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01화 (101/197)

101 헬창이 헬창을 만났을 때(1)

소녀의 능력은 피를 조종하고 흡입하며 악령을 다루는 다소 신박한 면이 있었다.

태하와 란돌은 도대체 저런 괴물이 어디서 나왔나 싶었다.

“그야말로 갑툭튀네. 도대체 저런 게 어디서 나왔지?”

“패턴이 다양해요. 저런 각성자를 본 적 있어요?”

“란돌 씨도 속성이 더블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흠, 그런 것이랑은 본질적으로 달라요. 뭐랄까, 건강에 상당히 좋지 않은 각성이라고나 할까?”

의문의 소녀는 피의 칼날을 비처럼 내리더니, 이내 그것을 마치 폭풍처럼 휘두르기 시작했다.

수천 개의 칼날이 빠른 속도로 태하와 란돌을 공격해 댔다.

태하는 즉시 방패를 꺼내 들었다.

까가가가강!

엄청난 공격력이었지만 태하의 반응도 상당히 빨랐다.

“순발력이 그야말로 발군인데요?”

“방금 전에 새로운 특성 스킬을 받았거든요. 아시죠? 협응근과 길항근.”

“그게 스킬과 무슨 상관인데요?”

“제 스킬은 근육에 새겨져요. 협응근은 2개의 스킬을 짬뽕시켜서 쓸 수 있죠.”

“허어, 그래요?! 그런데 고립 운동에서 협응근 사용은 그리 좋은 예는 아닌데…….”

“음, 그건 그렇죠. 하지만 이 스킬이 정말로 좋은 이유는 따로 있어요.”

피의 칼날이 날아들었지만 태하는 방패를 거두고 앞으로 돌진해 나아갔다.

피융!

마치 활시위를 떠난 강력한 화살처럼 앞으로 쏘아져 나간 태하는 그대로 몸을 회전시켰다.

[특성 스킬: 협응근 - 조합]

[대흉근과 삼두박근의 스킬을 조합합니다]

대흉근은 지구력을 높여 주고, 삼두박근은 체력을 높여 준다.

지구력과 체력이 서로 협응하면서 시너지를 발생시켰고, 회전력에는 시간이 지날수록 가속도가 붙었다.

그야말로 허리케인처럼 날아가면서 칼날의 비를 뚫고 돌진하는 태하.

이번에는 소녀도 꽤나 놀란 눈치였다.

“……빨라?”

태하는 이 회전력을 그대로 발차기로 되돌려주었다.

쐐에에엥!

마하의 속도와 맞먹는 그의 발차기는 소녀의 허벅지를 강타하였다.

그야말로 건물마저 무너뜨릴 듯한 로우킥이었다.

그녀는 다급히 피의 장벽을 쳤다.

허나, 태하의 발차기에 그 장벽은 처참히 무너지고 말았다.

쨍그랑!

“맞았어……?”

“정답이다, 꼬맹아!”

콰아아아앙!

그녀는 중심이 무너지더니 이내 한쪽으로 고꾸라져 내동댕이쳐지고 말았다.

태하의 로우킥은 강력한 장벽을 뚫으면서도 그 힘을 잃지 않았던 것이다.

“이게 바로 협응의 힘입니다.”

“……대단해요. 헬스가 역시 진리인 건가?!”

또 1명의 보현파 제자가 늘어나는 순간이었다.

이제 태하는 소녀를 잘 챙겨서 이곳을 나가 자초지종을 들어 보기로 했다.

허나 바로 그때, 생각지도 못한 일이 벌어지고 말았다.

스스스스……!

그녀의 손으로 도핑테스트를 위해 뽑아 두었던 혈액이 스며든 것이었다.

두근!

[스킬: 좀비의 맷집]

소녀는 일순간 눈을 번쩍 떴다.

“……헬창 헌터의 피, 맛있어!”

“이런 제기랄?!”

순식간에 태하의 DNA를 흡수해 버린 소녀.

그녀는 가녀린 몸체와는 어울리지 않는 엄청난 탄성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파앗!

마치 날다람쥐처럼 튕겨져 나온 그녀는 태하에게 스트레이트 펀치를 날렸다.

[스킬: 집중 고립]

누가 보아도 펀치를 치는 폼이 태하와 판박이였다.

게다가 사용되는 근육의 이해와 회전에 대한 판단, 그리고 무엇보다도 집중 고립을 사용할 수 있다는 점이 완전 똑같았다.

쉬익!

“……복싱 영재인가?!”

“아니요! 저 소녀, DNA를 흡수해서 자신의 것으로 만드는 겁니다!”

유전자 박스 그 자체.

그녀는 한마디로 걸어 다니는 유전자 수집기와도 같은 존재였던 것이다.

어쩌면 던전에서 보았던 키메라와 그녀는 같은 갈래의 존재인지도 몰랐다.

두 번의 펀치 이후, 그녀는 발차기까지 날렸다.

화르르륵!

발차기에서는 유황불이 뿜어져 나왔다.

태하는 이 불길을 어디선가 본 적이 있었다.

“……뭐야, 설마하니 이용광의 유전자를?!”

“지금 여기서 죽여야 해요!”

이번에는 반대쪽에서 냉기를 잔뜩 머금은 란돌이 쇄도해 나왔다.

그는 마치 남극을 손안에 옮겨 놓은 사람처럼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뤘다.

휘이이잉……!

날카로운 바람이 그녀의 곁으로 날아갔는데, 순간 주변의 공기마저 얼어붙었다.

허나, 허무하게도 그녀 역시 같은 스킬을 사용했다.

[스킬: 극한의 냉기]

[영하 120도의 강력한 냉기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습니다]

그녀는 냉기의 장벽을 세우더니 그것으로 란돌의 냉기를 무력화시켜 버렸다.

그러곤 이내 가공할 만한 힘으로 냉기의 창을 던지는 그녀.

“이얍!”

피융!

태하의 근력과 란돌의 냉 속성 능력이 만나자, 그야말로 재앙에 가까운 힘을 뿜어내기 시작했다.

“이런 제길!”

방패로 냉기의 창을 막아 내긴 했으나, 태하는 그 충격으로 인해 호텔 지하실 벽에 그대로 처박히고 말았다.

쿠우웅!

족히 1미터쯤 되는 깊이로 콘크리트 안에 쑤셔 박힌 태하.

그는 신음을 내며 피를 토해 냈다.

“쿨럭, 쿨럭!”

“……진정한 의미의 괴물이 탄생하고 말았군.”

이번에는 란돌에게 달려드는 소녀.

그녀는 눈에 잘 보이지도 않는 속도의 잽을 연속으로 날리며 란돌의 얼굴을 그야말로 밀가루 반죽 두들기듯 신나게 두들겨 댔다.

퍼버버벅!

“컥, 컥, 컥……!”

아무리 가드를 해도 그녀의 힘은 괴물과도 같았기 때문에 운동신경이 좋아 봤자 인간계의 신경으로는 따라갈 수가 없었던 것이다.

냉 속성 계열 마법 공격에서는 당연히 란돌이 우세하겠으나 피지컬적인 면에서만 본다면 소녀가 압승이었다.

무려 25연타를 날린 후에 후려치는 보디블로.

빠악!

“크허어억!”

란돌은 그야말로 얼음 주먹으로 복부를 얻어맞곤 그대로 쓰러지고 말았다.

이번에는 쓰러진 란돌의 머리에 사커킥을 날려 주려 했다.

아마 저 발에 맞으면 얼굴이 뭉개지는 것이 문제가 아니라 머리 자체가 으스러질 것이 분명했다.

슈우우욱!

그런 참사가 일어나기 전에 벽을 박차고 날아온 태하.

“이판사판이다!”

그야말로 이판사판 태클이 소녀의 허리를 밀치고 들어왔다.

헌데 그녀는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하반신을 뒤로 쭉 뻗어서 중심을 잡았다.

마치 태클 방어를 배운 그레플러처럼 말이다.

“……제기랄?”

“그렇게 맞고 싶었어?”

이번에는 태하의 상반신을 두 팔로 강하게 클린치 한 후, 그대로 니킥을 꽂아 넣기 시작했다.

빠각, 빠각!

엄청난 타격이었다.

지금까지 수많은 운동을 해 왔고 셀 수조차 없는 강적에게 두들겨 맞았지만, 이렇게까지 강력한 타격은 단언컨대 처음이었다.

마치 자신과의 싸움을 하는 것 같은 느낌이 드는 태하.

그는 한동안 두들겨 맞다가 이런 생각을 해 보았다.

‘내 약점이 뭐였더라?’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이 순간에 생각이라는 것을 할 겨를이 없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붙잡혀 두들겨 맞는데 무슨 생각이라는 것을 하겠는가?

허나, 태하는 다년간 단련된 맷집으로 그것이 가능했던 것이다.

‘……그래, 맞아. 나는 니킥을 찰 때에 하체가 유난히도 많이 흔들린다는 단점이 있었어.’

부웅!

그녀의 무릎이 태하의 머리를 차는 순간, 그는 클린치를 풀어내며 그대로 그녀의 상체를 두 팔로 힘껏 감았다.

이윽고 시전되는 슈플렉스.

“으랏차차차!”

DNA 속에 내장된 힘과 기술은 있었으나 경험이 부족했던 그녀는 그대로 태하의 몸을 따라 반원을 그리며 돌아갈 수밖에는 없었다.

그리고 곧바로 내리꽂히는 환상의 슈플렉스.

콰아아앙!

뒤통수에 얼얼한 타격을 받은 소녀는 그제야 축 늘어져 기절하고 말았다.

태하는 가쁜 숨을 내쉬며 그녀의 옆에 나란히 누웠다.

“허억, 허억! 쬐끄만 게 더럽게 세네!”

“……이제 이 녀석을 어떻게 할까요?”

“묶어야죠. 죽었다 깨어나도 못 풀도록.”

***

묵사발이 다 되어서 아지트 청룡무고로 돌아온 태하, 그리고 그 옆에 선 란돌을 보며 동료들은 그야말로 경악을 금치 못했다.

“……둘이서 사이좋게 다구리라도 맞고 온 겨?! 얼굴이 왜 그 모냥이랴?!”

“험험, 그건 아니고요.”

차마 아직 성인도 안 된 꼬맹이에게 흠씬 두들겨 맞았다는 소리는 할 수 없어서 입만 삐쭉거리는 태하.

그는 어깨에 들쳐 메고 있던 소녀를 바닥에 내려놓았다.

쿠웅!

마치 짐짝 던지듯 내려놓는 태하에게 여성 길드원들이 불같이 화를 낸다.

“이 아저씨가 미쳤나?! 태하 씨, 사람 그렇게 안 봤는데 애를 뭐 이렇게 던져 놔요?!”

“……대장, 실망이야!”

란돌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실망……? 한번 직접 당해 봐요. 그런 소리가 나오나.”

“아저씨는 또 누구신데요……? 아니, 그리고 이런 가녀린 소녀가 사람을 두들겨 패면 또 얼마나 팬다고? 그 덩치가 아깝지도 않아요?”

“역시. 오해라는 건 건강에 안 좋아. 내 이럴 줄 알고, 나올 때 CCTV 박스를 아예 통째로 뜯어서 가지고 왔지.”

노트북을 테이블 위에 올려놓고 CCTV를 연결시키는 란돌.

그는 태하의 동료들에게 방금 전에 있었던 일들을 녹화한 영상을 보여 주었다.

잠시 후, 헬창스는 단체로 할 말을 잃고 말았다.

“……이, 이게 저 소녀라고요? 에이, 말도 안 돼!”

“그냥 소녀 아닙니다. 우리 두 사람이 저 소녀 1명에게 이리도 지독하게 구타를 당한 걸 보면 모르겠어요? 구타가 몸에 얼마나 나쁜데…….”

어금니는 3개나 나갔고 코뼈는 부러져서 출혈이 멈추지 않았으며, 약간의 안와골절로 인하여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는 상황이었다.

아마 보통의 인간이었다면 지금쯤 병원에 입원해서 집중 치료를 받고 있어야 했을 것이다.

“약물 부작용 때문에 안면 근육까지 빵빵하게 자라나지 않았으면 지금쯤 저는 성형외과 전치 16주는 나왔을 겁니다.”

“……허 참, 살다 보니 별일이 다 있네. 그나저나 두 사람은 라이벌 관계 아니었어요? 어쩌다가 이렇게 친해진 건가요?”

태하는 그제야 동료들에게 란돌을 정식으로 소개해 줄 타이밍을 잡았다.

그 전까지는 처참한 몰골에 당황하는 동료들 때문에 그럴 시간이 없었던 것이다.

“아아, 다들 인사해요. 제3바벨탑의 수호자 란돌 피케스터 씨입니다.”

“……마이트의 동료인 그 탑의 수호자 말이에요?”

“네. 란돌 씨는 아직 성좌와는 만나 보지 못했다고 하네요. 우리가 아시아를 석권하고 제2바벨탑까지 점령하면 아마 란돌 씨와도 같이 탑을 오를 수 있게 되겠죠. 그때는 성좌를 만나 볼 수 있게 되지 않을까 싶기도 합니다만.”

란돌은 헬창스에게 손바닥을 들어 보였다.

“반가워요. 란돌 피케스터입니다. 그냥 편하게 란돌이라고 불러 주세요.”

“이런! 헬창이 헌터였다니, 믿어지지 않네요.”

“그러는 당신들도 헬창 아니세요?”

헬창스는 그제야 큰 깨달음을 얻었다는 듯 무릎을 탁 쳤다.

“아하!”

“아무튼 같은 헬창끼리 만나게 되어서 너무 반갑고 좋네요. 조만간 어깨 운동 한번 조질 수 있기를 희망해 봅니다.”

“조만간이랄 거 뭐 있어요? 여기 며칠 머물면서 운동하면 좋겠구먼.”

“제가 얼굴이 좀…….”

란돌은 유난히도 외모와 건강에 신경을 쓰는 면이 있었다.

말끝마다 건강이라는 단어를 붙이는 걸 보면 약간의 강박 같은 것이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였다.

허나, 헬창들에게 외모는 중요치 않다.

“얼굴 좀 붓는 게 근 손실보다 낫다고요?”

“……그건 죽어도 아니죠!”

“그럼 답 나왔네. 갑시다, 운동하러!”

헬스라는 단어 하나만으로 일치단결이 되었다.

그런데 그들에게는 아직 해결하지 못한 숙제가 하나 있었다.

“그나저나 저 소녀는 어떻게 하죠?”

“흠, 감옥에라도 가둬 놔야 하나?”

썩 내키지는 않지만 스트랩으로 이 녀석을 꽁꽁 묶어 버려야 할 것만 같았다.

허나, 그때 동료들의 마음을 뒤흔드는 일이 벌어졌다.

“……맘마…….”

기절한 소녀는 엄지손가락을 쭉쭉 빨며 아기처럼 굴었다.

마치 엄마 품에 안긴 듯 꿈틀거리는 소녀.

“……애는 애네.”

“어쩌죠?”

“흠.”

그 순간, 태하의 눈에 익숙한 것이 보였다.

스스스스……!

소녀의 등짝에 피어나기 시작하는 고대의 룬어.

“……마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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