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리스트

헬스레이드-100화 (100/197)
  • 100 지겨운 스폰서(2)

    에메랄드컵에서 TOP10에 들어간 태하.

    그는 심사위원들의 감탄사를 자아내는 살인적인 데피니션으로 무대를 압살하고 있었다.

    TOP10에서 TOP3로 올라가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5분 남짓이었다.

    이제 심사위원들은 태하에게 온 신경을 집중하고 있었다.

    -정태하 선수가 에메랄드컵에 출전한다고 했을 때에 주변에서 논란이 많았습니다. 과연 미스터 올림피아가 대회에 나오는 것이 형평성에 맞느냐고요.

    -맞습니다. 하지만 최근 캐나다에 괴물 같은 선수들이 혜성처럼 등장했고, 란돌 피케스터와 같은 스타급 신예가 등장하면서 그 논란은 종식되었습니다. 심지어 미스터 올림피아를 걱정하는 사람들도 생겼죠.

    -그렇습니다! 하지만 그 걱정, 아예 눈 녹듯이 녹여 버렸네요!

    -얇은 허리에 정확하게 Y자로 뻗어 나가는 전면, 그리고 V자라고 생각될 정도로 꽉 차 버린 등판. 이건 그야말로 신이 빚은 완벽한 조각상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뿐이 아닙니다! 정태하 선수 하면 으레 거론되는 세퍼레이션, 그리고 살인적인 데피니션. 그것을 더욱더 강화해서 나왔잖습니까?

    -클래식 피지크에서도 보기 힘들며, 심지어는 맨즈 피지크에서도 보기 힘든 강력한 복근과 얇은 허리 라인. 그것이 더욱 강조되면서 로봇을 보는 것 같다는 말이 많았습니다. 심지어 숨을 고르고 있는 지금 이 순간에도 허리 라인은 계속 유지되고 있죠.

    팔룸보이즘이 전혀 없는 허리는 헤비급 이상 보디빌더들에게서는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그만큼 약물에 대한 부작용 하나 없이 몸을 만든다는 것은 어려운 일인 것이다.

    허나, 태하는 그 모든 것을 스킬과 노력으로 눌러 버렸다.

    -과거에 정태하 선수는 꽤 오랜 시간 동안 스트렝스 훈련과 체력 단련을 해 온 것으로 압니다.

    -아하! 그런 과거가 있었던가요?

    -잘 아시겠지만 스트렝스 훈련에서 특히나 턱걸이, 딥스, 푸시업과 같은 운동은 프레임을 넓히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이미 그때부터 프레임은 최상위 포지션에 속해 있었고, 그것을 본격적으로 보디빌딩으로 끌어오면서 그야말로 괴물이 되어 버린 거죠.

    -그렇다면 일반인들도 스트렝스 훈련부터 시작해서 보디빌딩으로 넘어가도 괜찮겠네요?

    -글쎄요. 케이스에 따라 다르겠으나, 저의 개인적인 견해를 말하자면 그것도 나쁘지는 않다고 생각합니다. 물론, 스트렝스 훈련과 보디빌딩 훈련은 엄연히 갈래가 다릅니다. 그래서 상충되는 부분도 많이 있죠. 하지만 근본적으로 근육을 사용하고 그 길을 갈고닦는 것은 같다고 생각합니다.

    심사위원들은 물론이고 해설자들도 태하의 훈련법과 그의 진화 과정에 대해 아주 긍정적인 평가를 내리고 있었다.

    물론, 이 모든 것은 태하가 성공적인 보디빌더로 거듭났기에 내릴 수 있는 것이었다.

    허나, 그는 모든 트레이닝 이론을 몸으로 입증시켰고, 결국은 보디빌딩계의 살아 있는 전설이 되어 가고 있었다.

    “자, 그럼 결승전을 시작하겠습니다!”

    사회자의 멘트에 관객들이 환호하기 시작했다.

    북미의 보디빌딩 시장은 아시아에 비해서 상당히 발달한 편이고 관객들의 숫자도 훨씬 더 많다.

    와아아아아……!

    무대가 떠나갈 듯한 환호성에 태하는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착각에 빠졌다.

    ‘이 맛에 무대를 떠나지 못하는 것이구나!’

    흔히 보디빌딩은 ‘쇼’라고 말하곤 한다.

    보디빌딩은 체력이나 근력을 대결한다거나 기록, 혹은 스포츠맨십을 통한 스코어를 가르는 대회가 아니다.

    오로지 스스로의 근육, 그것을 관객과 심사위원들에게 어필할 뿐이다.

    한마디로 육체미를 겨루는 것.

    그것이 보디빌딩의 본질이라 할 수 있는 것이다.

    고로 무대라는 곳에 선수가 올라가게 되어 있고, 관객들은 그들을 보면서 환호한다.

    이 환호성은 가히 가수나 배우와 비교해도 손색이 없을 것이라고 감히 말할 수 있을 것이다.

    선수를 압도하는 환호성을 들은 태하는 함께 박수를 쳤다.

    “자, 그럼 양 선수는 무대의 중앙으로 오시기 바랍니다.”

    아쉽게도 란돌 피케스터는 결승에 올라가지 못했다.

    태하에 비해서 매스가 약간 더 클 뿐, 세퍼레이션이나 데피니션에서 낮은 점수를 받았기 때문이다.

    허나, 그렇다고 해서 지금 태하의 경쟁 상대가 뛰어난 건 아니었다.

    그저 근육이 가장 크기 때문에 뽑힌 것뿐이었다.

    “양 선수, 라인업!”

    자세를 잡는 두 사람.

    비교되는 실루엣부터가 엄청난 차이를 보인다.

    마치 피규어를 보는 듯한 태하와는 달리 상대방 선수는 오늘 막 던전에서 나온 골렘과도 같은 모습이었다.

    몇 차례 개인 포징이 이어졌다.

    “자, 그럼 결과를 발표하겠습니다. 오늘의 우승자는 바로…… 119번 정태하 선수! 축하드립니다!”

    어쩌면 이미 정해져 있는 승부였는지도 모른다.

    관객들은 환호성을 통해서 태하의 진가를 확인시켜 주었다.

    “와아아아아!”

    “정태하, 정태하……!”

    심지어 태하의 이름을 연호하는 사람들도 있었다.

    그들이 환호성을 지를 때마다 태하의 근육도 꿈틀거렸다.

    [스킬: 대사형의 오러]

    [당신의 팬과 보현파의 제자들이 늘어나고 있습니다]

    [오러 보너스: 근육량이 증가합니다]

    [근육당 스킬 레벨 상승: +1]

    [탑의 수호자 ‘마이트’가 당신에게 ‘헬스장인’의 칭호를 내려 주었습니다]

    ‘헬스장인? 한길만 팠다고 축하를 해 주는 건가?’

    마이트는 태하에게 헬스장인이라는 칭호를 내려 주었고, 그것은 태하에게 새로운 길을 열어 주었다.

    그것은 바로 집중 고립의 업그레이드 버전이었다.

    [새로운 스킬 체계를 획득하셨습니다]

    [특성 스킬: ‘협응’을 획득하셨습니다]

    [특성 스킬: ‘길항’을 획득하셨습니다]

    ***

    한편, 란돌은 태하의 데스벳을 따라서 조심스럽게 걸음을 옮기고 있었다.

    그는 절대적인 공명을 통해서 데스벳의 시야를 공유할 수 있었다.

    녀석이 보는 것과 듣는 것은 란돌도 보고 들을 수 있다는 뜻이었다.

    -끼릿!

    ‘그래, 나도 보여.’

    데스벳은 란돌을 행사장 지하로 안내했다.

    지하에는 주차장이 네 층, 그리고 탕비실과 관리실이 위치해 있었다.

    탕비실로 가지고 온 보디빌더들의 혈액은 아이스박스에 잘 포장해서 강철로 된 박스에 담겼다.

    박스에는 이런 글귀가 적혀 있었다.

    -근육 증가용 실험 혈청

    이것이 실험에 쓰인다는 것은 확실해진 셈이다.

    이제부터는 이것을 어떻게 쓸 것인지, 그것을 확인하면 될 일이었다.

    ‘자, 그럼 천천히 따라가 볼까?’

    란돌은 자신이 타고 온 차에 시동을 걸었다.

    부르르릉!

    이제부턴 천천히 그 뒤를 따라갈 참이었다.

    허나, 그의 차는 출발하지 못했다.

    쿠우웅……!

    어디선가 강력한 진동이 느껴진다.

    “……뭐지?”

    혈청을 운반하던 헬파이어의 하수인들이 당황하기 시작했다.

    그런 그들이 당황하는 사이, 지하 주차장으로 스포츠카 한 대가 들어섰다.

    부아아아앙!

    스포츠카는 놀랍게도 피로 물들어 있었는데, 바퀴에는 사람의 것으로 추정되는 다리와 팔이 조각처럼 끼어 있었다.

    그 조각들은 스포츠카가 멈추면서 그 충격으로 빠졌는데, 그것은 정확하게 헬파이어의 트럭에 날아가 꽂혔다.

    터억!

    “허, 허억!”

    “사, 살인인가?!”

    “이런 빌어먹을! 어서 출발하자! 잘못하면 이 주변이 다 통제될 수도 있어!”

    서둘러 출발하려던 그들.

    끼리릭, 끼리리릭!

    허나, 시동이 걸리지 않았고 스포츠카에서 사람이 내리더니 저벅저벅 걸어왔다.

    놀랍게도 피로 물든 소녀였다.

    그녀는 눈처럼 차가운 표정과 악령처럼 사악한 눈동자를 가지고 있었다.

    붉게 물든 그녀의 눈동자는 그야말로 악마를 연상케 했다.

    “헬창 헌터의 피를 내놔.”

    “……뭐, 뭐라고?”

    “음. 말을 못 알아듣는 것 같아. 뭐가 놈의 피인지 모르니까 한꺼번에 들이켜면 되겠다.”

    앳된 얼굴과 가녀린 몸. 허나, 그렇지 못한 그녀의 눈동자는 주변에 있는 모든 생명체의 피를 전부 빨아들이기 시작했다.

    스스스스……!

    180cm가 넘는 성인이 하나의 작은 피의 구체로 변하는 데 걸린 시간은 불과 1초 남짓.

    한 사람의 인생이 사라지는 데 걸린 시간치곤 허무하기 짝이 없었다.

    “꺼, 꺼거거걱……!”

    그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란돌은 즉시 태하에게 텔레파시를 보냈다.

    ‘……큰일이에요! 어떤 미친 소녀가 당신을 찾고 있어요.’

    -소녀라니요?

    ‘대회는 끝났나요?’

    -이제 마무리되었습니다.

    ‘얼른 전투준비를 하셔야겠는데요?’

    텔레파시를 주고받으며 차에서 내린 란돌.

    소녀는 그야말로 귀신같이 그의 행동을 간파하였다.

    “……어디서 쥐새끼가 우는데?”

    “이런, 빌어먹을?!”

    끼이이잉……!

    그녀의 손에서는 붉은색 혈기가 아지랑이처럼 피어오르더니, 이내 사방에 마법진을 그려 냈다.

    피로 이뤄진 마법진 안에서는 각가지 악령들이 깨어나 형상화되었다.

    우드드드득!

    -끼에에에엑!

    인간계에서는 절대 찾아볼 수 없는 혐오스러운 악령들, 그 추악한 모습에 란돌은 자신도 모르게 인상을 찌푸리고 말았다.

    인간의 몸을 누더기처럼 이어 붙여 만든 괴물이라든지 팔과 다리만으로 이뤄진 지네, 혹은 사람의 머리만 모아서 압축시킨 듯한 골렘 등, 사람이라면 차마 눈을 뜨고 쳐다보지 못할 형상이었다.

    “……별 해괴망측한 능력이 다 있네. 너, 그거 건강에 좋지 않아. 그러다가 절명한다?”

    “죽여.”

    악령들은 생긴 것만 징그러운 것이 아니었다.

    -끼에에엣!

    마법진이 만든 피의 호수를 마치 신나게 유영하듯 헤엄치며 달려드는 지네 악령.

    놈은 찰나의 순간, 공간의 일그러짐마저 만들어 낼 정도로 강력한 산성 물질을 토해 냈다.

    타앗!

    란돌은 그것을 피하는 것보다는 막아 내는 것이 훨씬 효과적이라고 판단했다.

    주먹을 꽉 말아 쥐는 란돌, 그러자 그의 앞으로 거대한 빙산이 솟아났다.

    쿠그그그극, 콰앙!

    빙산의 일각은 산성 물질을 막아 냈고, 그는 빙산의 몸통을 주먹으로 힘껏 후려졌다.

    “허업!”

    콰아앙!

    빙산이 부서지면서 그 파편들이 마치 폭탄처럼 쏘아져 나갔다.

    그야말로 마하의 속도로 튀어 나가는 파편들은 제아무리 악령의 화신이라고 해도 쉽게 피해 낼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촤라라라락!

    -끼헥, 키헥!

    피를 토하며 쓰러지는 악령의 화신.

    소녀는 흥미로운 미소를 지었다.

    “……갖고 싶어.”

    무엇이든 자신이 갖기로 한 것이 있다면 지구를 폭파시켜서라도 갖고야 말겠다는 집념이 담긴 눈빛.

    그 눈빛은 넘실거리는 혈기를 다시 한번 거둬들여 새로운 모습으로 바꾸었다.

    쿠그그그극……!

    이번에는 천장에 마법진이 생기더니 피의 구름이 피어오르기 시작했다.

    피의 구름은 비를 내릴 듯 잔뜩 찌푸린 모습이었다.

    허나, 피의 구름은 비를 내리지 않고 오히려 땅바닥의 모든 것을 끌어 올렸다.

    끼이이잉!

    “……젠장, 이건 또 뭐야? 신박한 공격 방법이네.”

    피의 구름은 땅 위의 모든 생명체에서 피를 뽑아낼 듯이 강력한 압력을 뿜어냈다.

    그 압력에 의해서 란돌 역시 상당한 압박을 받고 있었다.

    끼기기긱!

    “이런 빌어먹을!”

    잠시 숨이라도 잘못 쉬면 복압에 의해서 내부의 장기가 전부 터져 버릴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바로 그때였다.

    슈우우웅……!

    마치 총알과도 같은 속도의 신형이 지하실 문을 뚫고 튀어나왔다.

    “이얍!”

    바로 태하의 주먹질이었다.

    그의 주먹은 소녀의 신형을 사정없이 후려갈겼다.

    콰아아앙!

    허나, 그의 주먹은 허무하게도 그녀가 만든 피의 벽에 가로막히고 말았다.

    소녀는 태하의 등장에 몹시도 흥분한 모습을 보였다.

    “……헬창 헌터! 죽일 거야! 죽여야 해!”

    “흠. 우리 구면이었던가? 내가 뭘 그렇게 잘못했다고 죽여? 난 사고를 쳐서 너 같은 딸을 낳고 도망쳤다든가, 사기를 쳐서 집안을 망하게 했다든가, 뭐 그런 죽을죄는 짓지 않았는데.”

    “헬창은 죽어야 해!”

    전국의 헬스인들이 들으면 서운해할 말이었다.

    허나, 그녀는 진심으로 태하를 죽이고 싶어 하는 것 같았다.

    이번에는 구름의 모습이 바뀌더니 날카로운 피의 칼날이 되어 쏟아져 내리기 시작했다.

    쐐에에엥……!

    “……진짜 어지간히도 죽이고 싶은 모양이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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