼굴을 비비기 시작했다.
심지어는 아직 어린 아기들도 말이다.
“꺄하하하하!”
“……귀, 귀엽다.”
천하의 목석이라도 새끼 몰먼의 애교에 녹아나지 않을 사람은 없었다.
심지어 그것이 진성 헬창이라고 해도 말이다.
한참 동안이나 경외의 부비부비를 받은 태하는 이제 그만 던전을 나가 보기로 했다.
“이제 가 볼게.”
“살펴 가라요!”
“아 참, 그나저나 총총. 뭔가 한 가지 궁금한 게 있는데 말이야.”
“뭐냐요?”
“네 전투 장비에 들어간 광물 말이야.”
“코어 말이냐요?”
“아니, 그거 말고. 반도체에 들어갔다는 그 원료 말이야.”
“아하! 이거 말이냐요?!”
총총은 주머니에서 아주 작은 파란 광석을 내밀었다.
은청석보다 훨씬 더 영롱하고 밝은 빛을 발하고 있었다.
“그래, 이거. 어디서 캔 거야?”
“은청석을 생산하다 보면 나온다요. 대략 1/100의 비율로 섞여 있는 것 같다요!”
“흠……. 그래? 혹시 이게 뭔지는 너희도 잘 몰라?”
“그건 잘 모르겠다요! 몰먼은 채굴하고 만드는 종족이지 그게 뭔지는 정확히 잘 모른다요!”
“그렇구나.”
“만약 모르겠으면 그걸 쓰면 어떠냐요?!”
“그거라니?”
“도서관!”
태하는 무릎을 쳤다.
타악!
“그래, 맞아! 허 참, 나는 왜 좋은 걸 내버려 두고 매일 헤매는 걸까?”
“헤헷, 그게 나리 매력이다요!”
“그럼 같이 한번 알아볼까?”
던전을 나서려다가 태하는 레이스를 소환했다.
그녀는 여전히 느릿느릿, 잠에 취해 있었다.
-……부르셨습니까?
“반가워, 레이스. 오늘도 역시 늘어지게 자고 있네?”
-마력이 항상 부족하니까요…….
“흠, 그래?”
반쯤 눈을 감고 있던 레이스.
바로 그때였다.
파앗!
-아앗!
“왜 그래? 어디 안 좋은 데 있어?”
-히, 힘이 넘치네요! 주인님, 혹시 마정석을 가지고 계시나요?!
“마정석?”
-코어의 원료이며 마계 군단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지요.
태하는 주변에서 채굴 중인 은청석을 내밀었다.
희귀한 물질인 이 은청석이 과연 그 원료였던 것일까?
“이, 이거 맞아?!”
-……음. 이건 산화해서 굳어 버린 마정석입니다. 무기를 만들기엔 좋아도 먹을 수는 없죠.
“그럼…….”
이번에는 총총에게서 받았던 정체불명의 돌을 건네는 태하.
그러자 레이스의 얼굴이 환하게 밝아졌다.
-아아! 이겁니다!
“이게 마정석이라고……?”
-이게 바로 힘의 원천입니다! 이걸 잘 사용하기만 한다면 수백만의 적도 물리칠 수 있죠!
“……이건 도처에 널려 있는데?”
-그런가요? 흠, 이게 그렇게까지 흔한 물건이었던가?
정말 너무나도 의외의 발견이었다.
지하 5미터 이상의 깊이에서는 너무나도 흔하게 발견되는 이것이 마계 군단을 움직이는 힘의 원천이었다니.
“마정석에 대해서 검색해 줄 수 있어?”
-물론이죠! 조금만 기다리세요! 룰루랄라……!
지금까지 이렇게 활기찬 모습은 본 적이 없었기에 태하는 레이스가 낯설게 느껴지기까지 했다.
심지어 그녀는 검색을 할 때에도 졸지 않았다.
파앗!
-끝났습니다!
“허어, 평소보다 거의 2배는 더 빠른 것 같은데?”
-마정석 덕분이죠! 지금까지는 졸려서 좀 그랬었죠. 죄송해요!
“……뭐, 아무튼 간에 마정석에 대한 정보 좀 알려 줘. 이거, 원래는 어디에 매장되어 있는 거야?”
-마정석은 마법의 근간이 되는 물질이라고 알려져 있습니다. 처음 이것을 얻은 이는 태초에 마법을 창조한 신, 아수프라고 하고요.
“흠, 그런 신이 있었어?”
-아무튼 아수프는 이 마법의 근간을 대지 한곳으로 모아 광산으로 만들었습니다. 마계 군단은 그것을 강탈하였고, 군단의 훈련 목적으로 몬스터를 만들기 시작했죠. 몬스터는 스스로 움직일 수 없었기 때문에 그 중심부에 마정석으로 빚은 코어를 넣어 놓은 겁니다.
“……그럼 이 마정석만 있다면 코어는 그냥 만들어 쓸 수도 있다는 건가?”
-그건 아닙니다. 뭔가 특별한 힘이 필요한데, 그게 뭔지는 아직 모릅니다.
“흠……. 그렇군.”
-나중에 주인님께서 더욱 영민해지셔서 비취 석판을 완벽히 해독할 수 있다면 만들어 낼 수도 있겠지요.
“아아, 비취 석판!”
-비취 석판을 처음 만든 신도 아수프입니다. 아마 그 안에 답이 있지 않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