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07화 (107/197)

107 이이제이(1)

공격적 인수합병.

말 그대로 지분 매입이라든지 이사회 재조직 등을 통해서 기업을 적대적으로 인수하는 행위다.

흔히 ‘기업사냥’이라는 이름으로 1980년대에 폭발적으로 많이 일어났으며 지금까지도 꾸준히 일어나고 있다.

헬파이어는 이 은청석 사업으로 회사를 인수해 버릴 생각이었던 것이다.

그것도 파이어볼을 말이다.

“같은 계열의 레이드펀드가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라니. 새로운 사실인데요?”

“아무래도 내분이 일어나고 있는 것 같아요.”

태하는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 내분이 아직 일어난 건 아니죠. 공격적 인수합병을 준비한 거지 실행한 건 아니잖아요?”

“아아!”

“이거, 잘하면 두 조직 중 하나는 이 세상에서 그 이름을 지워 버릴 수도 있겠는데요?”

“어떻게 말이에요?”

두뇌 활성화의 점진적 과부하가 주는 특혜는 연산력이나 기억력뿐만이 아니다.

가장 뛰어난 부분은 바로 창의력이었다.

“제가 돈이 좀 있잖아요?”

“좀 있는 정도가 아니라 엄청나죠.”

“그 돈으로 헬파이어를 엿 먹일 수 있을 것 같아요.”

“……하긴, 그 돈이면!”

태하는 이미 시장의 큰손이다.

사람들이 잘 몰라서 그렇지 재산 상황을 공개하면 도대체 왜 직업을 갖는지 의문이 들 것이다.

그런 태하의 재산이라면 시장의 판도를 충분히 바꿀 수 있을 것이었다.

다만, 그러자면 이 은청석의 가치에 대해서 더욱 정확히 알아야 할 필요가 있다.

“총총.”

“네, 나리!”

“은청석, 하루에 채굴할 수 있는 양이 얼마야?”

“우리 몰먼이 쉬지 않고 채굴한다면 적어도 2.5톤은 캘 수 있다요!”

“좋아. 앞으로 한 달에 2.5톤, 딱 거기까지만 캐자고.”

“쉬엄쉬엄 일하라는 거냐요?”

“그래. 운동도 좀 하고 말이야.”

“아, 그런데 나리! 운동 하니까 생각나는 게 있다요!”

“뭔데?”

총총은 주머니에서 뭔가를 뒤적거리더니 이내 꼬깃꼬깃 접힌 쪽지를 꺼냈다.

쪽지 안에는 몇 가지 질문 사항들이 한글로 적혀 있었다.

글씨체만 놓고 본다면 마치 초등학생이 고사리손으로 적어 놓은 것 같은 느낌이었다.

“이게 다 뭐야?”

“운동에 대한 질문이다요!”

질문 사항들은 인간이 하는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루틴, 분할, 심지어는 기시점과 정지점에 대한 질문도 있었다.

다들 중요한 질문이지만 가장 중요한 게 있었다.

바로 정체기였다.

“더 이상 몸이 안 크는 몰먼들이 많다요!”

“정체기가 왔나 보군.”

“이건 어떻게 돌파하는 거냐요?!”

“몇 가지 방법이 있지.”

“그게 뭐냐요?!”

총총은 운동에 대한 질문을 할 때엔 눈이 반짝거린다.

그 어느 때보다 적극적인 반응, 그리고 눈가에 도는 총기까지.

그는 이제 완벽한 헬창이 되어 가고 있었던 것이다.

“몇 가지 적어 줄게. 정체기 돌파에는 정답이 없지만, 그래도 도움이 되긴 할 거야.”

***

여의도 코어 거래소 안.

“……은청석이라! 요즘 핫하긴 합니다. 이제 막 신소재로 연구되고 있긴 해도 은청석이 최고의 도금 재료가 될 거라는 건 틀림이 없는 사실이죠.”

“핫한 아이템이라. 그런데 왜 빅 아이템은 되지 못한 거죠?”

“아시다시피 양이 별로 없습니다. 아무리 좋은 소재라도 너무 비싸면 상업화가 불가능하죠.”

정말 단순한 이유로 시장에서 큰 빛을 발하지는 못하고 있었다.

허나, 만약 이걸 대량으로 공급해서 시장에 풀 수 있다면 어떻게 될까?

“혹시 잘 아는 광물업자 있으세요?”

“광물업자요?”

“제가 은청석을 대량으로 유통시킬 수 있을 것 같아서 말입니다.”

“……네? 뭐, 뭘 유통시킨다고요?”

“아까부터 은청석 얘기를 하고 있었잖습니까.”

“아, 아니, 그러니까요. 은청석을 대량으로 유통시켜요?!”

이것은 어쩌면 마이너스 코어를 유통시켰던 것보다 훨씬 더 큰 파장을 몰고 올지도 모른다.

마이너스 코어는 스탠더드 코어라는 대체재를 가진 원료이지만 은청석은 그것을 대신할 물질이 없지 않던가.

조선엽은 저번 마이너스 사태에서 태하가 보여 준 저력이 있기에 그의 말을 무시할 수가 없었다.

“흠……. 물건만 확실하다면 우리가 충분히 도움을 받을 만한 전문가가 있기는 합니다.”

“오호, 그래요?”

“마틴 그레이엄이라고, 미국에서 광물 장사를 하는 사람입니다. 혹시 들어 보셨나요?”

“그레이엄이면 미국 3대 광물 회사 아니에요?”

“맞습니다. 그 그레이엄 가문의 수장입니다.”

“……허어! 그 사람을 어떻게 알아요?”

코를 찡긋하는 조선엽.

“잊으셨나 본데, 당신도 이 업계에서는 공룡 소리 듣는 사람입니다. 그 파트너인 제가 스포트라이트를 안 받는 게 더 이상하지 않아요?”

“아 참, 그랬던가?”

태하는 조선엽을 스타로 만들어 주겠다고 약속했었고, 실제로 그는 스타가 되었다.

스타가 되었으니 인맥이 넓어지는 것도 당연한 일이었다.

“어때요? 한번 만나 보실래요?”

“흠. 하지만 내 신원이 노출되는 건 별로 좋지 않은데.”

“신분 노출은 걱정하실 필요 없어요. 꺼려진다고 말하면 절대 외부로 발설하는 일은 없을 겁니다.”

“그렇다면야.”

“그나저나 신분 노출은 왜 꺼리시는 겁니까? 어차피 신용을 쌓으려면 얼굴을 보여 줘야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데요.”

“파이어볼이라고, 그놈들과 손잡은 헬파이어라는 것들을 업계에서 치워 버리려고요.”

“……헬파이어요? 그들은 미국 최고의 레이드펀드 중에 하나인데요?”

“압니다. 하지만 하는 짓이 너무 악독해서 없앨 생각입니다.”

조선엽은 황당하다는 듯 잠시 할 말을 잃었다.

그러다가 이윽고 정말 질렸다는 듯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허 참, 무서운 사람이시네요. 저번에는 아수라, 이번에는 헬파이어까지?”

“제가 원래 당하곤 못 사는 성격이라서 그렇습니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아무튼 간에 당신의 그 스타 인맥, 좀 사용해 봅시다.”

***

며칠 후, 태하는 전용기를 타고 미국으로 향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전용기라는 것을 타 보는 태하.

원목으로 장식된 고풍스러운 인테리어와 아름다운 승무원들의 최상의 서비스까지, 정말 이러려고 돈을 버는 게 아닌가 싶기도 했다.

“……이야, 돈이 좋기는 한가 보네.”

“전용기 한 대 사 드릴까요? 비행기 몇 대쯤 굴리는 거야 그리 어려운 일도 아닌데요.”

“뭐, 굳이 그럴 필요까지는 없고요.”

태하는 어지간한 재벌 총수보다도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 회삿돈을 굴려서 얻는 수익으로 재산을 축적한다면, 태하는 자기 재산을 굴려서 수익을 얻는다.

한마디로 거대한 회사 자체가 태하의 개인 재산이라는 뜻이다.

“그 돈이면 강남의 건물 몇 개가 아니라 강남에 있는 건물을 몽땅 다 사들일 수도 있을 텐데요?”

“뭐, 돈이라는 게 그렇더라고요. 그냥 있는 만큼 쓰고 살 만큼 살다가 기부하고 죽으면 그만 아닌가, 뭐 그런 생각이 들더군요.”

“……역시, 부자의 마인드는 다르네요.”

고생을 해 본 사람이 부자가 되면 아무래도 돈을 대하는 태도부터가 달라진다.

흥청망청 살아도 죽을 때까지 그 돈을 다 쓰지도 못할 테지만, 굳이 과소비를 하지 않는 건 돈의 가치를 잘 알기 때문이다.

12시간 후, 태하는 캘리포니아의 개인 활주로에 당도했다.

광물계의 공룡이라서 그런지 비행기를 띄우고 내리는 데 개인 주차장처럼 아예 공항을 보유하고 있었던 것이다.

“그레이엄 공항이라! 스케일 자체가 다르네. 솔직히 전 돈이 있어도 이렇게 쓸 궁리는 못 할 것 같은데.”

“뭐, 부의 대물림을 받은 사람들인데 오죽하겠습니까?”

공항에 내리자, 허름한 차림의 남자가 단출하게 태하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는 무릎이 툭 튀어나온 트레이닝 차림에 슬리퍼를 신고 있었는데, 머리는 까치집을 지어 방금 집에서 나온 것 같은 느낌을 주었다.

조선엽은 그에게 꾸벅 고개를 숙였다.

“그레이엄 씨!”

“아, 미스터 조! 오는 길에 불편함은 없었나요?”

“배려해 주신 덕분에 아주 편하게 잘 왔습니다.”

“다행이로군요.”

이 사람이 바로 그레이엄이라니.

태하는 처음에는 자신을 홀대하는 건가 싶었다가 이내 한 가지 큰 깨달음을 얻었다.

“우리 집에 잘 오셨습니다. 마틴 그레이엄입니다.”

“……아, 예. 정태하입니다.”

“누추하지만 함께 가시죠. 집이 좀 어수선합니다.”

이곳은 그레이엄의 앞마당이다.

자기 집 앞마당에서 뭘 입고 돌아다니든 그게 무슨 상관이란 말인가.

게다가 그가 이렇게 입고 다니는 것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었다.

“미안합니다. 차림이 좀 그렇죠?”

“아니요. 집에서 편하게 계신데 차림이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제가 시간을 분 단위로 쪼개지 않으면 스케줄에 차질이 생깁니다. 그래서 지금도 자다가 바로 일어나서 나오느라 옷을 못 갈아입었네요.”

“괜찮습니다. 저는 겉치레는 아무래도 상관없는 사람이거든요.”

“하하! 그리 이해해 주신다니, 감사합니다.”

공항에서 집까지 몇 분 거리, 이런 개념이 아니라 그레이엄은 뒷마당에 공항이 있는 사람이었다.

걸어서 충분히 집까지 갈 수 있는 거리에 공항이 있었다.

산책 겸 걸어서 집으로 향하는 세 사람.

마틴 그레이엄은 태하에게 오늘 방문한 목적에 대해 물었다.

“은청석 때문에 오셨다고요?”

“네, 그렇습니다. 유통을 좀 시키고 싶은데 판로가 마땅치 않아서요.”

“은청석이라! 요즘 은청석 가격이 거의 금값입니다. 아니, 같은 무게로 친다면 오히려 다이아몬드보다 비쌀걸요?”

“이걸로 자동차 부품 같은 것을 만들어서 그런가요?”

“여러 곳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자동차 엔진도 만들지, 부품도 만들지, 대형 발전에 들어갑니다.”

“대형 발전이요? 개조 원자로 같은 것 말입니까?”

“혹시 개조 원자로에 대해서 잘 아십니까?”

“아니요. 그냥 기존의 원자로를 개조해서 사용하고 있다는 것만 알고 있습니다.”

마틴 그레이엄은 잠시 물을 한 모금 마신 후 목을 가다듬고 대형 발전에 대해 자세히 설명하기 시작했다.

“대형 발전은 전체적으로 원자력발전과 비슷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지금의 원전은 코어를 사용해 전력 생산량을 극대화시킬 수 있도록 개조된 형태인데, 우라늄 발전에서 코어 발전으로 바뀌었다고 생각하시면 되겠네요.”

“아아! 그러니까 거대한 코어 발전기이다?”

“그렇기는 합니다만, 기존의 원자력발전과 원리는 비슷해요. 원자로를 사용하고 발전에서 나오는 폐기물도 처리해야 하죠. 하지만 기존의 원자력에 비해 거의 150배 정도 효율이 좋다고 합니다. 불완전 원자력 시설을 전부 폐기하고 단 두 대만 남겨 놓았는데도 대한민국 전기 수급에는 문제가 없잖습니까? 그게 다 대형 발전 덕분이죠.”

“아하! 신문을 보면 탈원전에서 다시 원전으로 회귀하고 있다던데, 그 이유도 다 그 때문이군요!”

“폐기물이 나오지만 방사능으로 인한 피해를 감수할 수 있을 정도로 뛰어난 가성비를 자랑한다고 보시면 됩니다. 게다가 코어 발전은 폐기물을 땅에 묻고 시간이 지나면 방사능이 서서히 줄어들어 보통의 돌덩이가 됩니다. 나중에는 가루가 되죠.”

“상당히 친환경적이네요?”

“그렇습니다. 상당히 친환경적이지만 처리 비용이 만만치 않죠. 그래도 원전에 비해서는 처리가 깔끔한 편이죠.”

“상당히 좋은 발전 방법이네요?”

“다만, 한 가지 문제가 있습니다. 이 코어 발전으로 원자력발전소를 돌리다 보면 폭발 위험이 거의 10배 이상으로 늘어난다는 거죠.”

“결국 높은 생산력과 자연친화적인 처리 과정을 얻었지만 처리 비용 증가와 폭발 위험을 감수해야 하는 거네요?”

“생산성 증가를 얻는 대신에 리스크를 얻는 셈이죠.”

“음…….”

“게다가 결정적으로 한 번 멜트다운이 발생하면 그것을 영원히 없앨 수 없다는 것이 문제입니다. 온도 상승을 인간이 제어할 수 없을 정도로 그 힘이 강력하기 때문이죠.”

“재앙이나 다름이 없군요.”

“맞습니다. 재앙이죠. 이를 방지하기 위해서 지금 과학자들이 엄청난 노력을 기울이고 있습니다만, 그에 상응할 만한 신소재는 찾지 못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하지만 그걸 커버할 수 있는 게 바로 이 은청석이다, 이 말입니다.”

“……멜트다운을 억제한다고요?”

“거의 유일한 소재라고 할 수 있죠.”

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