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6 만신창이(2)
가짜가 오리지널을 이길 수 없는 데에는 이유가 있다.
바로 경험과 숙련도의 차이 때문이다.
[스킬: 질병]
[신체 능력을 90% 이상 감소시키는 질병을 부여합니다]
디버프를 사용할 때에는 최소한 두 가지 이상의 질병을 섞어서 사용하는 것이 효과적이다.
헌데 몬스터는 의사가 아니기에 무엇이 가장 치명적인지 판단할 수가 없다.
이주현은 심혈관을 인위적으로 막고 그 안으로 라이먼트의 독성 물질을 주입하여 심부전 상태를 만들어 버렸다.
거기에 라이먼트의 디버프 ‘약화’가 발동되자, 인간 지네는 뒤로 한 발짝 물러설 수밖에는 없었다.
-쿠헥, 쿠헥!
기침이 멈추지 않았고 온몸에 힘이 쭉 빠져서 도저히 움직일 수가 없었다.
심부전의 전형적인 증상이었다.
“이제 곧 장기들이 기능을 멈출 겁니다.”
“저쪽에서도 이제 공격이 들어오겠죠?”
“그렇겠죠!”
이미 태하의 스트랩은 한나와 주현에게 연결되어 있었다.
증폭과 강화 스킬이 주현에게 주입되자, 그의 슈퍼 백신 스킬이 크게 상승하였다.
준비는 이제 끝났다.
“자, 와라!”
-캬하아아악!
인간 지네는 이주현에게 디버프를 걸었다.
[스킬: 질병]
[인체에 가장 치명적인 질병을 부여합니다]
방금 전 주현이 사용했던 방식 그대로 스킬이 되돌아왔다.
허나, 그 스킬 레벨은 Lv.1 수준.
“그야말로 간지러운 수준인데요?”
“반격해서 끝낼 수 있을까요?”
“물론이죠!”
[파생 스킬: 약화 - 악화]
[적의 상태를 크게 악화시킵니다]
[약화 스킬의 레벨과 시전자의 근력에 비례하여 대미지가 결정됩니다]
디로딩 기간과 휴식을 제외한다면 그야말로 하루도 빠지지 않고 꾸준히 점진적 과부하를 충실히 이행하는 주현.
그의 성실함은 스킬에서도 나타났다.
스킬 ‘악화’는 무려 레벨 51로 책정되어 인간 지네의 병을 순식간에 말기로 끌어가 버렸다.
-우웨에에엑!
“소화 기능이 정지해서 먹은 걸 다 토해 내고 있네요.”
“고통스러울 겁니다. 장기 부전은 보통 말기 암보다 예우가 좋지 않아요. 약을 쓴다고 딱히 어떻게 될 수준이 아니니까요.”
인간 지네가 한국장기협회에 대기 순번을 신청하지 않는 이상에야 오늘 이 자리에서 놈은 죽게 될 것이다.
악화 스킬은 놈의 상태를 점점 안 좋게 만들어 갔다.
-끄으으으으…….
결국 그 자리에 힘없이 축 늘어지고 마는 인간 지네.
태하는 데스벳을 소환했다.
-끼릿!
“저놈의 몸을 스캔해 줘.”
-끼리릿!
태하의 레벨이 오르면서 그가 소환하는 몬스터의 레벨도 덩달아 올랐다.
비록 드라마틱한 효과는 아직 없었지만 데스벳은 이제 엑스레이를 사용할 수 있을 정도로 스킬이 진화해 있었다.
[고유 스킬: 데스벳의 스캐너]
[대상의 내부를 정밀하게 스캔합니다]
스캔을 해 보니 내부에 코어와 같은 반응을 보이는 핵 물질이 자리 잡고 있었다.
태하는 저것을 흡수하는 것보다는 꺼내는 게 나을 것 같다는 판단이 섰다.
“저건 먹지 말고 연구용으로 꺼내서 가지고 있자고요.”
“죽여서 해부를 해야 할 텐데요?”
“저 코어가 무슨 일을 벌일지 몰라요. 일단 꺼내서 분리하는 게 낫지 않겠어요?”
“흠, 그럼 일단 머리부터 좀 어떻게 할까요?”
대검을 꺼내 든 영수는 인간 지네를 당장 참수하겠다며 나섰다.
허나, 희란이 그의 손을 잡았다.
“……잠깐만요. 정말로 이 여자를 되살릴 수 있는 방법은 없을까요?”
“이지가 남아 있다면 그럴 수도 있겠죠. 하지만 방금 전까지 이 여자가 했던 행동을 생각해 보세요. 살려 주면 안 됩니다.”
인간일 때의 기억과 정신력을 가지고 있다면 살려 볼 가치가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조미나는 이제 더 이상 이 세상에 없는 사람이 되어 버렸다.
“추악한 모습을 간직하고 사느니 이쯤에서 깔끔하게 처리해 주는 게 여러모로 나을지 몰라요.”
“……그건 그렇지만, 이 여자가 죽음으로써 상처를 받을 아이도 있잖아요.”
“아이에게는 미안한 일이지만, 이제 그 아이의 이모는 이 세상에 없습니다. 기억이 존재하지 않는 한, 이 여자는 그저 괴물일 뿐인 거죠.”
모질게 들릴지는 몰라도 헬창스는 영수의 말에 공감할 수밖에 없었다.
기억을 잃고 오로지 본능에 의해 움직이는 괴물을 더 이상 인간이라 할 수는 없는 노릇 아니던가.
이제 희란도 더 이상은 말릴 수가 없었다.
“그래요, 그럼 치자고요.”
“갑니다.”
영수는 거대한 대검으로 조미나의 머리를 깔끔하게 베어 냈다.
그러자 인간 지네의 신체가 미친 듯이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끄에에에에엑……!
마치 수백 명의 사람들이 발버둥 치듯, 그녀는 추악하고 끔찍한 모습으로 서서히 죽어 갔다.
이윽고 주현은 영수에게 다가갔다.
“검 좀 빌릴 수 있어요?”
“얼마든지.”
일반인은 아예 들기조차 힘든 대검을 한 손으로 든 주현은 인간 지네의 몸을 천천히 갈라 버렸다.
상당히 예리한 대검의 칼날은 수술용 메스보다도 수월하게 개복을 진행할 수 있게 해 주었다.
배를 갈라 보니 지네의 안에는 인간들의 장기가 상당히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기본적인 장기의 위치는 몬스터, 혹은 실제 지네와는 다르네요. 인간의 장기 위치를 모방해서 몰아넣은 느낌이랄까? 다만 소장과 대장이 차지하는 비율이 압도적으로 높아요. 이건 소화를 시킨 후, 그 영양분을 최대한 많이 저장하기 위한 것으로 보이네요.”
인간 지네의 장기는 인간의 장기를 하나하나 모아서 덩어리로 뭉쳐 놓은 느낌이었다.
그러니까, 인간의 장기와 신체 조직을 따로 떼어 경단처럼 뭉쳐 재배합해 놓았다는 뜻이었다.
“……정상은 아니에요. 이런 괴물을 만들어 내다니.”
“답은 지하에 있을 겁니다. 이제 코어를 꺼내고 아래로 내려가 볼까요?”
이주현은 거대한 대검을 내려놓고 단도를 꺼내어 조심스럽게 심장 부근의 근막을 잘라 냈다.
그러자 그 안에서는 아직도 뜨겁게 타오르고 있는 코어가 모습을 드러냈다.
헌데 그 코어의 모습이 이채롭다.
“심방과 심실, 그리고 그 주변을 이루는 세포 전체를 코어로 만들어 놓았어요. 뭐랄까, 심장 자체가 코어로 이뤄져 있다고 해야 할까요?”
“코어를 이렇게까지 성형할 수 있나요?”
“흠, 글쎄요. 수술에서 가끔 사용되는 경우가 있기는 한데, 그건 뼈나 관절을 대체하기 위해 사용하는 거고요, 이렇게 장기를 대체할 수는 없죠. 기본적으로 코어라는 건 상당히 딱딱하거든요.”
장기는 부드럽게 움직여 줘야 한다.
원자재 안에 코어를 갈아 넣는다면 몰라도 물렁물렁하게 코어 자체를 성형한다는 건 사실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다면 저건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일까.
“연구할 가치가 있어요. 가지고 나가 보자고요.”
“자, 그럼 움직입시다.”
식단 관리를 위해서 가지고 다니는 밀봉 팩을 깨끗이 세척한 후, 그 안에 코어를 넣어 두었다.
이렇게 허술하게 관리하는 게 좀 그렇긴 해도 급한 대로 일단 밀봉은 해 두었다.
가방에 코어를 넣어 놓고 지하로 향하는 헬창스.
총총은 지하실에서 또 다른 종류의 진동을 감지했다.
“……엇? 진동이 또 일어난다요!”
“몬스터가 더 있는 건가?!”
“아니다요! 뭔가, 기계 움직이는 소리 같다요!”
“기계라고?”
정체가 뭔지는 몰라도 일단 기계가 움직인다는 것에 약간은 안심한 헬창스.
허나, 여전히 공격 진형은 그대로 유지하고 있었다.
잠시 후 당도한 지하실.
우우웅…….
지하실 사이드에는 일렬로 소형 발전기가 늘어서 있었는데, 그것은 실험용 수조에 들어 있는 정체불명의 생명체들에게 에너지를 꾸준히 공급해 주고 있었다.
아마도 진동은 저 발전기에서 나오는 모양이었다.
“……아니, 이게 다 뭐야?”
“DNA를 주입하는 실험일까요?”
여기서 괴물이 탄생하고 있었던 것이 분명해 보였다.
태하는 일단 뭐가 어떻게 될지 모르니 이 안에 있는 자료를 모두 가지고 가기로 했다.
그는 이 뒤를 청룡방에 맡길 요량이었다.
“몬스터 처리는 청룡방에게 맡기자고요. 그쪽에서 해부를 해서 뭔가 찾아낼 수 있겠죠.”
“그럼 우리는 자료를 먼저 조사하는 건가요?”
“일단 나가자고요.”
***
아지트로 돌아온 헬창스는 지하 실험실의 자료를 심도 있게 탐독했다.
특히나 태하의 활약이 돋보였다.
그는 두뇌에 점진적 과부하를 적용시켜 보통의 인간보다 훨씬 더 뛰어난 연산 능력과 암기 능력을 갖게 되었던 것이다.
“우와, 대장! 무슨 문서 읽는 속도가 기계 수준이네요?”
“이제부터 헬창 스캐너라고 불러 줘.”
허나, 그렇게 탐독을 해도 그 양은 어마어마하였다.
그로부터 반나절 후, 상당히 흥미로운 것이 발견되었다.
“그 지옥에서 온 화신이 이용광의 DNA를 가지고 재탄생시킨 몬스터였다고……?”
“허 참, 놀랍기 이를 데가 없네요. 사람의 DNA를 복제해서 그 안에 악령을 담을 생각을 했다니.”
기괴한 모습의 몬스터들이 악령의 화신이라고 불렸던 것은 그 안에 악한 영혼이 담겼기 때문이었다.
다만, 일반적인 몬스터의 DNA로는 악령을 담을 수가 없으니 귀능력자인 이용광의 DNA로 그것을 완성시켰던 것이다.
허나, 그보다 더 놀라운 일은 따로 있었다.
“장기를 대체해……?”
“산화 마정석이라니, 들어 본 적 있어요?”
문서에는 산화 마정석이라는 것을 가지고 대체 장기를 만들었다고 나와 있었다.
태하는 마정석에 대한 정보가 나와 있는 부분을 읽어 보았다.
“마력을 내포하고 있는 이 마정석이라는 물질이 산화되면서 전혀 다른 물질로 바뀌었다……. 그게 지금 말하는 산화 마정석, 즉 은청석이라는 물질이라네요.”
“은청석……? 그거 예전에 몰먼들이 우리에게 준 내복 아니에요?”
“아 참!”
몰먼족이 던전에 무수히 많다고 했었던 그 신비한 물질.
태하는 문건 속 사진에 나온 돌이 바로 그것이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미 헬파이어는 은청석에 대한 연구를 상당히 진전시킨 듯했다.
“은청석은 언데드에게 특별히 효과가 좋으며 가공 방법에 따라서 다이아몬드의 몇백 배 수준의 강도와 유연함을 갖게 된다고 나와 있네요. 앞으로 이걸 자동차 부품에 사용할 것이라고 하네요.”
“자동차 부품이요……?”
“엔진 실린더에 특히 많이 사용될 것이라고 해요. 열 변형이 일어나지 않으면서도 가볍고 튼튼하니까요.”
“흠, 예전에 한참 진행되었던 파인세라믹 코팅과 비슷한 형식이네요.”
과거 열에 강한 세라믹 소재를 가지고 실린더를 생산하는 연구가 진행된 적이 있었다.
엔진의 실린더가 열 변형을 일으키지 않기에 효율을 끌어낼 수 있다는 것이었다.
허나, 결과론적으로 본다면 세라믹은 실린더를 만들기에는 좋은 소재가 아니었다.
윤정은 이에 대해 설명했다.
“파인세라믹은 열에 강하지만 충격에 약해서 실린더 개발은 중단되었어요. 하지만 만약 이걸 은청석으로 대체하게 된다면, 얘기는 달라지겠죠.”
“……흠, 그래요?”
“지금은 내연기관에서 탈피하여 코어 발전으로 자동차 산업이 바뀌었잖아요? 그런데 한 가지 문제가 있어요. 코어가 내뿜는 열을 견딜 만한 물질이 별로 없어서 자동차의 부품을 자주 교체해 줘야 하죠. 특히나 엔진이 그래요.”
“반영구적인 동력을 얻었는데 그걸 견뎌 내야 할 부품이 그렇지 못하다는 건 참 아이러니하네요.”
“그러니까요. 하지만 그걸 견딜 수 있는 새로운 부품이 탄생한 거죠.”
“아니, 근데 이걸 왜 사람들에게 알리지 않았을까요?”
이 정도면 광물업계가 발칵 뒤집힐 수준의 정보였다.
허나, 이것이 왜 학계에 공개되지 않은 것일까?
그것은 헬파이어의 야망과 관련이 있었다.
태하는 은청석의 보고서와 함께 첨부된 서류에서 답을 찾았다.
“공격적 인수합병을 위한 자금을 동원하려고 했다는데요?”
“공격적 인수합병? 어디를요?”
“……파이어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