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5 만신창이(1)
쿠우웅……!
묵직한 진동이 연구실 바닥을 울려 댔다.
여의봉이 몬스터를 타격할 때마다 강타 계열 스킬이 사정없이 터져 댄 것이다.
“우와, 진짜 그레이트하네! 저런 특성 스킬은 아마 업계에 처음 나타난 것이겠죠?”
-내 생각인디, 아마 레이드의 판도가 뒤집어지지 않을까, 그리 생각된다니께?
그야말로 걸어 다니는 폭탄이라는 말이 어울릴 정도로 무지막지한 공격력.
그런 유신성에게 한나의 증폭, 그리고 희란의 배리어가 더해지니 말 그대로 호랑이 등에 날개를 단 격이었다.
빠각!
“이걸로 300마리째! 역시 서포터랑 힐러가 받쳐 주니까 무서울 게 없네!”
“후훗, 별말씀을요.”
소규모 레이드의 장점은 스쿼드가 가족처럼 전부 끈끈하다는 점이었다.
서로에게 도움 한번 안 받아 본 적 없고, 생사고락을 함께한 세월이 하루 이틀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그런 고생 끝에 맺어진 이 끈끈한 전우애는 남녀를 불문하고 서로 가족처럼 연결 고리를 만들어 준 것이었다.
그렇게 정글러 유신성의 활약으로 연구소 강당까지 쭉 밀고 나간 헬창스.
그곳에 도달하니 지하로 통하는 길이 보인다.
“괴물들은 저기서 쏟아져 나오는 것 같죠?”
-뭐여, 이제 나도 내려가도 되는 겨?
“네, 그러셔유!”
밖에서 망이나 보고 있으려니 도저히 좀이 쑤셔서 못 견디겠던 임혁수는 그 자리에서 폴짝 뛰어나와 동료들과 합류했다.
동료들은 그와 하이파이브를 하며 맞아 주었다.
짜자자작!
“나이스 서폿!”
“아니, 그나저나 뭔 놈의 괴물들이 그리 개떼처럼 튀어나온 겨?”
“이제부터 한번 확인해 봐야죠. 그럼, 들어갑시다!”
언제나 그렇듯 태하는 최전방에 서서 방패를 잡고 전진해 나아갔다.
근딜은 좌우 전방을 맡고 원딜들은 방어 라인 너머를, 윤정과 총총은 후방을 주시했다.
총총은 어느새 헬창스에 자연스럽게 녹아들어서 여러모로 파티에 도움을 주고 있었다.
몰먼 특유의 감각이 발달한 총총.
“앗! 대장 나리! 약하게 진동이 느껴진다요!”
“진동? 어떤 종류의?”
“……아아, 보자.”
그 자리에 서서 가만히 촉각을 곤두세우는 총총.
그는 이내 답을 찾았다.
“이거, 발자국 소리다요!”
“발자국……?”
“크다요! 큰데 조심스럽게 걷고 있다요!”
“큰데 조심스럽게 걷는다?”
“……어, 온다요! 우리 쪽으로 오고 있다요!”
총총은 당장 전투준비에 들어갔다.
딸깍!
손목의 빨간색 버튼을 누르자, 총총의 기관단총이 거대한 중화기로 변했다.
촤라라라락!
“나리! 준비됐다요! 슈퍼 몰먼 총총 나가신다요!”
“헬창 헌터씨! 우리, 조금 넓은 곳으로 나가요!”
몰먼의 감각은 인간의 것보다 족히 몇 배는 더 발달되어 있다.
총총이 예견했던 그 거대한 물체는 반드시 이들의 앞에 정체를 드러낼 것이다.
만약 그렇게 거대한 몬스터와 대면하게 된다면 좁은 공간은 오히려 불리한 상황을 만들어 낼 수도 있었다.
“그럼 뒤로 조금만 후퇴합시다! 마침 강당이라서 천장도 높으니 잘되었네요.”
특히나 근딜과 원딜의 합이 잘 맞으려면 공간 확보는 필수였다.
태하는 파티를 이끌고 강당으로 나왔다.
그러자마자 어디선가 수많은 물체가 바닥을 탁탁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다.
타다다다닥…….
헬창스는 경악하고 말았다.
-……침입자다!
“지, 지네?!”
인간의 얼굴을 한 지네는 사람의 하반신으로 만들어진 다리를 이용해서 바닥을 기어 다니고 있었다.
마치 인간을 얼기설기 붙여서 만든 것 같은 저 끔찍한 모습.
태하는 이미 저놈을 한번 마주친 적이 있었다.
“악령의 화신이라고 했었던 것 같은데, 여기에도 있네.”
“화신이요?”
“저번에 가빈이랑 싸울 때 봤어요. 악령을 소환해서 그것을 실제 생명체로 만들었을 때, 딱 저런 모습이 되었었죠.”
“그럼 저게 생명체라는 건가요, 악령이라는 건가요?”
“글쎄요. 저번에는 악령이라고 확신했는데, 지금은 뭐가 어떻게 된 것인지 잘 모르겠네요.”
인간 지네는 침입자를 보자마자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
흑인, 백인, 황인 할 것 없이 온 인종을 다 섞어서 만든 지네는 인류의 통합 중에서 감히 최악이라 할 만했다.
놈이 파티에 가까이 왔을 때, 그들은 인간 지네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조미나 씨?!”
“허어! 그럼 설마하니 선임 연구원 본인이 스스로 인간 지네가 된 거란 말인가요?!”
이미 이성을 잃은 게 분명했지만 그 이목구비는 사진에서 보았던 조미나와 일치했다.
태하는 이제 그녀를 인간으로 되돌리는 것이 불가능하다고 판단했다.
“……되도록이면 살려서 데려오라는 임무는 완수 불가능하겠네요.”
“저걸 살려서 데려가 봤자 어차피 나오는 것 하나 없을 겁니다. 그냥 죽이자고요.”
인간이 언데드로 돌변하면 인성이고 뭐고 따질 것 없이 괴물로 변하는 것처럼 인간 지네 역시 그런 모양이었다.
헬창스는 전력을 다해 인간 지네를 공격했다.
방패로 지네의 공격을 막아 내는 태하, 그 양쪽 옆구리로 강력한 근딜이 박히기 시작했다.
스스스……!
“야보옷!”
15개의 환영으로 분열한 유신성이 사정없이 강타를 쏟아 냈다.
쿠구구궁!
-끼에에에엑!
고통에 몸부림치는 인간 지네, 영수는 그림자로 사정없이 칼질을 해 댔다.
서걱, 서걱!
본체 없이 그림자만으로 공격했기에 인간 지네는 영수에게 타격을 일절 줄 수 없었다.
그저 샌드백처럼 두들겨 맞기만 하는 인간 지네에게 대책이란 존재하지 않는 것 같았다.
허나, 그건 착각에 불과했다.
구그그극!
“……다리가 늘어났어요!”
“젠장, 두들겨 맞을수록 다리 숫자가 늘어나는 건가?!”
태하는 후방으로 고개를 돌려 이주현을 쳐다보았다.
그는 의사로서의 소견을 내어놓았다.
“당연히 의학적으로는 불가능해요. 하지만 몬스터의 신체 해부로 생각해 본다면 이해가 아예 안 되는 건 아니죠. 생명체는 외부에서 어떠한 타격을 받아 일부가 손상되면 그것을 메우기 위한 활동을 시작해요. 바로 회복이라는 과정이죠. 이 회복에서 만약 내부적인 활동으로 인해 일반적인 수치보다 훨씬 높은 초과 회복을 하게 된다면 신체 능력은 향상되기 마련입니다.”
“아하, 우리가 하는 점진적 과부하와 트레이닝 이론과 비슷하네요!”
“비슷하긴 한데, 결이 전혀 달라요. 저놈들은 미토콘드리아의 증식 수준의 회복과 발달이 아니라 아예 신체의 일부분을 증가시키는 겁니다. 조직을 새로 만들어 낸다는 뜻이죠.”
후방에서는 원딜들이 포화를 쏟아 내고 있었다.
특히나 인상적인 것은 임혁수의 딜링이었다.
[스킬: 허리케인 블릿]
[속성 공격력을 가진 탄환이 허리케인을 일으키며 5초간 대미지를 줍니다]
[지속 시간: 근력과 근육량과 비례합니다]
헬창스들의 스킬은 마치 운명처럼 헬스와 연관되어 있기 때문에 근육량이 증가하면 어떤 방식으로든 시너지를 받게 되어 있었다.
그건 임혁수 역시 마찬가지였다.
쐐에에에엥!
임혁수의 탄탄한 허벅지처럼 강렬하게 적을 휘갈기고 있는 허리케인 블릿.
“허리케인이 아주 그레이트한데요?!”
“하체를 키우길 잘혔어! 고마워, 용팔이!”
“헤헤, 별말씀을!”
화살비와 허리케인 블릿, 그리고 그 후방에서는 코어 에너지로 만들어진 윤정과 총총의 무기가 사정없이 폭격을 퍼부어 댔다.
쿠구구궁!
“총총, 인정사정 볼 것 없어!”
“우헤헤헤! 죽어라요, 이 괴물아!”
각자의 위치에서 최선을 다해 딜링을 쏟아 내는 헬창스.
허나, 그러면 그럴수록 지네의 다리 개수는 점점 늘어나기만 했다.
상처를 입어도 금세 회복했으며 부들부들했던 살갗은 점점 딱딱해지더니 이내 갑각처럼 변해 갔다.
우드드득!
-먹이다!
조미나는 전자 기계음 오작동으로 인해 뭉개져 버린 목소리처럼 괴상망측한 소리를 내며 달려들었다.
허나 바로 그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스스스스슷!
인간 지네가 2마리로 분열한 것이었다.
“……유성환영?!”
“저놈, 우리가 공격할 때마다 그 능력을 흡수하고 있었던 겁니다!”
“허어! 그게 가능하다고요?”
“유전자 박스를 극단적으로 개량했다면 가능한 일이죠.”
“생명체로선 도저히 불가능한 일을 해내는 것을 보면 생명공학자로선 오히려 대단하다고 해야 할지…….”
“이 좋은 능력을 좋은 곳에 썼으면 얼마나 좋았을까요?”
조미나는 유성환영을 아주 제대로 사용해 주었다.
그녀는 용팔의 애로우 레인에 허리케인 블릿까지 섞어서 헬창스에게 시전해 주었다.
그야말로 비처럼 내리는 불의 화살, 그리고 그것이 땅에 닿으면서 생겨나는 허리케인은 그야말로 전율마저 일게 했다.
쐐에에에엥……!
“스치면 그냥 사망각인데?! 요즘 다들 운동을 너무 열심히 하신 거 아니에요?”
“……헬창이라 어쩔 수 없었다고요!”
상대방의 능력을 흡수한다는 것만 해도 무서운데 그걸 믹스해서 강화한다는 건 정말이지 끔찍한 일이 아닐 수 없었다.
헬창스는 지금까지 자신들이 해 온 노력이 위협으로 다가오자, 극심한 현타까지 느꼈다.
허나, 지금 이 자리에서 신세 한탄이나 하고 있을 수는 없었다.
“젠장, 무슨 방법이 없을까요?”
“디버프를 주면 아마 그걸 흡수해서 새로운 능력을 만들어 내겠죠. 그렇게 되면 우리는 그 즉시 바로 몰살입니다.”
“……흠.”
아무리 생각해 봐도 특성 기술까지 흡수하는 건 너무하지 않았나 싶었다.
바로 그때, 태하는 한 가지 묘안이 떠올랐다.
“저놈, 아무리 그래도 복사한 스킬은 레벨 1인 모양이죠? 클론이 하나뿐인 것만 봐도 알 수 있고요.”
“하긴. 만약 레벨이 높았다면 더 많이 분열해서 공격했겠죠? 보아하니 무슨 심오한 전략을 숨길 수 있을 정도로 이성의 끈을 붙잡고 있을 친구도 아닌 것 같고요.”
“그럼 힘 대결 좀 해 볼까 싶은데. 어때요?”
“힘 대결이요?”
태하는 자신의 시그니처 기술이라고도 할 수 있는 스트랩 공격을 바탕으로 놈의 코어를 빨아들이는 전략을 세웠다.
윤정은 이 전략이 양날의 검이라 고민에 빠질 수밖에는 없었다.
“……위험해요. 우리가 힘 싸움에서 이긴다는 보장도 없고. 만약 실패하면 우리 모두 다 죽는다고요.”
“하지만 이것이 거의 유일한 방법이라고 생각되는데요.”
가만히 옆에서 얘기를 듣고 있던 이주현이 손을 번쩍 들었다.
“잠깐! 그럼 디버프 레벨에서도 내가 앞선다는 거잖아요?”
“그런 셈이죠.”
“간단하네! 그럼 차라리 디버프 대결로 가는 게 어때요?”
“아하, 디버프 대결!”
“디버프로 저놈을 확 조져 놓고 그다음에 코어를 흡수해서 게임을 끝내면 되잖아요.”
“음……!”
“그리고 무엇보다 저놈에게 코어라는 게 존재하는지 아닌지, 그것조차 불확실하잖아요?”
윤정과 태하는 무릎을 쳤다.
그들은 지금까지 인간 지네를 몬스터로만 생각했지 저것이 정확히 무슨 생물인지는 인지하지 못하고 있었다.
만약 코어가 존재하지 않는 상태에서 흡수를 진행했다간 무슨 일이 생길지 아무도 몰랐다.
“……그러고 보니 내가 무서운 전략을 세워 놓고 있었네요.”
“앞으로는 저돌적인 방법보다는 조금 우회적인 것도 생각을 해 보자고요.”
멀리 가려면 함께 가라는 말이 절감되는 순간이다.
만약 동료들이 없었고 태하가 혼자서 이놈과 마주했다면 과연 어떤 일이 벌어졌을지 상상조차 하기 싫었다.
“고마워요! 생명을 빚졌네요!”
“후후, 같은 동료끼리 뭘. 아무튼 간에 디버프 시작해 볼까요?!”
“오케이!”
“한나 씨, 태하 씨! 내게 힘을 주세요!”
“그럼 힘을 조금 더 실어 볼까요?”
태하는 던전에서 라이먼트를 소환했다.
홍이를 통해 소환된 라이먼트는 상대를 보더니 광분하기 시작했다.
-오오, 뭐야?! 우리 오늘 제대로 맞짱 한번 뜨는 거야?! 대장, 렛츠고! 내가 오늘 제대로 한번 보여 줄게!
“……어휴, 시끄러워. 각설하고 어서 전투준비부터 해. 주현 씨랑 합을 맞춰.”
-이야! 시작부터 우리 대장이 나를 너무나도 반겨 주네!
라이먼트는 디버프 닥터의 팔뚝에 문신처럼 자리 잡았다.
스스스스……!
디버프의 스킬이 순식간에 증폭되었다.
“……오호, 저놈도 이건 몰랐겠죠?”
“후후, 그렇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